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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88화 (288/624)

제288화

287화-선택 (3)

납득할 수 있다면, 피는 씻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무해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물리적인 세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짐.

죄책감 말이다.

무해가 불살을 지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이를 주위에 권하는 것은 위의 이유가 가장 컸다.

사람은 사람을 죽이다 보면 결국 망가진다.

아니, 망가진다기보다는 무뎌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거다.

인간의 죽음에 무뎌지는 것.

그것이 거듭된 살인이 퍼트리는 최악의 독이다.

그 이유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

독은 서서히 사람의 마음을 좀먹고 이내 도달한다.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는 영역에.

그것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정당화는 자신의 죄를 무의식중에라도 인정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아무리 그 순간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행한 살인일지라도 사람의 무의식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베고 뭉갠 손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죽인 인간의 두 눈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미타불……. 그 길은 수라도입니다. 시주.’

고작 납득했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사라질 리가 없었다.

사라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뭐냐!”

“이, 이게 뭐야!!”

고통 속에서 죽은 원혼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관중석에 있던 이들은 크게 놀라 공포에 떨었다.

놀라 나자빠져서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인간.

뒷걸음질치는 인간.

부처를 찾는 인간.

세는 것조차 힘들 만큼 많은 인간들이 겁에 질렸다.

자신들의 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허나, 이런 이들의 피조차 쉽사리 씻어 낼 수 없다.

선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무해는 말리고 싶었다.

납득했다고 말하며 도를 뽑은 저 청년을.

허나, 말릴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었기에.

이 지옥과도 같은 공간에서 원한만을 품고 구천을 떠도는 혼들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한 순간.

본인 또한 깊은 살심을 느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아미타불…….”

무해는 그저 불호를 외며 움직였다.

자신에게 설천위의 살행(殺行)을 막을 자격은 없으나.

하나라도 더 제압하는 것으로 그의 살업(殺業)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고.

조금이라도 그의 어깨가 가벼워지길.

그리 바라며 무해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 * *

‘……강해.’

무요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원혼들이 비명을 지르는 투기장.

그 속에서 이를 악물고 평정심을 유지한 창천단의 무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통로를 막고, 도망치는 이들을 제지한다.

거기다 추후 진행할 심문을 위해 최대한 적들을 제압하기까지.

물론, 급한 경우엔 살수를 쓰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하게 일 처리를 했다.

다만, 무요가 감탄한 것은 창천단과 무해의 빠르고 깔끔한 일 처리가 아니었다.

설천위.

너무나도 무식, 아니 당당하게 투기장의 중앙까지 들어선 자신의 주인.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딱히 부를 말도 없기에 그리 칭하고 있다.

입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여하튼, 그 주인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정문을 뚫고 들어가 투기장 한가운데서 사람을 구했다.

사람을 찢어발기려는 범의 목을 단숨에 치고, 수많은 원혼들을 불러냈다.

불러낸 것인지 원래 있던 이들을 드러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주인이 불러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겁먹은 이들이 그런 주인에게서 멀어졌지만.

정작 주인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제, 제발!”

잘린 팔을 움켜쥐고 고개를 박는 상대를 향해 걸어갈 뿐.

압도적인 격의 차이.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항복.

피로 흥건해진 모습으로 피에 젖은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주 비굴했다.

물론.

뿌득

“끄아아악!”

자신의 주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 머리를 짓밟았지만.

어찌나 강하게 밟았는지 뼈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박살 나진 않았더라도 최소한 금은 갔을 것 같은 소리.

상대의 안면을 흙 속에 처박으며 설천위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컥!”

“이, 이게 무슨!”

담을 넘어 밖으로 도주하려던 이들이 검은 벽에 가로막혀 튕겨 나간다.

가장 먼저 도주를 시도했던 규막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해에 이를 악물었다.

전신에서 엄습하는 통증.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 진짜 흑룡성이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망쳐야 한다……!’

흑룡성(黑龍星).

그 별호가 퍼지기 시작한 시작점은 당연히 무림학관의 행사.

흑룡학관과의 친선전.

무림학관에서 개최한 승급전.

