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28화 (228/624)

제228화

227화-만시(萬尸) (4)

우득.

거대한 팔에 붙잡힌 악귀의 머리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뼈가 어긋나다 못해 부서진 것 같은 소리.

이대로라면 단숨에 그 머리통을 부숴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언여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냉랭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했으나, 설천위는 담담히 그녀의 눈과 마주했다.

“그만 노려봐.”

“만시를 어떻게 알았지?”

“비밀이라니까.”

뿌득 뿌득.

설천위가 어깨를 으쓱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등에서부터 튀어나와 악귀의 머리통을 붙잡았던 손이 결국 완전한 주먹을 만들어 냈다.

당연히, 그 손에 붙잡혀 있던 악귀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피가 흐르지 않는 살점이 언여휘의 머리 위로 떨어졌으나, 단 하나의 살점도 그녀를 더럽히진 못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치우기라도 하는 듯 살점들은 전부 언여휘를 빗겨 갔다.

“대신 다른 걸 알려 주지.”

여태까지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언여휘를 마주한 설천위는 가볍게 발을 굴러 몸을 움직였다.

뒷짐을 진 채 신법만으로 거리를 좁힌 설천위는 단숨에 언여휘의 코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나는 어째서 결계를 쳤을까?”

“나를 부수는 데 결계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혹시 짐작 가는 이유라도 있나?”

“시야를 가리는 거, 려나?”

“그것도 정답. 역시 똑똑하네. 오래 살아서 그런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몸을 돌리는 순간.

거대한 팔이 단숨에 언여휘를 후려쳤다.

아까 대충 붙여 놨던 목은 사실 붙은 게 아니었는지 허공에 머리만을 남긴 채 몸이 날아간다.

그 머리를 또 다른 손으로 단숨에 붙잡아 허공에 고정시킨 설천위는 자신을 바라보는 언여휘와 눈을 마주했다.

“네가 완전한 분신 즉, 본체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라면 시야를 가리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꽤나 차단할 수 있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언여휘는 이내 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곤 다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굳이 혼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도 정보 정도는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어.”

“뭐, 그렇겠지?”

전처럼 쉽게 당할 리도 없고.

아마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연결을 끊어 버릴 준비를 하고 있을 터.

추적은 불가능할 거다.

그러니, 딱히 집착할 생각은 없었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선택지는 단 하나만 남는다.

“끝내자.”

적의 의도도 모르겠고.

적을 추적할 방법도 없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어어어어!!]

머리가 사라져 잠시 멈췄던 만시(萬尸)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육체에서 강렬한 악취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가 썩을 것 같은 강렬한 악취.

단순히 냄새가 나는 걸 떠나서 실제로도 들이마시면 내장이 뒤틀려 버릴 강력한 독이지만…….

[그어?]

한 줄기 바람이 그 악취를 단숨에 몰아냈다.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만시의 어리둥절한 반응과 함께 거대한 팔이 만시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로 쭉 당겨서…….

쾅!!

일격.

두 개의 거대한 팔이 만시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머리가 없는 만시의 몸을 마치 고기 다지듯 격렬하게 두들긴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광경인가.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어느새 땅에 떨어진 언여휘의 머리가 감탄했다.

“진짜 괴물이네.”

“뭐가?”

“아무리 완성된 직후라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악귀가 아닌데.”

“상성의 차이라는 거지.”

만시는 사람의 사체를 재료로 현현한 악귀다.

당연히 다른 사념만으로 이루어진 악귀들보다 실체가 더 뚜렷하다.

보통의 술사들에게 실체가 뚜렷한 악귀는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운 적일 수밖에 없다.

술사들의 술법은 실체가 있는 것엔 위력이 줄어드니까.

거기에다 술사들은 기본적으로 전투 자체에 그리 능하지 못하다.

상대가 몸으로 밀고 들어와 버리면 도망치는 것이 최선인 이들이 대다수란 소리다.

그러니 압도적인 크기에다 실체를 가진 만시는 그런 술사들에겐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천위에게 그런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덩치가 거대해?

