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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43화 (243/624)

제243화

242화-대체 왜 (2)

안개로 변하듯 흐려지는 살존.

그 모습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야귀단주 소국이었다.

저돌적인 돌진.

단숨에 살존을 향해 파고든 그의 도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일렁이기 시작한 살존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것을 막기 위한 선공.

눈을 감았다 뜬,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공격에 흐려지던 살존의 몸이 다시 선명해진다.

갑작스러운 공방에 구경꾼들이 미처 상황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살존은 담담하게 비수를 휘둘렀다.

손바닥만 한 날을 가진 비수가 소국의 도를 튕겨 낸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놀랄 새도 없이, 그녀의 옆을 파고든 무진의 주먹이 살존의 왼손에 막힌다.

“한 명을 상대로 협공이라니, 당신들 사이가 너무 좋은 거 아니야?”

두 화경급 고수의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 내는 방어 능력.

그 모습을 침착하게 두 눈에 담은 형왕은 오랜만에 곤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강하다.

저기 구경하고 있는 학관의 아이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빠른 공방이 단숨에 지나갔는데, 저리도 여유롭다.

‘높군.’

오존(五尊)이라는 벽.

그 벽이 높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리도 높을 줄이야.

소국과 무진의 공격을 막아 낸 살존에게서 빈틈을 찾아볼 수도 없다는 사실에 형왕은 쓰게 웃으며 발을 뗐다.

쓰게 웃는 것과 달리, 신법을 극한까지 발휘한 그 몸은 단숨에 살존을 향해 달려든다.

소국과 무진이 막히며 튕겨 나온 틈.

막힐 것이 뻔히 보이는 그 틈으로 곤봉을 비집어 넣는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빈틈을 만들어 내면 된다.

자신만의 능력으론 부족하지만, 이 자리엔…….

“흡!”

자신과 같은 수준의 강자가 셋이나 더 있지 않은가.

황실에서도 이런 강자들은 한자리에 잘 모이지 않거늘.

쾅!!

형왕의 곤봉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뒤를 노리고 달려든 곤괴의 주먹까지 발로 차낸 살존의 몸이 또다시 흐려진다.

저대로 놔둬선 안 된다.

본능이 경고하는 대로 튕겨 나간 도를 다잡은 소국이 다시금 도를 휘둘렀다.

내려찍고, 가로로 베고, 사선으로 베고, 조금 더 기울여서 베고.

베고 또 벤다.

찰나의 순간, 대체 몇 번을 휘둘렀는지 세는 것조차 힘든 빠른 공격이 살존을 두들겼다.

허나.

“응, 아쉽네.”

모든 공격이 다 막힌다.

고작 한 뼘 정도의 날 길이를 가진 비수에.

심지어 소국의 공격 사이에 틈을 노린 무진의 주먹조차 전부 피하거나 쳐 냈다.

그야말로 완벽에 이른 제공권.

앞선 경기에 나왔던 시백의 제공권이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야말로 사각이라곤 전혀 없는 진정한 영역의 지배.

소국과 무진의 공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반걸음 떨어져 있던 형왕과 곤괴마저 미간을 찡그릴 정도의 완벽한 방어.

암살자라고 알려진 살존의 근접 전투 능력이 화경급 고수를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증거였다.

“나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미소와 함께 살존의 몸이 또다시 흐려지기 시작한다.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인식에서 벗어나는 은신.

그녀의 모습을 놓치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형왕과 곤괴 또한 움직였다.

어떻게든 저 은신을 방해해야 한다.

그래야 합공을 하든 뭘 하든…….

달려든 순간, 강렬한 예기가 두 사람을 밀어낸다.

본능적으로 곤봉과 양팔로 가슴과 목을 가린 순간.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아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베였다.’

양쪽 허벅지를 베였다.

완벽한 은신의 묘리가 담긴 참격이다.

살의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은밀하게 노린 공격.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암살자로서의 능력 또한 이미 초인의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위험하다.

허나.

“흡!”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순 없었다.

허벅지의 근육을 조이는 것과 동시에 내공으로 출혈을 막은 곤괴는 단숨에 재가속을 했다.

살존을 향해 파고들어 주먹을 크게 휘두른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곤괴의 주먹을 비수로 쳐 내며 살존은 웃었다.