이 큼지막한 두 가지 일로 무림에서 흑룡성의 이름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흑룡학관의 학생이 아닌 무림학관의 학생이 ‘흑룡’이라는 별호를 지니게 된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만.

실제로 흑룡을 다룬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황제의 상징인 황룡(黃龍).

비와 강을 다스린다고 하는 청룡(靑龍).

화산을 다스린다고 하는 적룡(赤龍).

천제의 사자로 여겨지는 백룡(白龍).

등등.

용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들 전부가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영물이다.

아니, 영물이라 불러도 되는 수준이 아니다.

도교에선 몇몇 용들을 신으로 숭상하기까지 하니까.

그런 존재를 부리는 술사라고 하면, 황실에서도 탐을 낼 괴물이다.

황실의 핏줄이 용을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증명된 건 아니니까.

물론, 흑룡성이 흑룡을 다룬다는 것도 소문이긴 하지만 그 소문의 출처가 워낙 많았어야지.

진짜로 흑룡을 다스리는 건 아니겠지만, 얼추 비슷하게 기운을 움직일 수 있다는 소리다.

내공을 뿜어내 흑룡처럼 보이게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강함의 증거다.

즉.

‘괴물!’

이 무림에서도 흔치 않은 괴물이라는 소리다.

거기다 무림학관의 갑(甲)?

괴물이라는 실로 확고한 증거다.

그런데 이름에 ‘흑룡(黑龍)’이 떡하니 들어간다.

도망쳐야 한다.

반드시.

왜냐고?

흑룡(黑龍)은 재앙의 상징.

그런 이름을 별호로 달고 다니는 놈이 제정신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떻게든 도망…….

“끄윽?!”

순간 팔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통증에 규막은 이를 악물었다.

시선을 떨구니 팔을 관통한 검은 무언가가 보인다.

마치 말뚝처럼 팔을 꿰뚫은 무언가.

“끄으으으읍!”

이를 악물고 손을 들었다.

팔을 관통한 검은 말뚝으로 인해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지옥을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것이…….

“꽤 근성 있군.”

순간 바로 머리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이를 악물고 들어 올리던 팔에 그만 힘이 쭉 빠진다.

생각 이전에 몸이 포기해 버린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인다.

[크르르르르르르.]

자신을 내려보는 인간의 것이 아닌 홍채가.

낮게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리.

“사, 살…….”

“근성과 달리 머리는 멍청하군.”

규막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는 도를 꺼냈다.

“살려 달라가 아니라.”

거의 흑관을 벗어난 팔을 천천히 꿰뚫으며 설천위는 말했다.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부탁해도 편히 죽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말이야.

* * *

“……대단합니다.”

산채 내부를 전부 정리하는 데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더욱 대단한 점은 투기장에 모인 이들 중 단 한 명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것.

“저희뿐이었다면, 아마 절반 이상은 놓쳤을 것입니다.”

제압한 이들을 묶어 투기장 가운데로 모으며 창천단 3번 대 대주, 남궁재영은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자신들끼리만 왔다면 이들의 머리를 잡는 게 고작이었을 거다.

아니, 같이 오면서도 이곳에 있는 이들 전부를 잡는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전부 통제해서 사로잡는다는 것은 본래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라니…….

‘무섭군.’

솔직히 말해서 존경심보다는 공포심이 더 빠르게 찾아왔다.

물론 금세 털어 냈지만.

“아미타불…….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무해 대사께서 힘써 주신 덕에 저희도 별 피해 없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다가온 무해의 칭찬에 남궁재영은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었으니까.

무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반항하는 이들을 제압해 주지 않았다면 자신들도 큰 피해를 입었을 거다.

여기에 모인 이들 중에는 제법 쓸 만한 실력을 지닌 이들도 포함돼 있었으니까.

신입들이 그런 이들에게 당했다면 백이면 백, 크게 다쳤을 거다.

잘못하면 죽었을 수도 있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소저도 고생하셨습니다.”

“…….”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무요의 모습에 남궁재영은 말없이 돌아섰다.

상대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전에 들었으니 괜히 더 말을 붙이는 건 실례였다.

무엇보다 자신도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고.