때리기 편할 뿐이다.

실체를 가졌어?

조금 심혈을 기울여 때리면 될 뿐이다.

“선택이 잘못됐어.”

뭐, 애초에 이렇게 기습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악귀들 중 그나마 불러내기 편한 게 만시이니 만시를 쓴 거겠지만.

“응, 아무래도 선택을 잘못한 것 같네.”

설천위의 말에 순순히 동의한 언여휘는 설천위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번에도 내가 진 것 같네.”

“씁.”

언여휘의 말에 작게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는 언여휘를 내려다봤다.

“이상한 복선 깔지 마라.”

“후후, 무슨 복선?”

“진짜, 나중에 딱 드러났을 때 별거 아니기만 해 봐.”

뒷짐을 풀고 허리를 숙여 언여휘의 머리를 들어 올린 설천위는 뼈가 부러진 탓에 서지 못하고 이쪽으로 기어오고 있는 언여휘의 몸을 향해 머리를 던졌다.

“어머? 이건 무슨 배려? 나 감동했을지도?”

“개소리 그만하고. 어차피 본체에게도 전해질 테니 딱 한 마디만 하지.”

휘오오오.

그 손안에 바람의 구체를 만들어 낸 설천위는 어느새 몸과 만나 자리를 되찾고 일어서기 시작한 언여휘를 짧게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

“다음에 나랑 싸우고 싶으면 본체로 와라.”

[그워어어어!!]

뒤로 돌아선 순간, 거대한 입이 설천위를 덮쳤다.

처음에 부서져 파편이 되어 떨어졌던 살점들이 다시 합쳐져서 만들어진 만시의 머리.

강렬한 악취와 함께 달려드는 그 입안으로 구체를 던져 넣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발을 차올려 그 머리를 허공으로 띄웠다.

웬만한 성인 남성의 상체보다 큰 머리가 허공에 떠오르고.

설천위의 몸에서 나왔던 거대한 두 팔이 만시의 몸체를 자빠트렸다.

[태란(颱卵)]

허공에 떠오른 만시의 머리에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발동된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어느새 완전히 일어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언여휘를 확인하곤 망설임 없이 발을 뗐다.

성큼성큼 결계의 경계로 걸어간다.

“이대로 가게?”

“이 이상 시간을 끌어서 뭐하게? 가진 거라곤 덩치와 독밖에 없고 나한텐 전혀 통하지도 않는 악귀를 상대로 시간이나 질질 끌면서 싸우리?”

대충 손을 흔들며 걷던 설천위는 금세 결계의 끝에 도달했다.

결계의 끝.

잠시 멈춰 선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언여휘를 바라봤다.

“참고로 꽤 아플 거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어느새 결계 내부를 가득 채운 날카로운 바람에 설천위의 목소리조차 묻히기 시작할 때쯤.

그를 바라보던 언여휘는 씩 입꼬리를 올리곤 웃었다.

“응, 그래 보이네.”

“그럼, 잘 가라.”

설천위가 결계를 빠져나가고.

거대한 바람이 결계 내부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바람은 이윽고 폭풍이 되었고, 그 폭풍은 거대한 분쇄기가 되어 내부의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 놓기 시작했다.

마치 철로 만든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몸이 수십 조각으로 분쇄되기 시작한 언여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언젠가 네 재능이 네 발목을 붙잡을 거야.]

* * *

“더럽게 힘드네.”

영력의 소모가 상당했다.

전에 구마를 상대했을 때보다 더 크게 만들었더니, 좀 빡세네.

영력의 소모를 가늠하던 설천위는 축축 처지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일단 힘든 건 힘든 거고.

“어때요?”

[음, 무사히 다 구한 것 같긴 하구나. 그 형왕이라는 녀석이 약속은 지킨 모양이야.]

내가 4구역을 봉쇄하고 싸웠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여기에 모인 인간들이 만시도 아니고 그냥 움직이는 시체나 마찬가지인 강시들을 상대로 질 만한 이들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다시 몸을 돌려 결계를 바라봤다.

