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90화 (290/624)

제290화

289화-청란초 (1)

“……또 나간다고?”

“어.”

설천위의 장원.

그곳에서 설천위를 기다리던 친구들은 돌아온 설천위의 설명에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무슨 사람을 이렇게 굴리냐.

그리고.

“졸업식은?”

“못 갈 것 같은데?”

담담하게 대답하는 설천위.

그 대답에 서하영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래도 몇 년간 고생했는데 졸업식은…….”

진짜 계(癸)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졸업식에서 함께 마무리하는 것 정도는…….

아쉬움이 짙게 밴 서하영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맹주 놈.

“청란초(淸瀾草)라면 소청단(昭淸丹)의 재료군요.”

소청단(昭淸丹).

무림맹에서 만드는 단약(丹藥)의 일종으로, 단약(丹藥)이란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불로장생의 약을 뜻한다.

물론, 실제로 신선이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도가(道家) 계열의 도사들이 수련과 보신의 목적으로 만들던 약이 그 기원이다.

처음 도사들이 만들던 것이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게 된 약들을 통틀어 단약(丹藥)이라고 칭하게 된 것.

그리고 이 단약 중에서도 뛰어난 약효를 지닌 약들을 무림에선 이렇게 부른다.

영약(靈藥)이라고.

그 효과가 워낙 뛰어나고, 신묘한 약들.

대표적으로는 소림의 대환단, 무당의 태청단이 있다.

“소청단은 좋은 약이죠.”

물론 청란초를 재료로 하는 소청단은 그런 영약의 반열에 들어가는 약은 아니다.

영약에 쓰일 정도로 귀한 재료라면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구할 리가 없지.

‘나쁘지 않은 약이지.’

유예린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확인했다.

소청단은 게임에서도 꽤나 자주 먹었던 약이다.

내공 증진에는 큰 효과가 없지만, 내상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좋다.

내상 상태 이상의 시간을 크게 줄여 주는 좋은 약이었지.

“아무리 좋은 약이라지만, 그걸 굳이 설 공자한테 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요?”

여전히 아쉬움이 담긴 서하영의 목소리에 철백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단주급이 둘이나 나설 필요가 있나?”

철백마저 동의하며 말했다.

졸업식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설천위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으려는 그 순간.

“음, 그럼 나 혼자 가라고? 너무 냉정한데.”

“누님.”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온 남궁선이 히히 웃었다.

“청란초를 지키는 놈이 있어서 나 혼자 가면 시간이 너무 걸려.”

“지키는 놈이요?”

“어, 영물. 살벌한 녀석 하나가 있거든.”

“그럼 처리하고 캐 오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녀석이 죽으면 다음 청란초가 안 나.”

“아!”

남궁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서하영과 철백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럼 얘는 더더욱 데려가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설 공자는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뭐래.”

아까의 아쉬운 눈빛과 사뭇 다른, 걱정의 눈빛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영물까지 죽이겠냐?”

“음,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렇죠?”

즉답.

순서대로 뼈를 때리는 철백과 서하영의 모습에 설천위의 얼굴이 구겨졌고, 남궁선의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꺄하하! 내가 말릴 테니 너무 걱정은 마.”

“누님.”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설천위의 가늘어진 눈에 히죽 웃으며 설천위의 팔을 툭 친 남궁선은 그대로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졸업식이 언제라고?”

“들으셨나요?”

“응, 걸어오다 보니까.”

“진짜 너무하신다니까요.”

졸업식 얘기가 나오자, 다시 볼에 바람이 들어가기 시작한 서하영이 남궁선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졸업식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거리를 생각하면 졸업식은 무조건 참석 못 한다고.

“음음.”

서하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졸업식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 * *

졸업식에 늦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남궁선이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빠르게 가서 일 처리를 하고.

빠르게 돌아오면 된다.

물론, 보통의 무인들에겐 힘든 일이다.

아무리 빨라도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보통의 무인이 아니라면?

이 무림에서도 강자로 이름 높은 단주급의 무인이라면?

죽어라 달리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말을 실제로 들은 설천위는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달렸다.

진짜로.

“꽤 빠르네!”

“좀, 쉬었, 다가! 가, 시죠!”

“안 돼! 그럼 늦어!”

단호한 거절.

그리고 그 거절처럼 남궁선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다.

당연히 그 뒤를 따라가는 설천위는 죽을 맛이었다.

속도?

진짜 빡빡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따라갈 수는 있었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는 신법 중에서도 상급의 신법.

물론, 온전히 속도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은밀함도 품고 있었기에 속도만으로는 최고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상대는 남궁세가.

남궁세가의 신법은 속도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기에 당연히 속도에선 섬뢰풍영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겁나 빠르네.’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남궁선도 진짜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거겠지만.

신법의 차이가 있는데 속도가 호각이라는 것은 남궁선이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

“너, 진짜 느리구나. 신법은 훌륭해 보이는데.”

[암, 역시 무림맹의 단주는 보는 눈이 있구나.]

“나는 신법이 느린 편인데. 내가 익힌 신법은 속도에 치중한 게 아니라서.”

“……그, 래요?”

“응.”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의 수치로다! 놈! 또 자세가 흐트러졌다!]

암영의적 아저씨, 좀.

남궁선의 말에 옳다구나, 하고 호응하는 암영의적을 한 번 째려봐 준 설천위는 거칠어지는 호흡을 최대한 조절하며 발을 움직였다.

물론 자세가 흐트러졌다는 호통에 다시 자세를 수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남궁선이 빠른 게 아니고 내가 느린 거였어?

여태까지 느리단 생각은 거의 안 해 봤는데…….

[화경급의 수준에선 확실히 느린 것이 맞다.]

[익힌 신법을 생각하면, 상당히 느린 편이지.]

