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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78화 (278/624)

제278화

277화-절망과 절망 (1)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충 챙겨 주세요.”

“알았다.”

상의가 끝난 다음 날, 즉시 출발하기로 결정한 철백은 어머니께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집을 버리고 떠난다니 자식으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이란 것이 그저 추억만을 소중히 간직하고 살기엔 너무나도 냉혹하다.

“오빠! 그럼 우리도 도시로 가는 거야?!”

그나마 위안은 동생들의 표정이 아주 밝다는 점인가.

철유의 밝은 물음에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철백은 이것저것 짐을 챙기는 철호를 바라봤다.

물론, 짐이라고 해 봤자 그리 많진 않았다.

애초에 세간살이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고.

서안에 도착하면 이것저것 새로 살 테니 그리 빡빡하게 전부 챙기지 않아도 좋았다.

돈이야 뭐, 무림맹에서 일하면 충분히 벌 수 있을 테니까.

“제가 들게요! 어머니!”

가족 사이에서 손을 보태고 있는 서하영이 씩씩하게 짐을 들고 나온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철백은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는 여동생의 매서운 손맛에 고개를 돌렸다.

“오빠, 뭐 해!”

“응?”

“가서 들어 줘야지!”

자기가 들던 거 갖다 놓았다고 끝인가?

이 인간이 감이 없어.

이해를 못 하는 철백을 보며 힐끗 서하영 쪽으로 눈짓하는 철유.

그제야 동생의 뜻을 헤아린 철백은 멋쩍게 웃으며 서하영에게 다가갔다.

“서 매, 내가 들게.”

“네? 하지만…….”

하나도 안 무거운데요?

순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서하영의 모습에 살짝 헛기침을 한 철백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짐을 뺏었다.

“자자, 들어가서 어머니나 도와드려. 짐 싸는 것도 일이니까.”

“아하! 알겠어요! 그런 건 제가 잘하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서하영.

그 귀여운 뒷모습에 철백이 가만히 서서 흐뭇하게 웃는 사이.

“……허.”

마을에서 마차와 말을 사 온 설천위는 헛웃음과 함께, 자신에게 달려오는 철유를 바라봤다.

“쟤는 왜 저러고 있대?”

“좋을 때에요!”

“어린 녀석이 뭐라는 거야.”

“에헴! 저도 알 건 다 알아요!”

아니, 얘가 뭐라는 거야.

열 살짜리가.

귀엽기 그지없는 철유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은 설천위는 마차에서 내려서 철유를 들어 올렸다.

“자, 그럼 마차 끄는 것도 배워 볼까?”

“와!”

단숨에 철유를 들어 올려 마부석에 태운 설천위는 웃으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자, 이렇게 쥐고, 살짝 흔들면…….”

“꺄! 움직여요!”

* * *

“고맙다. 천위.”

“뭘,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동하는 길.

철백의 가족과 서하영은 마차 안에 탔고, 설천위와 철백은 마부석에 앉았다.

물론, 상당히 비좁긴 했으나 둘 다 근육이 상당해 마차 안에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이 불편해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설천위도 항상 철백의 옆에 있어서 평범해 보일 뿐 근육량이 상당해 꽤나 몸집이 나가는 편이다.

전부 불편해질 바에는 차라리 둘만 불편한 게 낫지.

거기다.

“무공은 어쩌기로 했나?”

“음……. 고민 중이야.”

염마준천공(炎魔焌天功).

그 이름을 듣고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천마(天魔)였다.

생전에 알던 사람인지, 아니면 사후에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마가 놀랄 정도면 꽤나 수준 높은 무공임은 확실했다.

다만 문제는.

“마공(魔功)은 마공이라서 말이야.”

철호에게 익히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뭐, 철호야 적당히 다른 무공을 가르쳐 주면 되긴 하지만.

이런 물건을 그냥 태우기도 아깝다.

그야말로 계륵 같은 물건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설천위는 결국 한숨과 함께 천마를 바라봤다.

“이거 진짜 못 써먹어요?”

[음……. 제물이 필요한 무공은 아니나, 운기법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

[마공의 전형적인 특징이군요.]

마공(魔功).

흔히들 마교에서 익히는 무공이라고 생각하지만, 마공의 정확한 정의는 없다.

진짜로.

물론 시작은 적대 관계인 마교의 독특한 무공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된 탓이다.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힘을 얻는 것도 마공.

