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267화-갑(甲) (7)
“폭탄.”
“확실히 위험하긴 하지. 하지만 충분한 화력을 가진 폭약이라면 검문에서 걸릴 것 같은데.”
철백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다.
폭탄이란 것이 상당한 위력을 가지긴 하지만, 그만큼 소지하면 발각되기 쉽다.
조잡한 기술력으로 만든 폭탄이 충분한 위력을 내려면 상당한 크기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진천뢰 같은, 시대를 뛰어넘은 위력의 폭탄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괜히 황실에서 폭약을 엄중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위력을 유지한 채 소형화에 성공하면 그만큼 암살에 좋은 물건이 없기에 엄격히 금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니란 말이지.”
“……친선전에 있었죠.”
사람의 품에 넣어 가지고 올 수 있는 수준의 폭약으로 상당한 위력을 냈던 전적이 있다.
“그건 속에 갑옷처럼 폭약을 둘렀기 때문 아닌가? 모르고 보면 몰라도 주의해서 보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터인데.”
학관을 지키는 경비가 친선전에 있었던 일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의심 가는 사람은 당연히 잡아냈을 터.
“음,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몇 명 정도는 못 보고 들어왔을 순 있지만…….”
“한 명도 걸리지 않았다는 건 이상하죠.”
주현운과 소윤혜마저 의견을 덧붙인다.
그건 그래.
일리가 있는 두 사람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느긋하게 소면을 먹고 있는 남궁선을 바라봤다.
“누님 생각은 어때요?”
“응? 뭐? 습격?”
후루룩 빨아들인 면을 입안에 넣고 씹던 남궁선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보가 없을 땐 추측하지 말 것.”
“예?”
“호위의 기본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정보가 없을수록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천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 고개를 갸웃하자 남궁선은 젓가락을 내려놓곤 웃었다.
“그럼 아직 실무를 겪어 보지 못한 우리 새내기들에게 이 누님이 가르침을 좀 내려 줄까?”
후후 웃으며, 탁자 위로 손을 올리는 남궁선.
그 순간.
팅!
철백의 이마에 맞은 젓가락이 튕겨 나갔다.
“예측한 사람?”
예측했냐.
자신이 철백의 이마로 젓가락을 날릴 것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응, 그렇겠지. 아무런 전조도 없었으니까. 가능성은 있었지만.”
솔직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다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못 본 사람?”
또다시 침묵.
남궁선이 젓가락을 던지는 그 순간.
이 자리에서 그 젓가락을 아예 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얼핏 본 건 본 게 아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손을 들어라.]
“봐, 봤거든요?”
“에이! 할아버지도 참! 설 공자가 아무리 그래도 얼핏 보진 않았…….”
“거, 거봐요!”
“……천위, 추하다.”
“아니야! 봤다고!”
……반쪽짜리는 하나 있지만.
설천위의 억울함이 담긴 외침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 후, 겨우 웃음을 멈춘 남궁선이 히히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봤으면 대응할 수 있었지?”
“그렇죠?”
“대상이 철 형이라서 움직이진 않았지만.”
“그래, 그거야.”
모두의 긍정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간식으로 가져온 당과를 입에 넣으며 웃었다.
“우리 무인은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땐 예측하는 것보다 보고 난 뒤에 즉시 대응하는 게 더 빨라.”
“잘못된 예측은 행동의 방향을 제약하고,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행동이 위축된단 말입니까?”
“정답. 철백이, 너는 덩치에 비해 상당히 똑똑하다?”
“덩치에 비해서라뇨. 언니!”
“꺄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볼을 부풀리는 서하영의 모습에 귀여움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남궁선은 다시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할 거면 둘 중 하나만 해.”
“정보를 모으든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든가.”
“그래. 그 둘 중 하나를 하는 것이 호위의 기본이야.”
설천위의 대답에 빙긋 웃은 남궁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떠드는 사이에 다들 가져온 음식을 다 먹어 치웠으니까.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먹는 양이 많으니 뭐, 이 정도야.
