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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89화 (289/624)

제289화

288화-선택 (4)

“생각보다 더 많군.”

설천위가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들을 고문, 아니 심문하는 사이.

창천대원 몇 명과 함께 투기장 내부를 뒤지던 남궁재영은 점점 더 깊어지는 이마의 골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투기장의 내부와 연결돼 있는 통로.

당연하게도 노예와 짐승들이 있는 우리로 이어졌다.

범죄자들의 제압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인명 구조.

그것을 위해 이곳에 왔는데…….

‘끔찍하군.’

보이는 모든 것이 역겨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삐쩍 말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연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소년들.

심지어, 범의 우리 맞은편에 있는 이들은 자신을 보며 연신 군침을 흘리는 범의 모습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끔찍하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역겹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나는 악취 때문이 아니라.

이런 끔찍한 광경을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역겹다.

사람이란 생물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샘솟는다.

공자와 맹자가 말한 선한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했다면.

어찌 이들은 시궁창에서 이리 떨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차오르는 분노를 작은 한숨으로 토해 낸 남궁재영은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분노는 분노, 일은 일이다.

자신이 감정에 휩쓸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피해를 보는 쪽은 이곳에 있는 가엾은 이들이다.

그러니 할 일을 해라.

“전부 구출하고, 치료부터 시작하도록.”

“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창천단.

그들 속에서 남궁재영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우리를 잠근 자물쇠를 검으로 베어 열고, 안에 있는 이들을 구출해 낸다.

구해 주기 위해 온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는 데도 공포에 떠는 이들.

그 눈동자는 마른 강바닥처럼 메말라 있었다.

절규도, 부탁도, 사죄도 통하지 않았던 폭력의 기억이 그들의 몸과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설 소협에게 맡기길 잘한 건가?’

무해 대사까지 곁에 있으니 그놈들이 제대로 된 죗값을 받기 전에 죽지만 말았으면 좋겠는데.

잡혀 있는 이들이 겁먹을까 봐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남궁재영은 하나둘 사람들을 챙겼다.

잡혀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조심스럽게 우리 밖으로 꺼내고 미리 준비해 놓은 곳까지 이동해 치료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지경.

거기다.

‘너무 많군.’

꿈틀거리며 탈출을 노리는 이의 뒤통수를 창천단원의 몽둥이가 후려친다.

그대로 기절하는 남자.

그 모습에 비슷하게 탈출을 꿈꾸던 이가 놀라서 고개를 숙였지만, 그것도 잠시.

워낙 많은 이들이 모여 있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기에 탈출을 꾀하는 이들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요한 놈들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애초에 전부 잡을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한 개 대(隊)로 오지는 않았을 거다.

제압의 가능 여부를 떠나 제압해도 이송할 수가 없으니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놈들만 확실하게 붙잡아 놓는 것이 최선…….

“내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던 남궁재영은 한쪽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사내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저 버러지 같은 놈이 지금 어디 뚫린 입이라고……!

“내 돈 내고! 내가 구경하겠다는데! 어차피 돈 못 갚아서 팔려 온 놈들이잖아!”

“맞아! 제 잘못으로 노예가 된 놈들을 우리가 좀 구경거리로 만들어 놀겠다는데, 그게 뭐가 그리 문제냐!”

“성실하게 안 산 저놈들의 잘못이지!”

누군가의 외침에 맞는 소리라며 하나둘 일어서는 이들.

들불처럼 번지는 그 외침에 창천단원조차 손길이 멈췄다.

너무 한꺼번에 일어나서 어디서부터 제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 것이다.

그런 창천단의 모습에 자신들의 말이 맞다는 확신을 얻은 이들은 더욱 거세게 항의했다.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진행된 투기장이지만! 투기장이 원래 그런 거잖아! 싸우는 놈들은 죽기도 하고!”

“맞아!”

“그래! 우리가 싸움 붙였어? 지들이 돈 없어서 싸우겠다고 나온 건데,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

거세게 항의하는 그들의 논리에 남궁재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처음 외친 놈이 나름 머리를 썼다.

딱 봐도 불법적인 곳이지만, 납치나 뭐 그런 거로 노예를 구한 건 몰랐다.

자신들은 그저 돈이 없어서 팔려 온 빚쟁이 놈들이 싸우는 개싸움이나 구경하러 온 것뿐이다.

