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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35화 (235/624)

제235화

234화-개인전 (2)

빠각!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완의 움직임이 딱 멈춘 순간.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은 비무대 위에서 철백은 담담하게 주먹을 당겼다.

그리고.

“흡!”

힘찬 기합성과 함께 반대쪽 주먹을 내지른다.

철백이 공격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던 관중들의 표정에 경악이 깃드는 순간.

“크하!”

뿌드득!

뼈가 어긋나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 거완 또한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과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친 순간.

쾅!!

강렬한 폭음과 함께 강풍이 비무대 위를 휩쓸었다.

비무대 아래에서 구경하던 일반인들이 일순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

그런 강풍의 시작점에 있는 두 사람은 당연히 바람에 밀려 거리가 벌어졌을 거라고 사람들이 예상하고 고개를 든 순간.

“인정하마.”

주먹과 주먹을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던 거완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웃었다.

“네 녀석의 몸이 나보다 좀 더 단단하단 것은 인정하마.”

“인정할 것도 없지. 그게 사실이니까.”

“흥.”

철백의 담담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콧방귀를 뀌며, 거완은 철백과 맞대고 있는 주먹에 더욱 힘을 실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더 약하단 소리가 되진 않는다!”

“맞는 말이군.”

거칠게 힘을 더하는 거완과 그에 맞춰 힘을 싣는 철백.

그러자, 두 사람의 힘겨루기를 버티지 못한 비무대의 돌판이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을 받아 내며 두 사람의 발목이 비무대 위의 돌판을 부수고 그 아래의 모래에 박히기 시작하자, 이젠 바람에 모래마저 섞이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이들이 안면으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눈살을 찌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순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지.”

철백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또 한 번 강풍이 비무대 위를 휩쓸었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귀를 먹먹하게 하는 강렬한 소음.

바로 옆에서 화약이 터진 것 같은 강렬한 폭음에 구경하던 이들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모두의 시선은 단숨에 비무대 위로 향했다.

짜증 나는 건 짜증 나는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대체 뭔 짓을 하고 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일반 관중들이 모래 먼지를 이겨 내고 눈을 크게 뜨자, 그들의 눈에 보인 건 기이한 광경이었다.

여태껏 주먹만을 쓰던 두 사람 중 드디어 한 사람이 주먹 이외의 공격을 한 것이다.

물론, 무기는 아니다.

그들의 육체에 무기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식일 뿐이니.

그렇다면 주먹이 아닌 다른 공격은?

간단하지 않은가.

주먹이 통하지 않으면, 발차기지.

“끄으읍!”

철백의 발차기로 고개가 반쯤 뒤로 넘어갔던 거완이 이를 악무는 소리와 함께 뒤로 젖혔던 허리를 다시 세운다.

충격에 자신이 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표정.

허나.

“네놈…….”

입안에서 느껴지는 피의 맛이 그의 경각심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식하게 싸우면 진다.

패배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완의 머리는 승리를 위한 빠른 길을 탐색했다.

상대는 내공이 없다.

그렇다면 침투경을 쓰면 된다.

아무리 단단한 육체라도 장기까지 단단할 순 없는 법.

주력은 아니긴 해도 여러 번 공격하다 보면 충분히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 줄 수 있을 터.

그렇게 야금야금 쌓아 나가면 마침내 승리를 손에 쥘 수 있다.

그래.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딴 게 과연 승리인가?

“하!! 언어도단(言語道斷)!!”

그동안 남들이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지면 하루 종일 앉아서 내공을 쌓는 것을 보며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그동안 자신의 육체를 믿지 못하고 도망이나 다니며 깨작깨작 공격하는 녀석들을 보며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만약 승리를 위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승리를 버릴 것이다.

“물러서지 않는다! 덤벼라!!”

명백히 불리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놓지 않고 두 눈을 선명하게 뜨는 거완의 모습에 철백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 상대가 네 녀석이라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

자신과 같은 상대가 나오면, 누구라도 침투경을 쓸 생각을 할 거다.