“그럼, 다음 노점으로 가 볼까?”
“이번엔 고기를 먹어야겠어요.”
“음, 나도 그럼 이번엔 고기로 하지.”
“형은 아까도 고기 먹지 않았어요?”
“고기는 언제나 옳은 법.”
남궁선을 따라 일어난 주현운과 철백이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며 그 뒤를 따르고.
어깨를 으쓱인 서하영과 소윤혜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가장 늦게 자리에서 일어선 설천위는 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남궁선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찾아라?”
그건 가능할지도?
* * *
첫날의 승급전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 잠룡제.
잠룡제는 일주일 일정으로 축제가 이어졌다.
학생들이 운영하는 노점부터 그들이 계획한 연극, 친선 비무 등등.
꽤나 풍성한 볼거리로 진행되는 잠룡제는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다.
“수익이 엄청납니다.”
“그래?”
잠룡제가 개최된 지 6일째 되는 날.
여태까지의 성과를 모아 온 제갈소의 보고에 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를 요구하던 훈련장이 많았는데, 그것 참 다행이군.”
“그럼 이번 수익은 전부 시설 정비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제갈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팽후는 창밖을 바라봤다.
6일째.
슬슬 사람들이 빠지고 있다.
일반인들이야 학생들이 준비한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아직도 꽤나 남아 있었지만, 무인들은 달랐다.
특히 강한 무인일수록 대체로 바쁘니까.
물론 곤괴처럼 할 일 없는 사람은 와서 느긋하게 즐기는 것 같지만.
듣자 하니, 설천위 쪽 일행이랑 꽤나 붙어 다닌다고 했던가.
손녀가 그렇게 귀엽다던데.
나는 언제쯤 손녀를…….
“학관장님?”
“아아, 미안하군. 제대로 못 들었네.”
“혹시 모를 습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거 말인가.”
일이 바쁜 맹주는 이틀째까지 구경하고 다시 맹으로 복귀했고, 그 외에 수많은 고수들이 몸을 뺐다.
특히 사파 쪽의 고수들은 핵심이 되는 승급전을 봤으니 미련 없이 떠난 이들이 많았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의 재롱을 구경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여하튼 초기에 비해 상당한 전력의 공백이 생긴 지금.
“언제 습격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의견이야.”
팽후는 긍정했다.
제갈소의 의견은 타당했고, 또 습격이 있다면 지금처럼 풀어진 시기가 적당했다.
긴장감이 한껏 풀린 지금만큼 습격하기 좋은 순간이 어디에 있을까.
다만.
“걱정 말게. 자네는 축제의 운영에만 신경 쓰도록.”
“허나…….”
“혈교든 혈사련이든 음지에 있는 조직이라고 한들 그 숫자가 무한한 건 아닐세.”
하물며 자본 또한 무한한 게 아니다.
그들은 광신(狂信)이라는 이름의 착취로 자본을 대체하긴 하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아예 자유로울 순 없었다.
아무리 절제된 식단을 종교적으로 강요한다고 한들, 뭐라도 먹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란 먹고 입고 잘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한 생물이다.
조직이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그 최소한의 욕구를 채우는 데에만 엄청난 금액이 들어간다.
“지금 그들은 우리의 방비를 넘어선 전력을 여기에 보내 얻을 이득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팽후가 저리도 확고하게 대답하니 딱히 할 말이 없어진 제갈소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물러났다.
허나, 대답과 달리 걱정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방을 나가는 제갈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팽후는 작게 웃었다.
저 아이가 참으로 학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느껴진다.
그게 아니라면 저기 밖에 있는 학생들처럼 마음 편하게 이 축제를 즐기고만 있겠지.
다만, 그 걱정이 썩 쓸모 있는 걱정은 아니라는 것뿐이다.
대부분의 강자가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축제.
강자의 빈자리 따윈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지만…….
그 그림자에는 질척한 피 냄새가 감돌고 있다.
