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10화 (310/624)

제310화

309화-꽃은 피어오른다 (2)

혼에 새겨지는 고통.

그건 육체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으론 막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렇다고 참을 만한가?

육체의 고통에 적응을 거듭한 살수라도 참기 힘들다.

특수한 술법과 약물로 육체의 고통과 멀어진 지 긴 시간이 지난 사람이라도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더 많은데.”

주교가 토해 낸 정보를 확인하며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유예린이 깔끔하게 적어서 정리해 놓은 종이 위에는 글씨가 빼곡하다.

이런 지점이 이 도시에만 몇 개가 더 있었고.

“관에도 꽤 깊이 박혀 있나 본데.”

과연 천희만락궁.

그 괴물의 세력답다.

“저희 둘이서 정리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요.”

“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이쪽이 빠르게 움직여도 이렇게 많으면 전부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체력과 내공이 무한한 것도 아니니 하루에 정리할 수 있는 숫자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저들 간에 정보가 조금이라도 돌고 있다면 반드시 도망치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금 위험하지.’

그건 조금 위험하다.

궁주가 직접 나설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놈은 미친 게 정체성인 놈이니 섣불리 예측하면 안 된다.

그러니 지금 가장 좋은 건 순순히 물러나는 거다.

애초에 임무도 조사였고.

깊게 파고들어 피똥 쌀 이유가 없다.

없는데…….

“쯧.”

널브러진 이들을 눈에 담은 설천위는 혀를 찼다.

그렇게 놔둘 수도 없단 말이지.

제물이 궁에 계속 보급되는 건 좋지 못하다.

천희만락궁은 쾌락을 좇는 이들을 먹어 치우는 마굴.

여기 있는 놈들도 더 좋은 것을 찾다가 흘러 들어온 것일 거다.

뭐, 사실은 친구에게 배신당해 고달픈 삶을 살다가 흘러 들어온 것이다.

현실의 슬픔을 잊기 위해 방황하다가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런 사정이야 정상참작의 이유는 될 수 있어도 무죄의 이유가 될 순 없다.

본인의 선택에 본인이 책임지는 거.

어른으로서 당연한 덕목 아니겠는가?

동정심도 안 일어나는데 이 녀석들을 챙겨 줘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날 정도다.

“공자?”

“응?”

“어찌할까요?”

답을 기다리는 유예린의 태도에 설천위는 좀 더 미간을 찡그렸다.

이득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물러서느냐.

적을 자극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적의 살을 깎아 내느냐.

[허허, 고민이 깊구나.]

그 순간 들려온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허허롭게 웃으며 수염을 쓸고 있는 천마.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이 고민 중이라면 위험한 것을 선택하려무나.]

“……이유가 뭔데요?”

[얼마 남지 않았단다.]

쓱 웃는 천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꽃이 만개할 시기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 * *

“……이상하군.”

천희만락궁의 남양 지부.

그곳의 지부장 겸 대주교를 맡고 있는 고락은 이마를 툭툭 두들겼다.

보고가 오질 않는다.

도시 전체에 퍼진 소지부에서 올라와야 할 보고가 올라오질 않는다.

물론, 전부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니고 몇 곳의 연락이 끊긴 것뿐이지만…….

‘설마 우리를 찾아낸 놈이 있단 말인가?’

하나 정도는 운 좋게 찾아낼 수 있다고 쳐도 소지부를 몇 개나?

이렇게 단기간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소지부를 맡고 있는 주교들은 서로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다른 지부의 위치를 알고 있긴 하지만…….

‘고문이 통할 이들이 아니다.’

약과 술법으로 고통을 지우고 오로지 즐거움만을 남긴 교주들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하늘을 위해 애쓰는 이 자리에 선 것이고.

고문 따위에 입을 열 리가 없었다.

아니, 고문 따위는 웃으며 넘길 수 있을 터다.

