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239화-개인전 (7)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에 시백은 상대를 바라봤다.
고도의 집중으로 느려진 시야 속에서.
상대의 두 눈이 똑바로 이쪽을 향한다.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시백은 알았다.
이 남자는 실전이었어도 이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란 걸.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대를 베는 도박에 나섰을 거라는 걸.
그만한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고심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손익을 계산했다.
상대가 검이 아닌 몸을 먼저 움직인 순간, 자신은 검을 한 번 거뒀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몸을 먼저 던진 상대를 제대로 제지하지 못하면 그대로 큰 빈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틈을 보이지 않는 것.
9할 9푼 9리의 방어가 갖춰지면, 단 1리의 공격만으로 상대를 꺾을 수 있다.
인간이란 베이고 베이다 보면 출혈로도 죽는 생물이니까.
그러니 틈을 만들지 않고, 상대의 작은 틈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
그것이 수비의 기본인데.
상대가 그것을 부정하고 파고들어 왔다.
몸을 내던진 돌진으로 거대한 빈틈을 만들고, 그 빈틈을 찌르게 했다.
한데.
‘……벨 수 있나?’
그 빈틈을 이용한 일격으로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자신에게 거대한 빈틈이 생긴다.
상대의 검은 중검(重劍).
한번 주도권을 뺏기면, 그 기세에 휘말려 얽히고 얽히다가 끝내 자신이 꼬꾸라지고 말 거다.
그런데, 반대로 그냥 막는다면?
몸쪽으로 검을 거둔 이상, 다시 상대의 공격 자체를 끊는 천수지경(天守池境)을 펼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상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터.
처음 마주하는 자신의 천수지경(天守池境)을 상대해 낼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천수지경(天守池境)은 만능의 검법이 아니다.
당연히 파훼법이 있고, 상대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파훼법을 떠올릴 만한 역량을 지닌 사람이다.
베는 것으로, 단번에 큰 위험부담을 질 것이냐.
막는 것으로, 작지만 길게 이어지는 위험부담을 질 것이냐.
고민의 순간.
점차 거리를 좁히는 남궁천의 검을 보며 시백은 결정을 내렸다.
찰나의 순간에 내린 결정이니 완벽한 손익 계산이었다고 볼 순 없었으나, 딱히 틀린 계산도 아닐 것이다.
몸으로 당겼던 검을 앞으로 내뻗는다.
그 모습에 검을 내려치던 남궁천은 상대가 베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깨닫곤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역량은 상대가 자신보다 조금 더 앞선다.
허나, 그 역량의 차이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전투 아니겠는가?
역량의 차이만으로 결판이 난다면 서로 싸우지 않고 검무나 추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
상대의 선택이 무엇인지 안 순간부터 남궁천은 더더욱 속도를 가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눈 깜짝할 순간의 공방이었지만, 자신과 상대는 이토록 지독하게 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 싸움에서.
앞서는 것은 자신이다.
어느새 시백의 머리 위에 도달한 남궁천의 검이 단숨에 시백의 어깨를 향해 떨어진다.
그와 함께 베는 것을 선택한 시백 또한 검을 앞으로 뻗으며 몸을 비틀었다.
남궁천의 검을 피하고, 자신의 검은 찔러 넣겠다는 의지의 표현.
상대가 노리는 것이 자신의 어깨임을 파악한 남궁천은 한 걸음 더 전진했다.
상대의 검이 자신의 어깨를 파고들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조금만 팔을 뻗으면 어깨를 꿰뚫리는 그 거리까지.
전진하는 것으로 완벽하게 거리를 좁힌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대의 어깨를 노리던 검이 반의반 박자 더 빠르게 떨어진다.
아주 미세한 차이.
허나, 찰나의 시간도 고심하는 고수들의 수 싸움에선 황하의 폭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차이.
그야말로 몸을 던지는 강행수로 남궁천이 승기를 가져오려던 그 순간.
캉!!
남궁천의 검이 강한 반탄력에 정지했다.
