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화
275화-졸업 선물? (7)
“형아, 천위 형은 갑자기 왜 내려간 거야?”
“별일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돼.”
체력이 떨어진 동생을 업고 산을 돌아다니던 철백은 말과는 달리 신중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천위의 다급한 하산.
전음으로 말하길 습격이 있다고 했다.
이 산에도 누군가가 수색을 한 흔적이 있으니 방심할 순 없다.
물론 적대할 이유가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던 철백은 굳이 빠르게 걷지 않았다.
새로운 무공 비급이야 발견하면 좋다.
그런 곳엔 보통 후인을 위한다며 괜찮은 영약도 하나 놔두니까 서 매에게 줘도 좋고 철호가 무공을 익힌다고 하면 철호에게 줘도 좋다.
다만 그건 찾으면 좋을 뿐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공이야 다른 것을 익히면 된다.
영약이야 돈을 모아 사면 된다.
전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쪽의 안전을 대가로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다.
“철호.”
“웅?”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나와 살아도 되겠냐?”
“……갑자기?”
철백의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철호는 이내 철백의 목에 감은 팔에 힘을 주며 웃었다.
“응! 상관없어! 형이 사는 곳이라면! 어머니도 똑같을걸? 우리 집 가장은 형이니까!”
“그래.”
이미 전날 밤에 어머니께 물어서 의견을 구했던 철백은 피식 웃었다.
어찌 어머니와 같은 답이 돌아온단 말인가.
“모아 놓은 돈이 있으니 이번에 함께 무림맹 쪽으로 가자.”
적당한 집을 구해 같이 살면 되겠지.
무엇보다 이렇게 멀어선 가족의 걱정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다.
위기의 순간,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서 매의 가족이나 천위의 가족처럼 무인이 아니니까.
물론 동생들이 원하면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지만.
철호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런 거야 노력으로 극복하면 되는 일이고.
다만, 동생들이 자신처럼 내공을 못 쓰는 몸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한다.
자신이 아주 특이한 경우라는 것은 할아버지들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으니까.
보통은 자신과 같은 수련을 하다가는 골병들어 죽는다고 했던가.
뭐, 그런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고.
“아! 형! 이쪽인 것 같기도!”
지금은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보물찾기를 즐겨 볼까.
“그래? 한번 가 볼까?”
* * *
‘금강호신(金剛護身) 철백인가…….’
산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몸을 숨긴 백영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철백의 모습에 잠시 고민했다.
일단 들리는 소문을 생각하면 정면 승부는 무리다.
검기를 두른 검도 튕겨 낸다는 육체 아닌가.
신체 능력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하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독인데…….
그것도 무리다.
일단 몸에 침투시켜야 하는 독은 침도 박히지 않을 테니 무리.
그럼 호흡기로 흡입하는 연막류나 피부에 바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휘되는 독을 써야 하는데…….
철백은 지금 일반인인 자신의 동생을 업고 있다.
손을 쓰는 순간, 저 동생도 휘말리게 되는 상황.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에게 독까지 쓰는 건 도리에 어긋난다.
자신이 도둑이라곤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
역시 최대한 빨리 목표물을 찾아내서 도주하는 것이…….
“공격하지 않는 건 자신이 없어서인가?”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긴장감.
그것 하나만으로 육체가 이리도 굳어질 수 있구나.
그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백영은 어느새 몸을 돌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철백과 두 눈이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철백은 내공이 없는 몸.
그 육체의 강함과 별개로 주위를 감지하는 능력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아니, 설령 부족함이 없다고 한들 자신의 은신을 간파해 낼 수 있을 리가……!
“적의가 없으니 딱히 싸우고 싶진 않다만.”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철백의 모습에 백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압박감.
‘……이게 초절정?’
그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을 뿐인데, 이런 압박감이라니.
내공 한 점 없이 오로지 육체만을 단련한 인간에게 이런 기세가 가능한 것인가.
긴장감에 굳었던 근육이 이를 악문 의지에 의해 조금씩 풀린다.
기어코 걸음을 뗄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쯤.
“슬슬 내려와서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어느새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한 철백의 모습에 백영은 작은 한숨과 함께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철백의 뒤에 눈치껏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동생을 보면 격렬한 전투는 힘들 테니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말도 안 돼.’
지근거리에 도착한 순간, 몸 전체를 옥죄는 무형의 압박감이 더욱 강해진 것을 보면 섣불리 도주할 수도 없었다.
도주하다가 걸리면…….
꿀꺽.
며칠 전, 철백이 흑철파를 손으로 찢어 버리던 광경을 떠올린 백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는 흥분해서 자신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던 거였나?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갔던 흑철파에 비명과 피비린내만 가득해서 그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도망칠 자세부터 잡고 있는 걸 보니, 살수는 아니군.”
“도둑이야. 좀도둑.”
“흠.”
작게 턱을 쓴 철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볼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정보 교환을 좀 하고 싶은데.”
“……정보 교환?”
“그래. 아무래도 내 동생과 발로만 찾기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동생과 함께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즐겁지만, 시간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동생이 찾았던 보물이니 어떻게든 찾고 싶다.
“설마 나한테 그쪽이 알고 있는 정보를 주겠다고?”
“그래. 내 동생이 알고 있는 동굴의 정보를 주마.”
……이거 바보 아니야?
그럼 내가 혼자 먹고 튀지.
당당한 태도로 멍청한 소리를 하는 철백의 모습에 겨우 멀쩡한 표정을 유지한 백영은 담담하게 되물었다.
“그럼 내가 줄 정보는?”
“내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네가 깨달은 비급이 있는 위치.”
“하, 달리기 경쟁이라도 하자고?”