운기법이 위험해 주화입마의 위험성이 아주 높은 것도 마공.

익히면 익힐수록 시전자의 신체나 생명을 갉아먹는 것도 마공.

이렇듯, 마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분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이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정사지간의 무공도 마공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럼 논란이 생기긴 하겠지만.

찬반이야 어떻든 여론이 몰리면 사회적 약속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애매한 정의의 문제점 아니던가?

뭐, 그렇다고 마공에 아예 공통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특징은 초중반의 내공적인 성취가 아주 빠르다는 점.

예상치 못한 신진 고수가 등장했을 때 ‘네놈! 마공을 익혔구나!’ 하고 말하는 건 다 저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로, 너무 빠른 내공적인 성취로 무(武)의 수준이 따라오질 못한다.

그래.

설천위처럼.

물론, 설천위는 그 가문이 워낙 빵빵해서 그런 논란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당연히 나온 이야기다.

계(癸)에 불과했던 녀석이 저렇게 갑자기 강해진다는 게 말이 되냐는 불만이 꽤 많았다.

너무 무가치해서 그냥 무시됐지만.

여하튼.

염마준천공(炎魔焌天功)이란 무공은 명실상부한 마공이다.

당연히 그 위에 공통된 두 가지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것이니 의심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았다.

내공은 마공 특유의 사특한 힘보다는 양(陽)의 열기가 주를 이루니 어떻게 무마할 수 있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꽤 높다.

거기다.

“유명한 사람의 무공이라면 들킬 확률이 높으니까.”

천마가 기억할 정도의 강자라면 분명 그 기록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을 거다.

당연히 그 무공의 특징도 기억하고 있겠지.

섣불리 익히기엔 참으로 무리가…….

[내가 고쳐 주마.]

“……네?”

[염마준천공(炎魔焌天功)은 파괴력을 위해 목숨을 갉아먹는 위험한 운기로 마기(魔氣)를 쌓는다.]

거기에 합쳐진 극양의 진기가 타오름으로써.

엄청난 위력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염마준천공(炎魔焌天功)의 핵심.

그렇기에.

[다소 위력은 떨어질 수 있으나, 정공의 무공까진 아니어도 마공으로 오해 받을 수준은 벗어날 수 있을 게다.]

“……그게 가능해요?”

[다만, 나라도 시간이 조금 걸릴 수밖에 없구나.]

아니, 그래도 그게 가능해?

쉽사리 믿기 힘든 이야기에 헛웃음을 지은 설천위는 철백을 바라봤다.

애초에 무공을 바꾸는 이유는 자신들이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호가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본인이 발견한 무공이다 보니 꽤나 배우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천마 어르신께서 맡아 주신다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음, 그럼 내가 고친 뒤에 알려 주마.]

“예.”

그럼 그 전까진 철호는 기초 단련만 시킬까.

간단한 토납법에 신체 단련만 해도 충분하겠지.

내공을 익힐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때 가서 보면 되겠고.

대충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

“응?”

“혹시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리가 없어 마차의 지붕에 있던 백영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보고는 천천히 서신으로 보낸다고 하고 따라오더니, 목적은 이거였나.

음, 그나저나 그것도 그러네.

그럼.

“간단하게 구결이라도 좀 알려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뭐, 일단 밑밥 정돈 깔아 놓고 가야지.

* * *

서안으로 가는 길은 뭐, 평범했다.

가끔 산적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철백의 덩치를 보고 바로 물러서고.

가끔 마적이 등장했다가 공중에 나타난 용에 낙마해 아작이 나고.

때때로 마을에서 남자들이 서하영에게 작업을 걸려다가 철백의 기세에 놀라 물러서고.

뭐, 그런 평범한 일들이 반복되며 서안으로 향했다.

우리도 뭐, 웬만하면 싸움은 피하고 싶기도 했고.

내 용 때문에 소문이 퍼졌을 테니 가면 갈수록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꽤나 편안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천위.”

“응.”

“어찌할 거냐?”

“뭘 어떡해? 돌아가야지.”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설천위는 칼같이 대답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금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거기다 악을 쓰는 듯한 고함까지.

“웬 산적들이 고수한테 걸린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말고 가자.”

힘을 숨긴 고수가 산적들을 상대로 적당히 봐주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손을 보탤 이유가 없었다.

보아하니 고수 쪽에선 죽일 마음이 아예 없는 것 같…….

“응?”

