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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22화 (322/624)

제322화

321화-남은 자의 한 (8)

채찍질을 당한 곳은 너무 아려서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발길질에 멍이 든 곳은 그나마 감각이 덜해서 다행이다.

깨끗이 한다며 뿌린 찬물에 전신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그러나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은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놈이……!]

[내가 왜……!]

[어째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이들.

가슴속에 담긴 모든 것을 쏟아 내는 이들.

작은 몸을 웅크려 겨우 들어가는 상자의 어둠 속에서.

소년은 울었다.

끊임없이 외치는 목소리에 괴로워서?

아니다.

괴로워서가 아니라.

슬퍼서다.

눈물은.

‘슬플 때 나는 거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그럼 안 슬플 거야.’

빛과 같았던 미소가 새하얗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미친 듯이 달려든 소어(訴圄).

목표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는 이들.

두 눈의 초점을 잃고 달려드는 소어의 모습에 강종혁이 식겁하며 영력을 끌어올린다.

자신들을 지키듯 감싼 검은 관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는 악귀.

공간 자체를 이동하는 그 힘의 무시무시함을 절절히 느끼며, 강종혁이 부적을 꺼낸 그 순간.

[흑관(黑棺)]

또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관이 상대를 가로막는다.

대체 이렇게 떨어진 곳에 어떻게 휙휙 만들어 내는 것인지 그 원리가 궁금한 술법.

하지만, 지금은 그 호기심을 해결할 때가 아니다.

상대의 목표를 알았기에 강종혁은 재빨리 왕일의 앞에 섰다.

떨치듯 뿌린 부적이 작은 결계를 만들어 낸다.

억지로 영력을 쥐어짜 최후를 맞이하려 했던 부작용 때문에 고갈된 영력을 쥐어짠다.

정신력은 물론, 육체의 기력마저 쥐어짠 최후의 결계.

딱 한 번.

한 번만 막을 수 있다면 그 역할은 충분하다.

이쪽엔 그 한 번의 기회를 붙잡아 줄 수 있는 이가 있으니까.

확신에 가까운 희망을 품고, 강종혁이 힘을 쥐어짜는 순간.

“흥.”

악귀와 함께 설천위를 압박하던 술사의 손짓에 결계가 무너진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무너지는 결계.

아무리 없는 힘을 쥐어짠 것이라고 해도 너무 빠르다.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몇 수는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 강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무너졌다면, 다시 세우면 된다.

설천위의 흑관이 앞을 막아 주고 있으니, 한 번 정도는 더 기회가…….

[으아아아아!!]

갈라진 틈 사이로 터져 나오는 외침.

혼을 뒤흔드는 그 강렬한 포효에 강종혁은 마른기침을 토해 냈다.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

상대의 영압에 자신의 내부가 뒤틀린 것을 깨달은 강종혁은 속을 다스릴 새도 없이 부적을 꺼냈다.

설천위의 흑관이 상대를 가로막고 있음에도 그 포효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은 이유.

‘……괴물!’

적이 설천위의 흑관을 공간째 잘라서 그 사이를 뚫고 나왔기 때문이다.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미친 듯이 달려서 이쪽을 향해 온다.

얼마나 남았을까.

앞으로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고작 그 정도의 숨을 쉬면 닿을 거리.

필사적으로 영력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완성되기 전에 죽는다.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강종혁은 멈추지 않았다.

멈춘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포기한다고 상대가 멈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최후의 최후까지 발악하는 것이 누군가를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한 자신의 의무다.

“여……!”

주문을 뱉고, 쥐어짠 영력을 부적에 담아 날린다.

완성 따윈 불가능하다.

그저 작은 돌멩이가 되어 적의 앞을 가로막을 뿐.

그것이 최선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만이 최선이라면.

그것을 해낼 것이다.

필사적으로 쥐어짠 영력이 상대와 맞부딪친다.

손을 휘두르지도 않고 그저 몸에 휘감은 영력만으로 그것을 무시하는 적.

그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도 강종혁은 두 눈을 뜨고 몸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밀어내는 힘을 느낀다.

