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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06화 (306/624)

제306화

305화-창단 (9)

원래는 잠룡단(潛龍團)이라든가, 설화단(雪花團)이라든가.

생각하고 있던 이름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 흑룡단이라는 이름은 거의 제외하고 있던 후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흑룡(黑龍)은 사파의 상징이니까.

그들이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니까.

흑룡성이라는 별호도 뭐 시간이 지나면 바뀔 테니 단의 이름은 다른 것으로 할 생각이었다.

소령연화라는 기술도 익혔으니 그쪽으로 연결을 짓거나, 술법을 연상시키게 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꽤나 쓸데없는 고민이었던 것 같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재판정 안에서 설천위는 담담한 눈으로 맹주를 바라봤다.

허공에서 얽히는 시선.

“본 맹에 썩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구려, 설 단주.”

썩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적절치 않은 이름이었다.

맹주의 말에 동의하는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흑룡이란 이름은 좀…….

맹주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설천위 또한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이 이름이어야 합니다.”

“흠,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 있는 이들과 같아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소랑대주와 아적대주를 바라봤다.

“저들과 같아서는 악을 물어뜯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담담하게 말하며 설천위는 단주패를 맹주를 향해 내밀었다.

천천히 허공을 날아 맹주의 앞에 도착하는 단주패.

그 단주패를 받아 든 맹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단순한 강기가 아니군.’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은 강렬함.

한 획, 한 획에 담긴 힘에서 범상치 않은 열기가 느껴진다.

잠시 단주패를 바라보던 맹주는 고개를 들어 설천위를 바라봤다.

당당하게 악을 물어뜯겠다고 외치고 있는 젊은 무인.

주위에선 벌써부터 불편해하는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젊은 무인의 오만함을 질책하는 듯한 시선들.

단숨에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맹주는 설천위를 내려다봤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지금 이 상황은 명백히 설천위에게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집법당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고, 상당히 많은 이들의 표정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금 설천위가 원하는 것은 소랑대와 아적대의 처벌일 텐데.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터.

대체 무슨 생각이냐.

설천위가 결코 어리석지 않다고 생각하는 맹주이기에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는 그 순간.

“그렇기에 저는 이곳에서 정의를 말하고자 합니다.”

뜬금없는 발언.

갑작스러운 설천위의 행동에 맹주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설천위가 움직였다.

“음?”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기이한 감각.

그와 동시에 딱딱하게 굳는 몇몇 이들의 표정.

“이, 이게 대체?”

“악귀의 습격인가?!”

당황해서 허겁지겁 부적을 꺼내는 이들.

허나.

“그만하세요.”

“어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백화단주와 만귀단주의 목소리에 술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부끄럽다는 듯 이쪽을 노려보는 모습에 뻘쭘하게 앉는 이들.

그리고 그 속에서 뒤늦게 이상을 알아차린 맹주의 시선이 설천위를 향했다.

담담하게 선 설천위의 주위로 일렁이는 기이한 기세.

위협적이진 않으나, 무언가 본능을 자극하는 느낌.

그 감각의 원인을 찾고자 맹주가 미간을 찡그린 그 순간.

“우리가 행하지 못한 정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소.”

담담한 발언과 함께 설천위는 소랑대와 아적대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네놈! 나를 두들겨 패 놓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친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제발, 제발 제 딸아이만은……!]

[살려 줘어어어어!!]

“으, 으아아아! 이, 이게 뭐야!!”

“저, 저리 가! 휘! 휘!”

“술사! 술사!!”

자신의 어깨에 붙어 저주의 말을 쏟아 내는 혼들의 모습에 당황한 이들.

그리고.

“어, 언제부터?”

“제, 제령을!”

자신들이 보지 못하던 혼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에 놀란 술사들이 허둥지둥 움직였으나, 그 움직임은 이내 멈췄다.

“……내용이 이상한데?”

“도망쳤다는군.”

혼들이 쏟아 내는 증언에 몇몇 이들이 미간을 찡그렸다.

악귀의 존재가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허겁지겁 도망쳤다는 증언.

마약상을 찾는다며 민가를 마구 헤집고 부수고 다녔다는 증언.