기묘한 감각.

그 순간,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자신의 감각에 거슬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미간을 찡그렸다.

“술법?”

영력의 움직임.

뭔가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확실히 술법이다.

산적들이 술법을 쓸 리는 없고.

술사가 당하고 있나?

그럼 얘기가 좀 다른데.

“후.”

술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회피에만 몰두하고 있다가 지치는 순간, 그만 머릿수에 밀려서 패배한다.

술사가 대체 왜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는 건지 의아했지만,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술사라면.

‘백화단이나 만귀단 소속일 확률이 높지.’

그 두 개의 단은 거의 다 산하 교육기관에서 채용하니까.

취직하겠다고 무림맹으로 걸어가는 술사는 거의 없다.

그러니.

“철백, 먼저 가.”

“문제 있나?”

“아무래도 술사 같아서 도와줘야겠어.”

“으음.”

설천위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철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지.”

“어, 부탁할게. 유 매한테도 연락해 놨으니까 별문제 없을 거야.”

출발하기 전에 서신을 보내 놨으니 이 느린 마차가 도착하기보다 며칠은 빨리 서신이 도착할 거다.

유예린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 줄 테니 그녀한테 맡기기로 하고.

“그럼 난 다녀올게.”

“음, 조심해라.”

“어, 위험하면 토낄 거야.”

“네가 그러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면 그 말이 좀 믿음직했을 텐데.”

“뭐래.”

이 자식은 왜 또 헛소리야.

피식피식 웃는 철백을 뒤로하고 마부석에서 내린 설천위는 곧장 영력이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열심히 도망치던 술사가 술법을 사용했다는 소리는 슬슬 도망치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의미.

잘못하면 술사가 꽤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었다.

단숨에 달려서 순식간에 소리의 근원지를 시야에 담게 된 설천위.

나무들 사이로 이리저리 검광이 번뜩인다.

그사이에 보이는 낡은 가사(袈裟).

승려의 옷이다.

낡고 색이 옅은 주황색인 것이 소림사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작은 절 출신의 스님인가?

그나저나 스님이 사람을 상대로 술법이라.

독특하네.

소림사 이외엔 대인전에 쓸 만한 불교 쪽 술법은 꽤나 얻기 어려운…….

“아미타불…….”

“끄아아압!”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불호.

악을 쓰는 비명.

그 순간, 설천위는 깨달았다.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술법을 감지했을 때 느꼈던 불편함.

그건 술법을 펼친 영력에 섞인 혈기(血氣)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미타불.”

연신 불호를 외우며 상대를 제압하고 있는 스님은 작은 절 출신이 아니었다.

무림 최대의 절.

소림사(少林寺).

그 법명은 무해.

현재 불리는 별호는 서승(恕僧).

서(恕)란 용서한다는 뜻을 가진 글자로.

무인의 별호에 그 글자가 붙었다는 것은 보통의 자비심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증거로.

“하압!”

“끄아압!”

“아미타불.”

무해와 싸우고 있는 적들 모두가 사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해 오는 상대를 제압하고 검을 뺏어서 뒤로 던지면 끝.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들 때문에 몇 번이고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그 어떤 적에게도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피 냄새가 짙습니다. 시주님들.”

그저 제압하고 제압하며 끊임없이 그들의 살업을 지적할 뿐.

“……미친, 이걸 실제로 보게 되네.”

[광기로구나.]

[자비심이 광기의 영역에 들어섰어.]

[허허.]

혼들의 넋이 나간 평가에 설천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자신의 몸에 흉터를 남기면서까지 오로지 한결같이 적을 배려하는 싸움.

암영의적이 지껄인 헛소리 같은 활인권(活人拳)이 아닌, 진짜배기 활인권.

불살현불(不殺顯佛) 무해.

그 지독하리만큼 지겨운 싸움을 지켜보며.

“……아오!”

답답함을 못 이긴 설천위가 결국 나섰다.

영력에 혈기가 섞여 있다는 것은 제물을 이용해 힘을 쌓았다는 증거.

이런 자들에게 저딴 자비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거! 도와줄 테니까 빨리빨리 정리합시다!”

“아미타불, 결국 움직이신 겁니까? 설 시주.”

알고 있었다는 듯 허허롭게 웃으며 무해는 말했다.

“살인은 절대로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죽는 절단, 골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칼 같은 선언.

절대 불허한다는 그 눈빛에 설천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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