튕겨 나가진 않았으나, 확실하게 정지했다.
대체 어떻게?
의아함을 품은 그 순간.
남궁천은 상대를 확인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검수가 아니었나?”
“호위에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다.”
완갑(腕甲).
손목부터 팔꿈치까지를 지켜 주는 가죽으로 만든 보호구.
보통 안에 철을 덧대어 만들기 때문에 움직임에 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검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찌르기, 베기 등 다양하게 손목과 팔을 움직이며 검을 움직여야 하는 검수들에게 그 미세한 차이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역량으로 검을 펼쳐야 하는 검사들에겐 방해가 되는 것.
검을 든 상대라면 당연히 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베는 것으로 단번에 큰 위험부담을 지는 것도, 막는 것으로 작지만 길게 이어지는 위험부담을 지는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미래에 싸울지도 모르는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는 한 수를 내보인다.
분명, 후에 이 한 수를 써먹지 못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나.
‘완벽한 승리가 우선이다.’
눈앞의 이 적에겐 제대로 된 패배의 기억을 심어 놓는 것이 나중에 다시 그와 싸울 때 더 큰 심리적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이상 시간을 끌어 검법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고 말이다.
막아 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남궁천의 어깨에 박아 넣었던 검을 손에서 놓으며 시백은 한 걸음 물러섰다.
“승자! 흑룡학관의 시백!”
* * *
흑룡학관의 첫 승리.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완벽한 승리에 흑룡학관 쪽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백! 너, 이 자식 장난 아니구나! 이렇게 강한 줄 진즉에 알았으면 대련이라도 몇 번 더 했을 텐데!”
대충 치료를 끝내고 대기석에 앉아 있던 거완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거침없이 시백의 어깨를 두들겼다.
“싸우고 돌아온 애한테 너무 격렬한 환영이네.”
피식 웃은 백유는 대충 거완의 손을 치우고 있는 시백을 바라봤다.
“어때?”
“강하더군요. 상성이 좋았습니다.”
천수지경(天守池境)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에 가까운 기술이지만, 분명 빈틈이 있다.
일단 사용할 수 있는 조건부터가 까다롭다.
첫째, 상대가 검 혹은 도를 쓰는 무인일 것.
아직 경험이 부족한 시백은 이 두 무기를 상대로밖에 쓸 수 없었다.
그의 스승은 다르지만.
둘째, 자신의 검이 상대보다 빨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빠름을 같은 수준에서 구현하려면 필연적으로 위력이 떨어진다.
가죽과 살을 베는 것 정도는 가능하나, 뼈를 베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위력이 떨어진다.
남궁천을 상대로 완전히 주도권을 가져왔으면서도 자잘한 상처밖에 입히지 못한 게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상처를 늘려 가다 보면 남궁천도 힘이 빠져 단숨에 끝낼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 전에 남궁천이 먼저 파고들었기에 생각보다 경기가 빨리 끝이 났다.
“그래도 첫 승을 가져온 건 축하할 만한 일이네. 훌륭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고생한 건 너지.”
웃으며 시백을 칭찬한 백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림학관 쪽을 바라봤다.
이제 다시 무림학관 쪽에서 선수를 먼저 내보낼 때가 됐다.
자, 이번엔 과연 누가 나올까?
생각보다 앞선 경기들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은근히 기대를 품은 백유의 시선이 무림학관 쪽을 향했고.
이내 예상치 못한 인물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나랑 싸울 사람?”
여유로운 태도, 느긋한 목소리.
허나, 그와 별개로 단숨에 흑룡학관 쪽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존재.
상대를 확인한 백유는 환하게 웃으며 그 이름을 불렀다.
“천위!”
“응? 백유, 네가 나오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천위의 질문에 백유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난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네가 알듯이.”
“뭐……. 그렇지?”
약속의 내용을 대충 알고 있는 설천위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백유의 옆에 앉아 있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침없이 비무대 위로 오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유는 작게 웃었다.
“네 상대는 걔야.”
백유의 자신 있는 미소.
