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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26화 (226/624)

제226화

225화-만시(萬尸) (2)

설천위의 주먹과 사하랑의 장도가 부딪치며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인간의 육체와 쇠가 부딪쳐 난 것이라곤 상상하기 힘든 강렬한 소리.

기이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지만, 그 속에서 사하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장도를 회수하고 다시금 공격을 이어 나갔다.

자신의 장도를 쳐 내며 올라간 왼팔 때문에 생긴 옆구리의 틈.

그 틈을 향해 전력으로 장도를 찔러 넣는다.

그리고 그에 맞춰 반대쪽에 있던 성무경의 공격에 설천위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돌렸다.

성무경의 검을 막기 위해 설천위도 전력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덕에 원래부터 비어 있던 틈은 더욱더 커져 이젠 눈을 감고 찔러도 명중시킬 수 있을 수준이 됐다.

이대로 단숨에 설천위의 몸을 꿰뚫는다.

그런 의지를 품은 장도가 파고들었지만.

까드드득.

막힌다.

용의 형상을 한 기운이 사하랑의 도를 물어 제지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일까.

호신강기라고 할 수 없는, 무공 이외의 영역에 존재하는 기술.

‘……뭐 하는 인간인지 궁금하군요.’

무인과 술사는 영역이 아예 다르다.

필요한 재능도 다르고, 쌓아 올리는 수련 방법도 다르다.

무림맹에 술사를 위한 단이 있듯, 사천맹에도 술사들이 있는 단이 있다.

사파의 영역에도 악귀는 출몰하고 맹에 속해 있는 문파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무림맹과 달리 사천맹에는 그런 단이 하나밖에 없지만.

여하튼, 사파에도 술사는 존재하고 그들은 사파라는 특성에 맞춰 인간을 상대하는 법도 상당히 심도 깊게 연구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술사와 무인은 아예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서로 겹칠 일이 없었기에.

서로를 알 생각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술사들이 외부 활동을 위해 약간의 호신술을 익히는 정도가 겹치는 영역의 전부라고 할 만한데…….

‘이건 대체 무슨 혼종인지 모르겠군요.’

용에게 물린 장도를 손목과 팔을 비틀어 빼내며 사하랑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무공 실력이 뛰어난 건 확실했다.

아마 일대일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겠지.

예상 승률은 1할 미만.

동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뛰어난 실력이다.

자신은 그렇다고 치고 성무경과 맞먹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무공 실력은 확실히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술법까지 익혔다니.

이게 인간의 재능과 노력으로 과연 가능한 일인가.

거기에다 가끔 날아오는 저 거대한 용의 꼬리.

술법의 영향으로 만든 건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일순간이나마 그쪽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큰 위협이다.

그런 존재를 학관의 학생이, 아니 인간이 다룬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

이런 인간이 바로 그런 존재 아닐까.

한 세대에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기적이라고 불리는 존재.

무림학관에선 갑(甲)이라고 불렀던가.

그런 괴물을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천위의 수준을 읽고, 그를 분석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자신의 불리함만 눈에 들어온다.

승리를 위한 길에 수많은 도검이 바닥에서 솟구쳐 있는 듯했다.

걷다간 발바닥이 걸레짝이 되어 버릴 것 같은, 그런 도검의 지옥.

짝!

가볍게 자신의 뺨을 때린 사하랑은 다시금 장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분석하고 사고할수록 더 절망적이라고?

그렇다면, 생각을 멈춰라.

본능에 의지해라.

이를 악물고 나아가라.

자신이 꼬꾸라져도 자신의 시체를 밟고 뛰어올라 상대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줄 이가 곁에 있지 않은가.

각오를 다진 사하랑이 다시 장도를 세운 그 순간.

“……음!”

강렬한 악취에 서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코를 쥐었다.

웬만한 악취라면 그저 미간을 찡그리고 말겠지만, 시체가 수십 일은 부패한 것 같은 지독한 악취는 도저히 그냥 참기가 힘들었다.