암암리에 행해졌다고 한들 공개 석상에서는 결코 드러나선 안 될 일들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도, 내 힘을 믿지 않았다는 것도 이들의 죄가 되진 않소.”

그것에 대해 화가 나진 않았다.

화를 낼 이유도 없었고.

허나.

“죄 없는 이들을 핍박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한 것마저 죄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소.”

허우적거리고 있는 소랑대와 아적대.

자신들을 원망하는 혼들의 목소리에 벌벌 떨며 악을 쓰는 놈들.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잘못한 것 없다고 악을 쓰는 모습은 너무나도 추해 보였다.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집법당주를 향해 말했다.

“집법당주께서도 그리 생각할 것이라고, 이곳에 정의가 바로 서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 * *

새롭게 취임한 단주.

즉 흑룡단의 단주 설천위가 시작한 고발과 재판.

그 결과에 무림맹이 술렁였다.

혼들의 증언.

조작이 없음을 백화단주와 만귀단주가 보증했기에 그대로 증거로 채택된 죽은 이들의 증언에 소랑대와 아적대의 처벌이 정해졌다.

대주들의 강등과 대의 해체.

뿔뿔이 흩어지는 대원들.

6개월간의 감봉.

상당히 강력한 처벌이 내려졌다.

그래도 그 처벌이 과하다고 성토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혼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죄니까.

더불어.

“어우, 짐승 같은 놈들…….”

“전부터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 있다 했더니 바로 저놈들이었구먼?”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재판을 구경했던 이들 중에는 입이 가벼운 이들도 많았기에 소문은 그야말로 발이 달린 듯 빠르게 퍼져 나갔다.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패악을 저지르던 일부 대에 대한 성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정도로.

그렇게 무림맹과 정파 무림이 마구 들끓을 때.

그 중심에는 색다른 느낌으로 위로 올라오는 존재가 있었다.

“흑룡단이라……. 과격하구먼.”

“하지만 그 기개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암, 대단하고말고. 맹주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인가?”

내부 인사를 재판하는 자리에서 악을 물어뜯는 흑룡이 되겠다니.

대놓고 적아를 가리지 않고 불의를 보면 물어뜯겠다는 선언 아닌가.

그걸 맹주 앞에서 대놓고 하다니.

아무리 단주급의 강자라고 하지만,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도 거창하게 신고식을 하면서까지 그 단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순수한 악의 구제?

어린 나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이란 것이 그렇게 물렁물렁하지는 않지 않은가.

소문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설천위의 의중이 무엇일지 추측하는 그때.

의심보다 믿음을 먼저 품은 이들도 있었다.

“……재미있군.”

평생을 낭인으로 살아온 이들 중에서도.

몇이나 되는 이들이 움직였고.

“나도……!”

꿈을 꾸던 이들 또한 움직였으며.

“호오호오?”

쏟아지는 관심에 돈 냄새를 맡은 이도 움직였다.

그렇게 수많은 관심이 무림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하나.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

* * *

“다행이네요.”

“뭐가…….”

싸늘한 유예린의 목소리에 늘어져 있던 설천위가 몸을 뒤집었다.

이쪽은 죽을 것 같은데, 왜 또 공포 분위기 조성을…….

“온갖 무리란 무리는 다 해 놓고 뭐가, 라는 말이 나오나요?”

짝!

“억!”

맨가슴을 내려치는 유예린의 매서운 손맛에 억 소리를 낸 설천위의 상체가 반동으로 튀어 올랐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가슴.

단련을 거듭한 육체가 일격에 이리될 정도면…….

[허허, 내공까지 담은 걸 보니 꽤나 진심인 모양이구나.]

[혼날 만하지.]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예요. 말려야 할 분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혼들은 유예린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 몸을 숨겼다.

눈빛만으로 천마를 제압한 유예린의 모습에 살짝 마른침을 삼킨 설천위는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끄응, 그러니 일단 쉬고 싶…….”

“당연하죠!”

꿈틀거리는 설천위를 붙잡아 곱게 눕히고 그대로 이불을 덮은 유예린은 한숨과 함께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공자의 회복력으로도 이렇게 오래 요양이 필요할 정도면 얼마나 무리를 한 건지…….”

“좀 많이 하긴 했지.”

“너무 당당해서 조금 화가 날 정도네요.”

