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17화 (217/624)

제217화

216화-단체전 (2)

“그럼 내기 내용은 뭐로 할까?”

“어차피 출전 순서를 미리 정해 놓은 건 아니니…….”

“일대일로 붙자? 화끈하네?”

“이곳은 무림이니까요.”

순식간에 내기 내용까지 정해 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설천위는 둘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들었다.

“아니, 그것도 나름 전략인데 이렇게 정하는 건…….”

“나는 그걸 정할 권한이 있어. 천위.”

“저도 그 정도 인망은 있어요. 공자.”

“옙.”

그러십시오.

강한 놈이 깡패이지요.

그게 무림이지요.

순식간에 쭈그러진 설천위는 재빨리 근처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재미있군.”

“난 안 재미있는데.”

당당하게 젓가락을 들어 상대가 먹던 음식에 손을 댄 설천위는 고기를 씹으며 상대를 바라봤다.

간장에 조린 돼지고기 같은 요리는 짜고 맛이 강했으나 상대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차였다.

애주가가 아니라도 술이 마시고 싶어질 이런 안주에 술 한 잔 걸치지 않는 인간.

“오랜만이다. 성무경.”

“그래, 오랜만이군. 그나저나 안 본 사이에 참으로 괴물이 되었어.”

“뭐래, 원래 괴물이었던 녀석이.”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하는 성무경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설천위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준비는 잘했고?”

“물론. 적랑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거참, 나쁜 소식이네.”

“생각보다 자신감이 없군?”

의외라는 듯 묻는 성무경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감이 없긴, 준비된 상태로 지면 변명도 못 할 테니까 너희한테 나쁜 소식이라고.”

“나쁘지 않군. 허무한 대결이 되지 않기를 바라마.”

설천위의 도발에 오히려 웃으며 대답한 성무경은 고개를 돌려 아직도 유예린과 눈싸움을 하고 있는…….

“천위는 나한테 영약도 줬어.”

“저한테도 줬어요.”

“날 돕겠다고 목숨 걸고 싸워 주기도 했지.”

“절 지키려고 화경급 고수와도 싸웠죠.”

……눈싸움이 아닌데?

뭐야, 무슨 애들 싸움도 아니고 왜 저러고 있는 거야?

겉으로 보이는 건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녀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광경인데 왜 내용물은 애들 장난 같냐.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성무경은 이내 백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회장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괜히 미친눈나가 아니…….”

“음?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행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으면 미쳤다는 표현을 안 쓰지.

한숨을 내쉬는 성무경의 모습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잽싸게 백유와 유예린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그럼 여기까지! 괜히 더 이야기 나눌 필요 없잖아? 해산! 구경 그만하고 다들 밥이나 먹어!”

* * *

“그래서, 내기를 했다고?”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니까.”

잠룡대를 비롯한 무림학관의 학생들이 숙소로 잡은 객잔.

설천강의 방에서 그가 챙겨 온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며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하냐? 네놈이 뿌린 씨앗이니 네가 책임져야지. 아, 아직 안 뿌린 건 맞지?”

“지금 당장 한판 해 보자는 거야?”

이 인간이?

이 와중에 농을 던지는 형의 모습에 설천위가 눈을 부라렸지만, 설천강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형, 그러다 진짜 죽어.”

“너 따위가?”

“아니, 백유나 유 매한테. 두 사람 다 장난 아니거든.”

두 사람 다 장난이 아니다.

그 말에 설천강은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인데?”

“백유도 유 매랑 비슷한 수준 같아. 아마 종이 한 장 차이.”

“……우리 세대는 괴물이 많아도 너무 많군.”

뭐,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나름 주인공들의 세대니까.

당장 이곳에 온 정파의 주인공급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천무지체(天武之體), 무량대해(無量大海)라고 칭해지는 재능의 보유자들.

그저 괴물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긴 하다.

그런데.

그런 둘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 지금의 유예린과 백유다.

뭐, 백유는 원래 그 정도로 강하면 안 되긴 하지만…….

“……내가 뿌린 씨앗이지.”

“뭐야, 뿌렸어?”

“아씨, 개소리 말고. 진짜 죽는다니까?”

“이 자식이 형한테? 자기가 말해 놓고 왜 성질이야.”

애먼 곳에다 화를 푸는 설천위의 모습에 눈을 부라린 설천강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놈은 아까부터 왜 자꾸 방해인지.

다시 책상으로 고개를 돌린 설천강은 작성하던 것을 마저 적어 나갔다.

“그건 뭐야?”

“좌백이랑 상의 끝에 정한 전술 목록.”

“그새 정찰하고 왔어?”

“대주란 놈이 처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놀다니?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몰라?”

“지기(知己)를 못 하고 있는 놈이 무슨, 우리 애들이 무슨 전략을 짜고 있는진 알고 있냐?”

“어흠, 잘 준비해서 알려 줄 거라고 믿고 있지.”

“어휴.”

싸움도 잘하는 놈이 왜 이런 건…….

가볍게 혀를 찬 설천강은 다시 미간을 찡그리고 집중했다.

차라리 이게 낫긴 하다.

제 부족함도 모르고 날뛰는 지휘관만큼 아군을 위태롭게 하는 건 없으니.

하지만 이런 녀석이라도 일단은 지휘를 맡은 대주.

“한 번만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라.”

“오케이.”

“그 이상한 대답 좀 그만하고.”

“아, 이게 얼마나 입에 착착 감기는데.”

“말을 말자. 자, 일단 나랑 좌백이 살핀 결과 아무래도 호수가 전장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호수가?”

아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양쪽 대를 합쳐 봤자 쉰을 넘지 않을 텐데 얼마나 크게 만들었다는 거야?”

