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240화-개인전 (8)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질 공격이 오간다.
매 순간이 외줄 타기라도 하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공방 속에서.
설천위는 차분한 표정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직선적이고 무게감 있는 주먹.’
강권(强拳)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권법이다.
화려한 손놀림도.
어깨나 허리 등을 이용한 페이크도.
빛살과 같은 속도도.
그 어떤 것도 배제한 채 그저 굳건히 주먹을 휘두르는 권법.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긴 하나 참으로 상대하기 힘든 주먹이다.
뭐, 수준이 비슷하면 상대가 뭘 들고 나와도 상대하기 힘들긴 하겠지만.
자신의 공격 횟수가 7할이고 상대의 공격이 3할인데 아직까지 유효타가 없으니 상대의 역량이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아마 순수하게 권법으로 다툰다면, 틀림없이 이쪽이 질 거다.
서로의 권법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다를 테니까.
이쪽은 상대의 권법을 하루 종일 봐도 그 핵심을 꿰뚫지 못하겠지만, 상대는 앞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쪽의 핵심을 꿰뚫을 거다.
무려 ‘무룡(武龍)’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재능을 가진 남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다.
사파의 주현운…… 까진 아니어도 꽤나 훌륭한 재능의 소유자인 건 사실이니까.
저기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을 주현운은 너무 말도 안 되는 괴물이고.
천무지체(天武之體)는 그만큼 사기성이 짙은 재능이니까.
‘……또 생각이 길어지네.’
여기서 주현운 생각을 왜 해?
지금 눈앞의 상대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가볍게 잡념을 털어 낸 설천위는 다시금 장풍기에게 집중했다.
자세를 낮춘 채 움직이는 장풍기는 우직했다.
거대한 바위가 서서히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우직한 주먹.
어느새 공격의 비율이 6대 4로 변했다.
상대가 자신의 주먹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증거.
이대로 가면 승기를 뺏기고 지겠지.
“응. 그건 싫지.”
갑작스러운 혼잣말.
그와 함께 정말 아슬아슬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장풍기의 주먹을 피해 내는 설천위.
설천위의 볼에 작은 생채기를 만들며 스쳐 지나간 주먹의 너머를 바라본 장풍기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재빨리 주먹을 당겼다.
아니, 전율이 아니다.
오한.
본능의 경고.
[크르르르르르르.]
그 원인은 명확한가.
설천위의 몸을 휘감은 흑룡이 두 눈을 빛낸다.
그 눈을 마주했다고 생각한 순간, 자신의 주먹이 빠진 빈 공간을 물어뜯는 용의 주둥이를 확인한 장풍기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만약, 주먹을 빼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걸레짝이 됐겠군.’
최악의 경우엔 잘렸을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흑룡의 크기가 작다는 점일까.
단체전에서 보았던 그 괴물 같은 흑룡의 모습은 없으니 다행…….
‘……이진 않군.’
뭐가 됐든, 저 흑룡의 존재만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공격과 방어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상대에게 팔이 하나 더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거기에다.
‘빨라졌군.’
대체 흑룡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흑룡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설천위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빨랐던 주먹이 더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폭풍과 같은 공격이 시작됐다.
상대의 권법에 익숙해져 조금씩 승기를 가져오던 것들이 무색해진 순간.
‘틀은 비슷한가.’
위기의 순간에도 장풍기는 착실하게 상대의 공격을 분석했다.
속도가 빨라지고 주먹에 담긴 위력도 증가한 것 같지만, 권법의 틀은 놀랍도록 그대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익힌 권법이 하나밖에 없군.’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사람이.
그것도 학관에 다니는 사람이 한 가지 권법밖에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설천위의 허리춤에 있는 도와 검은 장식이 아니니까.
검법과 도법을 같이 익히고 있다면, 하나만 익히고 있는 것도 말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야 수가 나온다.
아무리 빠르고 강해져도.
‘읽어 낼 수 있다면 뚫을 수 있다!’
