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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25화 (225/624)

제225화

224화-만시(萬尸) (1)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당연히 경기를 감독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기감(氣感)의 날카로움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며, 어느 누구보다 주의 깊게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

바로 형왕이다.

망루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형왕은 이변을 확인한 즉시 움직였다.

그를 대표하는 무기인 나무 곤봉을 들고 4구역 앞에 섰다.

“뭐 하는 놈이냐?”

“놈이 아니라 년인데?”

히힛.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뗏목 위에서 언여휘가 웃었다.

위태로운 뗏목 위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웃고 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형왕은 이내 고개를 내렸다.

이윽고 서서히 물 위로 올라오는 존재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한 형왕은 미간을 찡그렸다.

인간이었던, 걸어 다니는 시체들.

강시(僵尸).

“외도(外道)로군.”

“이 세상에 정도(正道) 따윈 없다고. 황실에 녹을 받아먹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언여휘의 모습에 형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황실은 분명 정도(正道)가 있다고 말하기 힘든 곳이니까.

권력 다툼 속에서 모두가 신(信)과 의(義)를 입에 올리나, 그것을 지키는 자들은 도태된다.

옛 성인들의 말 따윈 그저 망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일 뿐이다.

“허나, 그 말에는 분명한 오류가 있다.”

있기 힘든 것뿐이지, 없는 건 아니다.

도태되는 이들이 대다수이나 그래도 도태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정도(正道)란 사람으로서 걸어야 마땅한 길. 자신을 갈고닦고 가족을 위하며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것이 정도(正道)다.”

“흐응? 나랑 말씨름이나 하려고? 나쁘지 않지. 오빠같이 듬직한 남자 꽤나 내 취향이거든.”

턱을 괸 채 웃는 언여휘를 보며 형왕은 고개를 저었다.

“언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라면 당연히 걸어야 하는 정도를 지키는 이가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다는 뜻일 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농사일을 하고, 오후엔 산을 돌아다니는 저 양민들이 그러하고.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는 관리들이 그러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정도를 걷고 있음이니.

“네 녀석과 같이 스스로를 위해 인간을 잡아먹는 이들을 외도(外道)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아니, 오히려 이쪽이 정도 아닐까? 인간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이잖아.”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소조차 풀을 뜯어 먹어야 살아갈 수 있고, 그 풀조차 물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이니.”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강시를 보며 형왕은 손에 쥔 나무 곤봉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다른 생명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허나, 네 행동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구나.”

“무슨 소릴까? 나도 살아 보겠다고 이러는 건데~?”

“살아?”

언여휘의 한마디에 흔치 않게 피식 웃음을 지은 형왕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걸어 다니는 시체가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혈혼귀(血魂鬼) 언여휘.”

“흥, 알면서 처음에 왜 누구냐고 물어봤대?”

혈족의 넋조차 잡아먹은 귀신.

천륜을 거스른 죄인이자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마귀.

수명을 넘어 영위하는 삶은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는 썩어 갈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 영생을 누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니라면 황제가 진즉에 영생을 살았겠지.

저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채로 걸어 다니는 것이다.

형왕의 신랄한 평가에 언여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인간이란 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면 네 기준에서도 이것들은 인간이 아니겠구나.”

자신을 둘러싼 강시들을 짧게 바라본 형왕은 이내 고개를 돌려 구석에 숨어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4구역의 깃발을 회수해 숨어 있던 잠룡대의 대원들.

긴장이 역력한 태도로 각자 무기를 손에 쥐고 싸울 준비를 끝낸 이들을 보고 형왕은 곤봉을 휘둘렀다.

“경기는 속행이다. 너희는 얌전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도록.”

강시 하나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형왕은 다시 언여휘를 바라보며 다시금 곤봉을 휘둘렀다.

분명 한 번 휘둘렀는데 몇 구의 강시가 단숨에 분쇄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이윽고 오감을 자극하는 역한 썩은 내가 경기장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기장을 둘러싼 망루 중 하나.

언여휘와 강시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선 무진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형왕에게 가세하고 싶지만, 이곳은 현재 황실의 입김이 닿는 곳.

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한 차례 호흡을 삼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무진은 이내 강시의 등장에 놀라 눈치채지 못했던 것 하나를 깨달았다.

“됐네. 형왕이 움직였으니 우리는 경기의 향방이나 구경하지.”

심드렁한 태도.

아예 관심도 없다.

지금 강시가 올라온 물가에는 무림학관과 흑룡학관의 학생들이 있는데.

심지어 전원이 깃발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약한 축에 속하는 이들인데도 아예 관심이 없다.

형왕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사에 아예 관심이 없기에 나올 수 있는 태도.

‘……정녕 무심(無心)하구나.’

황제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재상(宰相)답다고 해야 하나.

현 황제는 노골적으로 무림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를 보필하는 재상이 무림인의 목숨에 관심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아미타불.’

무림인도 황제의 백성이고, 무엇보다 지금 사지에 내몰린 이들은 아직 다 여물지 못한 새싹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삿된 존재 앞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데, 어찌 이리…….

“흥미롭군. 언여휘인가?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진짜 무림학관에 이를 갈고 있나 보군.”

“……단순히 흥미로 넘길 만한 인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흥, 무림공적은 너희들이 선포한 거지 우리는 딱히 인정한 적 없다.”

애초에 무림학관이라는 광오한 이름을 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적을 무림공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무진의 낮은 음성을 코웃음으로 받아친 야귀단주 소국은 오히려 의자에 더 깊게 몸을 묻었다.

“저년이 무슨 짓을 하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대체 무슨……!”

“단.”

무진의 말을 끊은 소국은 어느새 뽑아 의자 옆에 세운 도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차갑게 웃었다.

