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60화 (260/624)

제260화

259화-잠룡제 (8)

방어는 순간적이었다.

철백의 어깨에서 검이 튕겨 나가고.

그의 왼발이 비무대 바닥에 박히는 순간.

자신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팔을 주현운은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팔이 찢겨 나갈 것 같은 무시무시한 반탄력을 근력으로 억지로 억누른다.

무형의 검을 쥔 손을 최대한 몸 쪽으로 당기고, 팔을 굽힌다.

그 과정에서 근육이 조여지고, 그의 의식을 따라 흐른 내공이 어깨와 팔을 감싼다.

쾅!!

그러나 그 경이로운 반응조차 무색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 주현운의 몸을 마구 뒤흔든다.

남들과 다른 영역에 있는 동체 시력과 인지 능력이 지금의 상황을 주현운에게 알린다.

옆으로 휘두른 철백의 주먹에 맞은 순간, 그 몸은 이미 날아가고 있음을.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혀 비무대의 바닥에 선을 그려 내며 밀려나고 있음을.

콰득!!

깨닫는 순간, 손을 뻗어 바닥에 무형의 검을 박아 넣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검이 아니기에 그 효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어찌 됐든 버티는 데 성공한다.

겨우 장외 직전에 멈춘 주현운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복근과 허리의 힘으로 단숨에 튕기듯 일어난 몸.

한 손으론 땅을 짚고, 한쪽 무릎은 완전히 비무대 바닥에 붙인 채 한껏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닫는다.

‘……금이 갔나?’

땅을 짚은 왼팔에서 강렬한 통증이 올라온다.

시작점은 공격이 적중당한 상박(上膊).

어깨 바로 밑에서 올라오는 통증의 정도가 마냥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황 파악이 끝나고, 고개를 든 주현운은 처참하게 부서진 비무대 위의 상황에 무형의 검을 움켜쥐었다.

“……방금 건 뭐예요?”

“금강(金剛).”

짧은 대답.

무리하게 움직여 생긴 육체의 삐걱거림을 몸을 이리저리 틀며 해소한 철백은 자세를 고친 후 주현운을 바라봤다.

“성공률이 여태껏 1할이 안 됐지.”

“저랑 비무 할 땐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네요.”

“그렇지. 나름 노력은 했는데, 안 되더군.”

주현운과의 짧은 대화.

평소부터 유연하게 관리된 철백의 육체는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충격을 해소해 냈다.

육체가 원 상태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철백이 다시 자세를 잡고.

그를 바라보며 일어선 주현운이 양손으로 검을 쥔 중단 자세로 그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얽히는 그 순간.

쾅!

철백 쪽에서 터진 거대한 소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초가속.

여태까지의 전투와는 다른, 여력을 배제한 철저한 정면 승부.

단숨에 서로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이 충돌한다.

깡!

철백의 주먹이 주현운의 검을 쳐 낸다.

허나, 그 직후 기이한 궤도를 그리며 파고든 주현운의 검이 철백의 오른쪽 가슴을 베고 지나간다.

가슴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을 곱씹으며 철백의 주먹이 주현운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마치 일부러 주현운의 검을 자신의 품으로 유도한 것처럼 이어지는 공격.

하지만, 주현운이라고 그 수를 읽지 못했을까.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몸 전체를 회전시켜 철백의 공격을 피해 낸 주현운은 회전하면서 검을 잡아당겼다.

자연스럽게 주현운의 검이 철백의 목을 경로로 삼는다.

허나.

깡!

이번엔 베지 못하고 튕겨 나온다.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에 베지 못한 것을 직감한 주현운은 본능적으로 다리를 멈췄다.

자연스럽게 철백의 우측을 점하며 거리를 벌리는 것이 정석이지만, 굳이 다리를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흡!!”

쾅!!

이 공격은 피하는 도중에는 막아 낼 수 없으니까.

철백의 왼쪽 팔꿈치를 왼팔로 받아 낸 주현운은 뒤로 뻗은 왼쪽 다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힘을 더했다.

하체의 단단함?

설천위와 철백, 서하영이 그런 식으로 수련하는데 같이 수련하는 자신이라고 하체 단련을 게을리 했겠는가?

이겨 낼 순 없어도 잠깐 버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안 될지도?’

그야말로 바위처럼 밀고 들어오는 팔꿈치에 살짝 마른침을 삼킨 주현운은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흘렸다.

