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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33화 (233/624)

제233화

232화-탐색전 (5)

“너희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위의 놈들이 알면 꽤나 시끄러워질 거다.”

“아저씨는 뭐, 위의 놈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당당하게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설천위에게 술을 따라 주던 소국은 순간 손을 멈췄다.

“아저씨?”

“뭐, 선배는 아니잖아요? 전 정파고, 아저씨는 사파인데.”

“큭, 뭐 크게 틀리진 않군. 그래, 마음대로 불러라.”

살짝 취기가 올랐는지 설천위의 호칭을 대충 웃어넘긴 소국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말은 친선전이나, 결국 자존심 대결이다. 그 끝의 결과는 네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되진 않겠지.”

“제가 원하는 대로요?”

“화합, 평화, 뭐 이런 걸 추구하는 거 아니냐?”

화합과 평화라.

“아닌데요? 아까 제가 한 얘기 뭐로 들으신 거예요?”

“아니다?”

“네. 아니, 사파가 사라지면 우린 뭐 먹고살아요?”

사파가 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막말로 정말로 사라진다면.

산적도, 수적도 없고 사파를 자칭하는 무림 문파들도 없다면.

정파가 내세우는 명분이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악(惡)으로부터 민중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불편한 동거는 계속 이어져야죠. 경쟁 없는 성장은 썩어서 문드러지는 법이거든요.”

“정파답지 않으면서 가장 정파다운 놈이로군.”

“그거 욕인데.”

정파답지 않으면서 정파다운 녀석이란 건 욕 아닌가?

위선자란 소리잖아?

“칭찬이다.”

“칭찬이에요?”

“네 녀석이 생각한 것의 반대 의미로 말했으니 칭찬이지.”

“아하.”

여타의 위선자인 정파 놈들 같진 않으면서 정파다운 길을 가는 녀석이란 평가인가?

“그럼 너무 과한데요.”

“겸손한 것도 나쁘지 않군. 우리 쪽에는 그런 놈들이 없어서.”

피식 웃으며 술을 채운 소국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 탁자에 앉아 있던 이를 바라봤다.

“그리 생각하지 않나? 땡중.”

“아미타불……. 설 시주의 뜻이 참으로 오묘해 본도는 말을 아끼겠소이다.”

소국과 마찬가지로 기척을 죽이고 숨어 있던 무진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국과 설천위가 앉아 있는 자리에 합류했다.

“허나 설 시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마음 아프나 말에는 그만한 힘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럼요. 잘 알고 있죠.”

말에는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힘도 없이 하는 주장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목숨마저 위협한다.

특히, 대의명분이 중요한 이 무림에서 말이란 것은 참으로 무섭고 무거운 것이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마음이 담긴 무진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설천위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래서, 이제 말을 꺼내는 거잖아요.”

“……아미타불. 확실히 시주의 능력은 참으로 출중하나 그것만으로는 이 무림에선 헤쳐 나가기 힘든 점이 많소이다.”

“그렇겠죠.”

지금 당장 웬만한 단주급에 비빌 정도의 실력을 얻었다곤 해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진짜들에겐 통하지 않을 힘이니까.

하지만.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나쁘지 않은 수준을 넘어 독보적이지. 각 맹의 맹주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국의 시원스런 대답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다 저기 있는 제 친구들, 다 한 의리 하는 녀석들이에요.”

“……아미타불. 세간의 소문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리 또 실감하게 되는군요.”

설가의 막내는 무능하다.

그 소문을 들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거늘.

핏줄인가, 아니면 정말 단순히 하늘의 변덕인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설천위를 잠시 바라보던 무진은 이내 불호와 함께 합장했다.

“시주의 길이 외도가 아니라는 것을 믿겠습니다.”

“아, 그건 믿으셔도 돼요.”

외도(外道).

그쪽으로 가는 일만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무진을 향해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슬슬 술잔을 나누며 대화가 시작된 객잔 내부를 바라보며 웃었다.

