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14화 (314/624)

제314화

313화-꽃은 피어오른다 (6)

인간은 절망의 동물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살아가면서 고통은 언제나 함께한다.

그렇기에 가해는 인간을 벗어나게 된 순간, 그분의 뜻을 이해했다.

받아들였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고통과 고뇌도.

하늘의 거대한 의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은 그렇게 손에 들어왔다.

혼과 접촉하면 할수록 그 이해는 깊어진다.

직접적인 접촉도 필요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영력이 서로 닿는 것.

대화를 나누는 것.

시선을 교환하는 것.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쓰는 무기가 창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시간을 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시간을 끌기에는 거리를 유지하기 좋은 창이 제격이었으니까.

이해만 한다면 창을 찔러 넣는 데 어려움은 없으니까.

그런데.

‘……불가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상대를 분명히 이해했음에도.

멀어진다.

마치 자신의 이해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그럴 리가 없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현재에 가해의 눈에 의심이 깃들었다.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상대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내 능력이 무언가에 막히고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이 차오른다.

그 순간.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가해는 반사적으로 창을 움직였다.

어깨에 검이 꽂힌 상태로 움직인다는 선택 따위 인간에겐 불가능하겠지만.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이 한 번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그래.

끊을 수만 있다면.

[노옴……!]

미약하기 그지없는 손맛.

고작해야 스친 것이 전부인 공격.

이럴 순 없는 거다.

자신은 이해자다.

모든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존재.

인간이라는 절망뿐인 존재를 이해했기에 그 끝맺음을 지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 자.

눈앞에 있는 인간을 보라.

자신의 창에 몇 번이나 꿰뚫린 육체는 피로 흥건하다.

보통이라면 출혈 이전에 그 아득한 고통에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하물며 저 여자가 품은 자신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흉터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차마 드러낼 수 없어서 스스로를 가두려 하지 않는가.

고통이다.

오로지 고통뿐이다!

저 계집에게 지금 있는 것은 그저 고통뿐이다!

육체의 고통, 현재의 고통, 미래를 향한 고통!!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이냐!!]

모든 것이 고통뿐인데도.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이냐!

내 친히 그 고통을 끝내 주려 하거늘, 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냐!

가해의 창이 거칠게 허공을 헤집는다.

희미하게 느껴진 유예린의 기척이 있는 곳.

그곳이 함정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성조차 흐려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을 향한 의심이 그의 마음을 흐트러트린 것이다.

그렇기에.

“포기해선 안 되기 때문이죠.”

그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단숨에 어깨에 소검을 박아 넣은 유예린은 검을 쥔 상태로 물구나무를 섰다.

앞으로 창을 내질렀던 가해의 콧등 위로 핏방울이 떨어진다.

유예린의 턱선을 타고 흐른 피가 핏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잠깐 물구나무를 선 것만으로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그녀의 출혈량은 엄청났다.

속에 입은 옷과 겉에 입은 옷이 더 이상 피를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앞을 향해 휘두르던 가해의 창이 위로 솟구친다.

이대로 유예린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허나.

“당신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해의 창은 허공을 꿰뚫는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오한에 가해는 몸을 떨었다.

바로 직전까지 핏방울이 자신의 콧등 위로 떨어졌는데.

대체 어떻게?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무섭게 끔찍한 고통이 치밀어 오른다.

어느새 비틀려 꺾인 소검이 살과 뼈를 헤집고 삐져나온 것이다.

어깨뼈와 쇄골을 분쇄하며 삐져나오는 검.

영체와 융합한 육신으로도 그 고통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아득하기 그지없는 고통 속에서 가해는 움직였다.

창을 휘두른다.

그나마 움직이는 팔로 휘두르는 창.

허나, 그 움직임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창을 휘두르는 것을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잡하군요.”

그렇기에, 그 창을 가볍게 받아 낸 유예린의 비수가 가해의 몸을 꿰뚫는다.

정확하게 장기를 노리는 비수.

몸에 몇 개나 되는 비수가 꽂혔으나 가해는 막지 않았다.

그저 창을 크게 휘두를 뿐.

너무나도 조잡한 발악.

여태까지의 전투가 거짓말인 것처럼 나약해진 모습.

어설프게 휘두르는 창은 유예린의 잔상만을 흐트러트릴 뿐, 결코 그 본체에 닿지 못한다.

[내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어리석군요.”

발악하며 창을 휘두르는 가해의 말을 끊으며 유예린은 비수를 찔러 넣었다.

힘겹게 창을 쥐고 있는 가해의 팔에 박히는 비수.

“인간을 포기한 순간, 당신은 결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어졌습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유예린의 시선이 꽂힌다.

그 순간, 가해는 이해했다.

이 여자는 스스로의 몸을 혐오하고, 그 혐오를 슬퍼하고, 육체의 상처에 고통을 느끼지만.

그것들은 이 여자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이해했다.

[미, 미쳤구나……!]

“어머.”

살포시 웃는 유예린.

그 모습에 전율한 가해는 어느새 창을 완전히 놓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광기(狂氣).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비틀어진 정신.

눈앞의 이 여자는 오로지 한 가지만을 바란다.

누군가의 행복.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의 행복!

그 존재만이 이 여자의 모든 것이고, 세상 그 자체다.

그자가 죽으면 이 여자의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 것이고, 이 여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있는 지금, 이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뿐.

[정녕 미쳤구나!!]

