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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04화 (304/624)

제304화

303화-창단 (7)

“사, 살려 줘!”

눈앞에서 침을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웃집 친구를 향해 중년 남성은 다급하게 다리를 휘둘렀다.

양손을 땅에 짚고 엉덩이를 질질 끌며 꿈틀거리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

허나, 그런 절실한 반항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상대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기에는 힘이 부족했고.

상대의 동정심을 자극하기에는 상대의 감정이 부족했으니까.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달려든다.

이미 가까이에 있던 다른 이가 저 짐승 같은 돌진에 목이 물어뜯긴 광경을 보았다.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끔찍한 미래.

절로 두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물러나시오!! 장이 열리는 중심으로 향하시오!”

언제 달려온 것인지 모를 무인의 검이 다가오던 이의 다리를 분질러 버리는 것이 보였다.

바닥을 기는 이웃집 친구.

기어서라도 움직이는 그 모습에 중년 남성은 히익 소리를 지르며 겨우 일어섰다.

감사 인사조차 없이 달려가는 남성.

그 뒷모습을 짧게 바라본 소천은 한숨과 함께 검을 들었다.

검집째로 휘둘러 다리를 부러트리고 있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자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

‘……빌어먹을 놈들.’

평소에 거칠게 수사를 하는 것은 다 악(惡)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 믿고 그냥 넘겼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몇 번 성과를 거뒀으니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다만, 능력만 있었다면 다른 곳으로 떠났을 거다.

그럴 능력이 없어서 그냥 눌러앉아 있었던 거지.

그나마 부대주의 자리에 있으니 너무 심한 건 제지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분명 선을 넘었다.

악(惡)의 구제를 위한 희생인 줄 알았거늘.

정작 악(惡)을 목도하자 도망이나 치는 꼴이라니.

“……나도 남의 말을 할 처지는 아닌가.”

후들거리는 다리가 도저히 멈추질 않는다.

공포다.

다만, 그것은 온전히 악귀를 향한 공포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용을 몸에 휘감은 그에 대한 공포가 오히려 더 컸다.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 생존 본능이 마구 경종을 울리는 존재.

저것이 과연 악(惡)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압도적인 위협감.

사람이 그저 존재 자체로 이토록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소천은 오늘 처음 알았다.

물론.

‘……내가 너무 겁먹은 거겠지.’

그 위험은 지금 홀로 이곳에 남아 적을 상대하고 있으니 지레 겁을 먹은 자신의 착각이리라.

저자가 악(惡)이라면, 이 세상에 선(善)일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싶으니.

한숨을 삼키며 소천은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다.

설천위의 명령대로 악귀에 씐 것 같은 사람도 죽이지 않고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역시 멀쩡한 사람을 살리는 데 더 집중하고 싶어서다.

혹시라도 멀쩡한 사람이 숨어 있다면 최대한 빨리 구해 내고 싶으니 감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을 곳곳을 누비며 악귀에 씐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멀쩡한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던 그때.

“……저게 뭐야.”

어느새 하늘이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

* * *

악귀를 가르는 다섯 가지의 계급.

백(魄), 원(怨), 귀(鬼), 재(災), 멸(滅).

이 중 실질적으로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할 위협이 있는 것은 귀(鬼) 이상의 악귀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혼과 정신에 개입할 정도의 강한 영력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꽤나 강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악귀들의 중에 마(魔)라는 존재가 따로 있다.

마귀(魔鬼)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마인(魔人)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술사들이 부르는 정식 명칭은 마(魔)인 존재들.

이들은 인간에게서 태어난다.

다른 악귀들처럼 인간들의 원한, 절망, 분노 등의 감정에서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악귀가 인간과 합쳐졌을 때 태어나는 존재.

그것이 마(魔)이다.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회색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오만은 이 회색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일전에 이와 같은 존재를 설천위는 직접 처리한 적도 있다.

위협적이었다.

화경급의 고수가 악귀를 받아들여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그 힘이 약할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제 막 힘을 손에 넣었던 그의 미숙한 상태를 노려 설천위는 승리할 수 있었다.

악귀와 합쳐지면서 영력에 약점이 생긴 것도 승기를 잡는 데 도움이 됐고.

마(魔)라는 것이 그렇다.

설천위가 술법에 만족하지 않고 무력까지 손에 넣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니까.

다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마(魔)가 그런 강함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인간과 악귀의 융합.

반드시 엄청난 상승작용이 일어나리란 법은 없었다.

1+1이 2가 될 수도 있고, 1이 될 수도 있다.

인간과 악귀의 융합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할 수밖에 없기에 생기는 오차.

그렇기에 지금 상대하는 적의 정체를 어림짐작하며 설천위는 양손을 모았다.

썩어 빠진 잡놈의 새끼들이 내빼는 바람에 모두를 구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했다.

그렇다면 하나라도 더 구하는 길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흐읍!”

설천위는 손을 움켜쥐며 영력을 움직였다.

손을 움켜쥐는 것은 단순히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흡(吸)의 묘리.

무공으로 쓰면 너무 어설퍼서 도저히 실전에서 쓸 수준이 못 되는 수단이지만.

술법의 영역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변으로 넓게 퍼트린 영역(靈域) 속에서 그것들을 붙잡는다.

붙잡고 강제로 끌어당긴다.

지금 이곳에 자리 잡은 놈의 이름은 고호령(呱狐靈).

사람의 정신을 파고들어 무차별적인 폭력성을 불러일으키는 악귀다.

다만 이 악귀 자체는 약하다.

급으로 따지면 보통 원(怨) 정도의 수준.

수령원의 학생들이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두 사람 정도, 그것도 약한 아이나 여인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 고작인 악귀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육체를 완전히 먹어 치웠을 경우다.