몇몇 감이 좋은 이들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경쟁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나쁘지 않다.

이 화합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 이들을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진을 향해 술잔을 내밀며 웃었다.

“저는 길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엔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발바닥 아픈 건 딱 질색이라서.”

걱정할 필요 없네요. 이 양반아.

* * *

“무식한 녀석들.”

“……부정할 수 없네요.”

늦은 밤, 흑룡학관과 무림학관의 회식이 있었던 객잔.

정신을 유지한 이들은 휘청거리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들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상황.

거기서 백유는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결국 사파든 정파든 상관없이 무인은 무인이라는 거겠지.”

승부욕이 곧 성장의 원동력이고, 성장이 곧 삶으로 이어지는 무림.

그곳에서 살아가는 무림인들은 이런 사소한 것조차도 참 지길 싫어한다.

이렇게 술 먹고 곯아떨어져 있다가 적습이라도 당하면 어이없이 죽고 마는데.

참, 무식하다고 해야 할까.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둘밖에 없는 객잔에서 쓰러진 이들을 보며 피식피식 웃던 백유는 자신과 달리 얌전한 얼굴로 술잔을 들고 있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 예린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데요.”

“에이, 우리 같은 연심을 지닌 사인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더 안 괜찮은 것 같은 조건이네요.”

뻔뻔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백유를 잠시 바라보던 유예린은 주향이 섞인 한숨을 내뱉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네요.”

“뭐가?”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당연한 요즘 시대에 제가 있다고 해도 설 공자에게 다가올 여자가 많을 건 예상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잘생겼지 않은가.

얼마 전까진 능력이 너무 부족해 아쉬워하던 여자들이 최근 그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모든 걸 자신의 이름으로 차단하고 있었지만…….

“당신처럼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가서는 이들이 있죠.”

“응. 그렇지? 천위는 매력적이니까.”

“그러니까요. 그게 문제네요.”

만약,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천위를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라면 가차 없이 베어 버렸을 텐데…….

“후, 저도 참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서 약해지네요.”

“뭐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위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해서 접근하는 이런 사람에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이니 신경을 꺼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포기할 위인은 아니네요.’

세간의 인식과 현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그 세상을 바꿔 버릴 위인이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꿈을 꾸는 이들은 몽상가이지만.

현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것을 뒤엎으려 하는 이들은 진정한 광인(狂人)이다.

성공하면 후에 왕(王)이라고 불릴 광인.

눈앞의 백유는 그런 광인의 기질이 너무 강하다.

실제로 능력도 있는 것 같고.

“한 가지 궁금하네요.”

“응? 뭐가?”

“만약 천위가 정말로 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쩔 건가요?”

“오올? 자신감? 천위는 절대로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그런 종류의?”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대답이나 하시죠.”

냉정하기 그지없는 유예린의 눈빛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백유는 이내 장난기가 사라진 눈으로 되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

“……문제가 되냐고요?”

“응. 사랑한다면 그 상대의 사랑조차 사랑할 수 있는 법이지.”

“그 말은, 저까지 사랑하겠다는……?”

“물론, 지금 당장 표현해 줄까?”

어느새 눈동자에 장난기가 돌아온 백유가 슬쩍 다가오려 하자, 유예린은 화들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저, 저는 그쪽으로는!”

“됐네요. 나도 없어. 아직은.”

“아직은?!”

드물게 유예린의 놀란 목소리가 객잔에 울려 퍼졌지만, 아쉽게도 그 목소리를 들은 백유는 담담하게 웃으며 술잔에 술을 채울 뿐이었다.

“나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어. 세상도, 나 자신도.”

“……미쳤군요.”

“응. 미치지 않으면 이런 자리에서 사랑을 말할 리가 없잖아?”

