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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42화 (242/624)

제242화

241화-대체 왜 (1)

거창한 소음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머리 위에 생겨난 네모에서 관이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떨어졌다기보다는 생겨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지만…….

‘……중요하지 않군.’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말도 안 되는 소란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제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제압한 민간인의 수혈을 짚어 잠재운 형왕은 곳곳에 잔뜩 생겨난 검은 관들을 바라봤다.

분명 설천위가 쓰는 기술이라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시선을 비무대 위에 있는 설천위에게로 옮긴 형왕은 멍하니 서 있는 장풍기 옆에서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그를 마주하곤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나?

저 어린 녀석을 보고 순간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이것이라니.

무엇보다 그 답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이성은 이길 수 있다고 답하는데, 본능은 그리 답하지 않았다.

지진 않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순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강하군.’

괴물.

한 세대에 한 명 태어나면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20대를 넘기기 전에 화경에 도달하는 천재.

그런 천재가 지금 정파에 둘이나 있다.

심지어.

‘……하나쯤 더 늘어날 수도 있겠군.’

어느새 관중석 사이로 파고들어 제압을 시작한 유예린을 눈에 담은 형왕은 그 반대편에서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백유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저 아해가 있으니 균형은 맞겠군.

정파와 사파의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황실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물론, 남궁선과 설천위를 생각하면 지금도 균형의 추가 과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긴 했으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필요한 인재들이지.”

폭탄을 들고 있는 민간인의 숫자는 얼핏 세도 오십이 넘어 보였다.

숫자가 숫자이니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닌 폭탄은 아니겠으나 이만한 숫자의 폭탄을 이만한 숫자의 민간인에게 쥐여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만한 숫자가 당연하다는 듯 자살을 선택했다.

추후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자의에서든 협박에 의해서든 그 힘이 상당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거기에다 황실의 행사에 이리 대놓고 일을 벌이는 행동력.

이로 미루어 보아, 둘 중 하나다.

이 일의 여파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거나.

아님, 황실에 이 일의 여파를 묻어 줄 수 있는 조력자가 있거나.

형왕의 눈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재상에게로 향했다.

현 황실에 재상은 둘.

둘 모두 어린 시절부터 황제를 교육시킨 자들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자리에 있는데도 이런 행태라.

‘봐주고 있는 건가.’

형왕의 눈빛이 한층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할 때, 비무대 위에 선 설천위가 형왕을 바라봤다.

“생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상관없네.”

형왕의 허락.

그 허락이 떨어진 순간, 설천위는 뻗었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와 함께 폭탄을 쥔 이들을 감싼 흑관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수축한다.

이윽고.

쿵! 쿵! 쿵!

옆에서도 진동이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폭발에 휘말리고도 즉사하지 않은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

“아미타불…….”

무진의 나지막한 불호와 함께 흑관들을 형왕이 이끄는 이들이 있는 곳에 모은 설천위는 그 흑관들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드러나는 참혹한 모습의 시신과 부상자들.

폭탄을 쥔 손만 흑관으로 감쌌다면, 훨씬 작은 부상으로 끝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었다.

자의로 그런 건지, 협박에 의한 건지 몰라도 이 일로 생긴 피해를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작자들도 아니고.

게다가 몸에도 폭탄이 있을지 모르는데 안일하게 보이는 것만 막을 순 없는 법.

지켜 줘야 할 건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저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뒤처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반드시 찾아내 엄벌을 내리겠네.”

형왕의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숙인 설천위는 몸을 돌려 장풍기를 바라봤다.

비무대 위에서 뛰어내리려다가 어정쩡하게 멈춘 자세.

“미안하군.”

“네가 미안할 일은 없다.”

“아니, 아무래도 나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서 말이야.”

고개를 젓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장풍기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쳤다.

완벽한 방어의 자세.

그건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결코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

저건.

‘인간이 아닌 무언가다.’

검은 기류를 두르고, 검은 안광을 흘려 내는 인간을 어찌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느껴지거늘.

정녕 그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학생이란 말인가.

이를 악문 장풍기가 최후를 준비하는 그 순간.

“제 패배입니다.”

설천위가 대뜸 패배를 선언했다.

그 황당한 선택에 모두가 당황하던 그때.

“인정한다.”

망설임 없이 인정한 형왕의 모습에 몇몇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사건이 있긴 했어도 해결이 잘됐는데, 대체 왜?

이 경기를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아미타불, 참으로 훌륭한 선택입니다. 소협.”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무진의 칭찬과 함께, 입꼬리를 비튼 소국이 웃었다.

“정파 놈은 정파 놈이구나.”

소국마저 설천위의 패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대체 무진과 소국은 언제 비무대 위로 올라갔으며.

형왕을 포함한 저 셋은 어째서 설천위를 포위하듯 서 있는 것일까?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장풍기였다.

이딴 승리, 인정할까 보냐.

두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는 장풍기의 어깨 위로 마른 손 하나가 올라왔다.

“그만! 다 네 녀석을 위한 것이니 얌전히 물러나거라.”

가장 늦게 비무대 위로 올라온 곤괴는 그리 말하며 장풍기를 뒤로 끌어당겼다.

정확히 말하면 던졌다.

“지금 당장 운기에 들어가거라.”

“대체 어떻게 아직도 눈이 안 돌아갔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봐주마.”

“아미타불,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입니다. 소협.”

거의 같은 말을 하는 곤괴, 소국, 무진의 모습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설천위가 말없이 비무대 위에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대체 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비무대 밖으로 던져져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장풍기를 바라보던 여미려는 옆에 있는 백유에게 물었다.