“……죄송.”

“알면 조용히 내상이나 다스리세요.”

“옙.”

살벌한 유예린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했다.

확실히 뒤틀린 속이 아직도 회복이 덜 된 게 느껴졌다.

하긴 그 무리를 했는데, 아무리 [회복]을 써도 힘들지.

[패룡기(覇龍氣)]까지 발동하고도 내부가 다 뒤집어질 정도였는데.

[소령연화(燒靈燃枠)]만 안 썼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만.

솔직히 악귀를 영력으로 끌어모으는 것까진 할 만했고.

마무리를 [흑관]으로 했다면, 큰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겠지만…….

‘꼭지가 너무 돌았었지.’

지상에서 죽어 올라오는 혼들을 눈에 담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킬 수 있었던 생명을 그들의 도주로 잃었으니 짜증을 넘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고 있었으니까.

만약 소천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악귀고 나발이고 도망치는 놈들부터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악귀의 소행으로 보고를 올렸을지도.

그 정도로 화가 솟구쳤다 보니, [소령연화(燒靈燃枠)]에도 자연스럽게 패기와 살기가 깃들었고 그 결과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지.

내장이 뒤틀리는 상황에서도 단주패에 글씨를 새긴 것은 일종의 다짐이었다.

이딴 꼴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그런 다짐.

뭐, 다짐치고는 너무 과하게 해서 각혈까지 해 버렸지만.

살아 있으면 된 거지.

[소령연화(燒靈燃枠)]의 가능성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움?”

유예린이 입에 넣어 준 과일을 씹던 설천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뭘 해?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으니 사방에서 견제가 들어올 텐데, 어떻게 할 거냐고요?”

“아.”

재판정에서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이 참 많았지.

그중에는 조져야 할 놈들도 꽤 있었고.

“뭐, 아직은 아무것도 안 할 건데?”

어깨를 으쓱이고 유예린이 내밀던 과일을 덥석 물어 입에 넣은 설천위는 히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우리도 구색 정도는 갖추고 나서 움직이자고?”

“구색이라면요?”

“머릿수를 채워야지.”

엉덩이를 당겨 벽에 등을 기댄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쓸 만한 녀석들은 다 쓸어 와야지.”

* * *

무림맹의 공채 시험.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 있는 낭인이나 무인들이 모여 치르는 시험이 시작됐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

그리고 이들은 무림학관에서 애지중지 큰 대신 덩치가 큰 나약한 화초가 아닌, 바로 풍랑 앞에 던져놔도 능히 버틸 수 있는 잡초들이었다.

즉시 실전에 투입 가능한 전력이라는 소리.

당연히 잠재 능력보다는 지금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위주로 본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시험도 실용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내공은 물론 근력, 체력 등의 측정.

무공의 수준을 보는 비무까지.

이 모든 것들이 조금 더 엄격하고 빡빡하게 진행되는 것이 무림맹의 공채 시험이다.

또한, 원하는 보직에 따라 추가로 학문이나 지식을 시험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뤄지는 시험의 한가운데.

치열한 공방 끝에 패배한 무배춘은 한숨과 함께 입술을 악물었다.

부푼 꿈을 안고 찾아왔거늘 현실의 벽은 이다지도 높은 것이었나.

악을 쓰고 싸웠으나 힘의 차이가 너무 역력해 수준 이하의 전투를 펼치고 말았다.

분명 떨어졌겠지…….

깊은 한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무배춘이 일어서는 그때.

“무배춘, 맞나?”

“예, 예……. 제가 무배춘입니다만…….”

누구신지?

그 의문을 내뱉기도 전에 청년의 손이 무배춘의 어깨에 올라갔다.

“자네, 나와 함께하지.”

“예?”

“채용이네.”

“예에?”

당황하는 무배춘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를 따라온 부하에게 인도한 설천위는 뿌듯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봤다.

아아.

이거지.

아직 땅 깊숙이 묻혀 있는 인재들을 마음껏 채용할 수 있는 이것……!

이것이 바로 권력의 맛……!

무혈권(無血拳) 무배춘의 영입에 성공한 설천위는 뿌듯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좋아, 다음은 누구로 할까?”

싹 쓸어 가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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