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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24화 (224/624)

제224화

223화-단체전 (9)

‘깃발만은 사수해야……!’

사하랑과 눈이 마주친 좌백은 이를 악물었다.

적랑대 부대주 사하랑의 실력은 초절정에 근접한 절정의 끝자락.

무력으론 가무학보다 조금 처진다는 평가가 있지만, 특유의 냉철한 성격과 판단으로 부대주의 자리를 차지한 여인.

사파에서 무력의 부족함을 다른 것으로 메울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무시해선 안 될 부분이다.

강자존을 따르는 세계에서 강함 이외의 가치로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이니까.

“눈빛을 보아하니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조금 떨어진 거리.

좌백을 바라보며 사하랑은 담담하게 도에 손을 올렸다.

“순순히 깃발을 넘겨준다면, 큰 상처 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겁니다.”

노골적으로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사하랑을 보며 좌백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구려, 소저.”

굽혔던 무릎을 펴며, 갈대 사이에서 일어선 좌백은 이젠 자연스러워진 미소로 대답했다.

“그대가 깃발을 얻기 위해 싸울 때, 순순히 넘겨줬던 잠룡대가 있었소이까?”

확신했다.

사하랑이 온 것으로 추측되는 1구역엔 강하지 않은 이들만이 갔다.

그중 가장 강한 송아도 일류의 초입에 겨우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니 아마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싸움을 했을 터.

그러나.

그들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그것이.

“우리는 잠룡이오. 숨어 때를 기다리는 용이라곤 하나 우리 스스로가 용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물러섬은 없다?”

“잘 알고 계시는군.”

대답과 함께 철로 뼈대를 만든 부채를 꺼내는 좌백의 모습에 사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요.”

실로 훌륭하다.

과연 백유가 인정하는 사내가 이끄는 조직답다고 해야 하나.

몸을 비트는 것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그 소녀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희도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겠군요.”

적이 잠룡이라면, 이쪽도 물러설 순 없지.

우리는 적랑(赤狼)이나 그 이전에.

“흑룡학관(黑龍學館)의 사하랑이라고 합니다.”

흑룡이니.

짧은 인사와 함께 도를 뽑는 사하랑을 보며, 좌백은 부채를 펼치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림학관(武林學館)의 좌백이라고 하오. 한 수 배우겠소.”

정중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끝나고 아주 잠깐.

서로에게 시간을 준 뒤,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허나, 그 속도에는 차이가 있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먼저 적을 마주한 건 좌백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서 그 시퍼런 날을 세운 장도를 목도한 좌백은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내공을 머금은 철선을 펼쳐 앞으로 내민다.

그 직후, 장도가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부채를 접어 그 사이에 장도를 끼워 멈춘다.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거의 본능에 몸을 맡겨 방어에 성공한 좌백은 행동이 끝난 뒤에야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곤 이를 악물었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생각을 했다면 조금 전의 공격은 결코 막아 낼 수 없었음을.

생각이 개입할 수 없다면, 자신은 그저 그런 일류 수준의 무인일 뿐.

‘이것이 격차인가……!’

무(武) 이외의 것으론 감히 뛰어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강함의 격차.

압도적인 속도나 압도적인 힘은 그런 격차를 만들어 낸다.

허나.

“흡!”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까진 없었다.

격차가 벌어져 있다면 더욱더 발악해야지.

이를 악물고 버텨야지.

그래야 조금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높은 벽에 올라 더 먼 곳을 볼 수 있으니까.

벽에 막혀 실패한 것이 무가치한 경험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발악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장도를 붙잡은 부채를 오른쪽으로 틀며 좌백은 앞으로 나아갔다.

장도의 최대 단점은 초근접전에 취약하다는 것.

거리를 주면 극단적으로 길이가 짧은 자신의 부채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상대가 이렇게 다가와 준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살려야……!

‘허.’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좌백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멀다.

분명 자신의 코앞에 장도가 떨어져 그것을 막아 옆으로 치웠거늘.

‘어찌 이리 멀단 말인가……!’

저 끝에서 두 손으로 손잡이를 쥔 사하랑의 모습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실제로는 몇 걸음 되지도 않을 거리가, 도저히 닿을 수 없을 만큼 아득히도 멀게 느껴졌다.

까득!

절망이 온몸을 가득 채우려는 그 순간, 좌백은 억지로 이를 악물었다.

오랜만에 이가 갈리는 소리까지 내며 이를 악문 좌백은 기어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너무나도 멀어 사방이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지금, 이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도 심장이 떨렸지만 그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얻기 위해 지금껏 수련해 온 것이 아닌가.

한 걸음.

딱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아득히 멀었던 거리가 단숨에 줄어든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로.

이대로 왼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로.

하지만.

현실의 벽은 아득히도 높다.

도를 치우기 위해 한 손으로 철선을 쥐고 있던 좌백은 강한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아쉽군요.”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상황을 인지한다.

사하랑이 장도를 비틀어 내는 것만으로 자신이 쥐고 있던 철선을 날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좁혔다고 생각한 거리가.

사실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는 사실.

“당신들은 후에 전장에서 만나면 참으로 까다로울 상대 같군요.”

이윽고 강렬한 바람이 좌백의 전신을 뒤흔든다.

몸 곳곳에 베인 상처가 새겨지고.

좁혔다고 생각한 거리는 순식간에 멀어져, 다시 그 아득히도 먼 거리로 되돌아간다.

……이럴 순 없다.

속수무책으로 밀려 나가던 몸을 억지로 버텨 낸다.

대지에 발을 디뎌 어떻게든 버텨 낸다.

쓰러지지 않는다.

자신은 지금 깃발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허리춤 뒤에 꽂아 놓은 깃발만은……!

