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294화-졸업식 (3)
혈교는 그 내부 구조가 거의 베일에 가려진 조직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음지에서 버텼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혈사자(血師資)라는 스승의 역할을 맡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교? 혈사자?’
창을 세운 채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 서하영은 한껏 가라앉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검을 휘감은 붉은 검기(劍氣).
자신들의 실력을 보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평정심.
거기다.
‘강해.’
자신의 제공권을 돌파해 오는 실력까지.
상대의 강함을 읽어 낸 서하영은 작게 호흡을 골랐다.
단 한 순간의 틈이 목숨을 앗아 가는 싸움.
서하영과 검수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날카로운 소음이 공기를 찢었다.
검기와 창기가 부딪히며 나는 강렬한 충격음.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충격에 몇몇 무공이 약한 자들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뇌리를 관통하는 듯한 두통!
일순간에 새겨진 강렬한 고통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바라볼 정도의 압도적인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일렁이는 검기를 두른 검과 창이 수십 개로 분열된 것처럼 늘어나 공간을 가득 메운다.
이게 정녕 말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의 공방.
시야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공방 속에서 이윽고 사람들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두 사람 다.
‘움직이지 않고 있어.’
마치 기 싸움이라도 하듯, 자신의 자리에서 일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무기를 나누는 공방이 끝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서로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두른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명백하게 유리할 것 같은데도.
‘자존심 싸움인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으나, 몇몇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기서 검을 들고 싸우고 계신 분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시간을 낭비하실 분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혈교인들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서하영을 상대하는 검수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단하군.’
창의 경로 하나하나가 이쪽의 움직임을 제약한다.
언뜻 보면 서로가 필사적으로 공격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서하영의 창은 외부를 공략해 억지로 사내의 움직임을 막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계산된 공격.
섣불리 움직이는 순간, 급소를 꿰뚫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격들로 가득 차 있으니 움직일 수 있을 리가.
거기다 외곽을 노리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내부의 허술함.
그 허술함을 서하영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기술로 보완하고 있었다.
외곽에 몰린 공격을 쳐내는 데 가장 좋은 것은 중단세다.
검을 몸의 중앙에 두고 실행하는 방어.
이유는 당연히 검이 몸의 중앙에 있을수록 어떤 방향으로 가든 외곽으로 가는 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검수도 중단세를 기본으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생기는 여유.
외곽만을 돌아다니는 서하영의 창 사이를 파고들 내부의 틈.
그 틈에 가까운 검을 찔러 넣어도.
서하영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막아 냈다.
창날은 물론 창대까지 써 가면서.
그야말로 완벽에 이른 방어.
창(槍)이란 무기로 이렇게 극에 이른 공방일체를 보여 주다니.
‘소문으로는 들었으나 정녕 괴물이군.’
창절(槍絶)이라고 불릴 만하다.
철백과 서하영, 두 사람의 너무 독특한 외견 덕에 단숨에 그들의 신분을 읽어 낸 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시험 대상으로 괜찮겠어.”
갑작스러운 상대의 혼잣말에 서하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흐읍!”
뒤에서 들려온 기합성에 서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창에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남들이 들으면 똑같은 기합성이겠지만…….
‘참고 있어.’
서하영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철백이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철백이 저렇게 참는 형태의 기합을 지르는, 거의 유일한 경우는…….
‘내가중수법의 달인이다!’
철백의 상대가 철백과 최악의 궁합을 가진 적이라는 증거.
즉시 상황을 파악한 서하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하다.
철백이 멀쩡한 상태에서도 곧바로 잡지 못하는 상대다.
내상을 입으면 입을수록 승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일단 상대를 바꾸는 것이…….
“허락해 줄 수 없군.”
순간 날카롭게 파고드는 검을 겨우 쳐 낸 서하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빛에 입술을 깨물었다.
“저 아이는 아직 교육이 더 필요하거든. 너와 같은 상대는 좋지 못하다.”
“……교육이라면, 당신은 혈사자(血師資)인가요?”
“호, 알고 있나? 하긴, 전에 하나가 너희의 손에 죽었다고 했던가.”
서하영의 말에 제7 혈사자가 완성될 예정의 혈귀를 회수하러 갔다가 죽은 사실을 떠올린 혈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 또한 천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종이지.”
“천신은 무슨, 피에 미친 악귀겠죠!”
“무지한 자들이 그리 떠들고 있으나 천신께서는 반드시 도래해 이 세상을 정화하실 것이다.”
일말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
담담하게 말하며 검수는 끊임없이 검을 움직였다.
절대 서하영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그나저나 너희들의 피와 혼은 저 아이에게 훌륭한 양분이 되겠구나.”
철백의 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적을 막던 서하영은 이제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 적의 공격을 막았다.
“음, 대답할 생각은 없나?”
말없이 어떻게든 자신을 뚫을 방법을 생각하는 서하영을 바라보며 혈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무지한 자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천신의 뜻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존재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의 피와 혼은 저 아이의 피와 살이 될 터이니.
핏빛으로 빛나는 혈사자의 두 눈에 서하영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삼켰다.
무언가가 있다.
‘……바꿔야 해.’
철백이 상대하지 못하는 적일지라도 자신은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강함의 종류가 다르니까.
철백은 강(强)이라면, 자신은 기(技).
상대보다 기술에서 자신이 앞선다면 자신은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반대로 철백은 내가중수법만 아니라면 대다수의 기(技)를 무시할 수 있는 강(强)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검 같은 병기에게는 상성에서 앞서고.
그러니 서로 상대를 바꾸기만 하면……!
순간 살짝 뒤로 뺀 발의 뒤꿈치가 철백의 발과 맞붙는다.
그야말로 찰나.
정말, 아주 잠깐의 시간이 맞닿은 것이지만.