여태까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백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미려를 바라봤다.

“화가 너무 났나 봐.”

“……예?”

“그리고 방금 그 기술, 아무래도 꽤나 무리했었던 것 같네.”

무리?

멀쩡해 보이던데?

“폭탄을 막을 정도의 호신강기, 만들 수 있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죠. 저야 검기(劍氣)도 아직 미숙…….”

거기까지 말하고, 여미려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말이 안 되네요?”

“응. 말이 안 되지.”

술법이란 기본적으로 물리력이 부족하다.

산사태를 막는다거나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막아 내는 것 같은 행위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술법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존재에게 통하는 것.

경지가 뛰어나면 그 여파로 실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으나, 당연히 그 힘의 수준은 본래 술법의 위력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천위는 술법으로 폭탄의 폭발을 막아 냈다.

그것도 오십 개를 동시에.

‘……미친.’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여미려는 떨리는 눈동자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무리를 했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무공으로 그런 일을 했다면 맹주나 되어야 가능했을 일을 술법으로 해낸 것이다.

무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멀쩡하게 서서 자신이 졌다고 말한 그가 더 놀랍다.

대체 얼마나 정신력이 강하면…….

정신력.

그 단어에 여미려는 조금 전 백유가 말한 이상한 말이 떠올랐다.

“……화가 너무 났다고요?”

“응.”

화가 너무 났다.

그거랑 저기 운기하는 거랑 무슨…….

“주화입마의 초기로군.”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던 성무경의 목소리에 여미려는 깨달았다.

주화입마(走火入魔).

흔히들, 주화입마라고 하면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하는 광경을 떠올리지만…….

무림에서 가장 흔한 주화입마는 광인이 되는 거다.

뇌에 마기나 사기가 치밀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단계.

즉.

‘……저 괴물이 지금 그 초기 증상이라고?’

왜 화경급 고수들이 그를 포위했는지 이해가 됐다.

주화입마를 가라앉히지 못한 설천위가 폭주하면 그를 제압하기 위해 모인 것일 터.

[……놀랍군. 그 순간에 마음을 가라앉힐 줄이야.]

[이 아이가 부동심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훌륭하군요.]

모두가 놀란 만큼, 설천위의 곁에서 그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혼들은 칭찬과 함께 그를 바라봤다.

폭탄을 이용한 자살 공격.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끔찍한 범죄다.

무고한 희생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공격을 해 왔으니 그가 화가 날 수밖에.

괜히 국가에서 화약을 엄중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 꼴을 보아하니 화약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지만.

다만, 의아한 점은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냐는 거다.

만약 설천위가 폭발을 막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보는 건 관중석에 있던 일반인들뿐.

설천위가 막을 것을 예상하고 일을 벌였다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무슨 생각인 것이냐.’

어딘가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언여휘를 생각하며 천마가 주위를 훑던 그 순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구나.”

관중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재상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고, 재상은 손가락을 까딱거려 부하를 불렀다.

“이 대회가 끝나면 줄 생각이었다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조금 더 빨리 준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겠지.”

재상의 말과 함께 한 남자가 상자 하나를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 상자를 본 순간, 그것이 설천위에게 주기로 한 영약임을 깨달은 형왕은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형왕의 반응과 별개로, 그들의 근처까지 도달한 남자가 목갑을 열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흘러나오는 청명한 향.

자신이 상당히 좋은 약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그 향에 무진은 고개를 숙여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허나 지금 당장 이 영약을 섭취할 순 없습니다. 일단은 내상보단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허어, 그런가?”

무진의 거절에 재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쉽게 물러서는 모습.

‘……억지가 통할 상황이 아니긴 하군.’

딱히 큰 문제 없이 넘어갔음에 안도한 형왕이 다시 호위에 집중하려는 순간.

기이한 흔들림이 그의 감각에 걸렸다.

뭐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외부만 주의하면 안 되지.”

가운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순 네 사람의 몸이 주춤했다.

지금, 자신들의 사이에 있는 설천위를 공격할까 봐.

무엇보다.

‘……느껴지지 않는다.’

설천위 이외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이리도 가까운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화경급의 감각마저 완벽하게 속일 정도의 극에 이른 은신술.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별호가 스쳐 지나간다.

“살존!”

“응, 불렀어?”

너무나도 쉽게, 화경급 고수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설천위의 복부를 비수로 꿰뚫어 버린 살존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역시, 너 마음에 드네.”

화경급 고수들보다도 먼저 자신의 은신술에 반응해 달려든 유예린의 검을 쳐 냈던 살존은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전에 만났을 땐 얘가 알아채더니, 넌 어떻게 알았니?”

“노린다면 지금일 테니까요.”

설천위의 복부를 꿰뚫는 비수를 완전히 쳐 내는 데 실패한 유예린은 이를 악물었다.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지 못했다.

너무나도 간단히 자신의 검은 튕겨 나왔고, 상대의 비수는 설천위의 배를 꿰뚫었다.

지키겠다고 했는데.

까득.

이를 악문 유예린의 모습에 살존은 헛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얘야, 반응한 것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하거늘 왜 화를 내니?”

살존의 물음에 유예린은 저릿저릿한 손에 억지로 힘을 더하며 검을 겨눴다.

“사랑해서라고 말하면, 답이 될까요?”

“음, 좀 식상한 대답이네.”

그리고.

완벽하게 자신을 포위한 네 사람의 고수를 보며 살존은 웃었다.

“식상한 전개야.”

입술을 핥은 살존의 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저 사막의 신기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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