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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65화 (265/624)

제265화

264화-갑(甲) (4)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길게 생겨난 창상(創傷)에서 오는 아릿한 통증에 팽후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刀)가 가죽과 근육을 베고 지나가며 만들어 낸 알싸한 통증.

배어 나온 피가 옷을 적시며 만들어진 축축한 감각까지.

오랜만이다.

진정으로.

씨익.

“오랜만이구나.”

자신의 바로 코앞에서 그어 내린 도를 회수하고 다시금 거리를 좁히는 설천위를 향해 웃으며 팽후는 자세를 고쳤다.

오른발을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몸의 균형을 낮춘다.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기에, 역으로 공격할 여유가 있던 도를 움직인다.

이대로 휘두르면 단숨에 설천위의 왼팔을 베어 낼 궤적.

강기를 품은 도가 설천위를 노린다.

쾅!!

즉시 도를 세워 그 공격을 막아 낸 설천위의 방어에 팽후는 다시금 입꼬리를 올렸다.

도를 움켜쥔 손에 어찌나 힘이 가해졌는지 근육이 부풀어 오른 것이 느껴질 정도다.

거기다 내공으로 근력까지 끌어올렸는데도.

밀어 낼 수가 없다.

육체적 재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날 이 어린 녀석을.

단련한 세월조차 자신이 적어도 몇 배는 많을 이 어린 후배를.

자신이 힘으로 밀어 낼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대체 얼마 만인가.

나보다 작은 사람에게 힘으로 이길 수 없다고 느낀 것이.

맹주(盟主)를 상대할 때 외엔 처음인가.

후에 철백이랑 손을 섞으면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이 자리에서 겪게 되다니.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도를 회수한 팽후는 망설임 없이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일격.

쩡!!

그 말도 안 되는 근력을 바탕으로 제공권을 구축하고 지키는 설천위의 도(刀)가 어김없이 팽후의 도(刀)를 막아 낸다.

그런데,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쩡!

팽후가 도를 회수하기 무섭게, 저돌적으로 파고든 설천위의 도가 팽후의 방어를 두들긴다.

조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방어에 집중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공방.

거의 일대일로 공격과 방어를 서로 교환한다.

이젠 완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선 두 사람은 오로지 도만을 움직이고 있었다.

베고 막고.

베고 막고.

베고 베고.

베고 베고.

공격과 방어만을 반복하다가 이내 공격만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방어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

오로지 공격만이 이어진다.

팽후의 도(刀)는 패도적인 움직임과 별개로 촘촘하게 짜인 정교함을 지니고 있었다.

높은 수준의 무(武)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듯, 두 가지 이상의 특징을 고스란히 품는 기적을 실천해 내고 있었다.

반면, 설천위의 도는 그저 한없이 날카로웠다.

팽후의 공격을 베고, 베고, 또 베는 것뿐.

그런데도 촘촘하기 그지없는 팽후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한 번 도의 궤적을 꺾을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설천위의 근육들.

오로지 힘 하나만으로 속도를 극한까지 쥐어짜서 팽후가 펼쳐 내는 무(武)의 깊이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무식하고, 비현실적인 방법이지만.

그걸 해낼 수 있다면, 우직하고 현실적인 것이 된다.

도와 도가 맞물리며 나는 소리에서 어느새 소음이 사라졌다.

작게 쇳소리가 들리고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의 도가 바람에 떨려 나는 소리.

어느 순간부터.

“닿지 않는군.”

두 사람의 도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어졌다.

남궁선의 담백한 한 마디에 주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물리기 시작했네요.”

“아.”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주현운의 평에 비무를 보며 뭔가 간질거리던 부분이 해소된 서하영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러네! 어느새 공방이 서로 일치했네?”

“설천위가 어떤 식으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살짝 말꼬리를 흐리며 남궁선은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의 무식한 신체 능력이 반쪽짜리 무(武)를 채워 줄 수 있는 수준은 된다는 소리지.”

그저 익힌 대로밖에 펼칠 수 없는 반쪽짜리 무(武)로 화경급의 고수와 저리도 박빙으로 싸우다니.

