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308화-꽃은 피어오른다 (1)
약(藥).
뭐, 보통은 다친 몸을 치유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의 총칭이나 세상의 모든 것엔 이면이 있는 법.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아픈 사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그런 용도로 쓰였던 약(藥)을 과하게 쓰는 이들이 나타났다.
우울해서.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슬픔을 이겨 내기 위해서.
시작은 다를지언정 그들의 끝은 비슷했다.
수단이었던 약(藥)이 목적이 된다.
마약(痲藥).
아픔을 마취(痲醉)시켜 주던 약(藥)이 사람 자체를 마비시키는 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스스로의 자아가 마비되고.
삶이 마비되어.
끝내는 파멸하게 만드는 약(藥).
그러나 그 파멸을 알고도 약을 끊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생각보다 멀쩡하군요.”
허나 그런 이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법.
목적지에 도착해 반나절 동안 도시를 돌아다닌 뒤 다시금 유예린과 합류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멀쩡해.”
마약에 중독되면 모든 우선순위가 그것이 된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할 식사도 거르게 되고,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
사람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약이 깊게 침투한 도시는 티가 날 수밖에 없다.
망자(亡者) 같은 이들이 돌아다니니까.
빈민가는 물론이고, 대로에도 그런 이들이 돌아다니는데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한데, 이 도시에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진짜.
하나도 안 보인다.
“……흠.”
아무리 잘 숨겨도 티가 날 수밖에 없는데, 티가 나질 않는다.
그 정보에 머릿속에 한 세력을 떠올린 설천위는 턱을 쓸며 주위를 둘러봤다.
“얼추 맞는데?”
“뭐가 말이죠?”
“이곳에 약을 퍼트린 놈들, 알 것 같거든.”
“……정말인가요?”
“응.”
짐작이 간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약을 유통하는 놈들은 한 세력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어떻게 무림맹에서 이걸 눈치챘냐는 건데…….’
약에 취해 돌아다니는 중독자가 없는데 약이 도시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또 다른 가능성.
다만.
‘아직은 접선했을 시기가 아닌데?’
아직 때가 아니다.
이 세력은 천천히 움직이는 놈들.
무림맹에 뻗치던 손을 벌써부터 휘두를 녀석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놈들은 그렇게 급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재미있네.”
배신.
아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닌가.
그저 팔아넘겼을 뿐인가.
그렇다면.
얘기가 조금 간단해지지.
“단순무식하게 움직이면 될 것 같아.”
* * *
조용히 퍼지는 연기.
그 속에서 누워 있는 이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는, 행복해 보이는 얼굴.
넓게 퍼지는 연기 속에서 행복한 미소만이 가득 찬 공간.
그 공간 속에서 홀로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가만히 행복에 빠져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책상 위에 있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가 나오는 향로의 뚜껑을 닫고 사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하는 연기.
특수하게 만들어 놓은 공기의 통로로 연기가 빠져나가고, 점점 맑은 공기가 차오른다.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맑아지는 방 안.
어느새 연기가 있단 걸 몰랐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옅어지자, 하나둘 누워 있던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아!”
“또…….”
두 눈을 감고 슬퍼하는 이들.
절망에 빠진 이들.
깨어나자마자 다시 누우려는 이들을 보며 사내는 입을 열었다.
“낙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주교님!”
“저의, 저의 낙원은 조금 전에 있었습니다!”
“제발 다시……!”
울면서 애원하는 이들을 보며 주교라고 불린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인내해야 할 때이다. 낙원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분의 발이 되어야 하니. 너희는 아직 부족함이 많으니라. 배우고 갈고닦아야만 하니.”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을!”
무릎을 꿇고 비는 이들 중 가장 앞에 있는 여인의 머리에 손을 올린 사내는 부드럽게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가르침은 이미 너희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인자한 목소리.
그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자비를 느낀 이들은 더욱더 깊게 고개를 숙였고.
“어허, 개소리하네?”
“누구냐?”
“무례한 놈!”
“여기가 어디라고!”
뜬금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주교를 찾던 이들이 발작적으로 일어나서 소리쳤다.
마치 그래야만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그 모습에 그들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주교였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철저하게 숨겨진 곳이다.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터인데.
처음 보는 청년의 등장에 주교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흐트러진 순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한 표정인데.”
피식 웃은 청년, 설천위는 도를 뽑아 주교를 향해 겨눴다.
“불법적인 수사가 이렇게 효과적이야.”
혼들이 벽을 통과하면서 직접 눈으로 찾는 게 이렇게 효과가 좋아요.
영화 같은 데서 괜히 불법 수사하는 게 아니라니까?
영장 없는 수사가 이리 좋습니다.
법과 먼 세상이라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례한 이로군. 먼저 정체를 밝혀라.”
“응, 싫어.”
주교의 말을 끊은 설천위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도를 내리쳤다.
깔끔하면서도 빠른 일격.
즉시 반응한 주교가 양팔을 교차시켰으나.
“에이.”
단숨에 양팔을 자르고 지나간 도가 주교의 어깨에 박혔다.
“너 짬에 내 공격을 막으려고 하면 욕심이지.”
고작해야 일류 정도가.
이만큼 거리를 줬으면 포기해야지.
“끄아아악!”
꽤나 깊숙이 박힌 도를 뽑은 설천위는 사방으로 튀는 피를 피해 살짝 물러섰다.
잘려 나간 곳에서 쏟아지는 피와, 어깨에서 샘솟는 피.
주교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놈!”
“무슨 짓이냐!”
그런 모습에 겁도 없이 달려드는 이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을 흘깃 바라본 설천위는 이내 시선을 거뒀다.
저쪽은 따로 맡겼으니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교묘하군요.”