“시간 초과.”

짧은 미소와 함께, 살존의 몸이 급격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은신술은 마치 연습이었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존재감.

이윽고.

“……미친.”

사라졌다.

화경급 고수 넷이 지켜보는 가운데.

완전히.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구경하던 누군가가 허탈한 소리를 흘렸고.

그 한 마디가 비무대 위로 작게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캉!!

날카로운 금속성이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모았다.

그리고 비무대의 외곽.

화경급 고수들의 포위를 벗어난 지점에서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놀란 표정을 지은 살존이 자신을 막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얘 좀 봐?”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자신을 막은 유예린을 보며 살존은 이내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얘야, 어떻게 알았니?”

“보입니다.”

“응, 보이는구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비수를 가볍게 돌렸다.

“아무래도 도망치려면 널 치울 필요가 있겠구나.”

부드러운 미소.

그와 함께 유예린은 즉각 검을 움직였다.

목, 가슴, 배를 노리는 공격에 반응한다.

아니, 사실 반응했다기보다는 그저 움직였다는 말이 맞았다.

보고, 혹은 느끼고 반응하기엔 그 공격 속도가 너무도 빨랐으니까.

그렇기에.

“응, 이 정도면 되려나?”

유예린의 배에 구멍을 만들어 낸 살존은 웃으며 몸을 돌렸다.

“하!!”

“참, 너도 있었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백유의 공격을 피해 마찬가지로 그녀의 복부를 비수로 꿰뚫은 살존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두 아이가 길을 막는 사이, 어느새 다시 네 사람에게 포위됐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질척인다.”

“개소리하지 마라.”

“아미타불…….”

소국의 솔직한 반응과 화를 억누르는 무진의 불호.

나온 결과물은 다르나, 그 안에 담긴 공통의 감정을 읽은 살존은 고개를 저었다.

“분노만으론 해결이 안 되는 게 현실인데.”

달려드는 소국의 도를 쳐 내며, 살존은 혀를 찼다.

이래서 이 의뢰는 받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싫다.’

황실도 그렇고, 정파나 사파도 한동안 귀찮게 굴겠네.

혀를 차며 네 사람 사이에서 벗어날 길을 찾던 살존은 자신도 모르게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

살존의 이상한 반응에 다른 네 사람조차 고개를 돌려 살존의 시선을 좇았다.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조차 놀라 한곳을 바라봤다.

비무대 위.

축 늘어진 상태로 힘겹게 선 설천위가 검을 쥔 채 살존을 바라봤다.

내상을 입고 운기하는 도중에 당한 일격이다.

일어서기는커녕 심각한 내상으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텐데?

“후.”

한 호흡을 내뱉으며 한 걸음을 뗀 설천위는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발걸음의 끝.

“……왜 무리하고 그러냐.”

복부를 꿰뚫려 무릎을 꿇고 있던 유예린의 앞에 도착한 그는 품에서 약을 꺼내 그녀를 살폈다.

그리고.

“너도 왜 무리하고 그러냐.”

그 근처에 있던 백유에게도 약을 발라 준 설천위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을 둘러봤다.

“왜, 배때기에 구멍 나고 움직이는 사람 처음 보나?”

아니, 그건 아닌데.

운기하다가 배때기에 구멍 나고 움직이는 녀석은 처음 보는데?

“천위, 괜찮나?”

유예린이나 백유처럼 틈을 파고들진 못했으나 뭐라도 하려고 비무대 위로 올라왔던 철백의 물음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안 괜찮아.”

“그럼 고개를 저어야지.”

“이거 힘없어서 끄덕여진 거거든.”

“일단, 죽을 걱정은 없어 보이는군.”

농담까지 던지는 설천위의 모습에 피식 웃은 철백은 그대로 걸어와 유예린과 백유 사이에 주저앉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땡큐.”

두 사람을 맡아 주겠다고 선언한 철백을 뒤로한 채, 설천위는 비척거리며 살존을 향해 걸어갔다.

“누님.”

“……왜 그러니?”

“그 녀석들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도 누님이 원하는 건 못 얻습니다.”

“…….”

침묵.

한순간에 날카로워진 살존의 눈빛에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다음엔 부탁할 대상을 잘 찾으세요.”

“너같이 믿음직한 남자로?”