“시간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능력이지만…… 장난 없네.”

분명 그리 긴 시간을 유지할 수 없는 근력이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인간의 육체란 원래 활동의 한계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설천위가 저 상태에서 다른 혼마저 다룰 수 있다면?

저 신체 능력에 진정한 화경급의 무(武)가 더해진다면, 글쎄…….

웬만한 화경급 고수라도 쉽사리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수준일 것 같은데?

고작 몇 달 못 본 사이에 이뤄 낸 설천위의 압도적인 성장에 남궁선이 혀를 내두르는 사이.

팽후와 설천위의 비무는 더욱더 격렬해졌다.

극한까지 압축된 예기가 서로 충돌하며 비무대에 상흔을 남긴다.

베고 또 벤다.

대체 이 전투는 언제쯤 끝날까.

아니, 빨리 끝나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라면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가 됐을 때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 사람이 거리를 벌렸다.

“……학관장이 물러났어.”

거리를 벌린 사람의 정체는 팽후.

그가 이제 세는 것조차 힘든 무수한 공방 속에서 먼저 손해를 감수하고 몸을 뺀 것이다.

덕분에 멀쩡했던 왼쪽 어깨에도 손바닥만 한 상처가 생긴 상황.

“후, 늙은 몸엔 너무 부담되는 방식이야.”

“완전 멀쩡해 보이는데요.”

꽤나 길게 베어 냈는데도, 피가 바닥으로 흐르지 않는다.

내공과 근육으로 완벽하게 지혈해 냈다는 소리.

거리를 벌린 팽후를 한껏 경계하며, 설천위가 다시금 자세를 잡는 그 순간.

멀리 떨어져서 비무를 지켜보던 두 사람이 아쉬움을 삼켰다.

“끝났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성과겠지.”

살존과 무림맹주.

두 사람은 자세를 갖춘 설천위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설천위의 자질이 부족해서?

아니다.

설천위가 실수해서?

음, 이건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설천위가 실수한 것은 맞으나, 그 실수가 그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관장은 여전히 학생에겐 관대하군.”

보통은 이런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보여 주진 않는데 말이야.

맹주의 한마디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 살존의 시선이 팽후를 향한다.

오른손으로 도를 쥔 채, 왼손은 가슴 앞에 붙인 팽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여태까지 그가 보이던 것과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요?”

그 이상함을 가장 먼저 눈치챈 주현운의 물음에 옆에서 지켜보던 남궁선이 혀로 마른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십대 고수.”

“예?”

“왜, 화경급의 고수 다섯이 십대 고수에 이름을 올렸는지 알아?”

“그, 전장에서 같은 화경급을 이긴 전적이 있어서 아닌가요?”

“맞아. 다만, 거기엔 전제 조건이 있어.”

“예?”

전제 조건?

그런 게 있었단 말이야?

남궁선의 뜬금없는 소리에 주현운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옆에서 듣던 철백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압도적인 승리.”

“오, 알고 있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화경급의 고수가 인정하지 않았겠지요.”

“맞아. 정답이야.”

십대 고수(十代高手).

흔히 삼왕이괴(三王二怪)라고 불리는 그들은 증명해 냈다.

자신들은 다른 화경급 고수와는 격이 다르다고.

같은 급 안에서도 한 단계 우위에 있다고.

당연히 도왕(刀王)이라 불리는 팽후 또한 증명해 냈다.

“설천위.”

가슴 앞으로 당겼던 왼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으며 팽후는 설천위를 향해 웃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갑으로의 승급을 인정한다.”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는데, 먼저 승급을 인정한 팽후.

그 모습에 설천위는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단숨에 힘을 끌어올렸다.

그 모습에 입꼬리를 비튼 팽후는 한마디를 덧붙인 후 움직였다.

“그러니, 죽지 말거라.”

그리고 벼락이 찢어졌다.

* * *

“……뒈질 것 같다.”

약제당.

몸 곳곳에 붕대를 감은 설천위가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천장…….

아, 갑이 되어 여기 들어온 적이 없어서 익숙하진 않구나.

거의 처음 보는 낯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죽지 말라는 팽후의 친절한 경고와 함께 뿌려진 벼락.