이를 악문 좌백이 어떻게든 버티던 그 순간.

“아쉽습니다.”

조금 더 실력이 좋았다면, 좋은 승부가 됐을 것 같은데.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사하랑의 장도가 좌백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완벽한 승리.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발악하는 것은 무례나 다름없다.

버텨도 버틸 수 없는 현실에 좌백이 양팔을 늘어트리려는 그 순간.

“아쉽지 않을 텐데?”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사하랑의 몸이 단숨에 회전했다.

좌백의 목을 겨누던 장도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선을 겹쳐 면을 만들어 낸다.

깔끔하다고 칭찬받아 마땅한 훌륭한 방어.

쾅!!

사하랑이 만들어 낸 도막(刀幕)을 주먹이 때린다.

그것이 설천위의 주먹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하랑은 이를 악물고 재빨리 그 뒤를 살폈다.

분명 대주와 싸우고 있던 설천위였다.

성무경의 성격이라면 절대 그를 놓아 주지 않을 테니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성무경이 당했다는, 최악의 가정을 떠올린 서하랑은 이내 설천위의 뒤에서 용을 뿌리치며 따라붙는 성무경을 확인하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쭈? 한눈을 팔아?”

“……오만하군요.”

자신의 도막에 주먹을 박아 넣은 채 웃고 있는 설천위의 모습을 보고 서하랑은 작게 숨을 골랐다.

설천위의 공격은 위협적이나.

나쁘지 않다.

좌백의 부채를 반쯤 부숴 놓은 데다 좌백은 이 싸움에 끼어들 여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합류하겠습니다.”

설천위의 등 뒤로 달려드는 성무경을 향해 짧게 보고한 서하랑은 망설임 없이 장도를 움직였다.

이대로 도막을 없애면 설천위가 그대로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그의 뒤엔 이미 성무경이 도달한 상태다.

무식하게 달려들진 못할 터.

일단 몸을 빼서 다시 자세를 다잡을…….

[크르르르르르르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강렬한 무언가.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음을 깨달은 서하랑의 동공이 점점 확장됐다.

자신을 무시하듯 몸을 돌린 설천위가 성무경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 뒤를 칠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인데도.

그 현실을 깨달은 순간, 서하랑은 망설임 없이 왼손을 움직였다.

쫙!!

강렬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가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맛과 함께 몸의 제어권을 되찾은 서하랑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몸은 해할 수 있는데, 설천위를 공격하진 못했다.

‘……압도됐다고?’

겁먹은 거다.

이 몸이 상대를 공격하길 주저한 것이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보다 자해를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알아서 판단해 버린 거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마저 무뎌지려는 그 순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성무경의 강렬한 외침이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놈은 인간이 아니라 용이라고 생각해라!”

설천위의 주먹을 검으로 튕겨 내며, 성무경은 서하랑을 질책했다.

“우리가 누구냐!!”

우리.

흑룡학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랑대(赤狼隊).

갈 곳 없이 헤매다 피를 뒤집어쓴 늑대들의 무리.

그들을 모은 것은 피를 뒤집어쓴 채 흑룡의 목에 송곳니를 박으려 했던, 똑같은 늑대다.

그 늑대가 지금 용의 목에 그 이빨을 박아 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 뒤를 따르는 자신이 겁먹고 꼬리를 만다?

쫙!

한 번 더 자신의 뺨을 때린 서하랑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 내며 도를 겨눴다.

목표는 저기서 날뛰고 있는 흑룡(黑龍).

전신에 검은 기운을 휘감고 날뛰고 있는 저 괴물이다.

완전히 전투태세에 들어간 서하랑의 모습에 설천위는 웃었다.

자신의 패기와 살의의 영향에서 벗어나 똑바로 검을 겨누는 모습이 참 부럽다.

잠룡대는 의지는 있으나 실력이 부족해 아직 저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거늘.

참 시간의 부족함이 이리도 아쉽다.

하지만.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나쁘지 않다.

전신에 가득 찬 패기와 함께 그야말로 극한까지 끌어올린 [패룡지체(覇龍之體)] 덕에 육체가 미친 듯이 날뛴다.

[패룡지기(覇龍之氣)]로 품은 패융의 기세가 전신을 내달리며 그 기세를 더하고.

[패룡지심(覇龍之心)]으로 품은 패융의 의지가 육체를 보호한다.

실로 오랜만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이만한 적들과 싸우는 것은.

그렇기에.

“짓밟아 주마!!”

무조건 이긴다.

* * *

“……누가 사파인지 모르겠군.”

무림학관의 망루.

그곳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철백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검은 기운으로 전신을 감싸고 흑룡을 부리며 젊은 무인 둘을 상대하는 악적.

무슨 전설에 나오는 사파의 지존 같네.

대사 치는 것도 비슷하고.

대체 왜 무림학관에 있는 건지 궁금한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철백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천강과 가무학의 싸움도 슬슬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승리는 당연히 설천강.

가무학은 설천위의 영향 아래에서 청수를 상대하느라 힘의 소모가 컸던지라 예견된 결과였다.

즉, 5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싸움의 승패로 이번 단체전의 승패가 갈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철백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까지 한참 남았지만, 이 경기는 얼마 안 있어 끝나겠구나.

그런데, 몇 명.

그 뒤로도 생각이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경기가 얼마 안 있어서 끝난다면 지금 움직여야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까드득.

경기장에서 물가에 있는 4구역.

그 끝, 그냥 뗏목을 띄워 나무로 적당히 선을 그어 놓은 수준인 경계에서 언여휘는 당과를 씹어 삼키며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시작이다.

“즐거운 축제 시간이야! 아기들아!”

그녀의 신호와 함께 그녀가 서 있는 뗏목 아래에서 수백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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