“그것도 나쁘지 않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유 매랑 백유를 살려 준 목숨값으로 알려 드리는 겁니다.”

“그럴 생각으로 살려 준 건 아닌데.”

살려 줬다.

그 말에 살존은 작게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얘는 내가 봐주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호기심이 샘솟았지만,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다른 화경급 고수들을 보니 아무래도 지금은 물러날 때인 것 같다.

이대로 가면.

‘둘 정도는 죽여야 도망칠 수 있겠어.’

그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지.

무엇보다.

‘……싸늘해.’

이쪽을 바라보는 설천위에게서 묘한 한기가 느껴진다.

조금 경계심을 담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보던 살존의 몸이 빠르게 흐려진다.

살존과 설천위의 대화에 그녀를 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른 이들이 고민하던 그때.

“보내 주세요.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공격당한 건 너다. 설천위.”

짜증이 담긴 소국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에 구멍이 뚫린 건 저죠. 그러니까 보내 주세요. 다른 사람은 안 노릴 테니까.”

“암살이나 하는 녀석을 믿으라고?”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 버린 살존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소국을 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이미 반 이상은 죽었어요.”

첫 공격에서 애초에 전력에서 빠져나간 설천위가 아닌, 네 사람의 화경급 고수를 노렸다면.

그들에게 포위되지 않고 하나씩 쓰러트렸다면.

전멸도 가능했다.

이 무림에서 단신으로 오존(五尊)의 자리에 오른 암살자.

그 강함은 고작 단주급으로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듯 주위를 경계하는 이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다시 유예린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왜 사과를 해.”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유예린을 보고 작게 웃은 설천위는 그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곤 한 곳을 바라봤다.

비무대 아래에서 떨고 있는 사내.

조금 전 재상의 명령으로 영약을 가져온 사내다.

“그 약 좀 주실래요?”

“이, 이거 말이냐?”

“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철백을 향해 눈짓했다.

“두 사람 다 치명상은 아니니까 부탁 좀 하자.”

“맡겨 둬라.”

고개를 끄덕이는 철백을 보며 웃은 설천위는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사내에게서 목갑을 받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목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청아한 향이 퍼지는 영약.

소림의 대환단 같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뛰어난 영약임은 확실했다.

주르륵.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 낸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영약을 꺼냈다.

“나쁜 누님이야.”

왜 나만 죽일 생각으로 찌른 걸까.

유예린이랑 백유는 장기를 피해서 찔러 준 주제에.

나만 진심으로 찔렀어.

고개를 내린 설천위는 목갑에 담긴 영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걸 먹이기 위해서겠지.

언여휘의 계략인지 아니면…….

고개를 돌려 재상을 바라본 설천위는 천천히 영약을 집어 들었다.

황실의 계략이라면 솔직히 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 이상은 진짜 위험하다.

내공과 술법으로 겨우 출혈을 잡고 부동심을 이용한 정신력으로 멀쩡한 척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몸은 한계에 도달했다.

겉으로 나오는 출혈은 막았다고 해도 장기 내부에서 일어난 출혈은 막을 수 없으니까.

이대로 가면 10분, 아니 5분이면 죽는다.

진짜 오랜만에 겪는 목숨의 위기네.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은 설천위는 영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무슨 짓을 해 놨을지 모르니 여러모로 조치를 취하고 먹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흡수하면서 대응하는 수밖에.

* * *

“흐응.”

비무대에서 한참 떨어진 언덕 위의 나무.

그곳에 앉아 비무대의 상황을 지켜보던 언여휘는 흥미롭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쪽이 손을 써 뒀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

뭐가 됐든 폭탄을 이용한 집단 자살 공격으로 설천위의 틈을 만들어 내려는 계획은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첫 공격에선 두 가지 목적 중 하나만 달성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렇게 나름 성공적으로 일이 전개되니 오히려 더 불안하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이번 한 번으로 손에 넣을 생각도 아니었고.

어깨를 으쓱인 언여휘는 나무에서 가볍게 튕겨 나와 땅을 밟고 섰다.

“천천히 먹어 줄게. 아가야.”

물론, 경쟁자가 많아서 고생은 하겠지만.

어떻게든 삼켜 줄게.

비무대 위를 바라보는 언여휘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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