흔히들 벼락처럼 떨어지는 공격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도(刀)는 진정 벼락 그 자체였다.

뇌기를 머금은 도가 아찔한 속도로 나아간다.

팽후가 쓰던 적당히 허와 실이 섞여 있던 공격과는 전혀 다른, 오로지 속도와 강함만을 품은 일격.

허실 따윈 없었다.

어차피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막힌 뒤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 공격.

그야말로 극한의 일격.

심지어 뿌려진 순간부터 앞서 나가는 벼락을 뒤따라온 도가 베면서 그 벼락이 흩어졌다.

뇌기의 성질을 품은 강기를 흩뿌리는 초식이라니.

벼락을 뿜어내고, 스스로 그 벼락을 찢어 내는 초식.

그걸 피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알고도 못 피했네.’

게임에서 한 번 봤던 초식인데 말이지.

실제로 당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리는 통증에 혀를 차며 설천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경호?”

“그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임무네요.”

“잘 어울려? 처음 듣는 반응인데?”

후후후 웃으며, 설천위의 침대에 걸터앉은 살존은 이곳저곳에 붕대를 감은 설천위의 몸을 살폈다.

“응, 멀쩡하네?”

“어디가요?”

“너, 기이한 회복 능력이 있잖아?”

“……현경 정도 되면 관찰력도 뛰어나나요?”

“전투에 관한 것만?”

아, 하긴 그것도 그런가?

“그나저나 제 친구들도 아직 안 들어왔는데, 이렇게 먼저 오신 걸 보면…….”

“학관장이 협력해 줬어. 맹주도 눈감아 줬고. 내가 오늘 일 좀 했거든.”

어쩐지 어디서 피 냄새가 나더라.

아무런 소란도 없이 정리됐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지만, 역시 현경이라고 해야 하나.

상대도 현경급 고수가 이곳을 지킬 줄은 몰랐을 테니 통할 리가 없었겠지.

“자, 그럼 너는 어울린다고 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경호까지 하면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뭘까?”

“……능력 확인이요?”

“정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미소와 함께 설천위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했지?”

“뭐, 그렇죠?”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겠어.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럼 저야 다행이고요.

안심하면서도 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이어질 살존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두 가지야.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응.”

“첫째는 지금도 할 수 있지만, 둘째는 지금 당장은 힘들어요.”

“응.”

“그리고 아시다시피, 둘째가 해결이 안 되면 첫째도 해결이 안 되죠.”

“응.”

“……화나셨어요?”

“아니?”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표정이 변화가 없잖아.

왜 그래요. 누님, 무섭게.

살짝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긴장감에 작게 헛기침을 한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갖고 있던 패를 먼저 꺼냈다.

괜히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다간 정말로 배가 째질 수도 있으니까.

“응급조치는 가능합니다. 이미 한 번 비슷한 병을 치료한 경험도 있고요.”

“곤괴의 손녀? 들었어.”

“듣고도 찾아오시지 않은 이유는요?”

“비슷한 병이지만, 그 궤가 완전히 다르니까.”

천음절맥(天陰絶脈).

그 특징은 절맥으로 인한 음기가 머리에 쌓여서 상단전에 여러 가지로 악영향을 끼쳐서 두통부터 시작해 심하면 환각, 정신착란까지도 일으키는 병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음기가 상단전에 끼친 영향으로 조악하나마 영안을 개안하게 된다는 것.

정신이 불안한 상태에서 악귀들이 꼬이면 꾐에 넘어가기 쉽다.

물론, 병만 극복한다면 무공이든 술법이든 상당한 재능을 보이기에 천음지체(天陰之體)라고도 부른다.

살존이 언여휘의 의뢰를 받아들였던 이유.

그것은 살려야 할 대상은 인간이나, 죽여야 할 대상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업(業)의 연쇄.

세는 것조차 힘든 죽음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죗값.

허나,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받은 죗값.

“더 길게 말하지 않을게.”

평상시의 웃음조차 흐려진 가라앉은 얼굴로, 살존은 설천위를 향해 물었다.

“너는 재해(災害)를 죽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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