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300화-창단 (4)
“흠, 진짜 작은 임무네.”
무림맹이 자리한 도시의 외곽.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며, 설천위는 임무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뭐, 내용은 사실 별거 없다.
단순한 흑도 문파의 처리다.
엄밀히 말하면,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의 일망타진이다.
“혼자는 오랜만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지 않으냐?]
“에이, 임무를 혼자 가는 게 오랜만…….”
아, 임무는 혼자 가는 게 그냥 처음인가?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 움직일 때는 전부…….
“……휘말려서였네.”
살려고 도망치다가.
살려고 수작 부리다가.
그러다가 홀로 떨어졌었구나.
그나마 혼자 한 임무가 흑룡학관 잠입이지만, 그거야 뭐 종류가 다르고.
“인생 참 고달프구먼.”
[허허,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느냐?]
하긴, 뭐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걸음에 조금 속도를 더했다.
“그나저나 뭐가 목표인지 모르겠네.”
[유가의 아이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 의외로구나.]
[그러게요. 좋다고 따라나설 줄 알았는데.]
혼들의 말에 설천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선이 제안했을 때 유예린에게도 권유했지만, 유예린이 거절한 것이다.
자신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설천위 혼자 가는 게 더 나을 거라면서.
[아쉬운 눈치구나?]
“아닌데요.”
[어허, 우리가 보낸 세월이 얼만데 우리의 눈을 속이려 드느냐.]
연륜을 그런 데 낭비하는 게 참 자랑입니다.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혼들의 놀림을 대충 넘기며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한 마을에 닿을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이쪽이라고?”
“예, 예……. 그, 그렇습니다!”
“확 씨! 똑바로 말 안 해?”
어째 상황이 생각한 거랑 다른데?
* * *
회재촌은 적당한 크기의 마을이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작고, 시골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큰 그런 마을.
그렇게 된 이유는 순전히 무림맹 때문이다.
별다른 자원도, 볼거리도 없는 마을에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것이 무림맹을 오가는 사람들이니까.
주기적으로 지나쳐 가는 여행객들이 있으니 나름대로 경제가 돌아가고 마을의 크기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을이 막 커질 정도로 돈이 흐르는 건 아니라서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여하튼, 무림맹의 영향을 받아 돈이 도는 마을이니만큼 치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나쁘기가 쉽지 않았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곳인데, 이곳에서 행패를 부릴 흑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흑도 이하의 양아치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조직적으로 움직이진 않더라도 선을 넘나들며 돈을 버는 이들은 있었다.
그게 이 마을에 마약이 유통되는 이유고.
“그래서 그걸 캐내고 있었다고?”
“퉤, 그렇소.”
포목점 주인을 붙잡고 으름장을 놓던 무인이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중간에 끼어들어 시간을 지체시킨 것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보는 눈이 많아서 싸움까진 일으키지 않았지만, 말하는 태도 하나하나에 화가 깃들어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솔직히 화도 안 났다.
그냥.
“그래?”
기가 찰 뿐.
“그럼 더 볼일 없으면 가 보겠소. 쓸데없이 시간이나 잡아먹기는…….”
거하게 가래침을 뱉고 걸어가는 무인.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한쪽에서 숨죽이고 있는 포목점 주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예예! 괜찮습니다요! 괜찮고말고요!”
크게 고개를 주억거린 포목점 주인은 설천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후……. 대협께서는 무슨 일로 이 마을을 지나가시는 겁니까?”
“지나가는 게 아니고, 이 마을에 좋지 않은 약이 돈다는 얘기를 들어 조금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대협께서도 말입니까?”
“아까 그 인간도 그랬나 보군요.”
설천위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쉰 포목점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림맹에서 온 분들이라고 합디다.”
“이런 일이 잦습니까?”
“가끔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분들이 많죠.”
득달같이 달려든다.
그 단어에 설천위는 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화하고 있는 상대도 무인이니 단어를 가렸음에도 저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건…….
[꽤나 과격한 놈들이 많은가 보구나.]
[아까도 꽤나 위협적이었지.]
혼들의 평에 설천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포목점 주인에게 윽박지르는 녀석의 눈에는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유독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복장이 다른 무인분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마…….”
포목점 주인은 말끝을 흐렸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경쟁이다.
아마 두 개 이상의 대가 이곳에 와서 서로 경쟁이 붙은 거겠지.
[공적 싸움이구나.]
현태중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짐작이 간다.
소규모 대에서는 공적이 꽤나 중요하다.
철저한 성과제이니만큼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적이 필수다.
악인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비효율적인데.”
무림맹이라는 테두리에 들어가 있는 조직들이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다니.
너무 비효율적이다.
경쟁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하물며, 이런 식의 경쟁이라면.
반드시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무인들의 흉흉한 기세에 민간인들이 겁먹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의 공포가 임무의 성공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나…….
[정파 놈들이 다 그렇지 뭐, 에잉. 쯧쯧.]
[위선적인 놈들.]
소백진과 암영의적의 힐난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正)이 무엇인가.
바르다는 것은 선을 지킨다는 소리다.
정파는 선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소리다.
그런데 이놈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선에 관심조차 없다.
“마음에 안 드는데.”
마음에 안 든다.
진짜로.
“마음에 안 들어.”
* * *
“제, 제발! 저, 저는 깨끗합니다요!”
“깨끗하기는 X랄!”
거칠게 발을 움직이며 집기를 걷어찬 무인은 위협적으로 윽박질렀다.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얻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집은 이렇게 털고 있다.
아니면 뭐, 다른 집을 털면 된다.
조금 귀찮아질 뿐이지.
그 귀찮음에 대한 분노로 조금 물건을 부수지만, 뭔 상관인가.