그런 주교의 모습에 적은 절망하고 포기해야 정상인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생각에 빠져 있던 고락은 이마를 두들기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중요한 것이 이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지부들에서 연락이 끊겼다면 사람을 보내 조사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드러난다.’

소지부에서 기쁨을 제공 받는 것이 끊긴 신도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쾌감과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에 이미 취해 버린 이들.

적정량을 꾸준히 복용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건강상의 문제가 거의 없지만, 갑작스럽게 약이 끊기게 되면 급격하게 부작용이 찾아온다.

관절이 망가지고, 원인 모를 가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환각, 환시, 환통, 환청 등등.

온갖 헛것을 보고 느끼는 건 물론이고 시간이 흐르면 이성마저 완전히 상실해 버린다.

그런 인간들이 도시에 갑자기 수십이나 나타나면…….

‘관아가 움직인다.’

고작 머릿수만 많은 것들이지만, 그 머릿수 하나만으로 충분히 위협이 되는 놈들이 바로 관과 황실이다.

현 황실은 그야말로 개판인지라 즉시 움직일 여력이 없으니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이곳 하남의 관은 문제가 조금 다르다.

이곳의 성주는 불심이 아주 깊다.

소림사가 있는 곳이니 거의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지.

덕분에 성주의 성에는 소림의 중이 항상 체류 중일 정도이고.

이곳 남양은 성주나 소림사의 영향권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힘이 닿는 곳이다.

불심 깊은 성주는 약에 엄격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반드시 소림이 움직인다.

즉, 관이 움직이면 필연적으로 소림이 함께 움직인다는 소리다.

마약을 유통하는 범죄자를 잡겠다는 명분 아래 말이다.

그런 천박한 것이 아니거늘.

슬쩍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고락은 움직였다.

일단 조사와 은폐가 먼저다.

그다음은 일을 끝낸 이후에 생각하자.

* * *

“……이상하군.”

며칠이 더 지난 시점.

올라오는 보고와 더 끊기기 시작한 보고에 고락의 이마는 붉게 물든 지 오래였다.

주교들의 실종은 이미 확인했다.

그런데, 그 지부에 몸을 의탁하던 신도들의 상태가 이상하다.

마치 강제로 기운을 빨린 듯 몸져누워 버린 이들.

갑자기 아픈 이들이 늘어나서 소문이 나고 있긴 하나, 그걸 약과 연결짓는 이들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인데…….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군.’

습격자가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상한 점은 그 습격자란 놈이 소지부를 정리하고, 친절하게 그곳에 있는 신도들까지 관리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몸져누운 것은 아무리 봐도 강제로 약 기운을 뽑아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지부에 다니는 이들이야 전부 일반인이니 내공을 이용해 약 기운을 씻어 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체력을 너무 소진해 몸져누운 것일 테고.

그런데 그런 미친 짓을 대체 누가 하고 있느냐가 문제였다.

사람의 몸에서 내공으로 약 기운을 빼내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다.

내공의 고수가 해 주는 벌모세수랑 다를 게 없으니까.

화경급 고수도 힘의 소모를 꺼려 정말 소중한 이가 아니면 잘 해 주지 않는 것이 벌모세수인데.

그걸 이렇게 자주,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이들에게 베풀고 있다고?

소림의 중들이라도 하지 않을 행동이다.

아무리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타인을 구하는 이가 있을 리가…….

‘……서승은 분명 무림맹에 있다고 했는데.’

유일한 가능성도 배제된 상태.

그러고 보니, 그 서승이 갑자기 무림맹에 들어가서 꽤나 놀랐지.

홀로 무림을 돌아다니며 불살(不殺)을 선도하던 이가 바로 서승(恕僧) 무해다.

괴짜 중에서도 괴짜.

이 무림에서 불살(不殺)이라니.

시골에 있는 동네 꼬맹이도 꾸지 않을 허황된 꿈이다.

그런데 그런 꿈을 지키고 있는 괴물이니 당연히 음지의 세력에선 최중요 주시 대상이다.