단숨에 모두의 마혈을 짚어 제압한 유예린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있음에도 찾을 수 없는 은신의 극의(極意).
그 경이적인 실력에 감탄할 새도 없이 주교는 이를 악물었다.
“어허, 안 돼.”
독을 삼키려는 그 행동을 억지로 손을 입에 욱여넣어 막은 설천위는 손을 움직였다.
뿌득!
“끄으으으으윽!!”
“어, 이게 아닌가?”
뽑아낸 이에 무언가 달려 있지 않음을 확인한 설천위는 다시 손을 넣어 다른 이를 뽑았다.
“아, 맞네.”
무언가가 매달려 있는 어금니.
다행히 뽑는 과정에서 터지거나 하진 않았네.
어금니를 땅에 던지고, 내공으로 손에 묻은 것들을 털어 낸 설천위는 주교를 바라봤다.
“자, 솔직하게 말하면 오래 안 걸린다.”
“끄아아아아악!!”
……나 아직 말하는 중인데.
설천위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유예린의 붉게 달아오른 단검에 강제로 양팔을 지혈 당한 주교의 눈이 희끗희끗 돌아갔다.
끔직한 고통에 자칫 생을 놓아 버릴 것 같은 모습.
“어허!”
재빨리 손을 움직인 설천위는 주교의 혈을 짚었다.
정신을 번뜩이게 하는 혈.
과하게 누르면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죽는 사혈이지만.
적당히 누르면 잠을 깨우기 딱 좋다.
“끄륵!”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입에 거품을 물지 않는 건 아니지만.
거품을 물며 부들거리는 주교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은 설천위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정신 차려. 자꾸 구라핑 칠래?”
“무, 무어하, 는…….”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주교의 모습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주교를 바라봤다.
“에헤이, 엄살 피울래? 너 뭐 하는 놈인지 내가 다 아는데?”
양팔이 잘리고, 어깨에도 깊은 자상이 남았으며, 잘린 양팔을 강제로 지져 지혈한 상황.
보통 사람이라면 극심한 고통에 그대로 죽었을 짓을 벌여 놓고 엄살이라니.
마혈이 짚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은 너무나도 극악무도한 모습에 눈에 핏발이 서도록 화를 냈으나.
주교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궁의 수업을 받아 고통과 이별한 자신이다.
양팔이 잘린 것은 끔찍하나 그 고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사라졌다.
지져지며 찾아온 고통도 마찬가지.
다만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 고통을 연기했던 것인데…….
“천희만락궁(天喜萬樂宮).”
하늘의 기쁨과 만 가지의 즐거움.
궁주가 내주는 쾌락을 하늘이 베푸는 것으로 여기고.
고통이 강제로 제거된 삶에서 만 가지의 즐거움만을 찾는 자들.
그중에서도 외부에서 새로운 신도를 포섭하기 위해 궁 밖으로 나온 주교들은 그 안에서도 특출 난 자들이었다.
마약과 환술을 이용한 방식으로 쾌락과 꿈을 주입해 인간의 정신을 잠식해 나가는 전문가.
“흥, 네놈이 어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천위의 한마디에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것을 깨달은 주교는 담담하게 눈을 부릅떴다.
“나는 궁주님의 은혜를 받아 고통에서 벗어난 존재. 고문 따위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응. 알아.”
고통에 내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 자체에서 벗어난 놈들.
그 육체는 사실 살아 있다고 부르기 힘들 정도다.
약에 절여져 거의 대부분의 기능이 상실된 상태니까.
천희만락궁의 일원들은 거의 전부가 삐쩍 마른 몰골을 하고 있지.
다만.
“고문에도 종류가 있거든.”
주교의 머리에 손을 올린 설천위의 주위로 검은 기류가 흐른다.
아니.
[크르르르르.]
검은 용이 그 몸을 휘감고 상승한다.
“육체를 자극하는 것만이 고문이라고 할 순 없지.”
“이?”
설천위의 손을 타고 흘러가는 기운이 주교의 몸을 좀먹는다.
언여휘조차 벗어나기 위해 괴이의 힘을 빌렸던 저주.
이제는 꽤나 사용에 능숙해진 그것.
“혼의 고통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고?”
“끄아아아아아아!!”
흑룡의 낙인이 주교의 얼굴과 목을 타고 새겨진다.
그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 * *
“벌써 찾았다라…….”
부하의 보고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사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 그들이 그리 경계하는 것이겠지.
황실에서는 눈치만 보다가 손을 쓰지 못한 것 같고, 다른 놈들도 아예 손을 뗀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좋지 않다.
긴 작업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놈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렇기에 던져 준 미끼인데.
“역시 과하게 능력이 좋군.”
마치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척척 짚어 내는 수준의 속도다.
천희만락궁은 꽤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이들이라 그 정체를 아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한데도.
다만, 황실까지 얽혀 있는 놈들이니 이번엔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정리하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릴 터.
“혈교 놈들을 견제할 여유는 벌었으니 충분하겠군.”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다시 자신의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과 방 안.
업무를 보는 사내의 뒤로 화려한 갑옷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갑옷의 옆에는 금빛으로 장식된 검이 그가 황실의 녹을 먹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간.
일렁이는 등불에 흔들리는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인다.
콰득!
섬뜩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꺼지는 불씨.
“쯧.”
가볍게 혀를 찬 사내는 문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피 냄새에 미간을 찡그렸다.
하녀가 또 먹혔군.
“치우는 것이 번거로우니 차려진 곳에서만 식사를 하라고 했거늘.”
찡그린 미간을 손으로 눌러 편 사내가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의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이의 기척이 사라졌다.
동시에 서서히 옅어지는 피 냄새.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피 냄새가 사라진 방 안에서 사내의 붓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등불의 도움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