내부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결계가 미약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확실히 겁나 강해지긴 했는데.”

가진 걸 전부 끄집어내면 단주급도 상대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구마를 상대로 이기기도 했고.

물론 상대가 방심 없이 진지하게 달려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싸움이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학관에서 쌓을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아니긴 하다.

“이 이상은 큰 의미가 없나.”

슬슬 준비해도 되겠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한 설천위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발견하곤 몸을 돌렸다.

그들을 보기도 전에 기척으로 느낄 수 있다니.

참, 옛날엔 생각도 못 했던 감각이네.

“어떻게 된 건가?”

“대충 정리됐습니다.”

“……음.”

설천위의 대답에 그의 뒤에 있는 결계를 바라보던 형왕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경기를 중단한 후 저 내부에 있을 녀석들을 처리해야겠군.”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언여휘의 본체가 저 안에 있다면 몰라도 도구의 힘을 빌려야 제대로 된 술법을 쓸 수 있는 분신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차라리 빠르게 이 경기를 끝내고 승패를 가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형왕의 뒤를 따라온 성무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대원들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사하랑은 남겨 놓고 온 것 같았다.

“어때? 대주끼리 싸우는 거로 승패를 결정하고 애들은 빨리 쉬게 해 주는 게?”

설천위의 말에 성무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제안이다.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말끝을 흐린 성무경은 어느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결계의 내부를 눈에 담으며 고개를 저었다.

“적랑대는 은혜를 안다.”

완전히 초토화된 4구역.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짐작조차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모습은 실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물가 곳곳에 생긴 거대한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인간인지 여부도 짐작하기 힘든 살덩이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분쇄기 안에 수십 명의 사람을 몰아넣은 것 같은 참혹한 광경.

그 위로 서서히 내려온 거대한 흑룡이 몸을 비틀며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적을 찾는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성무경은 말했다.

“우리의 패배로 하지.”

절대 쫄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구해 준 은혜가 있으니까 순순히 물러나는 거다.

암.

그렇고말고.

* * *

“크흐, 재미있군.”

가장 높은 망루.

상황을 지켜보던 야귀단주 소국은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번 세대는 아주 재미있는 놈들만 있군.”

“의외로군. 흑룡학관의 학생이 싸워 보지도 않고 패배를 인정했는데 거기에 대해선 화를 내지 않는가?”

“우리는 사파라오. 제 살길을 도모하겠다는데 그것을 책망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하물며, 이런 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경기라면 더더욱 목숨을 걸 필요가 없소이다.”

사파적인 관점에선 참으로 정답에 가까운 행동이다.

상황이 급박해진 지금, 설천위는 가진 것을 다 꺼낼 확률이 높았고 그렇게 되면 상대는 당연히 심각한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부상으로 회복이 힘들어 쉬는 기간이 늘어나기만 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니 여기에선 물러서는 게 옳았다.

야귀단주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재상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불렀다.

무진을 부른 건 아니었다.

그는 상황이 정리된 사실에 안도하며 불호를 외우고 있었으니.

“휘언.”

“예, 어르신.”

“네가 보기엔 어떠냐?”

재상의 물음에 그의 곁까지 다가온 휘언이라 불린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다행히 안정되었으니 큰 문제가 없어 보이옵고, 학생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크게 감탄하고 있었사옵니다.”

“감탄이라, 가장 인상 깊은 아이가 누구더냐?”

가장 인상 깊은 아이.

그 말에 고개를 든 휘언은 소매로 입을 가리곤 작게 웃었다.

“역시 설천위라는 아이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흠,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재상은 잠시 경기장 안에 있는 설천위를 바라보곤 휘언을 향해 짧게 지시했다.

“폐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애쓴 아이다. 상을 내릴 테니 준비해 두도록.”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소매로 입꼬리를 감춘 것으로도 부족해 고개를 숙인 휘언은 속으로 대답을 이었다.

큼지막한 녀석으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