두 눈을 크게 뜬 장풍기는 완전히 수비를 굳혔다.
철저하게 설천위의 공격을 분석하기 위한 방어 태세.
너무나도 노골적인 공격을 늦출 법도 하건만 설천위는 거침없이 주먹을 움직였다.
읽을 테면 읽어 봐라.
그 전에 싸움을 끝낼 테니.
그런 의지를 담은 것 같은 맹렬한 공세에 장풍기의 양팔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막고 흘리고.
막아 낸 팔뚝에 멍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장풍기는 인지하지 못한 채 연신 팔을 움직였다.
그리고.
팍!
한 순간, 본능적으로 내지른 손이 설천위의 어깨를 스친다.
설천위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허를 찌른 일격.
그 일격에 무공을 아는 이들 대부분은 생각했다.
이제 장풍기가 주도권을 가져오겠구나.
설천위의 공격이 읽히기 시작한 지금, 장풍기의 승리가 더 가까워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장풍기의 승리를 점치며 상체를 앞으로 당기는 그 순간.
“쯧.”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보는 백유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흑룡학관의 학생들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설천위가 열세라면, 백유가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오히려 설천위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궁금해하며 상체를 앞으로 당겼을 터.
그런데 저렇게 결과가 뻔히 보인다는 듯한 반응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이들이 다시 비무대 위를 바라본 그 순간.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튼 채 장풍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 들어와?”
여유가 가득한 물음.
어깨 근처로 주먹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 마치 거짓이었다는 듯 웃으며 손을 뻗는 설천위로부터 장풍기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분명 설천위의 주먹에 익숙해진 장풍기가 공격의 주도권을 쥐는 것 같았는데, 대체 왜?
그런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 의문이 해소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 초근접전이 특기잖아?”
“……어떻게 알았지?”
“묘하게 해진 소매와 앞섶. 항상 낮게 유지하는 자세.”
이 무림에는 흔치 않지만 현대의 유술(柔術)을 배운 이들의 특징과 일치한다.
초근접전에서 상대를 붙잡고 넘어트려 관절기를 거는 형태의 무술.
무룡(武龍) 장풍기가 소속되어 있는 대(隊)의 이름은 무혈대(無血隊).
피를 흘리지 않는 관절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력대다.
이미 졸업한 이들 몇 명이 사천맹에도 있으나 유명하진 않다.
정말 흔치 않은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이라 그런 점도 있지만.
가장 뛰어난 장풍기가 아직 학관에 다니고 있단 점이 가장 크다.
솔직히 말해서 무림의 무인을 상대로 관절기를 사용하는 건 절대 쉽지 않으니까.
한번 잡으면 거의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기야 하지만, 누가 쉽게 잡혀 준단 말인가?
사혈을 노릴지, 내공 싸움을 걸지 모르는데 멍청하게 잡혀 줄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식으로든 거리를 벌리고 피하려 하겠지.
무혈대의 인원들이 관절기 이외에도 다른 무공을 괜히 익히고 있는 게 아니다.
관절기가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의 무공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유지.
“그나저나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야? 열심히 분석하던데.”
어떻게든 빈틈을 찔러 파고들기 위해선 상대의 공격을 읽을 능력이 필요하고, 장풍기는 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그렇기에 관절기라는 비주류 무공을 주력으로 삼아 후에도 이름을 떨치는 무인이 되지.
다만.
[크르르르르르.]
“자, 들어와.”
안타깝게도 상성이 너무 좋지 않다.
조금 전에 어깨를 스쳤던 공격에 성공하고도 장풍기가 거리를 벌렸던 이유.
“아직 못 찾았나? 얘를 상대할 방법을.”
그 즉시 팔을 물어뜯으려는 패융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였다.
달라붙어서 넘어트리더라도 그 몸을 지키는 패융에게 물어뜯기면 물러설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장풍기는 철백이나 거완처럼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까.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공을 끌어올려 물린 부위를 강화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힘에서 밀리겠지.’
그렇게 되면 설천위가 힘만을 이용해 강제로 관절기를 풀어 버릴 거다.