본능적인 행동 이후에 내공을 돌려 후각을 마비시키려던 그 순간.

‘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다.

분노인가, 살의인가, 슬픔인가.

기묘한 감정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에 헛구역질이 치밀었지만, 그것들과 별개로 몸이 움직였다.

살의를 가득 머금은 장도를 휘두른다.

목표는 눈앞의 설천위.

저 목을 베고 혈관에서 솟구치는 피를……!

“짜증 나는군.”

어느새 휘두른 장도가 설천위의 주먹에 막혔다.

동시에, 여태까지 상기된 얼굴로 전투를 이어 나가던 설천위의 얼굴을 확인한 사하랑은 강렬한 오한을 느꼈다.

식은땀이 흐르다 못해 등 전체가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 한기.

한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장도를 받아 낸 설천위는 그 도를 대충 쳐 내고 몸을 돌렸다.

마치 이 이상 싸움에 관심이 없다는 듯.

“잠시 휴전이다.”

분노와 살의로 가득한, 처음 듣는 목소리에 사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도를 거뒀다.

거기에.

‘……냄새가?’

아니, 이 순간에 왜 냄새를 떠올렸지?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이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사하랑은 일단 다시 설천위를 경계하는 길을 골랐으나.

“술법인가?”

어느새 그녀와 마찬가지로 검을 집어넣은 성무경 또한 한없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방향은 호수가 있는 4구역.

그제야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성무경도 느꼈다고 판단한 사하랑은 경계심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지금 중요한 건 이 전투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대체 냄새가 어떻게 이렇게 단숨에 사라졌지?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 냄새의 행방에 이상함을 느낀 사하랑은 이내 자신이 왜 냄새를 자꾸 의식하는지 깨달았다.

“……진정됐어.”

가슴의 두근거림, 기묘할 정도로 과도하게 일어나던 감정.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냉철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사하랑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개 같은 인간이 쓰는 독의 일종이야. 술법과 섞어 무인은 대처하기가 아주 까다롭지.”

심지어 이번엔 악취의 형태로 뿌린 것 같고.

영력에 바람을 담아 날려 버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미 꽤나 퍼진 것 같은데.”

이건 문제가 심각했다.

학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 주독(呪毒)은 기절한 사람도 조종할 가능성이 컸다.

싸움이 끝난 구역엔 부상자들이 많은 상황.

부상자들이 억지로 움직이는 것도, 그런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또 전투가 일어나는 것도 아주 좋지 않다.

“왜 바로 말 안 했어요?”

[형왕이 움직였기에 너희들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저 위에서 구경하는 놈들도 있고.]

혼들의 대답에 설천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형왕도 있고, 적수단주에 야귀단주까지 있는데 문제될 건 없겠다고 판단한 것도 이상하진 않지.

오히려 전투에 빠져 상황 파악이 늦은 자신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네 모습을 보니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섣불리 말하기가…….]

[음음, 무인이란 그런 몰입된 싸움에서 벽을 넘는 경우가 많으니 조금 더, 라는 생각에 그만…….]

“그런 거로 제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면 이 고생을 해서 무공 실력을 길렀겠어요?”

[…….]

어이, 거기 혼들.

왜 전부 ‘아…….’ 하고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냐.

자신들은 다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거지?

생전에 천재였던 거 티 내지 마라.

이 위급한 상황과는 맞지 않은 혼들의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설천위는 다시금 4구역 쪽을 바라봤다.

거리가 꽤 있다 보니 상당히 작긴 하지만, 확실히 보였다.

이 상황을 만들어 놓고 처웃고 있는 짜증 나는 인간의 면상이.

“야, 지금 당장 1구역으로 뛰어가라.”

“우리 애들도 당하고 있군.”

“강시랑 섞여서 난리도 아니다. 독도 퍼지고 있는 것 같으니 이대로 가다간 누구 하나 죽는 수준으로 안 끝난다.”