“한 식구가 피를 흘리면 핏값 정도는 받아 내야겠지.”

* * *

“역시 오빠는 좀 강하네?”

“뜬금없군.”

“아니, 진짜로. 계획에 넣어 놓길 잘했어.”

벌써 몇 구째지.

형왕의 주위로 널브러진 강시의 숫자를 세며 언여휘는 배시시 웃었다.

“이야! 거의 백 구는 넘게 망가졌네? 이거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는데.”

고생해서 만든 것이 부서진 것치고는 너무나도 평온한 목소리.

그 기묘한 반응에 형왕은 주위를 둘러봤다.

물 안에 아직도 시체가 더 있는 듯 물결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으나 그 숫자는 분명 확연하게 줄어 있었다.

이 근처에는 더 이상…….

이 근처.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형왕은 고개를 들어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봤다.

우측으로 1구역이 있고.

좌측으로 7구역이 있다.

각기 흑룡학관과 무림학관의 학생들이 있으며, 그들 전부는 싸움이 끝나거나 싸우지 않고 그저 물에 떠 있던 깃발을 회수해 전부 물가로 나온 상황.

즉, 물에 더 이상 사람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대체 몇 구나 되는 거지?”

“응? 뭐가?”

형왕의 질문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묻는 언여휘.

그런 장난기 깃든 반응에도 형왕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언여휘를 바라봤다.

아니, 흔들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떨리지는 않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확실하게 변했으니.

분노라는 감정이 형왕의 두 눈에 깃들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의 인간을 죽인 것이냐.”

경기장의 물가.

세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강시들이 물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히히, 궁금해? 근데 아쉽게도 나도 잘 몰라. 그냥 가져오는 대로 전부 만들었으니까.”

숫자를 셀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만드느라 바쁜데.

재료의 부족?

“이 넓은 땅덩어리에 가장 남아도는 게 뭔지 알아?”

이 상황에서 그 답은 하나밖에 없기에 형왕은 침묵했고, 그 반응에 언여휘는 어깨를 으쓱이며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인간이야. 참 구하기 쉬워. 먹고살기 힘들어서 가족이나 스스로를 팔아넘기는 녀석들이 꽤 많거든.”

참, 세상이란 것이.

“아, 물론 남을 납치해다 파는 녀석들이 더 많아. 그런 걸 생각하면 아직 이 세상은 살 만한 걸까?”

“……헛소리가 길구나.”

냉정함을 장점으로 하는 형왕의 목소리조차 차갑게 식어 버릴 정도의 끔찍한 일을 벌여 놓고도 언여휘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잃을 수가 없었다.

“역시, 계획에 넣어 놓길 잘했다니까?”

그조차 예상한 반응이었으니.

무공이 아닌 품성이 별호가 될 정도로 형왕(衡王)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막힘이 없었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가 분명하고 그것을 신념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강시 같은 존재를 보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하물며, 황제의 이름 아래 진행되는 경기에 끼어들면?

당연히 전부 부숴 버려서 막으려고 하겠지.

그렇기에.

“전부 부술 수 없는 숫자로 데려왔지.”

생기(生氣)가 없는 강시는 기감만으론 파악하기가 힘들다.

특수한 제련을 거쳐 특별한 힘을 부여한 강시라면 또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감지가 어려운 강시를 강을 통해 이동시켜 한곳에 모이게 한다.

물에 불어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약품 처리를 하느라 시간과 돈이 꽤 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참으로 훌륭한 결과다.

“부술 수 없다?”

그래, 이런 반응도 좋지.

웃으며 만족하던 언여휘는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묻는 형왕을 보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못 부수지.”

“혹시, 내가 누구인지 착각하고 있나?”

강시를 상대할 때는 필요가 없던 압도적인 기세가 형왕의 몸을 휘감는다.

그것은 명백한 분노의 표현이자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의 표현.

허나.

올바른 삶을 살아온 형왕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부술 수 없을걸? 그럴 여유가 있을까?”

배시시 웃으며, 언여휘는 가볍게 손짓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린 부적이 푸른 불꽃에 타들어 갔다.

그것은 하나의 시작점이다.

“당신, 냄새를 차단했었지?”

언여휘의 물음에 형왕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맡았던 냄새를 떠올렸다.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

강시들의 내부가 썩어 그런 냄새가 당연히 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후각을 차단해 놓았다.

“사람이란 것은 참으로 어리석어.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하긴, 뭐 그런 걸 끝도 없이 생각하면 밖에 걸어 다니는 것도 하지 못하겠지만.

언여휘의 기이한 미소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간단한 독이야. 이성을 상실시키고 본능을 자극하지. 더불어 강제적으로 공격성을 끌어올리고.”

언여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고개를 돌렸던 형왕은 자신의 눈에 담긴 상황을 인지하고 즉시 땅을 박찼다.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무림학관의 학생들 사이로 끼어든 형왕은 단숨에 나무 곤봉을 휘둘러 그들을 진정시켰다.

기절과 함께 늘어지는 두 사람.

그리고 그런 형왕을 바라보며 언여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황제 폐하의 이름 아래 펼쳐지는 경기에서 사망자를 만들 생각은 아니지?”

조롱기 섞인 목소리.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린 형왕은 이미 바람을 타고 악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선택을 위해 형왕이 고민에 빠진 순간, 이미 언여휘의 두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자, 여기서 나랑 눈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어서 가라고.

입꼬리를 비틀며 언여휘는 형왕의 저 너머를 바라봤다.

자신의 목표는 저쪽에 있으니.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

눈치챘나?

히히.

분노로 가득한 용의 포효에 웃으며 언여휘는 움직였다.

“이번엔 가져갈 거야.”

언여휘의 두 눈동자가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기이한 열기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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