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306화-인재 (1)
육도(六道)에는 수많은 동료가 있다.
정파(正派), 정사지간(正邪之間), 사파(邪派).
세 진영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들.
그 주인공들에겐 당연히 자신의 진영에 맞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허나, 그 선택지에도 급에 따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주현운이라면, 무림학관에서부터 빡빡하게 성장하면 무림맹에 단주급으로 취임할 수 있다.
단주급으로 취임할 때의 선택지는 두 가지.
스스로 단을 만들거나, 이미 단주가 있는 단의 부단주로 들어가거나.
전자의 경우는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아서 보통은 후자를 선택한다.
이미 엄선되어 있는 인재들 중에서 원하는 인재를 고르는 거다.
다만, 이 경우 잠재력을 보긴 힘들다.
이미 엄선되어 준비된 동료들은 그 잠재 능력의 개화가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진짜 후반을 보고 미리 투자할 거라면 이런 방식으로는 힘들다.
무림학관에서 미리 인재를 점찍어 호감도작을 해 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고.
설천위는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들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여유가 된다면 무림학관에서 최대한 많은 인재들과 친분을 쌓아 두는 게 좋다.
여하튼, 잠재력을 보기 힘들다는 단점을 빼면 이 방법이 가장 편하다.
그렇다면, 문율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무림학관에서 등급을 높이기에도 바쁜 게 바로 문율인데.
무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림학관에 아예 들어가 본 적도 없는데.
잠재 능력을 보고 키우는 인재는 영입할 수 없는 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성장을 거듭하거나 단주급 인사에게 깊은 신뢰를 얻을 경우, 외부에서 인재를 바로 등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임무에 나가서 소윤혜를 만났다.
다리 때문에 지금은 전력으로 쓰기 힘들지만, 그 실력만큼은 뛰어나지 않은가?
그런 경우 단주에게 건의해 무림맹으로 바로 들일 수 있다.
즉.
“단주에겐 입단을 권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아…….”
물론 그 한계도 있다.
단주가 관리하는 단의 한계 인원을 넘을 수 없다.
때문에 게임에서는 꽤나 신중하게 단주에게 건의를 해야 하지만…….
“나는 마음대로 뽑을 수 있지.”
“대단해요!”
“암, 대단하고말고.”
단의 최대 규모는 단주가 정하는 거다.
예산, 제어할 수 있는 인원의 한계 등등.
그런 것을 ‘단주’가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다.
고로, 설천위는 마음만 먹으면 최대한으로 늘릴 수 있다.
예산이야 뭐,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적을 세우면 차차 해결될 문제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너무 큰 규모로 키울 생각은 없지만.
“그런데, 그럼 공채로 뽑은 사람들 중에서는 안 뽑을 건가요?”
“아니? 뽑을 건데?”
흑룡단의 훈련장.
그곳에서 친구들과 쉬고 있던 설천위는 서하영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안 뽑아?
잠재력만 보고 뽑으면 실무는 누가 보라고.
키우는 데 시간이 드는데 그 시간을 견뎌 줄 녀석들도 있어야지.
무엇보다 잠재력을 개화시키기 전에도 합격선에 다다른 녀석들도 있다.
그런 녀석들은 놓칠 순 없지.
“뭐, 그러니 이제 슬슬 훈련은 그만하고 구경하러 가긴 해야 하는데…….”
슬쩍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철백의 청혈대(淸血隊)를 바라봤다.
청혈(淸血).
맑은 피.
처음 들었을 땐 의외라고 생각했다.
청혈이라니, 너무 무난하다고 생각해서다.
새롭게 생겨난 단이니 싱싱한 피가 되어 움직이겠다, 뭐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구경하게 되네…….”
“그렇죠?”
“응.”
청혈(淸血).
피 중 가장 맑은 피.
그런데 말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
오늘의 땀 백 방울이 내일의 피 한 방울이 될 것이다.
피는 아무리 맑아도 물보다 진한 법이고.
땀은 아무리 모여도 피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만…….
“힘든가!!”
“아닙니다!”
