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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73화 (273/624)

제273화

272화-졸업 선물? (4)

이상한 점이 두 가지 정도 있었다.

하나, 아무리 우목이란 녀석이 도와줬다고 한들 철호가 살아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최소 사흘 이상 고문을 당했는데,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살아 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관군의 움직임이다.

아이를 대놓고 납치했다고 들었다.

집에 있는 철유조차 그 소식을 들었을 정도인데, 마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겠는가?

흑철파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관군도 사람이다.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외면을 한다?

이 작은 동네의 흑도가 상납할 수 있는 금액이 대체 얼마라고.

거기에 목숨을 건단 말인가?

감찰이라도 와서 걸리면 당장 모가지가 날아갈 판인데.

물론 이 두 가지 다 이유를 찾자면 찾을 순 있다.

철백의 동생이니 철호의 몸이 진짜 더럽게 단단하고, 고문한 놈에게도 양심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힘 조절을 했다면, 살아남은 것도 이상하진 않지.

그리고 관군의 우두머리가 진짜 더럽게 무능하고, 밑의 것들이 치안 유지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 흑철파를 상대로 몸을 사린다면, 움직이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참 거슬려.”

작은 평상 위에서 턱이 부러져 말을 못 하는 우목을 앞에 둔 채 설천위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린애가 무공 비급이 숨겨진 동굴을 발견했다고 고문을 한다?”

조금, 아니 상당히 어설픈 핑계 같지만, 그럴 수 있긴 하다.

숨겨진 무공 비급에 눈이 돌아가고, 숨겨진 영약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무인 아닌가?

이런 시골 동네의 흑도 무리라면 당연히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처리할 일인가?

철백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벌목과 사냥을 업으로 삼던 철백의 아버지 때문이다.

철백도 그것으로 생계를 이었고.

이렇게 외따로 떨어진 집.

차라리 은밀하게 습격해서 가족을 빌미로 협박하는 게 직방일 텐데?

애를 납치해다가 고문하는 건 괜찮고, 몰래 들어와 습격하는 건 안 괜찮나?

“나는 잘 모르겠다. 너희들이 쉬운 길을 놔두고 왜 굳이 어린애를 납치까지 했는지.”

설천위의 두 눈을 마주한 우목은 자신도 모르게 삼킨 마른침에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부러진 턱에서 나는 통증인지, 가슴에서부터 치밀어 오러는 불안감이 만들어 낸 통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괴, 괴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이한 눈동자.

언뜻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눈동자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비슷한 걸 딱 한 번 본 적 있다.

도축을 업으로 삼는 노인이 소를 죽일 때, 저것과 비슷한 눈을 했었다.

소를 단칼에 죽이던 그 노인과 비슷한 눈.

사람을 죽이는 백정.

자신들을 흑도라고 칭하는 왈패들이 절대 건드리지 않는, 진짜 무림인.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우목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네가 철호를 지켜 주다가 그 꼴이 된 건 정황상 사실인 것 같으니 넌 무사할 거다.”

무사할 거다.

그 한마디에 한껏 조여졌던 근육이 서서히 풀어진다.

안심이란 것이 이런 건가.

턱의 통증조차 잊고 한숨을 내쉬던 우목은 다음에 이어지는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너 먹고살 길은 새로 찾아야 할 거다.”

……먹고살 길을 새로 찾아?

하긴 무림학관의 병(丙) 정도 되는 강자라면 흑철파야 순식간에 무너트리겠네.

그렇게 생각하면 일거리는 당연히 새로 찾아야 하는구나.

이 부러진 턱이 제대로 나을 때까지 먹고살 길이 있긴 하려나.

갑갑한 미래에 우목이 고개를 떨구는 그 순간.

“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일일이 손을 쓰다가 오히려 늦어졌다.”

오는 길에 피를 씻어 내고 왔는지 살짝 물기에 젖은 철백은 가볍게 몸을 털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철호는?”

“안에서 얘기 중.”

“고맙다.”

