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271화-졸업 선물? (3)
“흑철파, 인원은 대략 오십 정도. 구성원 대부분은 삼류 정도이고 대빵은 이류 정도 된다는 것 같다.”
“그새 다 알아냈냐?”
“오래 걸리지 않더군.”
고두식의 집. 설천위의 말대로 그곳에서 휴식하던 우목은 철백의 등장에 마른침을 삼켰다.
대충 닦아 낸 피의 흔적.
표정 없는 얼굴에 박힌 두 눈동자는 아무런 흔들림조차 없다.
아무리 무림인들에게 사람의 목숨이 초목과도 같다지만, 어찌 저리…….
“저자는?”
“그나마 납치당한 네 동생이 버틸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래.”
“그래?”
순간 부드럽게 변하는 눈동자와 함께 다가온 철백이 우목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감사하오.”
“아, 아…….”
“아, 턱이 부러져서 지금은 말 못 하니까 괜히 너무 붙잡지 마라.”
“이런, 이거 미안하게 됐군.”
설천위의 말에 손을 뗀 철백은 우목에게 나중에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부탁 하나는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우목과 약속한 철백은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는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혼자 가게?”
“굳이 네 손까지 더럽힐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짧게 주먹을 쥔 철백은 조금 전의 그 냉정한 눈빛으로 돌아가 설천위를 바라봤다.
“내 손으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철백의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동자 속에 깃든 기묘한 일렁임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으니까.
“너무 죽이진 마.”
뭐, 죽여도 무림의 일이고 저쪽이 먼저 시작한 거니 관에서도 대충 눈감아 주고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너무 막 죽이면 여기에 사는 철백의 가족들을 향한 시선이 안 좋아질 가능성이…….
“죽여? 무슨 소리냐.”
“응?”
“아까 그 녀석도 아직은 살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죽겠지만.”
……어?
그래?
“천위, 죽음은 결국 모든 것의 끝이다.”
……어라?
얘, 왜 이렇게 살벌해졌지?
차갑기 그지없는 눈으로 문을 열며 나가는 철백의 뒷모습을 보며 설천위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죽음조차 바랄 정도의 절망이다.”
……어라?
* * *
설천위는 기억하지 못하나, 게임 속 육도에서 철백은 한참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버티고 버티던 철호가 끝내 죽고.
그 철호의 입을 열기 위해 끌어들였던 여동생 철유도 죽는다.
철백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어머니의 슬픈 얼굴과 자신의 얼굴은 제대로 기억도 못 하는 어린 막내의 경계심 어린 시선뿐.
글을 알지 못하는 철백의 동생들은 평소 그에게 보낼 서신을 대필해 주던 이가 흑철파에 겁먹어서 대필조차 해 주지 않자 서신조차도 보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무림맹의 말단 병사로 죽도록 구르다가 드디어 철기(鐵氣)의 기틀을 마련하고 위로 올라가던 철백에게 찾아온 압도적인 절망감.
이미 두 동생의 죽음으로 마음에 병이 든 어머니 또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어린 막내 때문에 그저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던 것뿐.
그 모든 것을 알았을 때, 철백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흑철파의 인간들을 때려죽이고, 스스로 무림맹에 출두했다.
그 사정을 조사한 남궁선이 철백의 무죄를 주장했다.
합당한 복수였다는 점.
그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점 등등.
여러 가지 사정이 참작되어 결국 철백은 무죄가 됐고, 끝내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막냇동생을 챙긴다.
강철은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 사이를 넘나들며 더욱 단단해진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절망과 살아남은 가족이 주는 위안 속에서 철백은 더욱더 단단해져 갔다.
그렇게 금강투신(金剛鬪神) 철백이 된다.
허나, 설천위의 존재가 그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철백은 절망을 마주하기 전에 자신을 단련하는 법을 깨달았고.
그 강철과 같은 육체는 이미 완성을 향한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철백은 상대를 죽인다는 선택지를 취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분노에 육체가 마구 들끓었지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고.
굳이 상대를 죽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끄아아아아악!”
“이, 이 괴물!!”
