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316화-남은 자의 한 (3)
“짙군요.”
장원의 앞에 선 성화린은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눈가를 찡그렸다.
악의로 가득 찬 영력(靈力).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악취와 혼을 자극하는 혐오감.
영안을 개안하지 못한 자라고 할지라도 접근이 망설여질 정도의 기운이다.
“예상보다 상황이 더 안 좋군요.”
악귀에게 술사는 좋은 먹잇감이다.
영력의 질이 좋고, 양도 많기 때문.
일반인 열 명을 잡아먹는 것보다 수련을 쌓은 술사 하나를 잡아먹는 것이 더 이득일 정도.
그런데 그런 술사가 이곳에서만 여섯이 행방불명이 됐다.
심지어 대주급도 하나 섞여 있는 상황.
“……조금 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할 수도 있겠어요.”
처음 보낸 술사가 둘.
그다음으로 보낸 술사가 넷.
두 명의 술사에게서 연락이 끊기고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그 소식이 백화단에 전해졌다.
그 즉시, 먼저 파견된 술사들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력을 보냈다.
문제는 그렇게 보낸 전력마저 전부 연락이 끊겼다는 점이다.
뒤에 출발한 술사들 중에는 대주급도 포함돼 있었는데 말이다.
숫자가 적은 술사들의 경우 대주급은 드물었다.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어야 대주의 지위를 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중급 악귀까지 홀로 제압 혹은 소멸시킬 수 있고, 상황과 상성에 따라 상급 악귀도 상대할 수 있는 인재들.
“버티기 힘들겠는데.”
그런 인재들인 만큼 연락이 끊겼지만 안에서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풍겨 오는 영력의 짙음이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는 듯했다.
“오오! 드디어 왔는가!”
성화린의 눈이 더욱더 깊게 가라앉는 순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일행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찾았는데 이제야 오다니 어서 들어가 주게.”
불만이 잔뜩 섞인 눈빛.
대뜸 다가와 어서 들어갈 것을 재촉하는 중년 사내의 모습에 설천위는 눈을 감았다.
“의뢰인인 천 대인이시군요.”
“그렇다네. 내가 바로 이 장원의 주인이지. 지금 일이 이렇게 돼서 얼마나…….”
“대인.”
담담한 목소리로 천 대인의 말을 끊은 성화린의 두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가녀린 몸과 어울리지 않는 강렬한 눈빛이 천 대인의 입을 막았다.
“대인의 잘못은 일이 끝난 후에 반드시 따져 물을 것입니다.”
“자, 잘못?!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엄연히 나인데!”
“당신의 죄는 당신이 더 잘 알 테니 각오해 두시죠.”
“네, 네년! 감히 뚫린 입이라고……!”
자존심일까.
기어이 입을 열고 성화린에게 삿대질을 하는 천 대인.
그 발악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크르르르르르르…….]
“당신, 내가 호위하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린 설천위가 웃었다.
천 대인의 몸을 타고 올라 목에서 으르렁 소리를 내는 패융과 함께.
“지, 지금 혀, 협……!”
“에헤이, 그런 나쁜 말은 하면 안 되지.”
툭툭, 천 대인의 머리를 두드린 설천위는 웃으며 거리를 벌렸다.
“나쁜 짓은 더더욱 하면 안 되고.”
싸늘하게 웃는 설천위.
천 대인에게서 떨어져 그의 몸을 휘감는 패융과 함께 설천위는 등을 돌렸다.
“흑룡이 콱 물어 버릴 테니까.”
짧은 경고.
살기도, 기세도 뿜지 않았으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천 대인은 그만 다리가 풀려 버렸다.
털썩 주저앉는 천 대인을 뒤로한 채 설천위는 성화린을 향해 걸어갔다.
“가시죠. 성 단주님.”
“호위 하나는 잘 뽑았네요.”
“일 처리는 확실하거든요.”
웃으며 가슴을 펴는 설천위의 모습에 작게 웃은 성화린은 부적을 꺼냈다.
“그럼, 들어가죠.”
