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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19화 (319/624)

제319화

318화-남은 자의 한 (5)

“커억!”

술사의 발이 버둥거리지만, 안타깝게도 그 발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기운에 휘감긴 목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허공에서 그저 발만 버둥거릴 뿐.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적의 영력이 육체를 파고든다.

육체를 파고든 힘은 혼을 잠식해 온다.

이대로 가면 완전히 잡아먹히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

허나, 그렇다고 해도 술사가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완전한 상급의 귀(鬼)……!’

단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따라온 술사, 강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대주급은 못 되나, 뛰어난 지식과 탄탄한 기초로 단주의 보조를 맡은 자신이다.

그 실력은 홀로 중급의 귀(鬼)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정도.

그런 자신이 본체도 드러내지 않은 적에게 이리도 쉽게 제압당하다니.

강종혁의 눈에 자신이 흩뿌린 주술의 흔적이 들어왔다.

불길에 검게 그을린 대지.

정원수조차 그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실제로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을 정도의 화력.

그런 화력조차 적의 기운을 이겨 내지 못했다.

태우는 것은 고사하고, 그 열기로 접근을 막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수준.

‘단주님……!’

자신이 걱정할 사람은 아니지만, 홀로 움직이고 있을 단주의 안위에 생각이 미친 강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 단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홀로 떨어진 동료들.

그들도 문제다.

호위로 따라온 무인들이 있었지만, 결국 무인.

설천위는 뛰어난 술사라곤 해도 그 덩치가 큰 무인은 아닐 터.

그가 홀로 떨어졌다면, 적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서서히 사고가 힘들어지는 와중에도, 최악의 가정을 떠올리며 강종혁은 손을 움직였다.

목을 휘감는 순간 제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손발은 멀쩡히 놔둔 검은 기운.

지금 이 순간에도 영력과 기력이 고갈되고 있으니 마냥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다만.

“여…… 래, 시, 시…….”

억눌린 목소리로 힘겹게 주문을 외며, 강종혁은 수인을 맺었다.

자신을 붙잡은 이 검은 기운을 떼어 내는 것은 힘들겠지만.

영력에 자신의 진원지기를 더해 일으키는 불꽃이라면 태워 버릴 수 있다.

자신의 몸과 함께.

덤으로 이 일대에 깔린 적의 영력도 불사를 수 있겠지.

적의 힘을 조금이라도 깎을 수 있다면, 어차피 자신은 죽을 목숨.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이를 악물고 수인을 맺으며, 그 끝에 다다른 순간.

강종혁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업염지(業炎池)……!”

“거기까지.”

주문이 완성되며 그의 가슴에서 불씨가 막 피어오른 그 순간.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든 손이 그 불씨를 휘어잡아 꺼트렸다.

동시에.

“허억!”

목을 휘감은 기운이 사라지며 크게 숨을 들이쉰 강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공간을 왜곡시키는 악귀의 힘이 짙게 깔린 장원이다.

이곳에서 대체 어떻게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어떻게 하긴요. 그냥 싹 다 밀어 버리면 상관없지요.”

당황한 목소리로 묻는 강종혁을 향해 피식 웃어 준 설천위는 손을 펼쳤다.

“뭐, 늦기 전에 도착한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나, 나는 괜찮습니다! 청유와 서아를……!”

이제 막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는데도 동료를 찾는 그 모습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냐.

그리 되묻고 싶었던 강종혁은 너무나도 평온한 설천위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술사.

심지어 무력도 무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

그가 이리도 담담하게 확신하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 같아서.

허나,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는 강종혁의 모습에 설천위는 영력을 이용해 그의 몸에 달라붙은 적의 영력을 털어 내며 말했다.

“지키는 데 도가 튼 친구가 움직이고 있으니 딱히 위험할 일은 없을 거예요.”

왜곡된 공간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운.

절대 불변의 신념과 육체에 깃든 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네.”

게임 속에서도 얻지 못했던 힘을 뿜어내는 철백이 장원을 헤집고 있었다.