“뭘 고맙기까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흑철파의 본거지에 납치된 다른 애들이 있었냐?”

“아니, 혹시 몰라서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래?”

전해 들은 소식으로 납치 사건이 워낙 많아 무림맹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듣긴 했다.

그것 때문에 숨었나?

적당히 몸을 사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어림짐작인가?

흐음.

아직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은 우목을 바라본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지.

일단 구할 사람은 다 구했고, 문제가 될 놈들도 다 정리했다.

괜히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뭐 해? 들어가서 빨리 인사나 해. 아까 어머님이랑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눴잖아?”

“음, 그래야지.”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천위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도 따라와. 찬바람 맞으면 골병들어.”

뭐, 자세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들어 볼 생각이지만.

* * *

“그래서, 산에 무공 비급이 숨겨진 동굴이 있다고?”

“응.”

철호를 구하고 다음 날 점심.

피로 때문에 늦게 일어난 철호와 함께 평상에 앉은 설천위는 철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무공 비급일 수도 있겠는데?”

“진짜 맞는다니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상승 무공일 수도 있다고.”

“……다른 거야?”

“무공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거든. 그런 의미에서 섣불리 안 익힌 건 정말 잘한 선택이야.”

“……그야 난 어차피 글도 모르고.”

응.

그것도 그러네.

글을 읽지 못해 남들은 목이 빠져라 바라는 기적을 그냥 두고 왔다는 말에 설천위는 쓰게 웃었고.

“제가 알려 드릴게요! 도련님!”

“네?”

“제가!”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 서하영이 철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황하는 철호.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서하영의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이제 막 회복한 애한테 뭐라는 거야?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알려 줘.”

“아우!”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찡그린 서하영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좋은 모습 못 보여 줬는데.”

“좋은 모습은 무슨? 애한테 못 보여 줄 꼴만 잔뜩 나왔구먼.”

우리야 실전을 거듭하면서 사람이 죽는 모습에 익숙해졌다곤 해도 사람의 팔을 생으로 뽑는 장면은 결코 애한테 보여 줄 게 못 된다.

괜히 철백이 동생을 보자마자 한 첫마디가 눈을 감으라고 한 거겠는가?

얘는 이상한 데서 참 생각이 짧아져.

입술을 삐쭉이는 서하영을 보며 혀를 찬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돌려서 산 아래를 바라봤다.

“손님 온 것 같으니까 준비나 해.”

“싸우게요?”

설마?

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하영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황에 따라선? 증거만 안 남기면 되니까.”

“이, 무, 무서운 사람! 역시 유 언니가 반한…….”

“헛소리 그만하고. 싸울 리는 없을 테니까 철백이나 불러와.”

“뉍.”

거, 농담도 함부로 못 하겠네.

뭐만 하면 유예린으로 반격을 하니…….

짧은 대답과 함께 철백을 부르러 간 서하영.

한창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불려 나온 철백은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 이들을 보곤 미간을 찡그렸다.

“부탁하지.”

“맡겨 두세요!”

“얘야?”

“어머니,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어머니! 제가 안마 하나는 끝내주게 잘해요!”

철백이 주무르던 다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서하영이 안마를 시작하고, 밖으로 나온 철백은 평상에 앉아 있는 설천위의 옆에 가서 섰다.

“어흠, 여기가 철 가(家) 되오?”

“맞소이다. 내가 철백이라고 하오.”

“아, 그 무림학관에 입학했다던…….”

철백의 거대한 덩치에 마른침을 삼킨 포쾌는 헛기침과 함께 본론을 꺼냈다.

“어제 흑철파라는 흑도 방파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소이다.”

“해서?”

“그…… 범인으로 생각되는 거한이 이 집으로 들어왔다고 하기에 찾아온 것이오.”

“그렇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관군을 향해 답했다.

“내가 그랬소.”

“혹 범인을 봤…… 뭐라?”

“내가 그랬단 말이오.”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며, 철백은 담담히 포쾌를 바라봤다.