그리 발뺌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한 속내에 남궁재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뻔하지만, 통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공을 모르는 일반 양민.

관아에 인도하면 저런 식으로 말해서 적당한 벌금 정도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았다.

관리도 제 뱃속이 차는 것을 더 좋아할 테니까.

게다가 만약 저 논리대로 저들을 풀어 주면 그 벌금조차 물지 않겠지.

문제는 풀어 줘야 할 수도 있다는 것.

저렇게 들고일어난 양민들을 하나씩 다 두들겨 패는 건 무림인이 취할 방법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데려갔다고 쳐도 관아에서 무림에 대한 반감으로 무죄 방면을 할 가능성도 컸고.

그들은 이 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니까.

너무나도 허접한, 하지만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궤변에 남궁재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초기 진압을 시도해서…….

“잘못? 잘못?”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

곳곳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려온다.

겁먹은 것이다.

원인은 하나.

“지금, 네놈들이 뭘 잘못했는지 듣고 싶다는 거지?”

축 늘어진 우두머리의 머리채를 쥐고 바닥에 끌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설천위다.

압도적인 기세.

절로 고개가 꺾이는 패도(覇道)의 기세.

그것이 죄지은 자들의 고개를 억누른다.

“이래서 참, 멍청한 놈들은.”

힘없이 늘어진 우두머리를 머리채만을 휘둘러 집어던진 설천위는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내에게 다가갔다.

“뭘 잘못했냐고?”

“그, 그…….”

덜덜 떨며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사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드는 그 순간.

‘……아?’

그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손발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가슴에선 이유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

눈앞의 놈은 정파의 무림인.

자신같이 무공을 안 익힌 사람을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공격할 리가 없다.

당당해지자.

“그, 그래! 내가 뭘 잘못했……!”

쫙!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고개가 돌아간다.

얼얼해진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난다.

거기다.

‘빠, 빠졌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딱딱한 무언가.

이가 빠진 것이다.

“아니, 잘못 안 했어.”

“그, 그게 무슨……!”

“네가 잘못 없다며?”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오!!”

“뺨 때렸지?”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 자식이 사람을 패 놓고 어찌 이리 뻔뻔하게……!

“사람을 패 놓고 지금 그리 뻔뻔하게……!”

“내 손으로 내가 휘둘렀는데, 뭔가 문제라도 있나? 너도 어차피 싸움 구경을 하러 온 인간이잖아?”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그러니까.”

쫙!

단숨에 반대쪽 뺨을 때린 설천위는 휙 돌아간 사내의 고개를 붙잡아 원상태로 돌린 뒤 두 눈을 마주했다.

“네 말대로 네가 죄가 없으니 나도 죄가 없지.”

“그, 그게……!”

“폭력도, 이런 불법 투기장에서 노는 것도 나라가 정한 법인데, 네 녀석은 그것과 상관없이 잘못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쯤 되자, 이곳에 모인 이들은 설천위가 뭘 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꿀꺽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투기장 밖에 있는 사창가, 너희들도 이용했겠지? 응. 안 했을 리가 없어.”

폭력과 내기로 뜨거워진 몸뚱이를 식히려면 뭐든 필요했을 테니까.

그것을 노리고 이곳의 놈들도 준비해 놓은 것이고.

“온몸에 멍 자국이 있는 여인들을 푼돈으로 안고, 절망에 빠진 어린것들이 범과 싸우며 죽어 나갈 때.”

사내의 고개가 또다시 돌아간다.

“그들이 얼마나 버티다가 죽을지 내기를 하던 놈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그리고.

“지금.”

쫙!

“죄가.”

쫙!

“없다고.”

쫙!

“말하고.”

쫙!

“싶은 거지?”

연신 돌아가는 사내의 고개.

너무 거칠게 돌아가서 저러다가 목이 부러져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나, 사내는 아직 죽지 않은 듯 낮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런 사내의 턱을 다시 붙잡아 눈을 마주친 설천위는 물었다.

“여기 투기장에 잡혀 와서 네놈들의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이 잘못했다, 이거잖아?”

“그, 그렇게는…….”

이가 몇 개나 부러졌는지 발음이 새는 사내의 대답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허나, 설천위는 담담하게 그런 사내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거야. 너는 투기장이 있어서 놀았을 뿐이고, 죄는 투기장에 끌려와 범의 먹이가 된 사람들이 지었다는 거 아니야.”