몸을 돌린 남궁재영은 바쁘게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붙잡은 포로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 무요는 얌전히 서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붉다.

설천위에게 감탄한 것은 감탄한 것이고, 해야 할 일을 위해 움직인 탓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묻은 피.

여인이고,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을 지녔기에 구멍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인지 달려드는 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사실, 지금도 날뛰던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흥분인가.

아니면…….

“긴장이 풀렸네.”

“…….”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선 설천위를 발견한 무요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전투 중간중간에 적들이 마치 실에 걸린 것처럼 움직임이 어색해졌었으니.

아마 설천위가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을 도와준 것일 터.

눈치 빠른 무요의 눈빛에 설천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됐어.”

“…….”

“왜 도와줬냐고?”

“…….”

“동료가 위험하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게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야?”

왜 그런 걸 신경 쓰냐.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설천위의 모습에 무요는 평소에도 닫고 있던 입을 조금 더 굳게 닫았다.

조금 전까지 강한 이들만 골라서 고문하듯 죽이던 설천위라고는 믿기 힘든 가벼운 분위기.

역시 이 사람은 강한…….

“아, 대주님.”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에이, 아직 정식으로 임관한 것도 아닌데요. 그나저나 저기 저놈들 아직 안 죽었거든요?”

“예?”

“?”

안 죽었다고?

창천단과 무해, 무요가 입구를 막고 모두를 잡아들이는 사이, 설천위는 노골적으로 실력이 있어 보이는 이들을 잡았다.

잡아다가 칼로 베고 찌르고.

그런데 안 죽었다고?

[의술이란 위대한 법이지.]

[……자네가 쌓은 의술은 이런 데 쓰라고 쌓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 상관없소.]

아니, 사람을 죽이는 일이잖아.

……아닌가?

결과적으로 살리는 일인가?

천마의 말에 뻔뻔하게 대답하는 신의.

그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은 암영의적은 정확하게 목숨줄만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는 시체, 아니 포로들을 바라봤다.

저놈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잘 캐내면 사람 목숨을 구할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절묘하게 급소와 출혈이 심한 곳을 피해 베고 찌른 덕에 다들 목숨은 붙어 있었다.

아마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정신을 차릴 거다.

설천위가 손목을 자르고 머리를 짓밟아 버린 놈은 비록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시주……!”

그러니 저렇게 감격 어린 시선으로 볼 만한 일인가 싶다만.

불자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염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놈들이 아무리 인간 취급도 못 할 쓰레기들이라고 하지만…….

뭔가 설천위의 곁에서 생각하다 보니 사고의 기준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암영의적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산 놈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자신은 옆에서 적당한 도움이나 주면 된다.

“일어나라.”

[이럴 땐 물을 뿌리는 게 가장 좋다. 물에 담가도 되고.]

“음.”

자신의 조언에 따라 충실하게 물을 받아 와 한 놈의 얼굴을 거기에 박는 설천위를 보면서 암영의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조언으로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면 되는 법!

자신은 의적이니까!

뭐, 도둑질이나 나쁜 놈들 족치는 거나 비슷한 거 아니겠어?

[쯧쯧, 또 이상한 생각이나 하는군.]

암영의적이 뿌듯한 얼굴로 설천위를 바라보자, 천마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는 생각이 너무 엉뚱해.

그래서 도둑질이나 하고 살았던 거겠지만.

“푸하!”

천마가 혀를 차는 사이, 설천위가 들어 올린 얼굴이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호흡이 막혀 겨우 의식을 차린 거다.

물론 물을 상당히 많이 먹어서 격하게 기침을 시작했지만.

“자, 선택의 시간이다.”

그딴 건 배려할 생각이 없다는 듯 다시 머리를 물에 처박았다가 꺼낸 설천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곁으로 원혼들이 스쳐 지나간다.

당연히, 아직 해제되지 않은 영역(靈域)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규막은 절로 딸꾹질이 나왔다.

“알고 있는 거 다 불고 조금 편히 죽을 테냐? 아니면 고통 끝에 죽어서 혼이 되어도 영원히 고통 받으며 아는 걸 불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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