* * *

‘설 단주를 데려온 게 정답이었던 것 같군요.’

거기다 철백이라는 소협도 훌륭하고.

솔직히 자신의 단으로 데려오고 싶을 정도다.

왜곡된 공간 속에서 흘러 들어오는,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거침없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나아가는 그 기세는 너무나도 맑고 순수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잘 가공된 금강석을 보는 것처럼.

어떻게 친구를 저렇게 성장시켰는지 신기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만한 영역을 유지할 수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려나.’

음지의 술사 중에도 있다.

악귀의 영역에 스스로 들어가 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 성장을 도모하는 자들이.

문제는 그걸 가만히 놔두면 악귀가 아니라는 점이지.

악귀의 영역에 노출되어 영력이 자극된다는 소리는 악귀의 영력이 끊임없이 그의 육체와 혼을 파고든다는 소리다.

한두 번 정도야 수련으로 끝날 순 있겠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서서히 악귀의 악의(惡意)에 잠식되고, 최악의 경우엔 악귀에게 잡아먹히거나 꼭두각시가 된다.

한두 번 정도야 기연으로 취급할 수 있겠으나 도저히 써먹을 수 있는 수련법이 아니다.

설천위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영역을 펼쳐 수련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남궁선이 영안을 개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데, 그녀에게 언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의 수련으론 영안의 개안은 쉽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계속해서 도망칠 생각인가요?”

도대체 몇 번째인지.

끊임없이 자신이 있는 공간을 이동시키며 자신을 피하는 상대의 방식에 성화린은 결국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계속 나아가도 닿지 못하고 체력만 소모될 뿐이다.

상대는 자신과 정면으로 붙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으니까.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움직임이다.

술사를 몇이나 잡아먹은 악귀라면 자신의 힘에 취해 무턱대고 승부를 걸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원래 천성이 조심스러운 성격이라고 해도 급격하게 늘어난 힘은 그 성격조차 바꾸는 법.

그런데도 이런 신중함이라.

‘조력자가 있나요.’

조언하는 자가 옆에 붙어 있다.

악귀의 옆에서 그 힘이 온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일러 주는 이가 있는 거다.

천천히 약한 것부터 잡아먹어 착실하게 힘을 축적해 벽을 넘길 바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사혈천.”

그 괴물들이 관여하고 있다면, 말이 된다.

악귀가 너무나도 신중하고 지적이어서 힘의 증대에도 취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가정보다 더 가능성이 높기도 했고.

그리고 만약 사혈천이 관여하고 있다면.

“구역질이 나는군요.”

이 악귀의 탄생 자체에 사혈천이 관여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악귀 중에서도 공간을 다루는 희귀한 악귀.

그 탄생이 우연이 아닌 인위에 의한 것이라면.

이 이상 시간을 끌 순 없었다.

“과격한 방식으로 가겠습니다.”

돌아다니며 이 근처에는 생존자가 없음은 확인했다.

부적을 꺼내며 성화린은 천천히 수인을 맺었다.

부적을 쥔 왼손은 눈앞으로.

수인을 맺는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이윽고, 오른손이 멈추고.

“급령지형(及靈知形).”

주문과 함께 부적을 던진다.

“뇌성(雷聲).”

우르릉!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우렁찬 우렛소리가 건물을 뒤흔든다.

술사가 만들어 내는 속성은 일정 완성도를 넘어가면 실체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영력으로 만들어 낸 불이 혼을 태우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나무와 사람을 태우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성화린은 그런 속성 계열 술법의 정점에 선 자.

그녀가 만들어 내는 불은 사람의 뼛가루까지 태우는 화염이고.

그녀가 만들어 내는 물은 사람을 빠트려 죽일 수 있는 강이며.

그녀가 만들어 내는 바람은 사람을 날려 버리는 태풍이며.

그녀가 만들어 내는 대지는 사람을 묻어 잠재울 수 있는 무덤이니.

