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23화 (223/624)

제223화

222화-단체전 (8)

무기와 맨주먹.

이 두 가지는 무림에서도 꽤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단, 둘 중 뭐가 더 강하느냐의 문제.

단순하게 생각하면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고, 인간의 뼈와 근육보다 훨씬 단단하며, 공격 범위까지 늘어나는 무기를 쓰는 것이 당연히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말하기 힘든 것은 다름 아닌 무인은 단련하는 자들.

내공을 쌓고 수련을 거듭하다 보면, 무기보다 부족한 단단함은 능히 따라잡을 수 있고 고통 또한 무뎌질 수 있다.

무엇보다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육체는 그것만으로 무기가 지닌 범위의 이점을 이겨 낼 수 있다.

보다 섬세하게, 보다 유연하게.

단단한 쇠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근육의 부드러움.

곧게 뻗은 검신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관절의 부드러움.

그런 것들이 합쳐지게 되면, 맨손은 결코 무기에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데, 그렇다면 무기를 쥔 무인들은 마냥 놀고만 있는가?

그건 아니다.

그들은 차가운 쇠에서 전해지는 충격을 자신의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느끼고.

휘어지지 않는 검신을 이용해 원을 그려 낼 수도 있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니 뭐가 더 좋다고 단언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둘 다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만약 무공의 수준이 낮은 단계라면 대부분 무기를 쥔 쪽이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단련되지 않은 육체는 쇠를 이기기 힘들고.

힘이 부족한 하체는 거리의 벽을 넘기 힘들며.

어설픈 부드러움으론 쇠의 단단함을 이길 수 없다.

주먹에 맞으면 정말 아프지만.

검에 맞으면 죽는다.

그 차이로 인해, 설천위는 어쩔 수 없이 주먹보단 검과 도를 자주 썼다.

또한, 그 무학의 정점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랐던 무인 둘이 직접 붙어서 지도해 주고 있으니 굳이 주먹을 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필요가 있음을 설천위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무기가 없을 경우, 주먹을 쓰지 못하면 죽는다.

구마와의 전투에서 도가 부러지고도 운 좋게 검은 지킬 수 있어서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었지만, 만일 둘 다 부러졌다면?

현태중에게도, 소백진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냥 죽어야 하나?

그럴 거면, 뭐 하러 이 개고생을 했는가?

죽어라 달리고 달렸던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나?

그래서 집중했다.

여태까지 해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철귀를 붙잡고 심상 세계에서 그에게 처음 도전했을 때.

수백 번을 죽고 나서도 겨우 철귀의 몸에 닿는 것이 고작이었던 권법을 갈고닦아 실력을 끌어올렸다.

여태까지 검법과 도법에 밀려 조금 소홀히 했던 권법을 더욱 갈고닦았다.

물론, 그 모습에 암영의적이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실력이 늘어나면 검이나 도가 부러질 일은 거의 없어진다.

하물며 무기를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상황이면 더더욱 그러할 터.

그 무공으로 정점을 찍은 스승이 둘이나 붙어 있는데, 굳이 권법을?

자유자재로 빙의해서 그 전력을 끌어낼 수 있는데?

무엇보다 무(武)의 자질도 부족한데 굳이 3가지나 되는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을까? 신법까지 포함하면 무려 4가지다.

재능이 없으니 그냥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암영의적의 의문에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재능이 없다면, 그저 하나만 깊게 파는 것이 좋다고.

그것이 학업이든, 무공이든, 술법이든.

어떤 분야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한 가지를 깊게 파서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논어 하나만을 읽어서 유학(儒學)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을까?

있을 거다.

논어를 읽고 또 읽으며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은 큰 직감과 오성이 필요하다.

즉, 웬만한 재능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란 소리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어 하나만을 읽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서적을 읽는 것이다.

대학과 중용을 읽고, 그 외의 다른 학자들이 써 놓은 수많은 글을 읽어서 자신에겐 없는 경험을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부족한 재능의 빈자리를 메워 주어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에 닿을 발판이 되어 준다.

그렇기에 천마는 처음 설천위가 현태중에게 검법을 익힌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고, 소백진에게 도법을 배운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거대한 기초가 되어 그를 지탱해 줄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참 이상하지.”

고작 두 걸음.

성무경의 앞에 선 설천위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그를 바라봤다.

안면에 한 방.

내공을 끌어올려 보호한 것인지 골절은 없어 보였지만 얇은 혈관이 터지는 건 막지 못했는지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빠르군.”

“그러니까 왜 빠른지 잘 모르겠어.”

잠룡대와 함께 귀환해 그들의 치료를 기다리며 권법에 열중한 설천위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자신의 권법이 생각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워졌음을.

소홀히 했던 권법이 검법이나 도법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성장해 있음을.

그리고 갈고닦을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무골(武骨)이 조금 성장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보기엔 성장의 폭이 너무나도 컸다.

대체 뭘까.

그 의문에 천마는 이리 답했다.

[만류귀종이라. 모든 무(武)는 하나로 모이니 강함도, 빠름도, 부드러움도, 굳셈도 결국 무(武)의 이치 속에 있는 것이니라.]

이 말에 현태중과 소백진은 감탄했지만…….

‘……그냥 다른 게 익숙해져서 요령을 깨달았다, 이 말 아닌가?’

설천위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이게 전부였다.

아니, 그냥 다른 거 잘하게 되면서 요령을 깨달아 이것도 쉽게 능숙해졌다고 하면 되지, 왜 저리 혓바닥이 길어?

살짝 과거의 일을 떠올리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어느새 코피를 닦고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온 성무경을 바라봤다.

“뭐, 인사는 이 정도면 됐고, 슬슬 시작할까?”

“물론.”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성무경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진다.