설천위는 그만한 근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즉.
‘……길이 막혔군.’
원래는 흑룡도 붙잡아 동시에 관절기를 걸 생각이었다.
뭐가 됐든 실체가 있는 거라면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빈틈을 찔러 어깨를 스쳤던 그 공격.
그것은 저 용을 붙잡기 위한 공격이었다.
안개처럼 사라져 버려 붙잡지 못하고 어깨를 스쳤지만.
그 직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 팔을 물어뜯으려는 모습은 그야말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즉.
“……상성이 너무 좋지 않군.”
“동의해. 뭐, 그렇다고 봐주면서 할 순 없잖아?”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주먹을 쥔 채 장풍기를 바라보며 웃었다.
“순순히 인정?”
모든 길이 막힌 시점.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물러서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다시 자세를 낮추고 공격을 준비하는 장풍기를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야지.”
설천위의 긍정과 함께 단숨에 돌진한 장풍기는 설천위의 허리를 향해 파고든다.
이대로 상대의 복부에 어깨를 부딪히겠다는 듯한 돌진.
상대가 위에서 주먹을 내려찍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무식한 돌진이었지만…….
등 전체를 짙게 감싼 내공을 보아하니 그러다간 이쪽의 허리만 접혀 버릴 것 같았다.
아예 대놓고 관절기를 쓰기 시작하는 장풍기의 모습에 설천위는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상대가 저렇게 나오면 이쪽도 정석으로 가는 수밖에.
파고드는 장풍기의 안면을 향해 무릎을 차올린다.
현대의 격투기에선 금지하는 공격.
이유는 당연히 잘못 맞으면 죽기 때문이고.
지금 설천위가 쓰는 이유는 당연히 제대로 맞으면 죽기 때문이다.
제대로 맞으면 안면이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충격으로 목이 부러질 공격이지만 장풍기는 똑바로 돌진했다.
그리고 피해 낸다.
고개를 틀어 그 무릎을 어깨로 받아넘기며, 파고든다.
동시에 어깨 위로 뻗은 팔로 설천위를 붙잡으려고 한다.
어디가 됐든 상관없다.
일단 잡으면 그대로 땅바닥에 메쳐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뻗은 팔이 설천위의 옷깃에 닿으려는 그 순간.
“놈!”
누군가의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설천위는 장풍기의 팔을 막아 몸 안쪽으로 흘려 내며 붙잡히지 않기 위해 몸을 바깥쪽으로 돌렸다.
지금 이 순간의 전투에 집중하리라.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가 곤괴의 목소리임을 깨달은 설천위는 그를 믿고 경기를 속행하기로 한 것이다.
한데.
“피해라!”
심판인 형왕조차 호통과 함께 비무대 위를 박찬다.
그 순간, 상황이 수상함을 깨달은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구경을 위한 자리에서 내려온 소국과 무진이 몇몇 사람을 제압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런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쥐어진…….
[폭탄?]
[허어, 이 미친놈들이 황실의 행사에 폭탄을 들고 와? 그것도 민간인이 이리 많은 곳에?]
그 숫자가 무려 수십.
터지면,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죽거나 다친다.
아니, 일반인은 확실하게 몰살당한다.
그렇기에 심판을 맡았던 형왕조차 다급하게 관중석 쪽으로 뛰어간 것이고.
반박자 늦게 반응한 유예린과 백유조차 관중석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대체 저 많은 화약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설천위보다 반박자 늦게 상황을 깨닫고 공격을 멈춘 장풍기가 허리를 펴는 순간.
싸악.
강렬한 한기가 전신을 관통했다.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본능에 속삭이는 그 한기에 장풍기는 그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개…….”
두 눈에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설천위의 몸을 타고 용의 형상이 일렁인다.
아까까지 보인 용과는 뭔가 다른 듯한 존재감.
동시에.
그가 손을 뻗고.
[흑관(黑棺)-무량(無量)]
엄청난 숫자의 흑관이 관중석 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