성화린의 손에서 빠져나간 부적이 장원의 정문에 닿는 순간.
파지지지직!
강렬한 뇌전이 일으키며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영역(靈域)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짙게 깔린 영력을 찢어 그 안에 공간을 만들어 낸 성화린.
담담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설천위가 따랐고, 그 뒤로 백화단의 술사들과 철백이 따라붙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철백의 뒷모습이 잠시 보이고.
“사, 사라졌어.”
천 대인의 뒤를 따라왔던 이들은 어느새 사라진 그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마치 장원이 그들을 삼켜 버린 것 같은 광경.
생각해 보니 전에 들어갔던 이들도 저랬던 것 같다.
그리고…….
‘못 돌아왔지.’
순간 불안감이 확 솟구쳤지만, 입을 꾹 닫았다.
말로 뱉었다간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 * *
“흐음.”
장원의 안을 걷던 성화린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갈라졌군요.”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일행과 떨어졌다.
자신의 감각을 이렇게 속일 정도면 술법이 아닌 권능의 영역에 있는 힘이라고 봐야 옳다.
‘……위험하군요.’
그리고 권능은 재(災)의 자질이다.
존재 자체로 재앙이 되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악귀.
제대로 힘을 깨닫고 그 한(恨)을 풀기 위해 날뛰는 재(災) 등급의 악귀는 곧 지옥의 현현과 같다.
재(災)가 탄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애초에 조건 자체가 까다롭고, 악귀 상태일 때 백화단과 만귀단이 움직여 제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이렇게 나타나는데.
정말 운이 기이하리만치 좋아서 은밀하게 성장하는 개체가 있는 경우.
혹은.
‘……관여하고 있나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고 있을 경우.
참으로 기묘하게도, 인간에게 재앙이 되는 존재를 인간 스스로 직접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그 뒤에 인간만 있는 건 아니지만.
술사들이 실패한 이유를 단순히 천 대인의 욕심에서만 찾을 게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의 죄는 따져 물을 생각이지만.
그것이 시작점이 됐을 수도 있으니까.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던 성화린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권능의 영역에 닿은 힘이라고는 해도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었다.
미완성인 것에는 빈틈이 있는 법.
‘일단 찾도록 할까요.’
설천위는 괜찮겠지만, 자신이 데려온 부하들과 철백은 위험할 수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한 성화린은 부적을 꺼냈다.
힘을 쓰더라도 일단 일행의 안전을…….
성화린이 영력을 끌어올려서 일행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바로 그 순간.
강렬한 무언가가 그녀의 감각을 자극했다.
너무나도 강렬하지만,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는 그런 기운.
“벌써 일하고 있나 보네요.”
그라면 맡겨도 되겠지.
굳이 자신이 힘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적을 집어넣은 성화린은 다시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조여 오는 탁한 영력을 가르며.
* * *
“……이것 봐라?”
홀로 공터에 선 설천위는 턱을 쓸었다.
공간이 바뀌었다.
단순히 환각과 방향감각의 상실로 일행을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비틀어 일행을 서로 떨어뜨린 것.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육도(六道)의 세계에서도 공간을 다루는 힘은 극히 드물었다.
저 위로 올라가야 제대로 된 능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자신이 인지하고 대응하기도 전에 그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건 이 장원을 차지한 적이 그 힘을 꽤나 잘 다룬다는 소리가 된다.
게임 속 스토리에서는 본 적 없는 적이라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는데…….
이런 적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잠시 고민에 빠진 설천위는 머릿속을 뒤졌다.
게임 속에서 공간을 다루는 적의 숫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중에서 만약 이곳에서 살아나가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악귀가 있는가?
가능성 있다.
만약, 성화린이 혼자 이곳에 왔다면 공간을 다루는 악귀를 상대로 무슨 변수가 생겼을지 모르니까.
‘최소 재(災).’
머릿속에 떠오른 재(災) 등급 이상의 악귀 중에서 공간을 다루는 악귀의 목록을 떠올린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일단 일부터 할까.”