“확인했다.”

설천위의 조언에, 즉시 상황을 받아들인 성무경은 사하랑을 보며 눈짓했다.

“즉시 1구역으로 향한다.”

“예.”

성무경이 사하랑을 데리고 1구역으로 출발하고.

홀로 남은 설천위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망루 쪽을 바라봤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건…….

“황실에 꽤나 협력자가 많은가 본데?”

영생(永生)이 매혹적인 열매이긴 하지.

형왕이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상황 파악을 끝낸 설천위는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그 순간.

냉철함을 위해 억눌러 놨던 감정이 솟구친다.

오랜만에 느꼈던 고양감이 딱 끊긴 것?

화가 나지.

하지만 참을 수 있다.

목숨이 걸린 싸움도 아닌, 단순한 유흥에 가까운 전투였으니 아쉽긴 하지만 얼마든지 흘려보낼 수 있다.

허나, 세상에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상황을 깨닫고, 영력을 본격적으로 운용하면서 파악하게 된 현실.

천에 가까운 숫자.

그들 모두가 인간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살아 있는 상태였던, 죽은 상태였던.

거기에다 사방으로 퍼진 이 주독(呪毒)의 재료가 됐을 사람들.

이만한 위력의 주독이라면 제물 없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하는 짓에, 이미 중독된 부하이자 친구인 이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설천위의 분노에 호응한 패융의 포효와 함께 설천위는 정말 오랜만에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살의와 분노를 담은 영력이 부적을 불태우며 허공으로 퍼진다.

게임 속에서 나왔던 술법을 따라 하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만들어 낸 술법.

사전 동작이 너무 길고 너무 눈에 띄어서 쓸 만한 상황이 생길 거란 생각이 딱히 안 들었던 술법.

하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한 술법.

꿀렁.

5구역의 상공에 거대한 물의 구체가 떠오른다.

설천위의 영력이 만들어 낸, 엄청난 크기의 구체.

그 구체의 주위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준비를 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하고.

[크롸라라라!]

패융이 그 구체를 향해 돌진했다.

망설임 없이 그 구체에 몸을 들이박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패융의 거대한 육체를 전부 담아내기엔 조금 부족해 보였던 크기의 구체였으나, 이내 패융을 전부 받아들인 구체는 격렬하게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준비가 전부 끝난 것을 깨달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이 이상 이 술법에 자신이 관여할 것은 없었다.

언여휘가 있는 방향으로 발을 떼며, 설천위는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싹 다 집어삼켜라.”

[수룡현현(水龍顯現)]

물의 구체가 터지고, 그 속에서 솟구친 거대한 용이 단숨에 하늘을 찍고 아래로 떨어진다.

전신에 휘몰아치는 물을 두른 거대한 수룡.

용이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폭음이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자갈과 물보라가 솟구치고.

물과 바람에 의해 분쇄된 강시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와 함께 퍼지기 시작하는 악취를, 영력으로 만든 바람으로 모아 가며 설천위는 전진했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7구역에 있던 강시 태반을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패융은 또다시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하핫! 역시 괴물이네?”

순식간에 4구역에 도달한 설천위는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언여휘를 짧게 보곤 그대로 고개를 돌려 형왕을 바라봤다.

“애들을 챙겨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도 죽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형왕의 약속에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설천위는 다시 몸을 돌려 언여휘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여유인지 아직도 웃으며 이쪽을 바라만 보고 있는 언여휘.

조금 전의 공격으로 강시 수백 구가 부서졌는데도 저리 웃고 있다.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황제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이 경기를 감히 습격할 생각 따윈 하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빨리 끝내자.”

그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기도 전에 끝내 주마.

도(刀)를 뽑아 드는 설천위와, 그런 설천위를 보며 웃는 언여휘.

그 순간.

거대한 수룡이 언여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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