멈춰 선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경이로운 신법.

흑룡학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괴물다운 놀라운 실력이었다.

허나.

“흡!”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성무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설천위는 그가 휘두르는 검에 맞춰 주먹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신속(神速)의 영역에 들어간 싸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전투.

검과 주먹이 부딪힌 순간, 성무경은 망설임 없이 검을 그어 내며 당겼다.

주먹이 검에 비해 불리한 이유 중 하나.

검은 방어를 위해 회수하는 것만으로 주먹을 베는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먹은 이 순간 검을 피해 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방어의 틈으로 이어진다.

허나.

“흡!”

또다시 짧은 기합성과 함께 이번엔 설천위의 왼손이 움직였다.

빠지는 검의 검면을 쳐 내 단숨에 그 궤적을 꺾는다.

손이 두 개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권법의 기초.

쌍검과 달리 양손을 이용하는 것은 움직임이 자유로워 양팔이 꼬일 염려도 적다.

왼손 주먹으로 검면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그 힘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킨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오른팔을 휘둘렀다.

팔꿈치를 이용한 공격.

맞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것만으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서운 일격이 성무경의 목을 향해 파고든다.

일순 어깨를 위로 올려 목을 보호한 성무경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여기서 물러서면, 회전한 설천위가 제 자세를 찾을 시간을 주게 된다.

몸을 회전하며 휘두른 팔꿈치는 강력하지만 막히는 순간 적에게 등을 보이게 된다.

지금처럼.

“흡!”

[적랑검(赤狼劍) 제3초 혈아쇄(血牙碎)]

일순, 파고드는 검에 회전을 더한다.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라 회전의 힘을 더해 적을 분쇄하는 파괴적인 초식.

이대로라면 단숨에 설천위의 등을 꿰뚫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살인이 불허된다는 규칙 따위 깡그리 잊은 듯한 파괴적인 공격에 몇몇 사람이 미간을 찡그린 순간.

설천위의 상체가 훅 앞으로 꺾였다.

동시에 그 다리가 위로 솟구쳐 검면을 찬다.

이 말도 안 되는 각력에 성무경은 그만 헛웃음을 삼켰다.

대체.

‘……얼마나 하체를 단련시킨 거냐.’

별다른 초식 같지도 않아 보이는 이런 임기응변으로 이 정도의 속도와 위력이라.

얼마나 달리고.

얼마나 마보를 한 것인가.

쉽사리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의 균형 감각.

아마 홀로 땅 위에 서 있는 저 발의 발가락은 있는 힘껏 대지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허나, 감탄은 감탄.

고작 이런 임기응변 따위로 기세를 내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위로 솟구친 검을 억지로 끌어내린 성무경이 다시 자세를 잡는 순간.

“……허어?”

다리를 올려친 기세 그대로 물구나무를 선 설천위의 두 눈이 성무경과 마주쳤다.

그리고.

쾅!!

강렬한 충격이 성무경의 몸을 덮쳤다.

마지막의 마지막.

겨우 팔을 당겨 몸을 지켜 내는 데 성공한 성무경은 자갈을 튕겨 내며 바닥에 선을 길게 그려 내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성무경은 자신의 키보다 몇 배는 될 것 같은 긴 선이 생긴 것을 확인하곤 곧바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어느새 똑바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설천위.

그리고.

“……까먹고 있었군.”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용.

조금 전의 충격은 저 용의 공격 탓이겠지.

입안이 터졌는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일어서는 성무경의 모습에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딱히 주먹만으로 싸운다곤 안 했다?”

그냥 연습했고 꽤나 쓸 만한 수준에 올라서 써먹을 거라고 말한 것뿐이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주먹을 쥔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성무경과 얼추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정도면 웬만한 초절정이랑 싸워도 충분하단 소리다.

……제대로 된 주먹질도 못 해서 박치기나 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컸네.

쓸데없이 끼어든 옛 생각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다시 성무경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할까?”

“좋다. 슬슬 탐색은 이 정도로 하지.”

……탐색이었어?

어, 그러고 보니 코피 터트린 것 외엔 유효타가 없네?

아니, 코피를 터트린 것도 딱히 유효타는 아니지?

살짝 싸한 느낌에 설천위가 본능적으로 기수식을 취하는 그 순간.

성무경의 모습이 또 한 번 흐릿하게 사라졌다.

순식간에 진입하는 신속의 영역.

단숨에 설천위의 코앞까지 도달한 성무경의 두 눈이 붉은 안광으로 번뜩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설천위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후에 무림맹에 들어가면 적으로 만나는 적랑대 대주 성무경.

그 특징은 피에 미친 늑대와도 같은 흉포한 공격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야말로 피에 미친 늑대.

무리를 지키기 위해, 사냥을 위해, 적과 자신의 피를 뒤집어쓰는 늑대의 우두머리.

평소의 이성적인 모습 따윈 순식간에 사라지는, 진짜 면모.

……학생 때부터 이럴 줄은 몰랐는데?

아까와 달리 방어를 위한 대비가 확연하게 줄어든, 저돌적인 자세로 파고드는 성무경의 모습에 설천위는 주먹을 휘둘렀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으나, 설천위는 자신이 웃고 있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오냐! 해 보자!”

눈앞의 이 녀석과 싸워서 이기고 싶다고 생각할 뿐.

패융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근접전을 택한 성무경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설천위.

이윽고 두 사람의 공격과 회피가 섞여 하나의 잘 짜인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지경이 되었을 때.

“대주도 참, 오랜만에 본성이 나왔군요.”

적랑대 부대주, 사하랑이 5구역에 도착했다.

물론, 실제로 도착한 것은 좀 더 전이었지만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길 잘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 깃발을 든 채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좌백이 들어왔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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