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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82화 (282/624)

제282화

281화-절망과 절망 (5)

절망이란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다가 갑자기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고.

가장이 잠시 밖에 나가 있는 동안, 강도에게 일가가 몰살당할 수도 있으며.

평범하게 걸어가다가 실수로 발을 잘못 디뎌 좋지 못한 곳에 머리를 찧어서 죽을 수도 있다.

절망이란 이리도 개연성이 없는 것이다.

전조가 있다든가.

미리 예정된 일이라든가.

그런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갑작스레 찾아와 갑작스레 인간을 좀먹는다.

그게.

절망이다.

“끄아아아악!”

잘려 나간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가는 이를 보면서 설천위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 순간, 생겨난 흑관이 기어가는 이의 손에 박힌다.

여태까지 시도도 하지 않았던 송곳 모양의 흑관.

이제 이것을 흑관이라 불러도 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지만, 여하튼 말뚝과 같은 아랫부분을 만들어 낸 흑관은 혼이 아닌 육체를 꿰뚫었다.

손이 관통당한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내.

“아미타불…….”

생지옥을 눈앞에 둔 것 같은 비명과 혈향에 무해는 불호와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염주를 손에 쥐고 그 알을 세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 참혹한 광경이 너무나도 보기 힘들어서?

아니다.

이 참혹한 광경이 너무나 타당해 보이기에 그런 마음을 품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이렇듯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눈앞의 이들이 범한 죄악에 이와 같은 결말이 어울릴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저기 저 어린 청년이어선 안 된다.

이것은 한 사람의 죄로 끝날 것을 두 사람의 죄로 이어지는 죄의 연쇄다.

말려야 한다.

검은 벽으로 사람을 가두고, 악을 쓰는 이들을 하나씩 붙잡아 발목을 자르고, 그 손목을 뭉개고 있는 저 청년을.

저 분노를.

저 슬픔을.

“아미타불……! 설 시주……!”

가라앉혀야 한다.

“시주,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정신을 바로잡고 침착하게 심호흡을…….”

“스님.”

무해의 말을 끊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설천위.

그는 지금의 잔혹한 행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심한 눈동자로 무해를 바라봤다.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참지 않는 것입니다.”

“시주! 그건 착각입니다! 시주께서는 분명……!”

무해의 말에 설천위는 담담하게 손을 거뒀다.

이들을 가둔 검은 결계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사람을 꿰뚫던 흑관은 사라졌다.

천천히 걸어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잡은 설천위는 그대로 무해의 곁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님, 제 정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공포에 떠는 이들을 보며 담담히 입을 연다.

“분노는 가라앉힐 수 있고, 흥분은 털어 낼 수 있습니다.”

공포에 떨며 서로를 끌어안는 이들.

어떤 이들은 기회를 찾았다는 듯 꿈틀거리며 탈출을 시도한다.

아니, 반격을 노리는 건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설천위는 무해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시주……. 분노도 흥분도 아닌 슬픔이 시주를 좀먹을 것입니다. 스스로 피를 뒤집어쓰는 이런 행위는…….”

결국 슬픔만을 남길 것이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해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 슬픔이란 건 눈물을 쏟아 내야 털어 낼 수 있습니다.”

눈물은 삼키면 응어리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상황에서 울 정도로 눈물이 많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설천위는 이 자리에서 고통 받은 고인들의 절망에 슬퍼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위인이 못 되었다.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할 순 있어도.

그 안타까움이 슬픔이 될 수 있어도.

그 슬픔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슬픔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풀어내려면, 다른 무언가를 흘려야 합니다.”

응어리로 남길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저는 제 방식대로 풀어내겠습니다.”

“아미타불……. 설 시주……!”

“제가,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해의 절박한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으며 도를 꺼낸다.

“저는 이들에게 절망이라고.”

* * *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약해진다.

배신이 최악의 행위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타인의 감정을 이용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

예상치 못했기에 쉽사리 대처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배신뿐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사람의 선택은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가령.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

무림맹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것이 썩 풍족해 보이지 않는 마을의 젊은 촌장을 만나 그가.

웃으며 하룻밤 잘 방을 내주고.

저녁 식사나 함께하자고 권한다면.

많은 이들이 안심한다.

경계심을 누그러트린다.

상대는 무공도 익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살수처럼 기세를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며.

마을 어디에도 무공을 익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딱히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이류 정도만 되어도 일반인들을 두들겨 패거나 죽이고 빠져나가는 일 정도야 우스우니까.

마을 사람 전체가 달려들어도 최소 십수 명은 골로 보내고 도망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니 한껏 경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경계하는 이들은 분명 있다.

그런 이들은 눈치껏 흘려보내면 된다.

정말 잠자리만 제공해 주고, 그냥 보내면 된다.

그들에게 이 마을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니까.

노리는 것은 얼뜨기 같은 젊은 놈들.

자신감에 차서 혼자 움직이는 어린놈들이 많다.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세상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어리석은 녀석들.

약간의 대화와 관찰만으로 상대가 진짜 강한지 아닌지는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그냥 보내면 된다.

중을 흘려보내는 것도.

녹의를 입은 이들을 흘려보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애초에 그리 많이 잡을 필요가 없었다.

가끔 한두 명씩만 낚아도 그 값은 마을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으니까.

넉넉하게 고기를 사 먹고, 배부르게 살기에 충분했으니까.

물론 그것을 거부하는 마을 사람도 있었으나, 결국 굶주림에 못 이겨 전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자신의 잇속을 채웠다.