차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어째서 북해의 빙하보다도 더 시리게 느껴질까.

“나는 모든 죄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담담하게 말하며 모두를 둘러본 설천위는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요와 눈을 마주쳤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그 피해에 대해 죄를 짓지 않았기에 피해자인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본 설천위는 그런 사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너는 네 죄는 없고, 피해자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나, 나는!”

“그러니까 네 기준으로 내 폭력도 죄가 없지. 처맞는 네 잘못일 뿐.”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설천위의 손이 연신 움직였다.

모든 이가 다 빠진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방으로 날아가는 치아.

그 치아에 맞은 이들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내 축 늘어진 사내를 손에서 놓으며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일어서 있던 이들이 이미 전부 앉아 있는 상황.

“아직도 자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나?”

“아, 아니오!”

“아, 아암! 우리가 잘못했지!”

“우, 우리가! 우리가! 버, 벌 받아 마땅한 놈들이오! 우리가!”

한껏 겁을 먹은 이들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설천위.

[크르르르르르.]

그의 몸을 타고 올라온 흑룡이 아쉽다는 듯 울음소리를 토해 낸다.

마치 먹이를 놓친 것처럼.

히끅.

다시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딸꾹질 소리.

투기장 안에서 일렁이는 공포만이 사람들 사이를 휩쓸었다.

* * *

무림은 소문이 빠르다.

하물며 잡혀 들어간 이들의 태반이 일반 양민이라면, 적당히 곤장만 맞고 빠져나온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 전부를 가둬서 죄를 물을 순 없었으니까.

그건 비효율적인 데다 불법 투기장에서 논 죄를 관리들은 그렇게까지 크게 여기지 않는다.

당연히 소문은 웬만한 말보다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독한 녀석.”

“어찌 정파의 별이라는 사람이……. 쯧쯧.”

당연히 설천위가 행한 행동 또한 소문을 타고 무성하게 퍼져 나갔다.

사람이 소문을 퍼트릴 땐 자신의 죄는 덮고 타인의 흠은 더욱 부풀리는 법.

설천위의 행동은 무인의 잔혹한 폭력 행위가 되어 무림으로 뻗어 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하네요.”

“할 짓 없는 녀석들 많네.”

설천위는 그런 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은 납득했으니까.

만약 같은 상황에서 또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다면 똑같이 할 거다.

그렇기에.

“맹주님이 보자고 하셔요.”

“……응.”

흔들리지 않는다.

암.

흔들리지 않고말고.

맹주가 무슨 소리를 할지 짐작이 가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지.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 유예린과 오랜만에 식당에 들어와 식사를 하던 설천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한 소리 들을 건 각오했으니까.

좀 과하긴 했지.

이를 다 날려 버렸는데.

미안하냐 하면 뭐, 미안하진 않은데 벌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아쉬운 건 벌 받으면 그 잡놈의 심문에 끼지 못한다는 것 정도?

남궁선 누님한테 어떻게 잘 부탁해서 끼어 볼 생각이었는데…….

아쉬움을 삼킨 설천위는 유예린과 함께한 만족스러운 식사 자리를 뒤로하고 맹주실로 향했다.

“저 왔습니다.”

“들어오게.”

웃으며 방으로 들이는 맹주.

안에 들어가니, 맹주가 잔잔한 미소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덤으로.

“……누, 창천단주님?”

“……안녕.”

“음, 다 모였군.”

뻘쭘하게 인사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맹주는 흐뭇하게 웃었다.

“자네들의 죄는 자네들이 알겠지?”

“……네.”

“……네.”

깔끔한 대답에 흡족하게 웃은 맹주는 서신을 하나 내밀었다.

“자, 가서 하게.”

“……이건?”

“뭐긴, 단주급에 걸맞은 벌일세.”

“근신이 아니라요?”

“자네들 같은 고급 인력을 근신으로 놀려서야 쓰겠나? 마침 의약당에서 사정사정하던 내용이니 가서 해결하게.”

의약당에서?

뭔가 묘한 느낌에 고개를 숙여 남궁선이 쥔 서한을 확인한 설천위의 얼굴은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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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란초(淸瀾草)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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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임무 내용.

문제는.

‘……미친? 이거, 그놈들이 지키고 있는 거잖아?’

그걸 지키고 있는 놈이다.

천천히 고개를 든 설천위와 두 눈이 마주친 맹주는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선택권은 없네.”

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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