거대한 둑은 그냥 두드려선 절대 부술 수 없으니까.

그 안을 야금야금 파내 무너트리는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고 있으니 그냥 무너질 생각은 없지만.

뭐가 됐든, 자신이 원하는 전력을 끌어내진 못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상대는 참으로 훌륭하다.

물론.

“육체의 단련 과정에서 내공을 쓴다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하! 몸을 지키며 수련하려면 당연한 과정이다!”

“어리석은! 육체는 오로지 스스로 서야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수련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에 있을까!”

쾅! 쾅!

다시금 주먹을 교환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

이젠 발차기까지 섞여 비무대 위는 그야말로 강풍이 휘몰아치게 된 상황.

그 광경을 보며 설천위는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들.”

“……부정할 수 없네요.”

“숨고 싶어요!”

설천위의 과격한 표현을 차마 부정하지 못한 유예린과 부끄러움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서하영.

두 사람 이외에도 무림학관의 사람들 대부분이 어색한 표정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격한 수련을 할 땐 원래 내공을 쓰지 않나?”

“저건 철 소협한테만 해당되는 것인데…….”

무림학관 내부의 의견이 철백이 아닌 거완 쪽으로 기울 때.

“하하! 그럼 육체의 단련은 당연히 내공 없이 해야지! 저 친구가 뭘 좀 아는군!”

“그런 독기도 없이 무엇을 하겠나.”

흑룡학관의 의견은 철백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 기묘한 광경에 양쪽의 대화를 모두 듣던 무진과 소국은 피식 웃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땡중, 네 의견은?”

“아미타불, 저는 철 소협의 의견입니다. 수련도 고행의 일종이니까요.”

“안타깝게도 나도 그쪽이다.”

피식 웃은 소국은 다시 비무대 위를 바라보며 웃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이야기로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진정 미친놈들이 맞는 것 같군.”

“그렇기에 저리 쌓아 올릴 수 있었겠지요.”

“광인이 곧 강자인 미친 곳이 무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광인인가.

의도치 않게 자신을 되돌아본 소국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싸움을 지켜봤다.

역시 안타깝다.

“나쁘지 않은 녀석이야. 무소속이라고 했던가?”

졸업하면 데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철 같은 놈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옆에 두고 굴리면 꽤나 볼만한 녀석이 될 것 같다.

그러니.

“한 번쯤 부러져서 다시 용광로에 처박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더 순도 있게 정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철백의 주먹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거완을 바라보며 소국은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저 괴물 녀석을 넘을 날이 올진 모르겠다만.”

몸 곳곳에 멍이 들고 터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거완과 달리, 약간의 멍 자국만 남은 철백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제1경기 승자! 무림학관의 철백!”

* * *

“정말 무식하게 이겼네.”

“만족스러운 싸움이었다.”

“어, 그래 보여.”

곳곳에 먼지가 묻어 상당히 너저분해져서 돌아온 철백을 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이젠 권기 정도는 능숙하게 막네?”

“아직 강기는 막지 못한다.”

“응. 그렇겠지.”

벌써부터 강기를 막아 내면 그게 개사기지, 무공이냐.

너 그거 수련한 지 일 년 좀 넘었어, 인마.

[깊숙이 묻혀 있던 재능이 꽃을 피운다는 것이 실로 이러한 것이구나.]

[……단순히 깊숙이 묻혀 있던 재능 수준이 아니지 않소, 형님?]

혼들조차 감탄한 채 어이없어하는 상황.

담담하게 먼지를 털어 내고 자리에 앉은 철백은 서하영이 건네준 물을 받아 마셨다.

참.

그런 싸움을 하고도 상처 하나 없다는 건 진짜 말이 안 되네.

물론.

“상성이 좋았다.”

“그렇지.”

성무경 같은 녀석이 나왔다면, 이리 쉽게 못 이겼겠지.