설천위의 생각을 읽은 천마와 현태중이 말을 보탰다.

[거기다 내공까지 부족하니 따라가기 벅찬 것이 당연하다.]

임독양맥이 뚫리지 않은 설천위는 내공의 운용에 벽이 하나 있는 셈이었다.

이건 평상시 기의 수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운기 시에 흡수할 수 있는 기의 양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궁선은 이미 수년 전에 화경에 오른 천재.

당연히 내공의 양은 설천위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남궁세가 출신이니 영약도 많이 먹었을 테고.

설천위가 호흡이 툭툭 끊길 정도로 힘들어하는 반면, 남궁선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솔직히 이 정도로 따라가고 있는 것도 훌륭하다고 말해 주고 싶지만…….’

임독양맥이 뚫렸냐 아니냐의 차이.

내공의 양과 운용의 효율 차이가 상당한 지금의 상황.

신법의 숙련도도 부족한 설천위가 남궁선을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강건한 하체.

진짜 미친 듯이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하체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내공의 차이를 신체의 단련 수준으로 극복하다니.

무인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흐읍!”

‘음.’

아무래도 조용히 하고 있는 게 낫겠군.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남궁선을 따라가기 위해 움직이는 설천위를 보며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괜히 설천위의 집중을 깰 필요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노린 건가?’

힐끔힐끔 설천위의 상태를 확인하며 달려가는 남궁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신법에 자신이 없을 남궁세가의 인물이 같은 단주급인 설천위에게 이런 식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한 것.

단순한 자신감인가 아니면…….

천마의 눈이 조금 경계의 빛을 띠기 시작할 때, 남궁선은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신법이 드문드문 흔들리는데, 어떻게 저렇게 금방금방 돌아오지?

흔들린 자세는 원래 잘 안 돌아오는 법인데?

설마 지금 달리는 와중에도 혼들이 붙어서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남궁선의 궁금증은 점점 더 커졌다.

* * *

“좋아, 여기서 쉬자.”

“허억, 허억.”

꼬박 15시간 정도를 달린 설천위는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누, 허억, 님.”

“응?”

“후욱, 여기.”

“어디쯤이냐고?”

“후……. 네.”

점차 돌아오기 시작하는 숨.

그 빠른 회복력에 감탄하며 남궁선은 대답했다.

“거의 다 왔는데?”

“……예?”

“거의 다 왔다고. 여기서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면 정오 전에 도착할걸?”

거의 다 왔다는 말에 설천위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꽤나 깊은 숲속이다.

사람의 흔적은 아예 느껴지지 않는 깊은 숲.

……경사도 꽤 됐네.

자신이 산을 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설천위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땅바닥에 앉았다.

“아구, 죽겠다…….”

“고생했어.”

“누님도요.”

“나야 뭐, 멀쩡하지.”

어깨를 으쓱인 남궁선은 대충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붙이곤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금세 회복한 설천위도 일어나 준비를 도왔고.

서로 챙겨 온 음식을 간단하게 해치우며 모닥불 앞에 앉은 두 사람.

멍하니 불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님, 어디 가십니까?”

“응, 멱 감으러.”

“아, 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불을 바라보는 설천위.

그 모습에 남궁선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흐응? 훔쳐보는 것 정도는 허락해 줄까?”

“제가 왜요?”

“……내가 유 동생보다 가슴은 더 클걸?”

“관심 없는데요?”

이런 고자 쉑히.

놀리는 맛이 없네.

너무나도 담담한 설천위의 반응에 김이 팍 새어 버린 남궁선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이동.

잠시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 하늘을 바라봤다.

‘……부동심 좋네.’

돌아가서 혼날 일은 없겠어.

잘 넘겼다. 설천위.

* * *

“이쯤인가?”

하룻밤 야영을 한 남궁선과 설천위는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움직였다.

혼들 덕에 불침번을 설 필요도 없어서 푹 잔 덕에 다시 쌩쌩해진 두 사람.

거침없이 숲을 통과해 계곡으로 들어간 남궁선은 능숙하게 바위 사이를 넘어 이동했다.

물로 미끄러운 바위들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넘어가는 뛰어난 신법.

“뭐 해?”

“……잠깐 생각 좀 했어요.”

“왜 또 미끄러질까 봐?”

“흠흠, 두 번 실수는 안 합니다.”

조금 전,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가 자빠지기 직전까지 갔던 설천위는 헛기침과 함께 발길을 옮겼다.

진짜 더럽게도 미끄러워서 균형 잡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여태까지 해 온 수련 덕에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나저나.

‘……묘한데.’

느낌이 묘하다.

강이 흐르는 계곡이라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묘하게 공기가 서늘하다.

마치 차가운 피를 가진 뱀을 몸에 두른 것처럼.

[천위!]

천마의 경고와 함께 설천위는 즉시 움직였다.

바위를 박차고 몸을 허공으로 날리는 것과 동시에 손을 뻗어 술법을 펼친다.

설천위와 거의 동시에 공중으로 떠올랐던 남궁선은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꼬리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컸다고?’

엄청난 크기.

최소 십 장(十丈:약 30m)은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이 요동치며 강의 흐름을 뒤바꾼다.

거기다 수면 밖으로 드러난 머리에 난 큼지막한 뿔.

뱀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그 뿔엔 짙은 기(氣)가 서려 있었다.

“청각사(淸角蛇)야!”

흑관을 쳐 낸 뿔이 맑은 물색으로 빛난다.

샤아아아아아!!

흉포한 외침.

입을 열고 독을 흩뿌리는 그 포효에 남궁선이 검을 뽑는 그 순간.

[크르르르르르르르르.]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흑룡이 청각사와 마주했다.

[크롸라라라라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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