그녀가 만들어 내는 벼락은…….

우르르릉! 우르르르르릉!

그 옛날부터 사람들이 신의 분노라고 경외하던 하늘의 천벌이다.

콰가가가가가각!!

청백색으로 빛나는 부적에서 쏟아진 벼락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건물을 부수고 불태운다.

무너지는 건물의 파편은 이미 검게 탄 숯이 되었고, 하늘을 가리던 천장은 검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

설천위처럼 그저 의지만으로 술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그녀가 부적과 주문을 써서 만든 파괴.

공간을 채우던 적의 영력마저 번갯불에 불타서 사그라든 그 공간에서 성화린은 가만히 서서 앞을 바라봤다.

‘과연.’

이래도 안 움직일 생각인가.

일부러 크게 기술을 써서 힘을 소모하고, 무의미한 파괴를 자행했다.

빈틈을 내보이며 도발까지 했는데도 요지부동.

일체의 미동도 없이 그저 기운만을 다시 공간으로 밀어 넣는 상대의 반응에 성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확실하다.

조언자가 있다.

그리고 그 조언자는 아마도 이 악귀를 탄생시킨 장본인일 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면 승부를 피하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뻔히 보인다.

그렇다면 적의 선택은 크게 한정된다.

부적을 꺼낸 성화린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넘친 영력이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강종혁을 데리고 흑사가 지키고 있는 건물로 돌아온 설천위는 상당히 안정된 백경과 무인의 상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거다.

백경의 경우 왼손을 잃어 재활에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겠지만, 살아남은 게 어딘가.

“설 단주님, 청유와 서아는…….”

지친 몸으로 꿋꿋이 서서 묻는 강종혁의 물음에 설천위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철백이 제때 합류했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입니까?”

“네. 그러니 일단 좀 쉬세요.”

강종혁을 안심시킨 설천위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뭐, 애초에 아작이 난 문이라 제대로 닫히지도 않긴 하지만.

밖으로 나온 설천위는 복도에 서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공간이 끊임없이 뒤틀리는 장원.

반대편에 있는 문을 열면 방이 아니라 장원이 나오기도 하고, 다른 복도가 나오기도 한다.

뒤틀리고 뒤섞여 끊임없이 요동치는 공간.

수비에 특화된 악귀.

“감이 잡히는군.”

가장 가능성 높은 악귀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공간을 다루는 몇 개의 후보군 중에서 가장 방어에 뛰어났던 악귀.

거지 같은 랜덤 지형으로 유저들을 엿 먹였던 최악의 던전 보스 중 하나.

“소어(訴圄).”

지금도 같은 이름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참 거지 같은 이름이라고 유저들이 욕 많이 했었다.

공간을 뒤틀어 적을 가둔다는 콘셉트에다 감옥을 가리키는 어(圄)라는 글자를 이름으로 가지고 있으니까.

유저들이 죄인이냐고 사람들이 욕 많이 했지.

물론 욕을 한 이유의 대부분은 이름보단 그냥 거지 같은 난이도 때문이었지만.

다만, 지금은 아직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게 확실했다.

게임 속에 나왔던 소어의 등급은 재(災).

작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온갖 술사와 무인을 엿 먹이던 난공불락의 악귀니까.

실제로 소어가 도시를 잠식한 순간, 사망자의 숫자는 만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게임 속에선 던전 배경에 나온 설명에서 수치로만 봤던 숫자였지만…….

이제는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숫자다.

절대 놓쳐선 안 될 악귀.

반드시 이곳에서 잡는다.

무엇보다 아직 재(災)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니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미친 듯이 공간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 철백이 그 증거다.

재(災)에 이른 소어는 공간 자체를 단절시키며 비튼다.

철백처럼 무식하게 돌파해서 공간 자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지금 철백의 힘으론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아직 재(災)에 도달한 건 아니라는 소리.

[크르르르르르르.]

“그럼 할 만하지.”

패융을 몸에 두르며 설천위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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