“뛰어!!”
……그 땀을 모아 맑은 피 정도는 되어 보겠다는 포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지.
음.
죽어라 달리기 시작하는 청혈대 대원들을 슬쩍 바라본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뭐, 어제 체력과 내공 측정에서 탈락한 이들 중 후에 낭인이 되어 이름을 떨치는 녀석들 다섯을 챙겼다.
잠재력을 보고 뽑은 거니 당연히 철백에게 맡겼고.
벌써부터 후회하는 얼굴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낚인 녀석들이 잘못이지.
“좋아, 그럼 일하러 갈까.”
* * *
시험 비무.
무림맹 공채 시험의 핵심.
외공과 내공 전부 일정 수준을 넘긴 이들을 모아 치르는 비무.
그 실력의 기준은 꽤나 높은 편이라 최소 이류 초입 이상의 경지에는 닿아 있어야 한다.
계(癸) 출신의 졸업생이 괜히 개무시를 당하는 게 아니다.
무림학관을 거치지 않은 일반 낭인보다도 못하다는 소리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림학관이 아무런 의미도 없느냐?
그건 또 아니다.
나름 인재들을 선발해 육성하니 완성된 이들이 나올 확률이 커지는 건 물론이고, 긴 시간에 걸쳐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즉, 간자를 걸러내기에 좋다.
애초에 무림학관의 학생은 뽑을 때 그 신분을 본다.
정확히는 그 출신을 본다.
간자를 골라내기 좋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학관 내에서 배우는 여러 공통 수업은 후에 실무를 진행할 때 큰 이점이 된다.
기본적인 합격술이나 진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
반면, 공채는 딱히 큰 투자 없이 즉전력이 되는 이들을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는 거지.
여하튼 그렇기에 이 공채 시험에서 시험 비무는 상당히 의미가 깊다.
단순히 실력을 보는 것을 넘어서서 그 무공의 성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공에 살기가 짙진 않은지.
마공이나 사공을 익힌 것은 아닌지.
다만 이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만한 실력을 가진 이가 봐야 한다.
그렇기에.
‘아으! 아으!’
백천기는 긴장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썼다.
그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들.
‘단주……!’
시험 비무가 벌어지는 곳에서 꽤나 올려다봐야 하는 곳에 자리 잡은 단주들의 시선이 날카롭다.
“환영하오. 무림의 동도들이여. 정의를 위해 이 자리에 온 여러분의 의기에 내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맹주 대신 자리한 총군사(總軍師) 제갈진천의 인사에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질문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 이유였지만…….
‘……엄청 귀찮아 보이네.’
노골적으로 이 자리에 있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몇몇 단주의 기세가 상당히 흉흉하다.
고작해야 이류에서 일류 수준인 이들이 저 흉흉한 면상을 보고 겁을 먹지 않을 리가 없지.
물론.
‘나쁘지 않네.’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있지만.
가장 바깥에 자리한 자신의 자리에 앉은 설천위는 흥미롭게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실 게임에서도 몇 번 본 장면이긴 하다.
무림학관을 갑(甲)으로 졸업하면 볼 수 있는 장면이니까.
수십 명의 후보들이 대연무장에 서서 대련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이 넓은 무림에서 모인 무인들 중 고작 저만큼만 살아남았다.
물론 기준이 실력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외공이나 내공의 수준은 물론이고, 출신이나 학식의 수준도 본다.
간자를 걸러야 하는 건 기본이고, 글을 아예 못 읽으면 임무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니 당연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요소를 전부 확인하고 점수를 매겨서 그 총합이 일정치 이상을 넘어야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소리다.
뭐, 그건 그렇고.
‘몇 명 보이네.’
데려가면 좋을 녀석들이 몇 명 보인다.
의외의 인물도 보이고.
떨어져도 특권으로 데려갈 수 있지만…….
“분명 공채 인원을 데려가면 예산의 추가 분배가 있었지?”
“네. 사람을 고용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급에 걸맞은 급여도 줘야 하고, 대우도 해 줘야 하니까.