“내 동생이 납치당해 구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져 어쩔 수 없었소.”

“그게 무슨…….”

아니, 구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한 명도 도망 못 치게 붙잡아서 팔다리를 분질러?

심지어 두목은 양팔이 뽑히고 한쪽 눈도 뽑혔는데?

그때 느낀 극심한 통증에 두목은 정신이 반쯤 나가 버렸다.

그런데 뭐? 구하는 도중에 전투가 벌어져 어쩔 수 없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말이 안 된다?”

순간, 낮게 가라앉은 공기에 포쾌 한철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을 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것이 공포임을 깨달은 한철은 부들거리는 몸으로 철백을 바라봤다.

“이, 무슨……!”

우리를 겁박하는 것이냐.

그런 외침을 내지르려는 순간.

“말이 안 되는 건 내 동생이 사흘간 납치당했는데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사실이오.”

한철의 말을 끊은 철백은 두툼한 손으로 바닥의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잡은 돌멩이가 서서히 부서진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돌멩이.

“그리 생각하지 않소? 포쾌 양반.”

“지, 지금, 과, 관군을 겁박하는 것이오? 무, 무림인이라고…….”

“무림인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오.”

부들부들 떨며 겨우 입을 연 한철이 긴장감에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어린 시절 내가 갖은 고생을 하며 번 돈의 절반을 떼어 갔던 관아 놈들이.”

어느새 한철의 앞에 선 철백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동생이 납치당해 여동생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꽈아악

“끄아아악!”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나오.”

비명을 지르는 한철.

아주 잠깐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철백은 이내 손에 힘을 풀었다.

“다만, 내가 이 팔을 이 몸뚱이에 남겨 두는 것은 그대들이 무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완전히 손을 떼고 물러서며 철백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보내 줄 것이오.”

완전히 거리를 벌린 철백은 긴장감에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한철을 바라봤다.

“그러니 지금 나를 잡고 싶다면, 그대들이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 분노를 감당해 내시오.”

“혀, 협박하는 것이오?”

“아니. 충고하는 것이오.”

평상에 앉는 철백의 눈이 깊게 가라앉는다.

“나는,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소.”

꿀꺽.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마른침을 삼킨 한철은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 알았소. 흑철파 놈들이 먼저 죄를 지은 건 사실이니 내 이, 이번 건은 잘 보고하겠소.”

“고맙소.”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철백.

헛기침과 함께 그 모습을 짧게 바라본 한철은 이내 몸을 돌렸다.

“그, 그럼 나는 이만 가겠소이다.”

“조심히 들어가시오. 배웅은 안 하겠소.”

멀어지는 한철.

그 뒷모습을 짧게 바라보던 철백은 옆에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천위, 왜 안 말렸나?”

“응? 왜?”

“저자들이 돌아가서 변심이라도 하면 일이 커질 터. 너라면 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나도 비슷한 생각이라.”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철백을 바라봤다.

“그리고 너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림학관의 병(丙)이면 저런 말단 포쾌한테는 거의 천외천이야.”

“음?”

“네가 마음만 먹으면 저자가 근무하는 관아 자체를 소리 소문 없이 짓밟을 수 있는데, 누가 목숨 내놓고 도박을 해?”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다 죽을 텐데.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저런 겁쟁이는 당연히 그런 유형도 아니고.

“그나저나 내일쯤에 철호랑 같이 산이나 탈까?”

“음, 대충 들어 보니 진짜 같다고?”

“어, 가 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아.”

예상외의 졸업 선물을 여기서 찾을지도?

* * *

“흐응? 무너졌어?”

“예. 철백이란 자가.”

“납품받자마자 참.”

캄캄한 지하실.

피가 흥건한 석판 위에 서 있던 여인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일렁이는 선홍색 기류가 여인의 몸을 휘감고 흐른다.

짙은 혈향이 밴 숨을 뱉으며 여인은 석판 위에서 걸음을 내디뎠다.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지막은 내가 직접 구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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