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269화-졸업 선물? (1)
“다들 잘 꾸몄네.”
대연병장이 훤히 보이는 지붕 위.
그곳에 자리 잡은 살존은 훤칠하게 꾸민 학생들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지켜 준 보람이 좀 있네.
거기다.
“예쁘네.”
화려하게 꾸미고 등장한 서하영과 소윤혜를 눈에 담은 살존은 작게 입꼬리를 올리곤 고개를 돌렸다.
“어때?”
“아무래도 포기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악할 녀석들이야. 주의하라고 해.”
“존명!”
푹 고개를 숙이는 부하.
그 모습에 다시 고개를 돌린 살존은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는 단상 위를 바라봤다.
아래부터 시작해 설천위에게 이르는 시상식.
뭐, 주는 내용물은 그리 크진 않지만 지금 저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저 아이들에겐 큰 명예가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저 자리에서 얻은 자부심이 큰 보탬이 될 거다.
그나저나.
“잘생기긴 했네.”
한껏 꾸민 설천위의 얼굴을 확인한 살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잘생기긴 했다.
유예린이란 아이가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 같진 않지만 영향이 아예 없진 않겠다 싶을 정도로 잘생겼다.
설가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잘생기긴 했지.
설주철, 그 인간도 잘생기긴 잘생겼으니까.
인간이 삭막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지.
짧게 몇 번 만나 봤던 설가의 가주를 떠올린 살존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이랑 만날 일이 있으려나?
그나저나.
“좋을 때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전음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전한 부하가 살존의 말에 작게 고개를 숙였다.
“지나가는 구름조차 재미있게 보일 나이인데, 사랑하는 이가 한껏 꾸민 모습을 보면 가슴이 일렁일 수밖에 없겠지.”
“…….”
“어? 왜 아닌 척해? 너도 아들 하나 있지 않아?”
“일하는 도중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내가 너무 악덕 주인 같은데.”
부하의 딱딱한 대답에 살존은 작게 웃었다.
“그럼 강해져. 네가 하는 모든 것이 일이 아니게 만들어.”
“…….”
“그래야만,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존명.”
고개를 푹 숙이는 부하의 모습에 작게 웃은 살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단상 위를 바라봤다.
친구 녀석들은 짝이 있어 하나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설천위 그놈은 어떤 표정일지 볼까?
유예린, 그 아이가 없으니 꽤나 뚱한 표정…….
“……밝네?”
보상이 달콤한가?
아닌데?
갑(甲)이라곤 하지만, 쟤가 저리 웃을 정도의 보상은 아닐 텐데?
한껏 밝아진, 허공을 보며 활짝 웃는 설천위의 모습에 살존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살존은 미묘한 느낌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상하네?”
“이상 징후라도 있습니까?”
“아, 호위 쪽 문제는 아닌데. 응, 이상 징후가 있네.”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자신의 볼을 한 손으로 쓸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강해졌지?”
* * *
“대박.”
“천위, 아까부터 같은 말만 반복하던데. 뭐 문제 있나?”
“아니, 아니 없어.”
훈련장.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함께 놀러 가겠다는 주현운과 소윤혜를 뒤로하고 철백과 설천위, 서하영은 일단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저희끼리 놀러 가요?”
“어, 빨리 가기나 해. 내가 너희 사이에 끼어서 뭐하냐.”
“그래도…….”
설천위가 혼자 남는 게 마음에 걸린 서하영은 기어코 철백과 함께 훈련장까지 따라온 거다.
한껏 꾸민 만큼 철백이랑 단둘이 놀고 싶을 텐데도.
배려심이 넘치는 서하영의 제안에 평소라면 심심해서라도 따라갔을 테지만, 설천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유는 두 가지.
솔직히 셋이서 놀면 재미있긴 한데 둘이 꽁냥대는 시간을 위해 가끔 자리를 비울 때가 씁쓸하다.
두 번째.
“나 할 거 있으니까 언능 가. 방해하지 말고.”
“그래도…….”
“어허?”
“서 매, 천위도 이렇게까지 말하니 가자.”
“으음……. 알겠어요. 대신 심심해지면 언제든 나와서 찾아요!”
“알았다니까. 휘휘! 빨리 가!”
끝까지 마음에 걸리는지 조금 주저하는 걸음으로 훈련장을 나서는 서하영을 뒤로한 채 설천위는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천위, 무언가 바뀌었구나.]
[대체 무슨 기묘한 힘이 네게 깃든 건지 모르겠군.]
