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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62화 (262/624)

제262화

261화-갑(甲) (1)

만반(萬般)이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그 대답에 팽후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 앞에서 부족하지 않다고 말하는 젊은이는 그리 흔하지 않은데 말이야.”

대결 앞에 보이는 겸손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상대를 띄워 주기 위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패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다.

아, 팽 대협이 너무 뛰어나서 제가 뭘 준비한다고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뿐입니다.

그런 시시한 대답만을 듣다 보니, 직접 가르침을 줬던 학생의 숫자가 상당히 줄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껍다.

“에이, 흔한 녀석이었으면 여기에 있지도 않겠죠.”

저리도 당당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도(刀)를 겨누는 어린 후학의 모습이.

“마음껏 펼쳐 봐라.”

“예. 마음껏 해 보겠습니다.”

선수의 양보.

도를 어깨에 걸친 채 담담히 웃는 팽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그를 향해 겨눴던 도를 당겼다.

그리고.

벤다.

스무 걸음은 떨어졌을 것 같은 거리에서.

팽후를 향해 도를 내리그었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그 행동에 몇몇 관중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쩡!!

쇠가 쪼개지는 것 같은 강렬한 소음에 경기장 안이 들썩인다.

몸을 찌르르 울리는 충격에 몇몇 관중이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그들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담겼다.

아까까지 어깨에 도를 걸치고 있던 팽후가 어느새 도를 자신의 앞에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목을 노리는 가로 베기를 막는 데 주로 쓰이는 자세.

가슴부터 머리까지, 올곧게 선 도가 부르르 떨린다.

설천위가 사용하는 얇은 도신의 도와는 다른, 두툼한 도신의 대도(大刀)가 부르르 떨릴 정도의 위력.

“훌륭하다.”

그 일격에 팽후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검기를 날린 것이 대단해서?

아니다.

그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갑(甲) 승급전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다.

칭찬의 이유는 간단하다.

깔끔했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겠으나, 진정 독한 배움이로구나.”

사람에겐 자신만의 기질이 있다.

같은 검법을 배우고 도법을 배워도 사람마다 쓰는 결이 다르다.

주로 연계하는 초식의 순서가 다르고, 자주 쓰는 초식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게 취향이 가미되어 무공은 변화한다.

문제는 그 변화가 꼭 발전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문파에서는 기초를 중요시한다.

개인의 취향이 가미된 무공만이 전해지면 처음 무공을 만들어 퍼트린 대종사의 뜻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기본을 다지고, 그 뜻을 알고 난 뒤에 자신의 몸에 맞게 바꿔 가는 것.

그것이 무를 쌓는 기본이다.

그런데.

분명 설천위가 쓰는 도법과 소윤혜가 쓰는 도법은 같은데도 그 결이 다르다.

아마 도법의 수준으로만 보면 소윤혜가 더 높을 것이다.

소윤혜는 자신만의 도(刀)를 서서히 만들어 가기 시작한 재능 있는 천재니까.

반면, 설천위의 도는?

“참으로 독해.”

설천위만의 기질이 없다.

아예 다른 사람의 도(刀)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재능이 없는 자의 취향은 편한 길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버리고, 자신이 그나마 따라 하기 쉬운 것들만을 골라 가며 편식하는 편한 길.

그 과정에서 무공의 위력은 크게 약화되고, 그 본의(本意)는 조금씩 끊어진다.

그렇게 약해지는 것이 재능 없는 자의 무공이거늘.

설천위를 가르친 사람은 그 취향을 아예 없애 버렸다.

철저하게 기초로만 다져진 무(武).

지독한 기초 훈련으로 쌓은 다리와 허리의 힘.

끝없이 수정하고 수정하며 근육에 새겨진 궤적.

그것들이 합쳐져.

“후.”

설천위는 재능을 극복했다.

재능을 뛰어넘는 무(武)를 손에 넣었다.

“역시 안 통하네요.”

도를 늘어트린 채 평온하게 호흡을 가라앉힌 설천위는 자신을 칭찬하는 팽후를 보며 웃었다.

“아직도 비검기(飛劍氣)는 어색하네요.”