무림맹이 이런 거 하나는 또 깔끔하지.
여하튼, 자금 사정 때문이라도 공채로 뽑힌 녀석들을 데려가는 게 좋다.
거기다.
너무 무리해 데려갈 필요도 없고.
무림맹이라는 틀 안에 있다면 기회는 있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여러 단에서 원할 경우 단을 선택할 권리는 본인에게 있다.
뛰어난 인재일수록 더 이름 높은 단에 가려고 할 테니 솔직히 몇이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떨어진 녀석들을 최대한 모은 거고.
공채에서 아무도 못 건질 수도 있으니까.
만약을 위한 대비라고 할 수 있지.
미리 뽑아 놓은 인원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은 설천위는 몸에 힘을 풀었다.
뭐, 아무도 못 데려가면 어쩔 수 없지.
이미 단을 굴릴 기본적인 인원 정도는 갖췄으니까.
철백이 이끄는 청혈대에다 여웅을 주축으로 만든 잠룡대까지.
졸업하면 이곳으로 오겠다고 한 녀석들도 꽤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 주현운과 문율이 흑룡단으로 온다.
음음.
사전에 뿌려 놓은 씨앗들을 떠올리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시험 비무를 구경하기로 마음먹고.
“그럼 시작하겠소!”
드디어 비무가 시작됐다.
* * *
시험 비무는 10조가 동시에 비무를 치른다.
시간상의 문제로 단체로 비무를 치르는 거다.
그래서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단주급의 안력(眼力)은 격이 다르다.
고지에서 고작 10조 정도의 싸움을 제대로 살피는 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소리다.
사람에 따라선 듣는 것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할 정도이니까.
거기다 단주 이외에도 대주나 부대주급 인사들도 있다.
단주가 일하는데 밑에 있는 대주나 부대주가 놀 수 있을 리 없다.
여하튼, 그렇기에 시험이 진행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10조씩 진행되니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나쁘지 않군.”
시험 끝에 옥석이 가려졌다.
고작 스물둘.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무림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합격자는 저 스물둘이 다였다.
“이번에도 빡빡하군.”
“치열한 전투가 없으니 많이 뽑을 이유도 없긴 하지.”
“허나 사파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던데,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소?”
단주들 사이에서 들려온 대화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설천위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이번 공채 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이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아미타불, 소승은 무해라고 합니다.”
무해.
소림의 일대제자 중 가장 막내.
그리고 기행으로 유명한 괴짜.
그의 등장에 허허 웃은 단주 중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불살(不殺)이라는 상당히 귀찮은 신념을 내세우고 있는 무해다.
그럼에도 그 실력은 가공할 수준이라 소림의 제자들이 주로 들어가는 적수단의 단주 이외에도 몇몇 단주가 손을 들었다.
물론 손을 들면서도 무해가 당연히 적수단을 고를 거라고 예상했다.
무해나 되는 사람이 고작 한 개의 단에서만 선택받아서야 면이 서지 않으니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인데…….
“아미타불, 소승은 흑룡단으로 정하겠습니다.”
“음?”
“흑룡단?”
무해의 발언에 단주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흥미로운 후학에서 어느새 자신들과 동렬에 선 괴물.
무림맹 전체에 칼을 들이대는 미친 행보를 보인 괴짜.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합니다. 무해 스님.”
“아미타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치 서로 약속이 된 것 같은 모습에 단주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무진에게로 향했다.
무해의 대사형이자 적수단의 단주.
그는 그저 담담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사전에 그도 알고 있었다는 소리.
그렇게 단주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는 사이, 어느새 다음 인물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규철이라고 한다.”
광오하게 자신의 이름만을 말하는 사내.
그 모습에 단주들은 무해의 일을 금세 잊고 흥미롭게 그를 바라봤다.
이 무림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낭인.
거철도(拒鐵刀) 정규철.
그 실력은 얼핏 절정의 초입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그만한 인재라면 당연히 기용해야 하는 법.
모든 단주가 손을 들었고.
“나는 흑룡단을 선택하겠다.”
그 대답에 단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