유(柔)의 묘리.

흔히들 화경(化勁)이라 부르는 힘의 사용 방식.

도저히 학생의 실력이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의 화경을 펼친 주현운이 충격을 해소해 내는 사이.

완전히 허리를 트는 데 성공한 철백의 오른손 주먹이 주현운의 안면을 노리고 달려든다.

그야말로 야수와 같은 매서운 공격.

무(武)라는 단어와는 전혀 관계없을 듯한 거칠기 그지없는 기세.

한데.

‘……이런!’

그 속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겨우 왼팔로 막아 낸 팔꿈치가 기묘하게 비틀린다.

화경을 방해하는 불규칙적인 회전.

순간적으로 그런 변화를 주면서 몸을 틀어 다른 공격까지 이어 간다고?

무(武)라는 이름 밖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게 괴물이지 어디 사람인가?

쾅!!

팔꿈치의 힘조차 전부 해소해 내는 데 실패한 채 철백의 오른손 주먹을 마주한 주현운의 몸이 거칠게 튕겨 나간다.

완전히 철백 쪽으로 승기가 기운 것 같은 모습.

철백 본인도 승리가 멀지 않음을 느끼고 땅을 박차려는 그 순간.

촥!

여태까지와는 다른, 명백하게 깊은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다.

극한까지 조여졌던 근육이 풀어지며 일시에 피가 솟구친 것이다.

자신의 어깨에서 솟구쳐 볼을 적시는 피에 철백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주현운을 바라봤다.

“후…….”

휘청거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무형의 검을 겨누는 주현운.

그 입가엔 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의식한 순간, 근육을 조여 순식간에 출혈량을 급격하게 낮춘 철백은 그 모습에 입꼬리를 올렸다.

“날카롭구나!”

“역시, 형님들의 말은 들어서 나쁠 거 없네요.”

웃으며 검을 겨누는 주현운.

조금 전 철백의 오른손 주먹을 막아 내며 완전히 부러진 듯 축 늘어진 왼팔이 흔들린다.

“이런 자리에서 쓰니까 늘긴 느네요.”

“흐하하하하하!!”

소검(燒劍)을 꺼낼 때,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주현운을 보고 호쾌하게 웃은 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 나도 덕분에 늘었다. 이젠 5할 이상이야.”

주현운의 소검(燒劍)조차 막아 낼 수 있는 육체.

그것은 강기(罡氣)를 막아 내는 육체의 첫걸음이다.

그 시작점에 절반이나 도달한 것이다.

만족스러워하는 철백의 미소에 작게 웃은 주현운은 겨눴던 검을 내렸다.

“그럼 다행이고요.”

짧은 대답.

그리고 주현운의 몸은 천천히 바닥을 향해 쓰러진다.

조금 전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이 마치 최선이었다는 듯.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주현운.

그 모습에 심판이 나서려는 그 순간.

“고맙다.”

어느새 그의 앞에 서서 그 몸을 받아 든 철백이 조심스럽게 주현운을 챙겼다.

두 선수의 훈훈한 모습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끓어오르고.

“승자! 철백!!”

심판의 우렁찬 선언과 함께 경기가 마무리됐다.

* * *

“진짜 요즘 애들은 무섭네…….”

“그 요즘 애들 속에 누님도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어쭈? 어딜 맞먹으려 들어?”

설천위를 향해 짧게 눈을 부라린 남궁선은 이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너희 진짜 장난 아니게 수련하는구나?”

“수련광 셋이 모여 있으니 옆에 있는 애들도 따라 할 수밖에요.”

옆에서 자신보다 강하거나 혹은 비등한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초 훈련을 반복하는데, 어찌 안 할 수 있겠는가.

주현운이나 소윤혜는 말할 것도 없고, 잠룡대도 이젠 기초가 꽤 튼튼해졌지.

“이건 기대되네.”

할짝 입술을 핥은 남궁선은 비무대에서 내려가는 철백을 바라봤다.

다급하게 달려온 의원에게 주현운을 넘기고 담담하게 그 뒤를 따라가는 철백의 모습.

“이 승급전이 전부 단판 경기라는 게 아쉬울 정도야.”

“조금 더 보고 싶으세요?”

“그럼. 주현운 저 아이는 이제 무리라고 해도 철백은 싸울 수 있잖아?”

“뭐, 그건 그렇죠.”