“확실히 위력이 부족했다.”

도에 남아 있던 충격의 편린을 가볍게 손을 털어 해소해 낸 후 고개를 끄덕인 팽후는 도를 들어 설천위를 향해 겨눴다.

“그러니 증명하거라. 그 부족함마저도 채울 수 있음을.”

* * *

“괴물이네.”

“이럴 땐 괴물이 아니라 대견하다고 하는 것이다.”

비무대가 훤히 보이는 높은 전각의 지붕 위.

느긋하게 앉아 곰방대를 피우던 살존은 자신의 감탄에 참견하는 무림맹주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표현으로 충분한가?”

팽후의 증명하라는 말에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설천위.

저 모습이 대견하다는 평으로 가능한가?

“저 아이가 저 도(刀)를 배운 것이 이제 겨우 2년 됐다고 들었는데?”

“노력만으로 저리 성장했다는 것이니 칭찬해 줘야 마땅하겠지.”

고개를 저은 맹주는 담담한 눈으로 살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수십 명을 죽이고 온 사람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향긋한 향이 흘러나오는 여자.

위험하기 그지없다.

허나.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살존에게서 시선을 거둔 맹주는 다시 비무대 위를 바라봤다.

때마침, 설천위가 자세를 갖추는 것이 보였다.

상단 자세.

도(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내려치기를 할 때의 자세.

허점투성이인 그 자세를 팽후 앞에서 선보이는 그 용기에 감탄해야 할까, 아님 그 오만에 한탄해야 할까.

맹주가 무어라고 생각을 채 정하기도 전에 설천위가 걸음을 뗐다.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힌다.

순식간에 팽후의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격.

위에서 아래로.

지켜보던 맹주조차도 감탄할 정도의 일격이다.

빨라서?

아니다.

속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얇은 도신의 도를 쓰는 것에 비하면,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위력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그 위력에 감탄하기엔 도에 담긴 힘이 썩 대단치는 않았다.

그렇다면, 맹주는 무엇에 감탄했는가.

쾅!

자연스러움이다.

팽후조차 아주 조금 반응이 느려질 정도의 자연스러움.

베이는 사람조차 베이는지 모를 정도의 자연스러움.

“광기로구나!”

옆에서 들리는 살존의 감탄에 맹주는 차마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러했으니까.

그야말로 광기(狂氣)로 만들어 낸 일격이다.

뼈를 깎는 기초 훈련의 결과.

자연스러움이란 숙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행동인 것처럼 몸에 배려면, 그 반복하는 횟수의 요구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분명 설천위는 2년이라는 시간 만에 그 자연스러움을 몸에 새길 만큼 재능이 없었을 터인데.

튕겨 나온 도(刀)를 당기며 재차 공격을 이어 가는 설천위.

그를 바라보는 맹주의 눈이 서서히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손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

그 순간의 일격을 쳐 낸 팽후의 도(刀)에 담긴, 상상을 초월한 거력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이해가 됐다.

육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회복을 사용하며 휴식을 취할 때마다 내면에 들어가서 했던 수련.

혼들에게서 배우면서 여력이 되는 혼과 대련까지 진행했던 심상 수련.

그 수련에서 혼들은 말했다.

팽후와의 대련은 자신들과 했던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다른 대련이 될 거라고.

자신들이 흉내는 내줄 수 있으나 그의 도(刀)는 분명 설천위, 네가 겪어 보지 못한 것일 거라고.

그 말의 의미를 이제 확실히 알겠다.

‘강하네.’

강하다.

팽가의 도는 패도(覇刀)의 성향을 띤, 강함을 중시하는 도(刀).

부드러움보다는 속도와 힘을 중시하는 도법이다.

베어 내지 못하니 그 충격이 상당했다.

물론.

“흡!”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지만.

허리를 비틀고 등 근육을 조인다.

튕겨 나온 도를 당기며 설천위는 두 다리에 힘을 더했다.

상대가 강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죄인의 죄가 깊으냐 얕으냐를 따지지 않는 것과 같다.

무엇이 됐든, 이 도(刀)가 품은 것은 최후의 자비.