설천위를 설천위보다 더 잘 아는 혼들의 반응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천위가 강해졌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의문이 혼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이.
“후읍.”
가볍게 숨을 들이쉰 설천위는 천천히 도를 뽑았다.
검을 뽑아도 상관없지만, 이번 승급전에 썼던 것이 도(刀)인지라 도(刀)를 꺼냈다.
그리고.
“흩날려 피어라, 소령연화(燒靈燃枠).”
이윽고 설천위의 도에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흩날리듯, 도를 휘감는 기운.
그것은 도기(刀氣)라 부르는 기운과도 달랐으며.
영력(靈力)과도 달랐다.
그 기운은.
[……강기(罡氣)?]
[아니, 다르구나.]
현태중의 경악에 천마가 부정한다.
[이건 강기(罡氣)의 극(極).]
팽후가 설천위와의 비무 끝에 보여 준 진정한 화경(化境)의 상징.
화강(化罡).
스스로의 길을 강기에 담아 낸, 진정한 의미의 화(化).
그렇기에 설천위가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영역.
[……네가, 이걸 어떻게 쓰느냐?]
천마의 두 눈에는 깊은 경악이 담겨 있었다.
그 천마의 경악에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끄륵.”
기절했다.
안개처럼 사라진 화강(化罡)과 함께.
그리고.
“……착각이었나?”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살존마저 고개를 갸웃했다.
* * *
“천위, 왜 다 죽어 가는 표정이냐? 역시 혼자 버려진 게 슬펐던 건가?”
“뭐래.”
저녁 시간.
슬슬 정리되기 시작하는 학관의 축제를 만끽하고 돌아온 친구들을 마주한 설천위는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도 안 슬펐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라.”
“목소리는 죽어 가는데?”
“이건 인마, 다른 사정이 있어.”
[음, 확실히 있긴 했지.]
[설마 그것조차 반쪽짜리일 줄이야.]
[왠지 멋있게 일렁이더니만, 쯧쯧.]
혀를 차는 혼들의 목소리에 철백을 비롯한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턱을 괸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갑(甲) 승급으로 얻은 하나의 보상.
무려 강기의 강화 버전인 화강(化罡)을 손에 넣었다.
뭐, 사실 맞는 수순이긴 하다.
애초에 갑(甲)이라는 게 화경에 이르러야 가능한 경지이고, 설천위는 바닥부터 시작해 갑(甲)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이 정도 보상이 주어져도 이상할 게 없긴 하다.
문제는…….
‘무슨 소모가……!’
그 유지가 말도 안 되게 힘들다는 것.
일단, 내공의 낭비가 미쳤다.
아까 시험 삼아 잠깐 사용했는데, 순간적으로 엄청난 내공을 사용한 나머지 살짝 내상을 입었을 정도였다.
거기다.
‘영력까지 잡아 처먹네.’
영력의 소모 역시 상당했다.
물론 재능이 더럽게 넘쳐 영력의 부족함은 느껴 본 적 없으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 화강(化罡)이란 것이 자신의 길을 강기에 담아내는 것이다 보니 캐릭터마다 발현되는 방향이 다르다.
심지어 게임에선 성장을 다르게 하면 같은 캐릭터여도 발현되는 화강이 다를 정도였으니까.
아마 설천위라는, 영(靈) 쪽으로 재능이 몰빵된 인간이 화강(化罡)에 도달하면 이런 형태가 되는 거겠지.
영력이 섞인 강기(罡氣).
솔직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앞으로 싸울 적들을 생각하면, 이런 부가 효과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니까.
결과적으로 상당히 좋은 스킬을 얻은 셈이지만…….
‘……쓰질 못하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혼자 스킬을 시험할 때, 설천위가 기절한 건 단순히 내공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혈이 막혀 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경(化境)에 도달하면 자연적으로 뚫리는 임독양맥.
그 혈이 막혀 있어서 본래라면 그곳으로 운기되어야 할 내공이 막히며 생긴 약간의 주화입마로 인해 기절한 것이다.
이건 사용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쓰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후.”
“또 한숨! 그럴 거면 같이 가지!”
“아, 그거 때문이 아니라니까.”
타박하는 서하영에게 힘없이 대꾸한 설천위는 고개를 저으며 훈련장 위에 누웠다.
“됐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말해 보자.”
“올해가 끝나면 졸업, 그다음엔 무림맹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 전에. 졸업이야 뭐 문제없을 테고, 맹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시간이 있잖아.”
