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30화 (230/624)

제230화

229화-탐색전 (2)

“으응? 뭐야? 분위기가 서먹서먹하네?”

서먹한 게 보인다면서 왜 그리 당당하게 다가오냐.

아니.

그냥 다가오는 건 아닌가.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온 백유의 몸이 살존을 향하고 있었다.

즉, 경계하고 있다는 소리.

“이 말도 안 되는 언니는 누굴까?”

“이번 세대의 아이들이 뛰어나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생각한 것 이상이구나.”

백유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살존은 설천위를 지그시 바라봤다.

“네겐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으니, 선택지를 주도록 하마.”

“어머? 무시?”

야, 야! 진정해!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일렁이는 백유의 상태를 확인한 설천위는 즉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금 답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한 채 보낼 순 없으니까요.”

“호오, 현명한 선택이로군.”

설천위가 긍정한 순간.

살존의 몸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설천위 또한 사라졌다.

스릉.

“……늦었군요.”

“더럽게 빠르네.”

유예린과 백유조차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던, 극에 이른 신법.

“살존인가 보군요.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존은 찾기 힘든 미녀라고.”

“얘기만 들어 보면 그런 것 같네.”

유예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찾을 거지?”

“……솔직히 말해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그렇겠지. 나 역시 감도 안 잡히니까.”

살존(殺尊).

오존(五尊) 중에서도 가장 정보가 적은 인물.

그 실력은 확실하나 공식적인 자리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를 만났던 다른 오존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자신과 동렬에 놓았기에 오존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뿐.

그런 그녀가 설천위를 납치했으니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설 공자라면 어떻게든 돌아올 겁니다.”

“기다리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이 급박한 상황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여미려는 작게 감탄했다.

백유야 그렇다고 쳐도, 사랑하는 사람이 납치를 당했는데 유예린이란 여자도 참 냉정하…….

‘아, 아니네.’

냉정하긴 개뿔.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기센데?

유예린과 살짝 눈이 마주쳤던 여미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애먼 데 화풀이를 할 것 같진 않지만, 도저히 저 두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보고 있다간 진짜로 베일 것 같으니까.

흉흉한 살기를 품은 유예린의 두 눈에 여미려가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일단 찾아볼까?”

“둘이서 말입니까?”

“어. 괜히 소란을 피우는 건 천위도 안 바랄 테니까.”

“……좋습니다.”

“좋아. 그럼 움직이자.”

“아, 괜한 짓이야!”

순간 쩌적, 공간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여미려는 그리 느꼈으나 두 사람은 아니었다.

“과격해라.”

자신의 목을 노리는 유예린의 단검을 검지와 중지로 잡아내고, 심장을 노리는 백유의 주먹을 다른 손으로 잡아챈 살존은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나는 웬만하면 의뢰 이외의 살인은 하지 않거든. 그러니 그 아이도 무사히 돌려보내 줄게. 걱정 마.”

“……그걸 어떻게 믿죠?”

“믿어야지? 능력이 없으면 기도라도 해야 하는 거란다. 아이야.”

비웃음인지 미소인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유예린을 바라본 살존은 단숨에 두 사람의 공격을 물리쳤다.

“너희 둘은 꽤나 떡잎이 괜찮구나. 나중에 내 의뢰 목록에 올라올지도 모르겠어.”

의뢰 목록에 올라온다.

그런 섬뜩한 소리만을 남긴 채 살존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살존이 사라진 빈자리.

허무하게 막힌 자신의 단검을 바라보던 유예린은 작게 호흡을 정리하고 백유를 바라봤다.

“대련이라도 하겠습니까?”

“좋지. 나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것 같거든.”

주먹을 꽉 쥔 백유는 몸을 돌려 유예린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가슴이 답답한 것 같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움직였다.

“예?! 잠깐만요! 대련이요?! 친선전은 아직 시작 안 했는데……!”

“……이게 어찌 된 상황이지?”

당황한 여미려와 마찬가지로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되묻는 창린.

아니, 지금의 상황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질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진심으로 당황한 창린의 반응에 검을 완전히 숨긴 유예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가롭게 놀기엔 기분이 좋지 못해서 조금 몸을 움직이려는 것뿐입니다.”