그저 아무런 고통도 없이 베어 내는 것뿐이다.

쾅!!

또다시 휘두른 설천위의 도가 팽후의 방어에 튕겨 나온다.

도(刀)와 도(刀)가 충돌한 것이라곤 도저히 믿기 힘든 폭음.

몇몇 관중들이 참지 못하고 귀를 틀어막았지만, 공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설천위가 휘두르면 팽후가 튕겨 내고.

튕겨 나간 도를 설천위가 경이로운 근력으로 붙잡아 다시 휘두르고.

또 튕겨 내고.

또 휘두르고.

반복되는 공방.

그 공방에 지루해지기도 전에 몇몇 사람들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왜 똑같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란 말이야?”

옆 사람의 중얼거림에 반응한 이가 놀란다.

그리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첫 일격부터 몇 번째 이어지는지 모를 지금의 공격까지.

설천위의 자세는 한결같았다.

마치 허수아비를 향해 도를 휘두르는 것처럼.

상대가 팽후인데.

도를 들고 내려치는 자세가 앞선 공격과 똑같아,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관중석에서 서서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몇 사람이 눈치챘던 것을 이제 관중석에 있는 대부분이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인은 신기함에 감탄을 하고.

무인은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경악을 한다.

‘……미친!’

저 광경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지 짐작한 이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대체 얼마나 기초를 반복했으면.

아니, 대체 얼마나 저 자세를 반복했으면 저런 일이 가능하지?

쾅! 쾅!

어느새 도를 내려치는 주기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자세는 아까와 똑같다.

변한 것이 없는데,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다.

설천위가 팽후가 만들어 내는 반탄력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광경.

지켜보던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공방 속에서.

설천위의 도를 몇 번이나 쳐 내던 팽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 아들이 자네의 반만이라도 기초를 닦았다면, 그놈도 을(乙) 정도는 했을 터인데.”

웃으며 혀를 차는 팽후의 모습엔 여유가 넘쳤다.

그리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대답 없이 더욱더 날카롭게 도를 세웠다.

대답할 여유?

그런 게 어디 있는가.

팽후는 지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공격을 전부 쳐 내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자, 그럼 자네가 얼마나 훈련을 독하게 쌓았는지 보았으니 이젠 그 성과를 확인할 차례군.”

빙긋 웃는 팽후의 모습과 함께, 설천위의 공격이 무음(無音) 속에서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흘려졌다.

원을 그리며 회전한 팽후의 도가 설천위의 도를 끌고 비무대 바닥에 닿는다.

“이젠 막아 보게.”

짧은 경고.

그와 함께 설천위의 도를 비무대 바닥에 닿게 했던 팽후의 도가 움직인다.

벼락.

그런 말이 절로 떠오르는 강력한 일격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

한번 팽후의 도에 깔렸기에 그의 도보다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는 설천위의 도가 그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아, 예전이라면 망설임 없이 도(刀)를 놓고 물러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검도 있고, 주먹도 있으니까.

그러나.

설천위는 도를 놓지 않았다.

팽후의 도를 따라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분명, 소백진의 도(刀)는 오로지 처형인의 목을 베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刀)다.

그 시작은 실전성 따윈 없는, 반쪽짜리 무(武)였다.

허나.

소백진은 젊은 시절 무림으로 나왔고, 자신의 무(武)를 갈고닦아 화경에 올랐다.

노년에는 다리가 아픈 손녀가 쓸 수 있게 그것을 개조했고.

손녀에게 내공을 넘겨준 자신도 쓸 수 있는 형태로 개조했다.

재능이 없는 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무(武)를 해석하면 그것은 퇴보하는 법이지만.

재능이 있는 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무(武)를 해석하면 그것은 또 다른 발전이다.

쩡!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방어조차 상대의 공격을 베어 내는 형태로 완성된 참(斬)의 궁극.

당기는 것과 동시에 팽후의 공격을 베어 낸 설천위의 도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상단.

또다시 베어 내는 자세로 돌아간 설천위가 담담하게 팽후를 바라봤다.

자신의 일격이, 공격의 궤적이 베여 튕겨 나온 것을 확인한 팽후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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