서로 같이 위치를 알고 뛰어가서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라는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어처구니없는 거래 제안에 백영이 코웃음을 치려는 순간.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다. 네게 줄 정보는 이쪽이 진짜니까.”
“……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미간을 찡그린 백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너를 찾아낸 방법. 그걸 알려 주지.”
“……협박하는 거야?”
“그렇게 들린다면, 네가 속으로 어떻게든 보물을 빼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리겠지.”
담담하게 대답하며, 철백은 자신의 어깨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동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보물은 내 동생이 찾은 거다. 과욕은 좋지 못해.”
경고.
순순히 위치를 알려 줘라.
그렇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다.
철백의 말뜻을 이해한 백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열불이 치밀어 올랐지만, 맞는 말이다.
만약 저자가 자신을 추적 혹은 찾아낼 방법이 있다면…….
‘……무리.’
철백은 그렇다고 쳐도 설천위를 따돌릴 자신이 없다.
그 괴물은 듣자 하니 술법에도 능하다고 하니 도망칠 방법 따윈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갑(甲)에 오른 무공 실력보다 술법이 훨씬 뛰어나다는 말도 있으니…….
“……좋아. 거래를 받아들이지.”
“현명하군.”
“먼저 정보를 말해 봐.”
“철호.”
“우웅.”
철백의 부름에 쏙 고개를 내민 철호는 즉시 자신의 기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철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영.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철백은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주시했다.
일단 적의를 보이지 않아 대화를 시도하긴 했지만, 혹시 몰라 일부러 자극을 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그쪽의 인간들과는 연이 없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후의 선을 넘은 말종들.
그쪽에 발을 걸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허, 의적의 냄새가 난다니까?]
옆에서 들리는 암영의적의 말에 철백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생각했다.
의적 냄새가 대체 뭘까.
도둑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
* * *
“여기 같은데.”
“어! 맞는 것 같아! 형아!”
백영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아까 수색하던 곳에서 생각보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산의 모습에서 철호의 말에 따라 덩굴을 걷어 내자.
“진짜군.”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덩치의 철백도 몸을 숙이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들어가지.”
“하? 내가 왜?”
어차피 얻을 것도 없는데.
가서 배 아파 죽으라고?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는 백영의 모습에 철백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살펴보고 우리에게 필요 없는 거라면 넘겨주지.”
“하? 쓰레기나 가지라고?”
“아니, 금전적인 가치가 있더라도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면 넘겨주겠다는 이야기다.”
“……흐응?”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이유는?”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철호가 없었다면 그냥 함정이고 뭐고 몸을 밀고 나가면 되겠지만.
철호가 있는 이상, 그런 위험 요소를 배제할 필요가 있다.
“그거라면 납득이 가네.”
철백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백영은 망설임 없이 동굴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자신을 협박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보수를 준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솔직히 자신도 안에 뭐가 있는지 꽤 궁금했고.
무공 같은 경우에 사파의 것이라면 저쪽에선 당연히 필요 없다고 넘길 거다.
그럼 그걸 장물로 팔면 꽤나 쏠쏠하단 말이지.
급이 높은 무공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기분이 좋아진 백영이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그 뒤를 철백이 따랐다.
바로 자신의 앞에 철호를 두고, 자신이 입구의 뒤를 막는 형태로.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고.
침착하게 살피는 백영 때문에 속도는 느렸지만, 확실하게 세 사람은 전진했다.
그리고.
“이야.”
명백하게 인위적인 가공이 더해진 큰 공간에 도착하자, 철호가 감탄을 내질렀다.
“맞아, 여기야!”
기쁨.
우연히 봤던 그 동굴의 모습을 확인한 철호는 기뻐서 웃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따라오기라도 할까 봐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다 가물가물해졌는데……!
이렇게 찾네!
히히 웃으며 걸어가는 철호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은 철백은 자신의 곁에 붙어 있는 백영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함정은 없나?”
“없어. 완전 깔끔해. 아쉽게도.”
동굴을 들어오는 도중에도, 이 내부에도.
함정의 흔적으로 보이는 건 없다.
비급도 깔끔하게 돌을 깎아 만든 단상 위에 올라가 있고.
그 외에 영약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 상자가 있지만…….
돌을 깎은 방식이나 기관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걸 봐선 그쪽으론 조예가 없는 사람이 만든 동굴이다.
함정 같은 건 없을 확률이 높았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순순히 자신의 비급을 넘겨주는 인간은 대부분 정파의 인물이라는 점이고…….
“흠.”
백영의 대답에 대충 그 속내를 파악한 철백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한 번 철호가 비급이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나왔으니 솔직히 함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데려온 백영도 이러는 것을 보니 확실하다.
함정은 없다.
안심한 철백은 철호가 비급을 손에 쥐는 것을 보며 웃었다.
“자, 그럼 정보나 말해 줘.”
“아, 그렇군.”
찾은 방법을 알려 주기로 했었지.
“내 친구 천위가 내게 혼을 한 분 붙여 주셨다.”
“호, 혼?”
그, 그럼 귀신?
살짝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한 백영의 모습에 피식 웃은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암영의적이라 불리셨던 분이다. 네게 해코지를 할 일은 없으…….”
“뭐?”
“음?”
“누구시라고?”
“암영의적…….”
“어디에 계셔?”
갑자기 소리치는 백영의 모습에 깜짝 놀란 철호가 뒤를 돌아보고, 놀란 철백은 자신도 모르게 암영의적이 떠 있는 허공을 가리켰다.
그리고.
“암영문의 제자, 백영이 사백(師伯)께 인사드립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리고.
[으응? 사, 사백?]
아저씨는 왜 당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