“……나야 외부인이니 가타부타 말하기 힘들지만 친선전 전에 싸우는 건 좋지 않은 것 아닌가?”

아니, 상식적으로 누가 이런 상황에서 대련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당장 사흘 뒤에 싸워야 할 상대랑.

대체 어떤 사고를 거쳐야 그런 결론이 도출되고.

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두 사람이 동시에 그런 결론에 도달해 합의를 보느냐고.

“그럼 이동하죠.”

“그래, 어디 조용한 곳이 좋겠어.”

“잠깐, 회장님?!”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 적당히 놀다가 돌아갈 테니까.”

아니, 그게 논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야?

돌아가서 뭐라고 설명하라고?

거기에다 회장이야 원래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무림학관의 쟤는 또 왜 저리 회장이랑 죽이 척척 맞는 거야?

남자 취향이 비슷하면 성격도 비슷한가?

이해는 했지만 공감은 할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쉰 여미려는 어느새 사라진 두 사람의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일단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여미려가 떠난 뒤 홀로 남은 창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물론, 목적은 여미려와 똑같았다.

* * *

“그래서, 어떻게 말할지 준비는 됐나?”

갑작스레 앞에 나타나 말을 거는 살존의 모습에 움찔한 설천위는 작게 헛기침을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대뜸 어디 객잔의 별실로 끌고 오다니.

당황스럽네.

그나저나 대체 얼마나 경신술이 뛰어난 거야.

“대답하기 전에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아, 그 아이들의 반응이 보고 싶어서.”

반응?

자신의 질문에 장난스럽게 웃는 살존의 모습에 설천위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반응 한번 보겠다고 사람을 납치해?

그 자리에서 그냥 설명하고 끝낼 수 있었는데?

“하나는 정파의 아이인데, 은신의 극(極)을 바라보는 아이. 또 다른 아이는 사파인데, 패도(覇道)를 걷는 아이. 흥미가 생기지 않을 리 없잖니?”

그 말은 맞긴 하지.

솔직히 말해서 둘 다 특이한 건 사실이니까.

자신도 모르게 살존의 말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이던 설천위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선배님을 알아본 이유는 제가 혼을 다루는 술사이기 때문입니다.”

“흐응, 그래서?”

“저와 함께 계시는 분들께 들은 게 많아 우연히 알아본 것입니다. 선배님을 인지한 것도 저와 다니시는 분께서 먼저 알아채서 그렇습니다.”

[아주 거짓말이 술술 자연스럽게 나오는구나.]

[숨기는 것이 많은 남자가 인기가 있는 법이라던데, 이놈을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거, 조용히들 합시다.

이 누님이 들으면 어쩌려고?

뭐, 누님이라고 부를 나이는 아니…….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닙니다!”

“응. 이번 한 번은 봐줄게.”

뭐지, 독심술인가?

아니, 잠깐 그럼…….

“나는 거짓말을 아주 싫어하는데.”

섬뜩한 살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크르르르르.]

그 순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패융이 설천위의 목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면서 살존을 노려봤다.

그런 패융을 살짝 손으로 감싼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들어 살존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한들 이해해 주시지 않을 것 같아 거짓을 말했습니다.”

“응, 그래. 그럼 진실은?”

“예전에 선배님에 관한 정보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정보의 출처는 아쉽게도 공개할 수 없고요.”

“맞네. 다음은?”

“선배님을 찾은 방법은 제가 술사이기 때문입니다.”

“영력을 통한 수색? 하지만 이상한걸? 내 은신술은 완전하겐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영력도 감추는데?”

여태까지 수많은 암살행을 다니며,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

원한을 너무 사서 악귀의 표적이 된 인간들을 죽일 때, 항상 그랬다.

그들의 저택 곳곳에 술사들의 결계가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했는데.

살존의 눈에 의아함이 담기자, 설천위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웬만한 술사보다 제가 더 뛰어납니다. 거기에다 전 무공까지 익히고 있으니…….”

“더 뛰어나다? 그래서 날 찾아냈다?”

“옙.”

“흐음.”

썩 납득 가는 설명은 아니었다.

설천위의 무위를 생각하면 턱도 없는 소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부정할 수 있을 만한 근거도 없었다.

그저 주장일 뿐 입증할 증거가 없는 상황.