그와 함께 비무대 위에서 자신의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또 상대하기 까다로운 친구가 나왔네?”
“상대하기 까다로운 수준으로 끝나진 않을 거다.”
두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장풍기를 바라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젠 아주 도발이 습관적으로 나오는구나.]
[입을 안 놀리면 불안해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거, 할배들 조용히 하쇼.
거의 반사적으로 상대를 도발하던 설천위는 혼들의 평가에 입술을 삐쭉이며 마찬가지로 주먹을 들었다.
이번 친선전엔 검과 도는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다짐했으니까.
물론, 혹시 몰라서 허리춤에 차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이 비무가 끝나기 전까진 뽑지 않을 생각이다.
단체전에선 참 아쉽게 끝을 보지 못했으니까.
이번엔 제대로 끝을 볼 생각이다.
“무림학관의 설천위다.”
“흑룡학관의 장풍기다.”
간단한 자기소개.
이미 전투 준비가 끝난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형왕은 한 걸음 물러서며 선언했다.
“시작!”
형왕의 선언과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비무대를 박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두 사람.
순식간에 비무대의 중앙에 도착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첫 경기인 철백과 거완의 전투가 연상되는 전개였지만 그 내용물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 둘의 경기와는 다른 결정적인 차이.
설천위와 장풍기는 서로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설천위가 내지른 주먹을 좌로 반보 이동을 하며 피하는 장풍기.
그와 거의 동시에 허리를 회전하며 내지른 장풍기의 왼손이 설천위의 옆구리를 노렸으나, 설천위의 왼손 또한 이미 오른쪽 옆구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풍기의 왼쪽 주먹을 밀어내며, 그대로 몸을 앞으로 내민 설천위는 오른팔을 그대로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본래라면 힘이 담길 리 없는 의미 없는 공격이겠으나, 설천위의 강력한 다릿심과 허리가 그 막무가내 공격에도 위력을 더했다.
위협적으로 목을 노리고 파고드는 수도에 결국 오른손으로 방어를 굳히는 장풍기.
순식간에 양팔로 공방을 교환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곤 그대로 팔을 움직였다.
장풍기가 파고들면 설천위가 피하며 막는다.
설천위가 파고들면 장풍기가 피하며 막는다.
흘려 낼 수 있는 공격은 흘려 내고.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한다.
움직임이 멈추게 되는 직접적인 방어를 극한까지 최소화한 채 끊임없이 공방을 이어 나간다.
마치 둘이 사전에 치밀하게 공방을 짜 놓은 것처럼 수십 번의 공방이 완벽하게 맞물린다.
“우오오오오!!”
여태까지의 경기와는 다른, 진짜 빠르지만 아주 화려한.
보통 무림인의 대결 하면 떠올릴 만한 그 화려한 공방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이 바로 이런 거라고 소리치는 이들까지 있는 상황.
그 속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곤괴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늘었구나.”
“많이 늘어요?”
“그래.”
손녀의 물음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곤괴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 나름대로 강하긴 했어도 왠지 허술한 부분이 엿보였던 녀석이었다.
뭔가 무인으로서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깊게 생각하기 싫어서 단순히 무(武)에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정답이었군.’
그게 정답이었을 줄이야.
그 재능의 빈틈을 채울 정도의 수련과 경험을 쌓더니 저리도 훌륭하게 성장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눈앞의 상대도 한가락 하는 녀석이니 좋은 승부가 될 거다.
물론.
‘슬슬 움직일 때가 됐을 터인데.’
아무런 방해도 없다면.
저 설가 녀석은 하는 일마다 방해가 들어오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으니 분명 이쯤에서 방해가 들어와야 하는데…….
왜 아무런 움직임도 없지?
너무 조용해서 되레 불안하다.
입을 벌리고 비무대 위를 구경하는 손녀와 달리, 곤괴는 침착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언여휘가 움직이면 즉시 제압하기 위해서.
이렇듯 곤괴가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는 사이.
[크르르르르르.]
“우오오오오!”
비무대 위에 등장한 흑룡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