그것도 특수하게 제조한 약으로 인간의 육체를 완전히 먹어 버렸을 경우.

겨우 몸 하나를 지배하는 것이 고작인 지성 없는 악귀는 자아와 지성을 갖게 되고, 그것은 거대한 힘이 된다.

심지어.

‘꽤나 오래 숨어 있었어.’

인질극을 벌였던 놈들은 본체가 아닌 분신이 깃든 놈들이었다.

놈이 분신을 만들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놈의 등급은 귀(鬼) 중에서도 상급까지 올라간다.

강한 무력 때문이 아니라 처리의 어려움 때문이다.

사람의 몸을 옮겨 다니며 본체를 숨기고 사람을 습격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공포와 피를 먹으며 더더욱 몸을 불려 나가고.

웬만한 무인의 정신력조차 가볍게 뚫을 수 있게 되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진다.

무인이 민간인들 사이로 뛰어들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 피의 양은 결코 적을 수가 없었다.

아까 소랑대인지 아적대인지 모를 놈들 중 하나가 몸을 뺏겼었다.

다행히 삼류 수준의 무인인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수련을 거친 인간의 정신을 뚫을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성장에 가속도가 붙으면 진짜 처리하기 힘든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 퍼지는 공포를 막으려고 했던 것인데.’

그 잡놈의 새끼들이 다 도망쳐서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지만.

미련을 떨쳐 내며 설천위는 영력을 움직였다.

“후우!”

빨아들인다.

무엇을?

악귀를.

놈의 분신들을 전부.

어떻게?

강제로!

육체에 깃들어 있든 말든 오로지 힘만으로!

고작해야 잡귀 따위가.

까득!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허허, 괴물 같은 놈…….]

압도적인 영력의 폭풍 속에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악귀의 분신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설천위의 박수 한 방에 요동쳤던 분신들이 설천위가 만들어 낸 압도적인 흡입력을 견디지 못하고 육체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렁이는 검은 영체가 하늘을 메우기 시작한다.

발악하며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한다.

‘……분노인가.’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빨아들이고 있는 설천위를 가만히 바라보며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붉게 충혈되기 시작한 눈.

강하게 악문 이.

얼굴 곳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힘줄.

누가 봐도 무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노로 억지로 힘을 쥐어짜고 있다는 증거.

다만, 억지로 쥐어짜고 있는 주제에 섬세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대견했다.

영체를 빨아들이는 이 힘이 자신들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이 그 증거다.

오로지 철저하게 악귀만을 빨아들이는 힘.

설천위의 기이할 정도의 놀라운 기술에 감탄하며 천마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어느새 꽤나 많이 빨려 들어온 악귀의 분신들이 허공에 검은 구름을 형성했다.

보는 것만으로 불길해지는 것 같은 흑운(黑雲).

모은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솔직히 저것들을 처리하는 것도 큰일이다.

지금 설천위는 저 분신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처리하려는 것인지.

천마가 조금 걱정을 품는 그 순간.

“후읍!”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 설천위가 검을 빼 들었다.

‘……왜?’

지금 여기서 검을 빼 들 이유가 있나?

흑관이라 칭하는 술법을 이용하는 게 가장 낫지 않나?

가둬서 내부를 요동치게 만들어 적을 파쇄하는 것도 가능하니 아무리 봐도 그 방법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천마가 의아함에 미간을 찡그리는 그 순간.

[놈! 너무 무리하는구나!]

설천위의 몸에서 일렁이는 기운에 그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천마가 호통을 쳤으나, 이미 늦었다.

설천위의 검에서 불꽃이 일렁이듯 피어올랐다.

소령연화(燒靈燃枠).

설천위가 손에 넣었으나, 아직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기술.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역류해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대체 왜 지금…….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 천마가 미간을 더욱 찡그린 그 순간.

설천위가 피워 올린 불꽃이 변하기 시작했다.

옅은 선홍빛을 띠던 백색의 불꽃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마치.

[크르르르르르.]

패융의 비늘처럼.

묵빛으로.

묵빛의 불꽃을 품은 검이 서서히 올라간다.

하늘을 찍고, 떨어지는 검.

너무나도 간단한 동작의 일격.

설천위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여유가 생겨 조금씩 다시 퍼져 나가던 악귀의 분신들을 하나의 궤적이 베고 지나간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들의 중앙을 갈랐다.

마치 구름을 베듯 허무하게 갈라진 악귀의 분신들.

이대로 악귀의 분신들이 흩어져 설천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은 그 순간.

화르르르르륵!!

강렬한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귀들을 먹어 치우며.

맹렬하게.

어둠을 집어삼키는 검은 불꽃에 의해 하늘이 개듯 햇빛이 마을로 쏟아진다.

죽은 이의 시신과 망가진 몸으로 신음하는 이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광경이 흑염(黑炎) 사이로 피어오른다.

“……정했습니다.”

뿜어낸 불꽃을 꺼트리지 않은 채 설천위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품에서 꺼낸 단주패를 허공에 던졌다.

날아오른 단주패는 중력을 거부하듯 허공에 딱 멈춰 섰다.

흑관에 붙잡혀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뒷면을 드러내는 단주패.

그 단주패를 향해 설천위는 검을 움직였다.

담담하게, 검은 불꽃으로 글귀를 아로새긴다.

한 획, 한 획 휘두를 때마다 불꽃이 튀어 검은 구름을 불태우고.

모든 글자가 완성되었을 때.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존재가 타들어 가는 비명이 들려오고, 그 비명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악귀의 소멸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검을 거둔 설천위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고, 악을 태우는 업화(業火)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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