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19화 (219/624)

제219화

218화-단체전 (4)

“흐응,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네.”

흑룡학관 학생들이 모여 있는 망루.

가장 앞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있던 백유의 말에 그 곁에 있던 여미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없이 일을 벌일 인간은 아니긴 하죠.”

다른 사람이 중앙을 골랐다면, 그냥 객기를 부린다고 우습게 여겼을 거다.

“분명 무슨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것 같긴 한데…….”

“회장.”

“응?”

“저는 설천위와 직접 만난 적이 없어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만, 혹시 설천위에게 먼 거리를 공격할 수단이 있습니까?”

갑작스레 질문을 던지는 책룡(策龍) 규천에게 잠시 고개를 갸웃한 백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아는 한은 없어.”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백보신권이라도 익힌 게 아니라면, 저 선택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군요.”

“백보신권을 익힌 소림의 중은 단체전엔 안 나왔잖아?”

“예. 그러니 이상한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규천은 다시금 아래를 내려다봤다.

3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으로 이동한 이들이 깃발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

구역 하나의 폭은 대략 90장(약 270m)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일 거다.

중앙에 자리 잡는다고 한들 변까진 최소 45장(약 135m)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정도면 소림이 자랑하는 절학인 백보신권도 쉽게 닿기 힘든 거리다.

저 행동이 효과를 보려면…….

“뭐, 나만큼이나 이상한 게 천위이긴 하지.”

생각을 이어 가던 규천은 백유의 말에 말없이 다시 아래를 바라봤다.

설천위가 흑룡학관에서 벌였던 짓은 전부 알고 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일을 벌인 것 같진 않았으나, 상황에 맞춰 나름 최선의 판단을 할 정도의 이성과 지성은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식의 전략을 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오, 시작됐군. 무학이가 꽤나 거칠게 움직이네.”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은 채 백유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린 규천은 가무학과 청수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겠군요.”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보는 것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승기는 확실하게 가무학에게 있어 보였다.

가무학은 애초에 적랑대 내에서도 성무경의 오른팔을 자처할 정도의 실력자다.

물론 오른팔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이들이 몇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흑룡학관에서도 이름을 대면 알아주는 수준의 실력자란 사실은 확실하다.

그런데 상대는 일류 수준, 잘 쳐줘야 일류의 끝자락이다.

가무학이 패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심지어 그와 함께 움직인 부하들은 이류 수준 정도로 보이니 전투에 별 도움도 안 될 거다.

“부상이 덜 나았군.”

“부상이요?”

백유의 평에 옆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여미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멀쩡해 보이는데?

“움직임이 조금 어색해. 아마 큰 부상으로 긴 시간 수련을 못 하다가 몇 주 정도에 겨우 몸을 추스른 후 나온 거겠지.”

“9구역에 보낸 이유가 있었군요.”

일류 정도의 학생을 왜 9구역에 보냈나 했더니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대였나.

짐작하던 9구역의 승리가 확신으로 변한 규천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1구역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쪽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그렇다면…….

“2구역과 6구역이 문제이겠군요.”

“6구역은 꽤나 싸움이 길어지겠어.”

“설천강이 갔으니 어쩔 수 없죠.”

설천강.

아마 승리를 확신하려면 성무경이 직접 나서야 할 거다.

그런데 아쉽게도 본진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한 성무경은 설천강이 있는 6구역이 아니라 2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6구역을 뺏긴 채 잘못하면 가무학이 고립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승리하는지 봐야 그다음의 흐름이 보일 테니까.

* * *

“후.”

6구역.

규학과 함께 이곳에 도착한 설천강은 작은 한숨과 함께 검을 들었다.

“너무 많이 몰려온 거 아니냐?”

“너희가 너무 적은 숫자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설천강과 규학을 둘러싼 다섯의 적랑대는 헛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설마 진짜로 모든 구역으로 인원을 나눈 것인가?

“오만하다 못해 멍청한 수준이군.”

“오만이나 멍청이나.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가 멍청하진 않아.”

