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84화 (284/624)

제284화

283화-단주패 (2)

……대체 왜.

“왔는가?”

오자마자 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봐야 하는 거지.

무림맹주실.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안내받은 설천위는 최대한 떨떠름한 감정을 감추며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허허, 그리 딱딱하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네. 자, 앉지.”

맹주의 권유에 자리에 앉은 설천위는 가만히 기다렸다.

무해와 함께 도착해 포로를 인도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리로 불려 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뭐, 딱히 문제 될 일은 없겠지.

“먼저, 참 큰일을 해 줬네.”

“큰일이라면…….”

“자네가 적발한 일당들. 사실 몇 년 전부터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네. 정확히는 그들이 일으킨 실종 사건이 문제였지.”

무림맹으로 향한 자식, 제자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바빠서 서신을 보낼 시간도 없나 보다.

그렇게 이해하고 참고 넘어가는 것도 몇 달 정도.

결국 서신을 보내서 찾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무림맹으로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

실종.

무림맹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제자나 자식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접한 이들은 무림맹을 비난했지만.

“실종자들의 가족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네.”

씁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맹주는 찻잔을 들었다.

“맹으로 올 수 있는 길이 어디 한두 개던가? 수개월이나 지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수소문할 수 있으나, 어디 외딴곳에서 사라진 것처럼 소식이 딱 끊겼다.

수색은 계속했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의심 가는 곳이 몇 군데나 있었으나, 확증이 없어 마구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고맙네. 자네가 이번에 아주 큰일을 해 줬어.”

“……그냥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더 칭찬받아 마땅하네. 이 세상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을 어기고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도 많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많은 이들이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소리다.

그것만 아니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데.

그것만 아니면 더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데.

스스로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그것들을 무시하는 이들이 나온다는 소리다.

하물며 그것이 법이 아닌 도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면.

강제성이 없기에 더더욱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 범죄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단죄할 의무가 없는 설천위가 구태여 그들을 잡아내고, 조치를 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 참았네.”

“예?”

“그들을 살려 둔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네. 아주 가느다란 선이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심지어.

‘……낙인인가.’

설천위의 서신을 받고 즉시 출발한 창천단은 최대한 빨리 정보를 모아 전서구로 날려 보냈다.

그 전서구가 도착한 것이 설천위가 오기 하루 전.

설천위와 무해가 연루되어 있고, 실종자가 상당히 많았기에 당연히 맹주에게도 즉시 보고가 올라왔다.

설천위가 새겨 놓았다는 낙인으로 술술 입을 여는 이들 덕에 하루 만에 거의 모든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설천위가 어떤 흐름을 거쳐 일을 마무리 지었는지도 알게 됐다.

“젊은 혈기를 억누르고, 좀 더 나중을 생각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네.”

그렇기에 칭찬할 만하다.

역시, 그냥 단주로 두기엔 아까운 인재…….

“억누른 건 맞지만, 나중을 생각한 건 아닙니다.”

당당하기 그지없는 대답.

흔히 듣는 ‘예.’가 아닌, 자신의 칭찬을 부정하는 대답.

그 대답에 맹주는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단지, 그 순간에 죽음만으로 그들의 삶을 끝내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부족하다.

그 대답에 맹주는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무해의 불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잔인하군.’

그 방식이 잔인하다.

흉악한 범죄자를 보면 많은 이들이 천 갈래로 찢어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니,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능한 이조차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단순히 죽이는 것을 넘어서서 고문 끝에 죽인다는 것은 아주 높은 정신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렇기에 고문하는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리고 고문하는 이의 9할 이상이.

정신이 망가진다.

그것이 그들의 유형이다.

정신적으로 망가져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거나, 잔인함을 즐기게 되는 등.

일반적인 관념에서 벗어난 형태로 정신 상태가 변질된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게 1할 정도의 사람은 그 변질에 휩쓸리지 않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문을 실행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건 고문을 위해 필요한 높은 정신적 장벽보다도 더 큰 정신을 가진 이들의 특징.

‘……과연.’

한 점 흔들림도 없는 설천위의 두 눈을 마주한 맹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네.”