그런 인간이 갑자기 무림맹에 들어갔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거기다 분명 흑룡단이라는 신설된 단에…….

‘……흑룡성.’

술법을 다룬다고 하며, 기이하게도 연관성이 없는 무공 여러 가지를 사용하는 인물이다.

소문으로는 이미 죽은 이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괴물.

그 술법만으로도 무림맹에서 단주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인데, 그 무력마저도 단주급에 오른 괴물.

“주시한다고 했던가.”

심지어 궁주님마저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그 행보가 독특하다.

만약.

그런 괴물이 움직였다면…….

모종의 술법으로 지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라면.

‘……위험하다.’

사고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다가 마주한 가장 섬뜩한 가정에 고락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보고.

보고다.

궁주께서는 비공식적인 보고를 싫어해 정말 위급해질 경우에만 보고를 올리려고 했지만…….

만약 흑룡성이 이곳에 온 것이라면 보고를 안 하는 것이 되레 불충이다.

본 궁의 위치가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보고를…….

“보고하려는 눈치군요.”

히죽 웃는 목소리.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오한에 고락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방 중앙,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여인.

“조금 심심했습니다. 당신, 생각보다 더 신중하더군요.”

담담하게 말하며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비수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여인.

“……은검(隱劍).”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형과 보고 있는 지금도 그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의 은신술.

단박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고락은 이내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였지?”

“뭐가 말이죠?”

“이곳의 위치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그야 처음부터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며 유예린은 고락을 바라봤다.

“처음 정보를 뱉어 낸 주교라는 이가 전부 불었습니다.”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 알아냈지?”

“아뇨. 쉽게 열었습니다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유예린의 모습에 고락이 주춤거렸지만, 아쉽게도 그의 뒤엔 책상이 있었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상황.

고락은 작게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들켰다면 남양은 포기해야 한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주교가 바로 입을 열었다는 것으로 확실해졌다.

저들에게는 이쪽의 입을 열게 할 수단이 있다.

고문이 아닌 자백제를 썼든, 아니면 상상을 초월하는 다른 수를 썼든.

뭐가 됐든 입을 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자신의 입이 열리면 남양만 위험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하면 본 궁으로 가는 길이……!

“거기까지.”

소리 없이 날아온 비수가 고락의 손을 탁자와 함께 꿰어 버린다.

희미하게 올라오는 고통.

단숨에 손을 뽑아낸 고락은 건너편이 보일 정도로 뚫린 구멍에 손가락 몇 개가 움직이지 않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몸은 멈추지 않는다.

유예린이 가로막고 있는 문 쪽이 아닌, 창문 쪽으로 필사적으로 달린다.

“독하군요.”

거침없이 자신의 손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내면서 도주하는 고락의 무릎이 꺾인다.

아니, 정확히 말해 떨어졌다.

‘……은검!!’

소리도 없이 자신의 다리를 베어 낸 일격에 고락은 이를 악물고 멀쩡한 손을 움직였다.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발악이라도……!

“아쉽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손에서 꺼내 약을 던지려는 순간.

그 손조차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사람의 손을 통째로 베어 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에 쥔 검 끝으로 떠오른 손과 약병을 받아 내는 유예린.

섬뜩할 정도의 기예.

[……여자란 무섭구나.]

설천위 곁에선 그렇게 조신하게 웃더니.

이럴 땐 표정이 차갑다 못해 날카롭네.

그 눈빛에 베일 것 같아.

혹시 몰라 유예린을 돕기 위해 붙었던 암영의적은 살짝 유예린과 거리를 벌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혼이라 몸도 없는데, 오한이 드는 건 왜일까.

암영의적이 쓸데없는 감상을 내뱉으며 부르르 떠는 사이, 유예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약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함께 딸려 온 손은 가볍게 쳐서 떨어트린 뒤에.

“함께 기다리는 동안, 대화를 나눌까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락을 내려다보는 유예린의 눈에는 한 점의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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