살존은 빠르게 흘려보냈다.

저쪽이 그렇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굳이 길게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알았어. 그럼 가 봐.”

“예?”

“왜? 나랑 좀 더 놀고 싶어? 그것도 나쁘지 않다만……. 살수가 주는 술은 마시는 게 아닌데?”

“흠흠, 살존께서 주시는 술이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지요. 하지만 물러나라고 하셨으니 물러가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지는 설천위.

진짜 어떻게 저렇게 속이 보일까.

설천위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살존은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일만 냥이라……. 아무래도 수지 타산이 안 맞을 것 같은데?”

목록에 적혀 있던 설천위의 이름을 작은 붓으로 표시한 살존은 먹이 마르도록 책상 위에 종이를 올려놓은 채 작게 웃었다.

“그 아이들을 적으로 돌릴 것을 생각하면 역시 수지 타산이 안 맞아.”

어찌할까?

* * *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거야?”

“다들 생각보다 크게 안 다쳤다고 하더라고.”

“신의님의 조치가 뛰어난 덕이겠지.”

“그것도 있겠고.”

저잣거리.

청수와 함께 거리로 나온 송아는 오랜만에 맞이한 둘뿐인 상황을 만끽했다.

이 더럽게 눈치 없는 소꿉친구는 이런 상황을 잘 안 만들어 줬으니까.

이번엔 다들 각자 할 일을 할 겸 쉬고 있으니 이렇게 시간이 났지 다른 때 같았으면…….

‘수련이나 하고 있었겠지. 불경이나 외고 있던가.’

아니, 도사 놈이 대체 왜 그리 불경에 집착하는 거야?

이쯤 되면 슬슬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도가나 불가나 거기서 거기 아니야?

종교엔 전혀 관심이 없는 송아는 입술을 삐쭉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일단 즐기는 데 집중하자.

듣자 하니 설 대주도 약혼자분이랑 놀러 나갔다고 하던데, 겹치지 않게 조심히 돌아다녀야지.

일단 저기 노점부터 가서 배나 채울까?

이 말코도사는 불교를 믿으면서도 또 도사라고 고기는 먹으니까.

다행이지.

“응?”

“이렇게 만나는군요.”

청수를 데리고 노점에 있는 탁자에 앉은 송아는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채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적랑대 부대주!”

“사하랑이라고 합니다. 평범하게 사 소저라고 부르시면 돼요.”

“아! 사 소저이시군요. 아미타불, 저는 청수라고 합니다.”

“……도사인데 불호를 외시는 분이 있다더니, 진짜였군요.”

“아니, 뭘 평범하게 인사하는 거야!”

찰싹 청수의 팔을 때린 송아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하랑을 바라봤다.

저 여자가 얼마나 강한데.

어쩌면 개인전에도 나올지 모를 정도로 강한데, 이렇게 방심해서 인사나…….

“딱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휴식할 땐 휴식하는 유형이라서요.”

차를 마시며 부드럽게 웃은 사하랑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렇게 된 거 교류라도 하죠? 친선전이란 것이 애초에 교류를 위한 것 아닌가요?”

“……그건 맞지. 알았어.”

상처 부위가 살짝 욱신거리는 것 같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왠지 지는 것 같아서 송아는 청수와 함께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진짜 혼자 온 건지 주변에 다른 흑룡학관의 학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이내 조금 편안한 자세로 대화에 임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은 잘 흘러갔고…….

“이런이런, 이런 미인분들 속에 남자가 하나뿐이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잘 흘러가는 시간만큼이나 날파리들도 잘 꼬였다.

청수는 부상의 여파로 안색이 좋지 않아 딱 봐도 쉬워 보이니 이리 접근하는 것일 터.

그 유치한 수작에 미간을 찡그린 사하랑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려는 순간.

“내 친구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문율이 사내의 어깨를 붙잡았다.

“없다면, 꺼져 줬으면 좋겠군.”

설천위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기세를 몸에 두르고 단숨에 사내를 쫓아내는 문율.

그 모습에 설천위와의 싸움이 떠올라 묘하게 심장이 두근거린 사하랑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세를 가라앉히는 순간.

“헤헤, 괜찮아요?”

조금 전의 모습 따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순둥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사하랑의 심장은 더욱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