만약, 성화린이 여기서 악귀를 놓친다면 그건 부하들을 챙기려다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성화린 본인은 재(災)와 맞대결을 해도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의 강자이니까.
재(災)에 도달하지 못한 악귀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인질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그 인질을 못 잡게 만들면 된다.
마침 해야 할 일도 그쪽이니, 이쪽을 우선시하는 게 맞겠지.
양손을 앞으로 모은 설천위는 가볍게 두 손을 마주쳤다.
짝!
호쾌하게 울리는 박수 소리.
그리고.
뒤흔들리는 공간.
[사계(挱界)]
단숨에 뻗어 나가는 설천위의 영력과 패기가 악귀가 만들어 낸 영역(靈域)을 흔들고 찢어 낸다.
악귀가 권능을 흉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공간.
아무리 공간을 비틀어 놓았다고 해도, 공간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불변(不變).
강력한 힘으로 흔들고 찢어서 틈을 만들면 얼마든지 그 틈을 찌를 수 있다.
“흠, 생각보다 안 머네?”
하긴, 장원 자체의 크기에 한계가 있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비틀어 만들어 낸 틈새로 일행의 위치를 파악한 설천위는 천천히 도를 뽑았다.
대충 위치는 파악했으니 약한 녀석들부터 챙길 생각이다.
청유랑 철백은 조금 후순위로 두고, 조금 어리바리해 보이던 둘을 먼저 챙길까.
설천위가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
[도…… 움……!]
비틀어 짜낸 목소리가 설천위의 귀에 들렸다.
방금 흩뿌린 영력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사내의 목소리.
그 뒤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불안에 찬 울음소리.
“씁.”
짧게 숨을 들이쉰 설천위는 도를 쥐지 않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일 한번 까다로워졌네.”
아니, 여기서 불만을 품으면 안 되지.
고개를 저어 반성한 설천위는 그대로 영력을 끌어올렸다.
내상의 여파가 조금 남아 있는 내공보다 훨씬 부드럽게 끌어올려 지는 영력.
[허허, 내공도 그리 쓰면 얼마나 좋을꼬…….]
[어찌 이만한 실력을 가지고 내상을 입었을 때 다른 경로로 내공을 운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는지…….]
“아니, 지금 그걸 불만스러워할 때예요?”
이 양반들이 지금, 어?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데!
[아니, 아쉬워서 그런다. 아쉬워서.]
[영력을 잘만 다루면서 대체 왜…….]
아니, 2절까지 하네.
그만 안 해?
한탄하는 혼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 설천위는 이내 휘휘 손을 저어 그들을 흐트러트렸다.
정확히는 강제로 내면세계로 집어넣은 거지만.
평소에는 자유롭게 두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 영역에선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만약 자신이 짐작하는 게 맞는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혼들 때문에 딴 길로 샜던 생각을 정리한 설천위는 영력을 두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쿵!
일보(一步).
[사계(挱界)]의 응용을 품은 묵직한 걸음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강제로 만들어 낸 틈 사이로 왜곡을 뚫고 나아간다.
적이 만들어 놓은 비틀린 공간이라는 영역(靈域)을.
쿵!
힘으로 찍어 누른다.
압도적인 역량의 횡포.
기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은 폭력.
쿵!
다시 한번 내디딘 걸음과 함께 도를 휘두르는 설천위.
그 순간, 비틀린 공간이 갈라지며 길이 생겨난다.
“귀찮게 하네.”
그야말로 폭력적인 전진을 감행한 설천위의 몸이 공간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공간 속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악귀는 공포에 떨었다.
모든 것을 짓밟는, 천외천의 괴물.
그 괴물이 자신의 공간을 헤집고 있었다.
거기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여자까지.
공포심에 손발이 떨리고, 자신만만했던 정신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래선, 이래선 할 수 없다.
해낼 수 없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선 안 돼.
안 돼.
[안 돼.]
비틀린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눈동자가 거북한 손님에게로 향했다.
자신을 찾는 악귀의 눈동자에 손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훌륭한 선택이다. 소어(訴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