“살려 줘어어!!”
시골에서 왕 노릇을 하던 흑철파에 절망이 찾아왔다.
압도적인 절망.
도망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담을 넘으려 하면, 발목을 붙잡혀 바닥에 패대기쳐졌고.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면, 뒷덜미가 잡혀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도망도 치지 못하는 압도적인 절망감 속에서 도를 들고 대항했던 두목은 처참한 몰골로 흙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아니, 기어간다는 말보단 꿈틀거린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두 팔이 없어 기어가는 것조차 못 하고 있었으니까.
살기 위해 철백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그대로 손목이 부러진 이들이 고통 속에서 땅을 뒹굴었으나, 철백은 담담하게 움직였다.
뼈를 부수고, 사지를 뽑는다.
물론 사지를 뽑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건 두목과 부두목, 그리고 몇몇 조장급의 인물들뿐이다.
누가 두목이고 부두목인지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금세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일반 조직원은 팔 하나 혹은 다리 하나를 완전히 분질러 놓았다.
제대로 뼈가 붙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수준으로.
“네놈들이 인간적으로 살았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죽을 것이다.”
“끄아아악!”
평소에 지은 죄가 많다면 이렇듯 불구가 된 사실이 알려진 순간, 아마 매질을 당해 죽을 것이다.
반면, 평소에 지은 죄가 적다면 불구가 됐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해 죽진 않을 것이다.
“이, 이 개X끼야!! 우리한테, 왜 이러는……!”
양팔이 맨 정신으로 뽑혀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진 두목이 악을 쓰자, 철백은 담담히 대답했다.
“남을 해하고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 대가가 어찌 돌아올지는 알고 있어야지.”
친절히 두목의 양팔을 지혈해 주며 철백은 담담히 말했다.
“네놈이 살아온 길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생각해라.”
“이, 이런 미친놈이……!”
“그것이 내 복수다. 내가 하루라도 늦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내 동생을 위한 복수.”
두 눈을 부라리는 두목의 얼굴을 붙잡은 철백의 손이 서서히 두목의 오른쪽 눈으로 향한다.
“그러니 너는 오로지 절망만을 보고 살아가라. 고두식이라는 놈이 네놈의 곁에서 함께 그 길을 갈 터이니.”
“개, 개X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 * *
“우웨에에에에엑.”
“어우! 저리 가서 해, 이 새끼야!”
흑철파에서 일어난 소란.
끝나기까지 워낙 긴 시간이 걸려 한참을 기다리다가 들어온 포쾌 한철은 속에 있는 것들을 시원하게 게워 내는 부사수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더럽게 현장에서 토하고 있어.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만.
“……엄청 독한 놈이었나 본데.”
팔다리가 뽑힌 놈이 다수에다 모두가 최소 사지 중 한 곳이 기괴하다고 할 정도의 각도로 부러진 상태.
웬만한 원한으론 이런 일이 쉽진 않았을 텐데…….
“무림인인가 보네.”
“흑철파 놈들 중에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고 이리된 걸 보면 확실하다.”
실력도 장난 아니겠지.
일류? 아니, 어쩌면 절정급일지도.
참혹한 현장에 몸을 부르르 떨며 걷던 한철은 흑철파의 두목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으어어…….”
바닥을 기는 벌레와 같은 모습.
양팔이 뽑히고, 한쪽 눈이 뽑힌 두목은 정신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대체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 정도로 잔인하게…….
잔혹한 손속이 사파의 마두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물론 정파의 고매한 인간들도 손속이 잔인하긴 마찬가지이지만.
목숨을 걸고 무림을 돌아다니는 인간들이니 엔간히 민감해야지.
실수로 부딪히고 검에 손이 닿았단 이유로 팔이 잘린 점소이의 이야기 같은 건 흔하디흔하다.
“아우, 죽겠네.”
“뭐야, 생각보다 빨리 멀쩡해졌네?”
“……잘린 팔이 좀 징그러워서 당황한 것뿐입니다.”
“어쭈? 그럼 잘린 팔 네가 다 회수해라.”