“눈으로 어림짐작해 본 결과, 한 변에 약 2리(약 800m)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아니, 미친?

축구장 길이가 105m인데?

“크기가 크기이니만큼 아마 깃발 뺏기일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나눈다고 하면 아홉 구역 정도이려나.”

“그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데.”

“그래서 크게 두 종류의 전술을 준비할 거다. 세부적인 부분은 그때 너와 조장들이 알아서 조정해야 해.”

“음.”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를 보며 설천강은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쳤다.

“자, 그럼 설명할 테니 똑바로 집중해라.”

* * *

친선전 개최 이틀 전의 밤.

흑룡학관의 학생들 중 친선전에 나가는 이들의 상당수가 백유가 머무는 별채에 모였다.

“그래서 감상은?”

“확실히 강한 녀석들투성이더군요.”

“몇 사람 못 봤지만, 그런 놈들뿐이라면 꽤나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더군.”

누군가는 걱정을, 누군가는 흥미를.

제각기 다른 반응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들을 보며 백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솔직해서 좋네. 아, 질 것 같으면 굳이 목숨 걸지 마. 고작해야 학관에서 하는 친선전일 뿐이니까.”

“흐하하! 맞는 말이지! 여기에서 지더라도 후에 전쟁에서 목을 베면 그게 승자 아니겠는가?”

“잘 알고 있네.”

부하 하나의 호탕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아직까지 조용히 있는 성무경을 바라봤다.

“성 대주, 조용하네?”

“상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자세야.”

이번에 치러질 대결은 크게 두 가지.

단체전과 개인전.

양쪽 다 사전에 출전 명단이 공개되었다.

개인전의 경우, 그 순서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나름 전략의 영역이라고 둔 것이겠지.

여하튼, 단체전의 경우엔 출전 명단이 공개됐기 때문에 누가 나올지 정도는 사전에 알 수 있었다.

“천위는…… 음, 뭐랄까. 강한 건 확실한데 참 묘하단 말이야.”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래. 아마 속에 숨기고 있는 것까지 꺼내면 우리가 이기기 힘들 수도 있어.”

담담하게 패배를 말하는 백유.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 딱히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유는 패배를 말하면서도 묵묵히 승리를 향해 걸어가는 지도자이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꺼내기 전에 처리하면 돼.”

“문제는 설천위 본인을 치느냐, 아니면 주변을 정리하느냐 정도이겠군요.”

“그렇지?”

성무경의 대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돌연 묘한 미소와 함께 입술을 핥았다.

그 매력적인 모습에 같이 있던 부하들은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숙인 건 아니다.

그저 무의식중에 고개가 아래로 향했을 뿐.

“성 대주가 하고 싶은 선택은?”

남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떨궜던 성무경은 다시 고개를 들어 백유를 바라봤다.

여전히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엔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허나, 그 장난기 속에 담겨 있는 것은 기이할 정도의 서늘함.

동굴의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용(龍)이니.

“저는 손발을 자르겠습니다.”

* * *

“아따, 시간 빠르네.”

친선전 개최 당일.

간단한 개회식이 있다고 하여 마을 외곽에 위치한 공터에 자리 잡은 설천위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비틀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다.”

설천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대체 어떻게 세웠는지 모를 목책들을 바라봤다.

높이가 엄청 높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그 길이가 말이 안 되게 길었다.

몇 개월이나 되는 준비 기간이 필요할 법했네.

아니, 그 기간으로 이런 대규모의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다.

거기에다.

‘높으신 분들인가?’

목책 사이사이로 올라온 망루.

거기에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구경을 위한 특별석이라는 거겠지.

귀족인가.

혹은 대부호인가.

뭐가 됐든 가진 자들이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철백과 설천위를 비롯한 여러 참가자들이 각자 다른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느덧 지루했던 개회 연설이 끝이 났다.

대체 누군지도 모를 인간이 나와서 한참을 떠들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는데 드디어…….

“마지막으로 공지 사항이 있다.”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철백은 이번에 새롭게 단상 위로 올라온 사람의 목소리에 다시 돌아섰다.

조금 더 참아야…….

“목숨을 뺏을 위력이 있는 독과 암기는 금지. 또한, 과한 살수는 금지한다.”

담담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허리를 쭉 편 철백은 순식간에 얼어붙은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하곤 깨달았다.

‘형왕(衡王).’

내공이 없는 자신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명심하도록. 이 행사는 황제 폐하의 성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엄격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에 딱히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형왕도 대꾸를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고.

황제를 언급하면서까지 못을 박는 말인데, 거기에 대꾸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묘한 침묵이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고.

딱히 질문을 하고자 하는 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형왕은 몸을 돌려 목책으로 걸어갔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목책 사이로 난 거대한 문.

형왕은 친히 그것을 직접 열었다.

묵중한 무게를 견뎌 내는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기묘했다.

호수를 포함한 넓은 영역에 작은 목책이 줄을 그어 놓은 형태.

“단체전은 깃발 뺏기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무림학관 대 흑룡학관.

흑룡학관 대 무림학관.

두 거대 학관이 치르는 친선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 * *

목책 내부로 들어가는 적랑대와 잠룡대.

그 모습을 보며 언여휘는 당과를 깨물었다.

와작!

“참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들 하셨네.”

주변에 깔린 무림맹과 사천맹의 병력들.

거기에다 황실의 병력까지 더해진 상황.

참으로.

“맛있겠어.”

먹기 좋게 차려진 상이로다.

입안에 있던 당과를 전부 부순 언여휘는 부적 하나를 꺼냈다.

“흐흥? 과연 얼마나 걸릴까?”

대충 계산을 하긴 했지만.

“치열하게 싸워 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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