철저하게 회피에 집중하면서 침투경으로 야금야금 깎아 나가면 아무리 철백이라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 무림에 절대 무적이란 건 없고, 상성이란 게 그런 거다.

물론 철백도 침투경에 미리 대비를 해 놓긴 했지만, 아직 미숙한 게 사실이니까.

뭐, 어찌 됐든 나쁘지 않다.

첫 경기를 이렇게 이긴 건.

그럼 이제 다음 경기인데…….

“2경기는 흑룡학관에서 선수를 먼저 내보내도록!”

응? 비무대는 정비 안 해?

바로 경기를 재개하려는 형왕의 모습에 설천위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황실, 역시 대단하네요.”

유예린의 감탄에 설천위는 그제야 비무대 위의 상황을 파악했다.

대체 어디에 준비해 둔 건지 모를 석판을 가져와 다시 비무대에 깔고 있는 이들.

이미 복구가 끝난 상태다.

심지어 철백과 거완의 싸움으로 날아간 모래도 다시 채운 듯 석판의 높이가 일정하다.

저 석판 나르는 사람들, 무공을 상당히 단련한 사람들로 보이는데 이런 데 써도 되는 거야?

과하게 빠른 진행 속도에 헛웃음을 흘린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의자에 몸을 기댔다.

뭐, 저쪽에서 해 준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지.

오늘 안에 끝내려면 저런 빠른 조치도 필요하긴 하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은 설천위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롭게 있는 순간.

“흑룡학관의 가무학이다.”

흑룡학관의 다음 선수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설천강과의 술 싸움으로 생긴 숙취는 깔끔하게 털어 버린 듯 보이는 멀쩡한 안색의 가무학이 비무대 위에 당당히 서서 무림학관 쪽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설천강 쪽을 바라봤다.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

도발이 가득 담긴 목소리.

정확하게 자신을 지목한 가무학의 도발에 설천강은 담담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비무대 위로 걸어가는 설천강을 향해 물었다.

“싸울 수 있어?”

“헛소리!”

설천위의 물음을 단번에 끊어 내고, 비무대 위로 오르며 설천강은 단호하게 말했다.

“단체전에서 부상당한 건 내가 아니라 저놈이다.”

아니, 당신도 양팔 부러지고 회복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때도 그래서 마무리 못 했던 거면서.

고개를 치켜들며 당당하게 비무대 위로 오른 설천강을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뭐, 설천강도 설천강이지만 썩 좋지 못한 몸 상태로 설천강을 지목한 가무학도 정상은 아니지.

설천위가 철백과 거완만큼이나 뒤가 없는 두 사람의 선택에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대충 자기소개가 끝난 두 사람은 형왕의 시작 신호와 함께 검을 뽑고 있었다.

“명을 재촉하는군.”

“어차피 죽지도 않을 텐데, 무슨 명을 재촉해?”

“자존심과 자긍심이 꺾인 순간, 무인으로서의 삶은 죽는 것이거늘 네 녀석이 하는 짓이 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느냐?”

오, 혓바닥 싸움?

검을 뽑은 채 열심히 혓바닥을 놀리는 두 사람을 보며 설천위는 챙겨 온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쉽네.”

아쉽다.

둘 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꽤나 재미있는 경기가 전개됐을 것 같은데.

철백과 거완의 싸움처럼 모래 먼지가 날리지도 않아 육포 먹기에도 좋았을 테고.

육포를 씹으며 설천위가 아쉬움을 삼키는 사이.

짧은 신경전을 끝낸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규칙이 규칙이니만큼 노골적으로 급소를 노리고 있진 않았지만, 명백하게 그 근처를 노리는 공격들.

양쪽 다 상당한 수준의 쾌검을 구사하며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화려한 공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멋있다아아!”

검과 검이 맞부딪쳐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두의 시선이 화려한 검술에 쏠린 그 순간.

그늘 아래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한기가 비무대 위로 서서히 번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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