“예.”

망설임 없는 대답.

그 대답에 잠시 설천위를 바라보던 맹주는 품에서 패를 하나 꺼냈다.

“자네가 졸업한 뒤에나 줄 생각이었다만, 미리 주겠네.”

“……이건?”

단주(團主)라는 글자가 새겨진 은은한 은빛의 패.

“각 단의 단주들에게 주어지는 단주패일세.”

“……감사합니다.”

“단, 그 뒤에 어떤 단인지는 새겨져 있지 않네.”

맹주의 말대로 패를 돌려 보니 뒤에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매끈한 면이 보였다.

“단주의 첫 번째 업무일세. 단의 이름을 정하고 직접 그 뒤에 그 이름과 자네의 이름을 새기게.”

* * *

“……그래서 오자마자 불려 가서 그걸 받아 왔다고요?”

“응.”

무림맹 정문.

유예린과 만난 설천위는 장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으며 손에 쥔 패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거, 재질이 좀 독특한 것 같은데.”

“운철(隕鐵)이에요. 그것도 강도가 아주 강하기로 유명한 백운(白隕).”

“……이게?”

같은 무게의 금보다 최소 열 배는 더 비싸다는?

“참고로 단명이 적히지 않은 패는 쓸 수 없어요.”

“응?”

“단으로서 예산을 편성 받거나, 임무를 받기 위해선 그 패가 반드시 필요하고요.”

“……진짜?”

그럼…….

“예산을 받거나 임무를 편성할 때 단주가 직접 가야 해?”

“후후, 그게 걱정이에요?”

“귀찮을 것 같은데…….”

“그럴 필요는 없네요. 보통 위임받은 부단주가 가니까. 단주는 실질적으로 결재만 하면 돼요.”

“아하.”

그럼 다행이고.

[이놈, 다행이라는 표정이구나?]

[백운이 무슨 철인지도 모르니 저리 태평한 것이겠지.]

“아무래도 그래 보이네요.”

혀를 차는 천마와 현태중.

그리고 공감하듯 작게 웃는 유예린.

그 모습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단주패니까 최소 강기(罡氣)가 아니면 흠집도 제대로 안 나는 물건이란 소리죠?”

[아는 놈이 그리 태평한 것이냐?]

[졸업까지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곤 해도 네 실력으로 거기에 올바른 글자를 새기는 건…….]

무리이지 않나?

차마 이어지지 않는 암영의적의 말에 설천위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암영의적을 바라봤다.

“선배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어허, 나는 무릇 세상 모든 재화의 정보를 아는 대도(大盜)! 당연히 단주패에 대한 정보도…….]

[훔칠 생각이었단 말인가?]

[……흠흠, 훔치면 꽤나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네, 그 동굴이 아니라 무림맹 지하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제가 잡혔겠습니까?]

훔쳤을 거라는 건 부정 안 하는구나.

이 도둑놈.

뻔뻔하게 웃는 암영의적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다시 패를 바라봤다.

뭐, 게임에서도 자주 본 이벤트다.

물론 거기에서는 그냥 한 10초면 끝나는 이벤트였지만.

막말로 단주급이 되려면 화경이 뭐야, 거의 현경쯤에나 단장이 될 수 있었다.

박힌 돌 빼내기가 영 쉽지 않았단 말이지.

경험치를 쌓는데도 단주보다는 적당한 계급이 더 좋고.

실무에 더 많이 뛰어들 수 있으니까.

뭐 게임에서처럼 쉽진 않아도 충분히 할 순 있겠지.

졸업까지 시간이 아직 남았고.

정식 취임까지 충분히 가능할 거다.

[음,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마디 충고를 해 줘야겠구나.]

“네?”

[단주패의 뒤에 새겨지는 글자는 실력의 증명이다.]

……실력의 증명?

현태중의 말에 설천위는 가만히 패를 바라봤다.

이런 거로?

[실력 있는 무인들은 눈썰미도 가지고 있지.]

[네가 글자를 새기는 방식과 글씨를 보고 네 실력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소리다.]