“안 되지.”

공간 자체를 뒤흔드는 것 같은 강렬한 충격.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던 강종혁은 자신이 인지하기도 전에 날아가 버린 악귀의 모습에 꿀꺽 침을 삼켰다.

칠흑 같은 영력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손.

[살악(殺握)]

죽음을 품은 것처럼 섬뜩한 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손은 너무나도 간단히 상대를 쳐 냈다.

거기다.

“노오옴!”

악귀의 보조를 받지 못한 상태로, 이쪽을 향해 손을 썼던 술사는 팔이 뜯겨 나간 부위를 움켜쥐고 울부짖는다.

그야말로 몇 호흡 정도의 짧은 시간.

그 시간을 적들이 이쪽에 쏟은 결과가 이것이다.

강렬한 힘을 뿜어내던 악귀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날아갔고.

그를 돕던 술사는 팔 하나가 뜯겨 나갔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강함인가.

이것이.

‘……단주급.’

실제로 싸우는 것을 보지 못한 성 단주님도 이렇게 싸우는 걸까.

아니, 이게 술사의 싸움이 맞긴 한 걸까.

아무리 봐도 설천위의 등에서 솟구친 저 팔들은 술법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저 악귀가 쓰는 공간의 힘과 비슷하다.

권능의 영역이라 불리는 무의식과 의식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

그런 힘을 어째서 인간인 설천위가 다루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래시시! 화강(火崗)!”

이쪽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흐트러진 영력을 다시 모으고 모아서 겨우 술법 하나를 발동시킨 강종혁.

그리고.

[으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외침과 함께 벽을 뚫고 나타나는 소어.

그런 소어의 보조를 받아 다시 설천위를 견제하기 시작하는 술사.

순식간에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전장 속에서.

“소, 소천아……! 너, 너 맞지?”

공포에 질린 목소리에 사방의 공간이 얼어붙었다.

두려움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왕일.

그가 자신의 앞을 막고 선 강종혁의 등 뒤에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정확하게 봐 버린 것이다.

자신들을 노리던 악귀의 얼굴을.

아픈 몸으로도 자신을 향해 웃어 주던 친구의 얼굴을.

“처, 천아, 이러지 마. 왜, 왜, 왜…….”

말을 잇지 못하고 덜덜 떠는 왕일의 목소리엔 이내 물기가 어렸다.

“죽었구나……! 죽었어……!”

인간의 것이 아닌 흐릿한 몸.

마치 소설 속 무림인처럼 날아다니는 움직임.

자신을 바라보는, 기이한 빛으로 일렁이는 눈빛.

왕일은 순박했으나, 멍청하진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자신의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왕일보다 조금 먼저 사실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장 씨는 눈물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어른들의 추악한 욕심이.

“네가, 네가 왜……! 왜 죽어, 이 바보야……!”

저 아이들의 눈물을 붉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포에 질리고 너무나 많이 울어서 제대로 눈물이 나오지 않을 왕일의 눈가로 붉은 피가 흐른다.

허망한 걸음으로 강종혁의 결계를 벗어나는 왕일.

자신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비트는 친구의 모습에 왕일은 계속해서 피를 흘렸다.

“소천(笑天)아! 우리, 웃기로 했잖아! 웃으면서 버티기로 했잖아! 커서 같이 나가서 살기로 했잖아!”

소리치며 걸어가는 왕일을 향해 손을 뻗던 강종혁은 자신을 붙잡는 손길에 그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삼키며 자신을 붙잡는 손.

아이들을 보며 우는 여인의 눈에 담긴 바람을 어찌 읽지 못할 수 있겠는가.

저 아이들이 최소한의 끝맺음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 심정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제발…… 제발……!”

힘없이 걸어가다가 이내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진 왕일은 손을 뻗었다.

그렇게 걸어왔는데도 닿지 않는다.

어째서.

어째서 닿지 않는 거야.

나는, 나는 너랑……!

“가지 마……!”

함께 있고 싶을 뿐인데……!