“설마, 둘이서 우리 다섯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실전이 아니다.”

실전이 아니다.

그 말에 설천강은 절로 나오려는 쓴웃음을 삼켰다.

인원의 열세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한 녀석부터 전투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고.

힘 조절을 안 해도 되니까.

인간을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는 건 의외로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한 작업이다.

사람마다 맷집이 다르니까.

뼈의 강도, 근육의 양, 혈관의 단단함 등등.

사람의 신체는 복잡하기 그지없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해 가며 기절만 시키는 일은 꽤나 심력을 소모해야 한다.

즉, 설천강이 실전에서 눈앞의 다섯을 죽일 순 있어도 이렇게 살상에 제약이 들어온 상황에서는 쉽사리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것을 상대도 잘 알기에 저리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일 테고.

검에 내공을 흘려보내며 설천강은 이리저리 목을 꺾었다.

“상관없다.”

쓸데없이 생각이 길다.

전략은 이미 세워진 상태가 아닌가.

제압은 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충분히 끌 수 있다.

게다가 같이 온 사람은 규학.

“깃발은 맡기지.”

“문제없어.”

고개를 끄덕인 규학은 즉시 자리를 이탈했다.

싸움을 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 모습에 대치하던 다섯 중 둘이 급하게 따라가기 위해 움직였으나 그 앞을 설천강의 검이 막았다.

“설마 나를 그냥 무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시간 벌기다.”

가무학이 이미 9구역에 도착했음을 확신하는 적랑대원은 앞을 가로막은 설천강을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아예 이 자리에서 꺾어 주마!”

적랑대원의 공격을 시작으로, 1대 5라는 불리한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실력의 차이는 명백히 존재하는 법.

무리할 생각이 없는 듯 차분하게 움직이는 설천강의 검은 무려 다섯이나 되는 적의 공격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막아 낸다.

철저하게 버티는 전략.

그 결정에 적랑대원들은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시간을 끌면 유리해지는 건 이쪽 아닌가.

저쪽은 어차피 깃발을 지키기 위해 인원이 묶여야 하는데, 가무학은 적이 9번 구역의 깃발을 얻는 것을 막고 나면 이곳으로 합류할 거다.

깃발이야 이쪽을 정리해 길을 턴 다음에 약한 대원이 가서 얻은 다음 숨으면 되니까.

그러니 승리는…….

“시간을 끌면 너희가 유리해질 거라는 표정이군. 9번이나 1번으로 따로 별동대라도 보냈나 보지?”

“…….”

“여기에 다섯밖에 없는 걸 보면 뻔하지.”

이젠 꽤나 익숙해진 적랑대원의 공격을 받아 내며 설천강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런데, 너희 너무 안일한 거 아니냐?”

“헛소리하지 마라. 말 따위로 우리를 흔들 생각이라면…….”

“아니, 진짜로 하는 말이야.”

적랑대원의 검을 쳐 내며 짧은 여유를 찾은 설천강은 웃음을 유지한 채 물었다.

“우리 쪽엔 괴물 녀석이 하나 있는데,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거 아니야?”

* * *

“흐읍!”

거친 기합성과 함께 두 주먹을 뻗는 여웅.

그런 여웅의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두른 성무경은 작은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독하군.”

독하다.

상당한 내력을 담아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검기로 인해 갈라지고 찢어진 주먹에선 상당한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충격을 받아 낸 어깨와 허리가 끊임없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터인데.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을 막아 내는 것만이 사명이라는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낸다.

“훌륭하다.”

그 기개와 의지를 성무경은 인정했다.

그리고 빠르게 정리하고 1구역을 지나 4구역까지 먹어 치워 5구역에 있을 잠룡대를 사방에서 압박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이쯤 되면 중앙의 설천위도 이 말도 안 되는 전략을 포기하고 한쪽이라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터.

거리가 거리인 만큼 눈으로 볼 순 없어도 소리와 내공의 파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 모를 리가 없다.

‘최선은 일단 이곳을 정리하는 건가.’