그렇게 이 마을은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왜……, 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촌장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을 삼키며 바닥을 기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마을 사람들의 살을 저미고 있는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우, 우리만 나쁘냐고!! 왜 우리끼리 하는 일에 무림인이 간섭하는데……!!”

악을 쓰며 소리치는 촌장.

그 순간, 도를 움직이던 설천위는 팔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멀쩡한 손으로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촌장.

가만히 그를 바라본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까지 죽은 이는 없었다.

본래라면.

[이놈들……!]

[허어.]

저기 화를 삭이고 있는 혼들에게 넘겼을 거다.

살아 있을 때의 고통은 한계가 있지만, 죽고 난 뒤의 고통엔 끝이 없으니.

그런데 왜일까.

왜 나는 이들을 살려서 썰고 있는 걸까.

슬쩍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한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경전을 외우고 있는 무해를 바라봤다.

무력으로 자신을 말릴 수 있음에도 그저 슬퍼하며 이곳에서 스러져 간 혼들의 명복을 빌고 있는 스님.

지금 이러고 있는 자신의 슬픔조차 이해하고, 그 슬픔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그 몸에 난 상처는 무기를 쥔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

무당의 화경(化勁)처럼 그쪽으로 특화된 무공이 아닌.

소림의 강건(剛健)의 무공을 익힌 스님에게 그런 제압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허나, 그럼에도 그것을 지키는 불살의 신념.

불살현불(不殺顯佛).

그것은 살아 있는 불살의 부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살아 있는 부처.

‘……그런 사람이 보고 있어서인가.’

철혈의 신념을 지녔으나.

그 몸에서는 티끌만큼의 혈향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의 앞이기에.

“조금 죽음에서 멀어졌을지도.”

짧은 독백과 함께 설천위는 몸을 돌렸다.

“무림인이 왜 간섭하느냐고?”

촌장의 물음을 다시 떠올리며 설천위는 촌장을 내려봤다.

“그, 그래! 무림인은 우리 같은 양민을 건들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누가 그래?”

“그, 그게 무슨……. 끄아아아아악!”

촌장의 어깨에 도를 박아 넣은 설천위는 억지로 그의 몸을 돌렸다.

어깨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비트는 촌장.

그 몸이 돌아간 곳에는.

“저기 저 여자.”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온몸이 멍과 상처투성이인데도 무언가를 갈구하듯 손을 꿈틀거리는 여인.

“무슨 약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가 무공을 못 쓴다는 건 확실해. 저 여인의 단전은 아직 살아 있으니까.”

혼들에게 들은 정보다.

확실하다.

저 여인은 무림인이다.

“비록 삼류에서 이류 정도였을지 몰라도 무림인이야.”

약에 절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니 힘줄도 끊지 않았지만.

분명 무림인이다.

“먼저 건드렸으면 당연히 돌아오는 게 있을 거란 생각을 해야지.”

“아아아아악!!”

어깨가 벌어지며 천천히 빠져나오는 설천위의 도.

이젠 멀쩡했던 손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된 촌장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몸을 일으켰다.

“너희는 죽지 않을 거다.”

“……아미타불.”

설천위의 한마디에 한없이 경전을 외우던 무해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설 시주……. 그 말씀은?”

“스님, 이번 한 번뿐입니다.”

도를 집어넣으며, 쓰러진 여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웃옷으로 덮어 준 설천위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스님의 간곡한 부탁에 딱 한 번만 봐주는 겁니다.”

“아미타불……. 시주, 현명한 선택입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숙이는 무해.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시주?”

문 앞에 서서 다시 몸을 돌린 설천위의 모습에 무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하지만, 저는 제가 한 말은 지켜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저는.”

여인을 무해에게 넘긴 설천위는 오랜만에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예전에 한 번 우연히 썼던 그것.

부적이 지하실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그리고.

[크르르르르르르르.]

낮고 장엄한 울음소리가 지하실 전체를 뒤흔든다.

“이자들의 절망입니다.”

검은 용의 낙인이 지하실에 있는 인간들에게 깃들었다.

그 용을 목도한 눈으로 파고들어 얼굴, 목, 어깨, 팔, 가슴으로 뻗어 나간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주어어어!!”

“제, 제바아아알!”

끔직한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용의 낙인.

현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술사인 언여휘조차 풀어내지 못한 저주.

패룡의 저주가 그들의 몸에 깃들었다.

“앞으로 너희가 살아갈 삶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 * *

“아미타불……. 시주, 알고도 외면한 자들에게도 죄는 있으나…….”

“됐습니다.”

촌장의 집.

지하실에서 나온 설천위는 무해와 마주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지하에서 보았던 인원들을 보면, 마을 전체가 가담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이들과 여인이 이런 종류의 범죄에 가담하긴 쉽지 않으니까.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의 상식선에서 그런 약자를 범죄에 끌어들이는 이는 거의 없다.

무림인이면 몰라도, 일반인 중에서 어린아이와 여인은 전력에 썩 도움이 안 되니까.

즉, 마을 전체가 이 범죄를 공유하고 그중에서 흥미가 있는 이들이 자진해서 저 무리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그것조차 가능성의 영역.

확신할 수 없으니 섣불리 마을 사람 전체를 단죄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거래처를 잡고 싶은데요.”

“아미타불, 맞습니다. 뿌리를 자르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지요.”

무해의 동의.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오진 않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거래를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더 철두철미하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아예 접근도 하지 않을 터.

실질적으로 이 마을에서 단죄할 수 있는 이들은 지하에 있던 저 현행범들뿐이란 소리다.

물론, 저놈들의 입을 열게 하면 더 잡아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다.

“무림맹으로 가죠.”

아무래도 이 여행을 짧게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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