“예?”
“예는 무슨! 당황한 것 정도면 가서 주워 와!”
아니, 잘린 팔을 내가 어찌…….
꿀꺽 마른침을 삼킨 부사수는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했다.
“그런데 속 시원하지 않습니까?”
“어쭈? 이 자식이 말 돌리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속 시원하지 않습니까? 이 흑철파 놈들이 어디 좀 짐승들이었습니까?”
속이 시원하다는 그 말에 한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철파, 이 개자식들이 이 작은 동네에서 난리를 친 건 사실이니까.
숫자가 오십이나 돼서 손도 제대로 못 쓰고 있었고.
두목 놈이 꽤 수완이 좋아서 밑에 애들을 잘 모은 탓이다.
관에서도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어쩌면 잘됐다 싶기도 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놈아! 빨리 정리나 해! 부상자들 옮기고! 어?”
“하지만, 어차피 이대로 가면 다 몰매 맞아 죽을 녀석들 아닙니까?”
……그건 맞긴 하지.
동네 사람들이 당한 게 한두 번인가?
건장한 놈들이 단체로 오면 괜히 반항했다간 어디 한두 곳 부러지는 것으로 안 끝나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가 반항을 못 하는 불구가 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평소 쌓은 업보를 전부 돌려받을 거다.
뭐.
“그건 얘들 사정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인마!”
“뉍.”
정리를 위해 돌아서는 부사수를 보며 혀를 찬 한철은 널브러진 흑철파 놈들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비참하게 죽겠지만 일단 국가의 녹을 받는 만큼은 해야겠지?
* * *
“호야!”
“어머니!”
내공과 약을 이용해 철호의 양 뺨을 살짝 부은 정도까지 가라앉히는 데 성공한 설천위는 우목과 철호를 데리고 먼저 복귀했다.
흑철파 정도야 뭐 문제없고, 설령 예상치 못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철백 정도라면 문제없을 테니까.
최소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그나저나.
“여기엔 아무도 안 왔나 보네?”
“네. 조용했어요.”
철백의 어머니와 함께 나온 서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서하영은 이곳에 대기시켰는데, 흑철파 같은 동네 양아치들 상대론 너무 과한 걱정이었나.
“그런데 철 가가는요?”
“제대로 꼭지가 돌아서 다 때려 부수러 갔어.”
“예?”
고개를 갸웃하는 서하영에게 전음으로 철호를 만났을 당시의 상황을 전한 설천위.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서하영의 두 눈동자에 설천위는 커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뒤, 뒤.’
설천위의 헛기침과 눈짓에 고개를 돌렸던 서하영은 이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 아니에요! 어머님! 괜찮아요!”
기껏 호감을 얻은 어머님을 걱정하게 만들다니!
일반인들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서하영은 후회와 함께 최대한 밝게 웃었다.
“철 가가는 강하니 금세 정리하고 올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자, 어머니 공기가 차요. 철호도 쉬고 싶을 테니 어서 들어가요.”
“……형수님 말대로 들어가시죠. 어머니.”
오, 철호 눈치 개빨라.
형수님이라는 한마디로 서하영에게 크게 호감을 산 철호가 서하영의 미소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번엔 몸을 돌려 뻘쭘하게 서 있는 우목을 바라봤다.
일단 거기다 뒀다가 혹시라도 철백이 놓친 흑철파 놈들을 만나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데려오긴 했는데…….
“글은 쓸 줄 아나?”
도리도리.
“응, 그렇겠지.”
흑도에서 밥 벌어 먹고사는 왈패가 무슨 글을 알겠어.
이 시대야 뭐 문맹률이 8할 가까이 되는 시대니까.
일반 서민의 대다수는 까막눈이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됐어. 그냥 내가 하는 얘기가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면 고개를 저어. 아플 테니 작게 움직여도 돼.”
설천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우목이 그의 입에 집중했고.
이어지는 설천위의 질문에 우목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희, 사람 납품하냐?”
우목을 바라보는 설천위의 두 눈엔 기이할 정도의 싸늘함이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