닿지 못한 왕일의 손이 허공을 헤매고.

그런 왕일을 향해 소어가 손을 뻗었다.

“그래!”

그리고 그 모습에 환호하는 술사.

이제 완성이 머지않았다.

악귀란 결국 강한 마음을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존재.

생전의 친구를 잡아먹는 것으로 괴물은 완성된다.

물론 그 힘을 수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일단 완성만 된다면 도망치는 건 일도 아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수인을 맺은 술사는 웃었다.

소어의 몸속에 심어 놓은 원념들.

그것들이 폭주하며 소어의 손은 살아 있는 심장을 꿰뚫을 것이고.

그 심장을 씹어 삼킴으로써 자신의 대업은 완성되리라.

저기 엎드려 있는 저 아이도 친구랑 함께하길 원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 결말인가?

입꼬리를 올린 술사의 미소가 진해지는 것과 함께 소어의 손은 점점 뻗어 나가고.

뿌득!

그 손이 비틀렸다.

[후욱! 후욱!]

거칠어진 숨소리.

영체이기에 숨을 쉴 필요가 없음에도 소어는 한껏 거칠어진 숨을 토해 내며 몸을 돌렸다.

부러진 팔.

힘없이 늘어진 팔과 함께 고개를 돌린 소어의 눈에 술사가 담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공간을 뒤튼다.

그리고 그 순간, 소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술사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노옴! 지금 무슨 짓이냐!”

[나는!]

술사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간을 움직이는 소어(訴圄).

아니.

[친구를 죽이지 않아……! 절대로!]

소천(笑天).

온갖 원념에 사로잡혀 뒤틀린 혼 속에서 고개를 치켜든 소천의 손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는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

스스로의 소멸을 선택한 그 행동은 술사의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하려는 상황.

수년에 걸친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다는 사실에 술사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허나.

이어지는 변화에 술사의 얼굴이 이내 돌아왔다.

“크하하하! 멍청한 놈! 어린놈의 발악이 고작해야 그 정도인 게지!”

심장이 꿰뚫리며 소천의 의지가 사라지자, 그 영체를 원념이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했던 것과 다르지만, 어떤 의미로는 최상의 결과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어린놈의 의지는 사라지고, 철저하게 세상을 향해 원한만을 쏟아 내는 악귀가 탄생할 테니.

이 무슨 전화위복!

“아아.”

순간, 자신의 시야가 낮아진 것을 깨달은 술사의 턱이 땅에 처박힌다.

“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처웃고 있던 건진 모르겠지만.”

술사의 다리를 자르고, 그 등을 짓밟아 땅에 처박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을 다루는 힘 없이도 내 공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 이놈!”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을 비틀었지만 술사의 나약한 근력으로는 고개를 트는 것이 고작이었다.

심지어 한쪽 팔도 없는 상황.

이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술사의 얼굴에 깊은 절망감이 깃들었지만, 설천위는 더 이상 그런 술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쓰레기가 아니니까.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는 왕일.

힘껏 흙을 움켜쥔 손의 떨림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원념에 집어삼켜지며 몸을 비틀고 있는 소어.

“하소연하는 것(訴)보다 웃으며(笑) 살아가기를 바랐던 아이야.”

천천히.

도(刀)가 움직인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최후의 연민.

반항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이를 위한 마지막 자비.

스스로를 죽이면서까지 친구를 택하기로 한 어린 소년을 향한.

“미안하구나.”

사죄.

구해 주지 못한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죄.

[참수(斬首) 소령연화(燒靈燃枠)]

그 목을 벤 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불꽃이 원념을 불사른다.

아이의 혼을 붙잡고 뒤엉킨 원념들이 불타오르고, 그 끝에 남은 것은 힘없이 흔들리는 아이.

[미안해.]

그 아이는 흙을 움켜쥔 친구의 손을 붙잡고 웃었다.

자신의 손길에 힘겹게 고개를 든 친구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언제나 웃어 줘.]

나도 웃으며, 하늘에서 너를 지켜볼 테니까.

네가 지어 준 소천(笑天)이란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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