“흡!!”
서하영은 강렬한 기세로 창을 휘둘렀다.
바람을 품은 창기(槍氣)가 단숨에 공기를 휘어잡아 혈사자의 자세를 뒤흔든다.
그에 따라 반사적으로 검을 올린 상대가 공격을 막고.
“허?”
그가 검을 내린 순간,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창을 든 여인이 아닌, 거대한 철벽과도 같은 사내였다.
대체 어찌 이리 빨리…….
자신이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뜻을 교환하고 움직인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협동에 혈사자가 감탄했으나, 상대는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흡!”
강렬한 기세로 뻗어 나오는 철백의 주먹.
분명 검을 쥔 자신의 거리가 훨씬 우세할 터인데.
‘……크군.’
주먹이 이쪽의 몸에 닿을 기세다.
긴 신장이 거리의 불리함마저 좁힌 것이다.
거기다 유연하게 늘어나는 팔다리가 탄력을 더하니 본래의 팔 길이보다 조금 더 뻗어 오는 느낌이다.
쾅!
검으로 흘려내며, 허리를 살짝 숙인 것으로 피해 낸 권격.
그 권격은 허공을 때렸음에도 폭약이 터진 것 같은 강렬한 소음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 권격에 일말의 내공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
정말 순수하게 육체의 힘만으로 만들어 낸 충격이라는 점이다.
‘이쪽도 괴물이군.’
철백의 무력도 예상했던 것보다 한 단계 위로 평가한 혈사자는 검을 움직였다.
그리고.
‘안 좋군.’
날카롭게 들어가 봤자 생채기 수준인 상대의 방어력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인간의 가죽과 살이 어찌 저리 단단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주변에 다른 교인들 없이 2대 2의 상황이었다면…….
‘위험했겠군.’
서하영의 뒤를 지킬 필요가 없는 철백이 저돌적으로 달려와 자신을 짓뭉갰을 거다.
상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도 위험할 정도니까.
그리 길게 버티지 못했겠지.
절로 감탄이 나왔으나, 그래도 현실은 현실.
지금 철백은 서하영의 뒤를 지키기 위해 발이 묶인 상황이다.
도주할 것을 대비해 다른 교인들이 이미 포위를 끝낸 상황.
승기는 완전히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섣불리 움직인 어린 고수들은 이리도 잡아먹기 쉽다.
그렇게 생각한 혈사자가 조금 더 압박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목과 눈.
둘 다 인간이라면 약할 수밖에 없는 부위다.
당연히 본능적으로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주도권을 쥔 지금 최대한 몰아붙여야 한다.
그리 생각한 혈사자의 검이 철백의 눈을 향해 파고들었다.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며 방어할 수밖에 없는 공격.
그리고 그 순간.
깡!
“……!!”
검이 튕겨 나오는 소리와 함께 혈사자는 아득하게 밀려오는 통증을 삼켰다.
붙잡힌 손.
이 미친놈이 눈을 찔러오는 검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밀어 검을 쥔 손을 붙잡은 것이다.
눈 바로 위에 있는 눈썹을 긁고 지나간 검.
그냥 검도 아니고, 검기(劍氣)를 두른 검이다.
정말 살짝만 빗나가도 눈이 실명되고, 까딱하다간 목숨도 잃을 수 있는 공격인데…….
이걸 그냥 몸으로 때우고 파고든다고?
인간이 그럴 수 있나?
도저히 믿기 힘든 철백의 대응에 혈사자가 당황한 그 순간.
뿌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혈사자는 현실을 깨달았다.
“이이……!”
아득한 고통.
생으로 손목이 뽑혀 나간 것이다.
심지어 철백은 손목을 뽑기 위해 두 손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악력으로 손목을 찌부러트린 뒤 과일을 따듯이 똑 떼어 간 것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치민다.
허나, 그것을 혈사자는 참아 냈다.
천신 도래를 위한 여정에서 이 정도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문제는 검을 쥐던 오른손이 뜯겨 나갔다는 점이다.
왼손으로 검을 쥐더라도 본래 수준의 절반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좌수로 검을 휘두르는 수련을 따로 하긴 한다지만,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짧은 고민.
그 고민 끝에 혈사자는 결국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을 벌어라!”
혈사자의 명령에 포위하던 이들이 일제히 철백과 서하영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하영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공격에 혈사자의 예상대로 철백은 혈사자를 마무리하려하지 않고 서하영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을 번 혈사자는 자신의 팔을 지혈하지도 않은 채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해(解)!”
부적.
무언가를 푸는 의식.
무인 출신의 혈사자는 혈사자가 되는 과정에서 술법을 익히게 된다.
교육에 필요한 세뇌와 매혹 등의 술법부터 해서 교의 주요 수단이 되는 술법까지 전부.
설령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지식을 머리에 때려 박는다.
그것이 혈교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되기에.
그렇기에 가끔 재능이 있는 혈사자들은 뛰어나게 술법을 다루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혈사자가 그랬다.
다른 혈사자들이 그저 혈귀를 회수하고 데리고 다니는 역할 정도에 그친다면.
이 혈사자는 혈귀를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
“먹어 치워라!!”
술사의 외침에 서하영을 향해 달려드는 교인들 사이에 껴 있던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히죽.
환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가장 근처에 있는 교인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살점을 찢고 피를 빨아들이는 아이.
그리고 그와 함께 서하영과 철백은 볼 수 있었다.
주위를 떠도는 원혼들이 저 아이를 향해 가고 있음을.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막아야……!’
강렬한 불안감을 느낀 서하영이 어떻게든 막기 위해 움직이려는 그 순간.
“꺄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가 서하영을 향해 방긋 웃었다.
그리고.
서걱!
강렬하게 터진 피와 함께 서하영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