악을 잡는 과정에서 으레 일어나는 사소한 사고인데.
“이렇게 감싸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제발! 제발! 저, 전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억!”
애걸복걸하는 이가 자신의 바지를 붙잡자, 거칠게 발을 휘둘러 떨어트린 무인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혀를 찼다.
말하는 꼴이 멀쩡한 걸 보니 진짜 꽝인 것 같다.
약을 쓰는 놈들은 반드시 어딘가가 어설프니까.
또 헛다리를 짚었다는 생각에 얼굴을 잔뜩 구긴 무인은 거칠게 몸을 돌렸다.
시간이 없다.
그놈들에게 뺏길 순 없다.
이렇게 좋은 공(功)은 쉽게 찾기 힘들다.
마약이 연관되어 있는 만큼, 위에서도 후하게 점수를 준다.
이번 임무만 처리하면 한결 부담이 줄어드…….
“뭐냐?”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젊은 놈의 모습에 무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허리에 검과 도를 찬 걸 보니 멋이나 부리는 어린놈인 것 같은데…….
“꺼져라. 바쁜 길 막지 말고.”
“응, 바빠 보이긴 하더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꼴이…….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
허리에 병장기를 차고 있으니 무인이라는 소리.
어설픈 실력으로 저러는 꼴이 우습지만, 이쪽에선 좋다.
두들겨 패도 뒷말이 없으니까.
말을 우물거리는 놈들 때문에 솟구친 화를 제대로 풀지 못했는데 잘됐다.
거침없이 손을 뻗는 무인의 주먹이 상대의 어깨를 노린다.
제압을 위한 공격.
허나.
“어어?”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는 것은 하늘이었다.
대체 언제 넘어간 거지?
아니.
‘……넘어갔어.’
넘어가는 걸 못 본 게 아니다.
너무 빨라서 생각이 따라가지 못했을 뿐.
거기까지 생각이 따라오자, 이번엔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위험하다.
잘못 건드렸다.
등이 축축해지는 것 같은 느낌.
식은땀이 절로 흐르고.
“누, 누구시오?”
목소리는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등을 타고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을 참으며 무인은 상대를 바라봤고.
“응, 몰라도 돼.”
안면으로 떨어지는 주먹이 그의 의식을 끊었다.
* * *
“연락이 안 돼?”
아적대의 대주 아중은 부하의 보고에 미간을 찡그렸다.
“설마 소랑대 그놈들이?”
“그것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쪽에도 연락이 끊인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소랑대의 짓이 아니라는 소리에 아중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부하들에게 일을 맡기고 객잔에 자리 잡아 빈둥거리고 있긴 하지만, 아중은 결코 무능력한 인간이 아니었다.
소랑대의 짓이 아니라면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드디어 걸려들었군.”
히죽.
마약을 유통하고 있던 놈들이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
“바로 움직인다. 준비해.”
“예!”
바로 부대주에게 지시를 내린 아중은 내공을 돌려 술기운을 날렸다.
내공이 부족해 전부 날리진 못했지만, 술기운이 빠져나가며 머리가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술기운이 날아간 건 조금 아쉽지만, 일이 전부 끝나고 질펀하게 마시면 된다.
그땐 이런 객잔이 아니라 기루에서 여자들을 끼고 마셔야지.
히죽 웃으며 무기를 챙긴 아중이 객잔 1층으로 내려오자, 썩 반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두정.”
“아중.”
눈살을 찌푸리는 아중과 두정이 서로를 노려봤다.
이 마을에서 제일 좋은 객잔이 여기다.
자존심 때문에 서로 물러나지 않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이리 더러운 기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라.”
“흥, 헛수고를 하는 건 네놈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공적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대주들.
두 대주들의 신경전에 부하들만 마른침을 삼켰으나, 그중에서 생각이 있는 이도 있었다.
“그…… 대주 애들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음.”
갑작스레 연락이 끊겼으니, 적에게 당했을 수도 있다.
부대주의 말에 두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내는 이미 연락이 끊긴 부하들은 포기하고 있었다.
약을 유통하는 놈들인데, 걸렸다 하면 당연히 죽였을 터.
부대주는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물렁해서 문제다.
밑에 애들이 일을 조금만 거칠게 해도 가서 한소리 하니 애들의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지 않지 않은가.
덕분에 아적대에 뺏긴 공적이 꽤 있다.
물론 그걸 지금 탓해선 안 된다.
아적대 놈들한테 안 좋은 꼴을 보일 순 없지.
표정을 관리하며 두정은 거침없이 객잔을 나섰다.
일단은 공적이 먼저다.
사라진 녀석들의 흔적을 쫓으면 그 약을 한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거다.
“여, 안녕들 하신가?”
객잔을 나오자마자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껄렁한 사내의 모습에 두정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냐, 네놈은?”
두정과 거의 동시에 나온 아중의 입이 먼저 열렸다.
불같은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다.
“나? 가르쳐 주고 싶진 않은데.”
“네놈이냐? 이 마을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잡놈이?”
“어어? 그런 음해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유형인데?”
히죽 웃으며 설천위는 검을 검집째 풀어서 쥐었다.
“정신 교육 시간이다.”
“이…… 주제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화가 솟구친 아중이 도약했다.
거침없이 뛰어올라 떨어진다.
단숨에 설천위의 앞에 선 아중.
“어디 말대로 해 보거……!”
달려들었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아중의 몸이 튕겨 나간다.
단 일격.
그 검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던 두정이 놀라 마른침을 삼켰다.
“거, 아직 말 안 끝났는데 성격이 급하네.”
여유롭게 말하며 검집으로 탁탁 땅을 치곤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희들의 썩어 빠진 사고방식을 뜯어고쳐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