“술에 취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응. 그래서 본심이 나온 걸 수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유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은 유예린은 그새 비워진 백유의 잔에 술병을 내밀었다.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해 내민 술병을 든 유예린을 잠시 바라보던 백유는 피식 웃으며 술을 받았다.

그러곤.

“뭐, 일단은 내기에 집중하자고?”

“좋아요. 다음번엔 무승부로 끝내진 않을 겁니다.”

“그런 말을 하면 꼭 무승부로 끝나던데.”

피식 웃으며 술병을 들어 유예린의 잔을 채워 주는 백유.

그렇게 두 사람의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 * *

“아주 복이 많은 녀석이로군.”

“……흠흠.”

흑룡학관과 무림학관의 술자리가 있던 객잔의 밖.

자신을 보며 웃는 형왕을 향해 설천위는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그, 두 사람 다 취해서…….”

“사람이란 취하면 본심이 나오는 법이지. 뭐,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처(多妻) 정도야…….”

“에헤이, 그런 말은 마시죠.”

그런 말 섣불리 하시는 거 아닙니다.

아니, 그나저나 저 둘은 왜 기막도 안 쓰고 저런 대화를 그냥 나누고 있는 거야.

진짜 취했나.

살짝 붉어진 얼굴로 연신 헛기침을 한 설천위는 다시 형왕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렇게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요?”

“음, 하나는 아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네. 뒷정리로 바빠서 이리 늦게 찾아와 미안하구먼.”

“에이, 뭘 또 감사까지. 이거 끝나고 나면 황제 폐하께서 상도 주신다고 하던데요?”

황제가 주는 보상?

아마 무인에게 주는 거니 준보검급 병장기이거나 꽤나 괜찮은 수준의 영약일 확률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 가치의 현금이겠지.

뭐가 됐든 상당히 좋은 보상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얘기인데…….

“내가 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그 상일세.”

“……설마 안 주나요?”

“아니, 줄 걸세. 이상한 점은 그 보상이 너무 과하다는 점이야.”

“……과해요?”

과하면 좋은 거 아닌가?

“영약이 두 개, 보검이 한 개, 기물이 한 개.”

“……과하게 많네요?”

“명목상으론 자네와 함께 적들을 막은 잠룡대의 공적도 함께 치하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허나, 그걸 감안해도 과한 보상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세.”

“흠.”

확실히 과하다.

형왕이 이렇게 직접 찾아와 말해 줄 정도로 과하다.

“이건 확실히 신경 쓸 필요가 있겠네요.”

“영약 같은 경우엔 받아도 바로 섭취하지 않는 걸 권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해요.”

“조언은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 말을 하며 쓴웃음을 지은 형왕은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자네는 지금 황실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정신 나간 신하들이 미쳐 날뛰어서 황제 폐하께서 상당히 고생하고 계신다는 것 정도요?”

“……호오?”

과격한 단어 선택이지만, 동시에 핵심을 꿰뚫는 설천위의 대답에 형왕은 번뜩이는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경계와 기대가 동시에 담긴 눈빛.

그 눈빛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제가 폐하를 도울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니, 지금은 못 도와드려요. 제 앞길 헤쳐 나가기도 버거운지라.”

“그렇다면, 힘을 쌓는다면 도울 수 있다는 소리군?”

“…….”

형왕의 직진에 설천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정도(正道)를 가신다면, 언젠가 저희의 길과 만나겠지요.”

“……그렇다면.”

“그럼 감사했습니다!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덕분에 준비해야 할 게 뭔지 좀 감이 잡혀서요!”

형왕이 말을 더 이어 가기 전에 재빨리 말을 끊은 설천위는 그대로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차마 술자리로 돌아갈 용기가 안 났기에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설천위.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형왕은 작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설천위를 향한 모든 감시를 강화하라.”

“예.”

부하들에게 짧은 지시를 내린 형왕은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이시여, 저 아이가 폐하의 앞을 밝혀 줄 등불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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