“사람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군요.”

[너 같은 년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 괴물아……!]

육신을 꿰뚫리는 고통도.

스스로를 향한 혐오도.

그 혐오 끝에 나오는 슬픔도.

자신의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절망도.

이 여자는 짓밟을 수 있다.

그 모든 감정을 짓밟고 그 위에 설 수 있다.

한 존재의 행복을 위해.

그 사실을 이해한 순간, 가해는 자신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했다.

눈앞의 이 여자가 구사하는 기술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광기와 집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간이라 여기고 이해하려 했으니,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인간을 포기해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

개소리다.

자신에게 절반이나마 인간이 남아 있었기에 이 괴물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네년은……! 인간이 아니다!]

“참으로 실례되는 말이군요.”

주춤주춤 물러서는 가해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예린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다듬었다.

흐트러졌던 머리가 정리된다.

그녀의 손을 타고 흐르던 피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물들였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가다듬는다.

“덕분에 꽤나 제대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반쯤 걸쳤던 걸음이 이젠 몸도 거의 넘어간 상태가 됐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의 곁에 설 수 있어.’

그와 같은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 생각하면 상대에게 조금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무른 생각.

“슬슬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 끝내도록 하죠.”

제대로 가닥을 잡기 전까지 공격의 순간을 읽혀 입은 상처가 꽤 깊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적이 무엇에 겁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도 위험한 상태다.

움직일 수 있는 한계는 앞으로 조금.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했다.

비수를 꺼내 들고 유예린이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오, 오지 마라!]

창을 놓치고 물러서던 가해가 악을 쓰며 뒤로 물러선다.

그 속도가 꽤나 빨라 점점 거리가 벌어질 정도.

허나,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유예린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노리는 것은 한순간.

단 한순간의 빈틈이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이 비수로 목숨을 끊어 주리라.

그리 여기며 천천히 접근하던 그 순간.

끼릭.

무언가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등 뒤를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음을 인지한 가해가 어설픈 소리를 냈고.

[컥!]

단숨에 거리를 좁힌 유예린의 비수가 가해의 목을 꿰뚫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최후의 반응을 하려던 가해의 팔에는 희미한 선이 일렁였다.

검은 실.

“있었군요.”

[주군의 명을 따라 최대한 은밀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좋네요. 고마워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은밀하게 실을 펼쳐 놓은 흑사의 선택을 칭찬한 유예린은 비수를 뽑아냈다.

그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곁에 부복하는 흑사.

[심장을 꿰뚫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흑사의 조언에 망설임 없이 가해의 심장에 비수를 박아 넣은 유예린은 눈을 부릅뜬 채 꺽꺽거리고 있는 가해를 바라봤다.

감정 하나 담겨 있지 않은 눈동자가 가해의 망막에 꽂힌다.

‘괴……물…….’

짧은 절망을 끝으로 완전히 의식이 끊기는 가해.

허물어지는 그 육신을 잠시 바라본 유예린은 몸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움직여 설천위를 도우러 가고 싶었지만…….

‘방해만 될 뿐이겠죠.’

이 몸으로 가 봤자 걸림돌만 된다.

그가 보내 준 호위가 있으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무엇보다.

“벌써 저기 가고 있네요.”

[즉시 알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니까요.]

저기 날아가고 있는 암영의적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흑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가만히 앉아 약을 꺼냈다.

신의의 지시대로 설천위가 미리 만들어 놓은 약.

지혈 효과는 물론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효과도 탁월하다.

‘……흉터도 많이 줄여 준다고 했던가요.’

약을 바르는 손이 조금 더 꼼꼼해졌다.

그렇게 고통을 참아 내며 약을 바르던 그때.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

거대한 흑룡의 포효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마치 주인의 분노를 알리려는 듯이.

* * *

“그 소식 들었나?”

“아, 흑룡단주?”

“그래, 아주 크게 해 먹었다더군.”

“어우, 소문 퍼진 걸 보면 무슨 십대고수 같지 않나?”

“그러니 말일세.”

남양이 발칵 뒤집힌 일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가의 옥상에서 대놓고 싸운 데다 싸움의 끝에는 거대한 흑룡까지 나타났다고 하지 않은가?

흑룡처럼 기를 뿜는 거면 몰라도 흑룡을 다루는 무인은 현 무림에서는 흑룡단주뿐이다.

그러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있나?

거기다.

그 상대도 경천동지할 정도로 강했다는 소문도 함께 퍼졌다.

설천위가 흑룡을 부른 싸움에서도 악착같이 버텼다고.

설천위의 강함에 대한 평가가 소문을 타고 수직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물론.

“……천희만락궁이라.”

그런 소문이 아닌 정확한 보고로 소식을 접한 사람도 있었다.

설천위가 무림맹에 올린 보고는 맹주에게만 올라간 건 아니었다.

당연히 정보 공유의 목적으로 필요한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천희만락궁 정도의 적들이라면 정보를 공유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특히 설천위가 적들의 정체에 관해 정확하게 기술해 놓은 덕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백화단주 성화린도 그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다.

마(魔)의 등장.

‘……가능성은 있어.’

스승님의 죽음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적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복합적인 연합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

천희만락궁에 관한 조사도 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다만, 마(魔)와 무인이 주축이라면 백화단만으로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눈을 감고 짧게 고민하던 성화린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붓을 들었다.

“……여기서는 조금 도움을 받을까.”

일단 공문부터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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