“정말, 일 처리 하나는 끝내주는군.”
* * *
[에잉, 이런 일에는 꼭 나만 부려 먹어요.]
아니, 뭐 이번엔 다른 형님들도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설천위의 명령에 학관 순찰을 돌고 있는 암영의적은 혀를 차며 열심히 움직였다.
살아 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공중부양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날아다니길 한참.
[으응?]
수상함을 감지한 암영의적은 쓱 몸을 낮췄다.
그리고.
[이놈 보소?]
움직임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인파 속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옆으로 빠져 움직인다.
마치 남과 몸이 닿아선 안 된다는 듯이.
그것이 타인의 생명을 위해서인지,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놈 찾았군.]
수상한 놈인 건 확실하다.
얘는 돌아가서 천위한테 말해 줘야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암영의적이 슬쩍 멀어져 다음 상대를 찾으려는 그 순간.
“읍?!”
짧은 숨소리와 함께 사람이 사라진다.
자신이 예의 주시했던 인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광경에 두 눈을 크게 뜬 암영의적.
그리고.
[……허어?]
주변에 정녕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암영의적은 헛숨을 들이켰다.
물론, 혼이라서 못 들이쉬지만.
여하튼.
[……아무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인파 속에서 사람을 단숨에 납치할 수 있으면서 극에 이른 신법으로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실력.
심지어 한때 무림 전체에 이름을 떨치던 도적인 자신조차 알아내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딱 한 사람이 남는다.
이 축제에 아직도 남아 있던 것인가.
[현경급 되는 호위는 흔하지 않은데…….]
* * *
“진짜 이러기야?”
“뭐가?”
“아니, 당신 할 일도 없어? 왜 계속 이러고 있냐고?”
설천위의 승급전이 끝나고 필요 없다며 반품된 선물, 언여휘의 인형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불만을 토해 냈다.
“어차피 대규모 습격도 아니었잖아!”
“폭탄을 이용한 습격 행위는 황실의 코털을 건드리겠지.”
“그게 뭐! 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
“아쉽게도 의뢰인과는 상관이 있어서 말이야.”
또 하나 찾아낸 폭탄을 손에 쥔 채 시체를 발로 밀어 치운 살존은 나무에 매달린 언여휘를 바라봤다.
“그러니 슬슬 그만 보내지? 나도 귀찮아지기 시작하는데.”
“흥! 우리만 보내나? 얘는 나도 모르는 쪽이야!”
“하여튼, 쓸모라곤 없는 벌레들이 이렇게 많아요.”
“하! 사람 멱이나 따고 다니면서 돈을 버는 인간이 할 소린가?”
뿌.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언여휘의 인형에 살존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막힐까 봐 쫄아서 술법도 쓰지 않은 술사가 말이 많군.”
“아, 아니거든?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거든?”
“그래야 할 것이야. 너희들의 술법 능력이 그 아이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면, 인형이 아니라 본체가 나무에 걸릴 테니까.”
살벌한 경고와 함께 폭탄을 자신의 부하에게 넘긴 살존은 나무 위로 자리를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언여휘가 매달린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살존.
그녀는 담담한 눈으로 근처에 대기 중인 부하들을 바라봤다.
“움직여. 찾아내. 임무를 완수해.”
“존명!”
고개를 숙이고 다시 흩어지는 부하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살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한 하늘.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이기 시작한 하늘은 참으로 아름답다.
“흥, 대체 얼마나 큰 보수를 받았길래 이렇게 열심이야?”
“보수?”
“학관장이 준 보수!”
“아아!”
언여휘의 말에 피식 웃은 살존은 입꼬리를 올렸다.
“당돌한 인간이지.”
자기 제자를 팔아넘기다니.
설천위와 협상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니.
저번에 설천위와 서로 봐준 부분도 있어서 적당한 금액으로 받아 주려고 했는데.
꽤나 당돌한 보수였지.
뭐, 상관없다.
“나름, 잘 어울리나?”
“뭐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