사실 실력이 비등한 녀석들끼리 싸우면 아주 높은 확률로 둘 다 다음 경기에 지장이 생길 중상을 입으니 단판으로 해 놓은 거지만.

철백은 상당히 특이 케이스지.

아마 다음 경기에 출전해도 잘 싸울 거다.

몸이 워낙 튼튼해서 말이지.

“그나저나 기대되네. 앞선 경기들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말이야.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다음은 누군지 알아?”

“다음 경기는……. 아.”

남궁선의 기대 어린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설천위는 다음 경기 일정을 떠올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다음 경기는 아마 재미없을 걸요? 놀라긴 하겠지만.”

“재미없는데 놀란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비무에서 놀랄 정도의 일이 벌어지면 대체로 재미있지 않나?

남궁선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심판의 안내와 함께 다음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 잠룡제는 첫날에 비무 일정이 몰려 있고, 그다음 날부턴 학생들이 준비한 여러 행사가 이어진다.

잠룡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비무 대회가 맨 처음에 있어서 대부분의 축제와는 명백히 순서가 달랐다.

학관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정을 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듣자 하니 교관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하니까.

“……그 상대는! 앞서 경기를 치렀던 주현운 학생과 마찬가지로 아직 그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던 여걸!! 소윤혜!!”

“오, 윤혜네?”

심판의 소개에 의아해하던 남궁선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윤혜의 도법은 기대할 만하지!”

한껏 들뜬 얼굴.

소윤혜의 도법(刀法)은 그야말로 일절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인지라 예전부터 남궁선이 좋아했다.

서하영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 무기의 천재라고 해야 하나.

물론 소윤혜의 특별함은 다리의 불편함에서 나왔다는 것이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느릿한 걸음으로 비무대 위에 서는 소윤혜를 바라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뭐, 이젠 그런 씁쓸함은 서서히 옅어지고 있지.

“상대는 처음 보는 얼굴이네?”

“황보척이랑 함께 흑룡학관에 갔다가 두들겨 맞고 친선전을 포기했던 친구예요.”

“아!”

처음 보는 얼굴이라니.

당신도 본 적 있을 텐데.

그새 기억에서 없앤 거냐.

겁나 똑똑한 양반이 이러니까 더 무섭네.

얇게 뜬 눈으로 남궁선을 바라본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재미없을 거라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 녀석도 꽤 하는 것 같은데?”

구단(九團)에 들어와도 부대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주 밑에 부단주, 그 밑에 대주, 그리고 그 밑에 부대주라곤 해도 무림맹에 있는 일반 단원이 몇 명인가.

부대주만 해도 상당히 높은 거다.

구단(九團) 소속이 아닌 대(隊)에 들어가면 금세 대주 자리도 노릴 수 있을 테고.

상당히 뛰어난 인재인데.

저 녀석이 재미없는 원인이라니.

설천위의 상당히 각박한 평가에 남궁선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 상대에게로 향했다.

담담하게 도를 뽑은 채 서 있는 소윤혜.

소윤혜의 실력을 경계하는지 신중하게 접근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소윤혜는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반걸음.

반걸음.

아주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상대.

그 지루한 거리 좁히기에 관중에서 야유가 터질 법도 하건만, 경기장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왠지 말을 해선 안 될 것 같은,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소윤혜와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에 도달한 순간.

서걱.

무언가가 베였다.

“거봐요? 제가 재미없을 거라고 했죠?”

* * *

“허허, 그래서 아직도 선물의 정체는 공개할 생각이 없나?”

“흥, 이미 다 막혔을 텐데 무슨 선물?”

어느새 자세를 고쳐 팽후가 주는 술을 받아 마시던 언여휘의 인형은 코웃음을 치며 팽후를 바라봤다.

“숙녀를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술이나 먹이다니, 당신 상당히 악취미네?”

“허허,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게. 자네가 사람 취급을 받을 입장은 아니지 않나?”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돌리는 언여휘의 인형을 바라보며 손에 쥔 술을 단숨에 넘긴 팽후는 기이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경기장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읏차.”

거대한 몸이 일어서자, 그의 허리춤에 매어 있던 도(刀)가 기이한 도명(刀鳴)을 토해 낸다.

애병의 울음에 부드럽게 그 손잡이를 붙잡은 팽후는 입꼬리를 올렸다.

“슬슬, 나도 움직일 때가 된 것 같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