빠르게 제압하고 넘어가는 것은 이미 늦었으니, 여기에 있는 적의 전력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것이 차선책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쫓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살상 금지라는 제약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지금부터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거칠게 나가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성무경의 모습에 여웅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아까부터 손에는 고통 외엔 다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검격이 얼마나 강맹한지 막아 낸다고 막아 냈는데도 어깨와 허리가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육이 받아 내는 부하가 이미 한도를 넘어섰다는 소리다.

하지만…….

‘계획은 진행되고 있다.’

성무경이 갑자기 본진을 이탈해 전장에 선 것은 예상 밖의 일이지만, 어떻게든 계획대로 밀어 넣는 일에는 성공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찾았습니다!”

순간, 한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여웅은 고개를 돌렸다.

6구역으로 설천강과 규학 둘만이 갔기에 수적 우위를 지닌 상태였으므로 가장 약한 대원에게 깃발 수색을 맡겼는데, 드디어 그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깃발이 아니라 구슬처럼 찾기 힘든 거였다면 계획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섬뜩한 가정을 떠올리며 여웅은 다른 이들을 상대하던 문율을 바라봤다.

한 번의 눈신호에 고개를 끄덕인 문율은 일순 내공을 폭발적으로 운용해 적을 털어 냈다.

거칠게 휘두른 검에 놀라 멀어지는 적들.

그리고.

“2구역!! 깃발 확보했습니다!!”

내공을 담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또 다른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로 울려 퍼졌다.

“6구역 깃발 확보!!”

“9구역도 확보했소이다!!”

내공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이해할 수 없는 그 행동에 성무경은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생각이냐.

그렇게 성무경이 잠룡대의 의중을 읽기 위해 일순 고민하는 순간.

‘1구역은 실패했나?’

들리지 않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웅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전원 퇴각!!”

퇴각?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선택에 성무경의 미간에 생긴 골이 한층 더 깊어졌지만, 그래도 성무경의 몸은 확실하게 그 소리에 반응했다.

단숨에 땅을 박차 후퇴하려는 이들의 뒤를 친다.

허나.

“이제부터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아까까지 다른 이들을 상대하던 문율의 검이 성무경을 가로막았다.

그 틈을 타서 여태껏 그를 막다가 심각한 수준의 부상을 당한 여웅이 몸을 뺐고…….

“추격하라!”

그런 여웅을 따라 순식간에 빠지는 잠룡대를 적랑대가 추적하기 시작했다.

아니, 깃발은 구역에서 들고 나갈 수가 없는데 대체 어디로 후퇴할 생각이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잠룡대의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적랑대는 착실하게 그들을 추적했고.

너무나도 짧은 거리에 순식간에 경계선에 도달한 잠룡대를 포위했다.

“이해할 수 없군.”

그리고 홀로 남아 자신을 막고 있는 문율을 보며 성무경은 잠시 검을 내렸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떠나, 이 이상 적의 의중을 모른 채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였다.

그 모습에 문율은 작게 웃으며 검을 들었다.

“예. 저도 이해 못 합니다.”

“……이해를 못 한다?”

“네. 못 해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문율의 뒤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끼는 것 같은, 하늘이 울리는 소리.

그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고심하던 성무경의 얼굴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의아함에서 불신으로.

불신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하!”

허탈감으로.

저 멀리 보이는 5구역.

그곳의 하늘을 가득 메운 거대한 무언가.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이 인간이 맞긴 한 거냐?”

“그러니까요. 말했잖아요. 이해 못 한다고.”

문율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직후, 강렬한 포효가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은 거대한 포효.

그와 함께 잠룡대를 압박하며 경계선까지 갔던 적랑대원들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몸으로 스며드는 공포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몸에 스며든 공포는 제대로 된 싸움을 힘들게 만든다.

순식간에 전력이 반 이하로 떨어진 적랑대의 모습.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을 눈에 담은 성무경은 깨달았다.

설천위가 무슨 생각으로 5구역에 자리를 잡은 것인지.

“괴물이로구나.”

저 괴물에겐, 변의 길이가 90장이나 되는 영역도 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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