[한 번에 써 내렸는지, 힘겹게 한 획, 한 획 그어 낸 것인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쓴 것인지 등등.]

[단순한 강기(罡氣)로 쓴 것인지, 화강(化罡)을 사용한 것인지도 알아낼 수 있느니라.]

“단주패의 글씨는 모든 단주들이 보게 되니 알력 다툼에도 영향이 있겠죠?”

후후 웃으며 말하는 유예린.

그 모습에 멍하니 뒤를 따라가던 설천위는 가만히 손안에 쥔 패를 바라봤다.

‘……조졌나?’

아직 [소령연화(燒靈燃枠)]의 문제를 해결 못 했는데?

천천히 한 획씩 넣을 생각이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완전 개무시 당하겠는데?

* * *

“허허, 그 아이가 벌써 단주란 말이지.”

“…….”

“설 부단주, 말이 없구먼?”

“그 아이, 아니 설천위 예비 단주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에이, 동생에게 딱딱하게 예비 단주가 뭔가?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초생단(草生團) 단주(團主) 구목은 허허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거친 삶을 살아온 탓에 상당히 파괴적인 외형을 하고 있는 반면에 차 마시는 모습은 조신하기 그지없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설란은 얌전히 찻잔을 들었다.

“……가족이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에이, 자네가 인맥으로 꽂아 준 것도 아니고 제 실력으로 들어온 것인데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있는가?”

허허 웃으며 손을 휘젓는 구목.

그 모습에 설란은 작게 숨을 삼켰다.

눈앞의 단주는 겉으로는 곰처럼 보여도 속에는 여우가 들어앉은 뛰어난 지장(智將)이다.

심지어 상대가 자신을 곰이라고 생각해 무시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본질이 선한 사람이어서 그렇지, 만일 흉계를 품는다면 맹주만큼이나 위험하고 까다로웠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맹 내에 있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저리 말하는 것일 리 없다.

그저.

‘……궁금하신가 보군.’

자신의 동생이 너무 궁금해 자신을 통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직설적으로 묻지 않는 건 자신이 동생을 자주 찾아가지 않으니 혹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을까 염려해서일 테고.

물론, 자신의 추측이 틀린 것일 수도 있지만…….

“축하 인사를 할 겸 찾아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평소에 배운 것도, 받은 것도 많으니 소개해 드리는 것 정도는 좋겠지.

“오? 그래도 되나? 가족의 만남을 방해하는 거 아닌가?”

“괜찮습니다. 친구들도 함께 있다고 하니 단주님께서 같이 가시면 좋아할 겁니다.”

“음……. 이거 늙은이가 괜히 찾아가서 분위기를 망치는 거 아니야?”

아.

이건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네.

정말로 동생과 친구들이 싫어할까 걱정하는 구목의 모습에 설란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착한 아이들이고, 또 무림맹의 단주는 무림인이라면 꼭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 반드시 반길 것입니다.”

“그런가?”

살짝 웃는 구목.

그 안도가 섞인 미소에 설란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괜히 시간만 끌면 단주의 걱정만 촛불처럼 흔들릴 테니.

“출발하시지요.”

“그럴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구목.

그렇게 유예린과 함께 몇 번 들렀던 설천위의 장원으로 단주와 같이 향하는 설란.

무림맹 근처이기에 그리 멀지 않아서 장원에 도착했고, 평소 얼굴을 아는 하인이 문을 열어 줬다.

그리고.

오싹.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한 감각.

전장에서 단 한 자루의 칼과 마주한 것만 같은 감각.

천천히 고개를 돌린 설란은 오랜만에 보는 딱딱하게 굳은 단주의 얼굴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단주의 기세가 전투태세로 바뀐 원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아니, 장원의 문을 두드린 순간부터.

[크르르르르르르르.]

강렬한 용의 울음소리가 장원에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설란의 시선 끝.

통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단주패.

그리고 그런 단주패를 바라보며 검을 겨누고 있는 설천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위압의 기세.

설천위의 몸을 휘감은 검은 용이 그 전신을 휘감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키이이이이잉!!

큰 소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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