유예린은 그 시간을 이곳에서 우리랑 같이 수련하는 데 썼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음, 마침 난 집에 한번 들를 생각이다.”
“……집에?”
“스스로 부끄러워 아예 찾지 못했으니 졸업 전엔 한번 찾아가야겠지.”
아, 그것도 그러네.
하긴 실력이 올라간 뒤로는 워낙 바빠서 아예 집에도 간 적 없구나.
“으음…….”
“저희는 남아서 수련이네요.”
“나도.”
고민하는 서하영과 달리 이미 정해 놓은 게 있다는 듯 주현운과 소윤혜는 즉답했다.
“둘이?”
“……왜요?”
“기억해라. 소 소저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노옴! 내가 두 눈 뜨고 똑바로 지켜보……!]
눈을 부라리는 소백진을 천마와 현태중이 끌고 사라진다.
거, 불쑥불쑥 나타나네.
살짝 긴장해 버린 주현운의 어깨를 쿡쿡 웃으며 소윤혜가 토닥이는 사이.
“저! 결정했어요!”
“응? 뭘?”
갑자기?
“저도 이번에 철 가가를 따라갈 거예요!”
“응? 갑자기?”
“가서 인사드릴 거예요! 철 가가는 저희 아버지께 인사드렸으니까! 저도!”
아.
시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
응.
“나쁘지 않네.”
“천위, 가볍게 말하지 마라.”
“뭐, 어차피 소개해 드릴 거 아니야? 같이 여행도 다녀오면 좋…….”
“조금 떨리니까 설 소협도 같이 가 주세요!”
“내가 왜?!”
“철 가가의 친구잖아요! 어머니께 인사드려야죠!”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너희 둘 사이에 끼어서 가라고?
……그건 싫은데.
설천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자, 서하영이 즉시 철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간절함이 담긴 눈빛.
그 눈빛에 철백이 어찌 이길쏘냐.
“천위, 동생들도 어머니도 널 보고 싶어 한다.”
“아니.”
“너도 본가로 돌아갈 거 아니면 같이 가자.”
“……씁.”
내가 안 돌아갈 걸 어떻게 알고.
아니, 뭐 아버지나 큰어머니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특히 아버지.
아들이 바뀐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챌 만한 인물이니 지금은 좀 가기가…….
“천위.”
“씁, 알았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가면.”
“아자!”
“어휴.”
한껏 좋아하는 서하영.
그 모습에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진짜 졸업이 코앞이네.
* * *
“……진짜 코앞이었네.”
무림학관의 정문.
훈련과 훈련으로 채운 한 학기를 전부 보내고, 졸업하기 직전의 방학을 맞이한 설천위는 짐을 어깨에 걸친 채 하늘을 바라봤다.
철백이랑 서하영을 따라가겠다고 말한 지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왜 벌써?
아직 [소령연화(燒靈燃枠)]의 쓸 만한 사용법도 못 익혔는데?
이 무슨 빠른 시간의 흐름이지?
“천위, 뭐 하나?”
“아니, 세월의 빠름에 감탄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또 쓸데없는 생각은.”
멍하니 서 있는 설천위의 어깨를 솥뚜껑만 한 손으로 툭 친 철백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빨리 가자. 가는 데만 해도 이틀은 걸린다.”
“……그래. 뭐, 가서 어머님 뵙고 인사드리면 좋지 뭐.”
절친의 어머니께 인사드리면 좋지.
그런데.
[이놈 같은 악귀를 데려가도 되나 모르겠군.]
[이놈은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는데 말이야.]
거, 어딘가 어려진 고교생 탐정 같은 취급은 말아 줬으면 하는데.
내가 간 곳에 우연히 사건이 벌어진 거지, 내가 사건을 일으킨 게 아니라고.
……몇 개는 아니지만.
절로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걷기 시작한 설천위.
그리고.
“나 왔다!”
순식간에 철백의 집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에서도 외진, 산 중턱에 위치한 조그마한 집에.
‘……시간 너무 빠른데?’
진짜 뭐 이리 휙휙 지나가냐.
뭔가 말이 안 되는 속도에 설천위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큰오빠아아아!”
엉엉 우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달려와 철백의 품에 안긴다.
“작은오빠가! 작은오빠가……! 흑철파 인간들한테……!”
아!
품에 안긴 꼬마 숙녀의 말에 철백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촤라락.
“흑철파요?”
창을 꺼내 든 서하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새끼들, 잘못 건드렸네?’
내가 화를 낼 틈이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