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10화 (210/624)

제210화

209화-구마(龜魔) (3)

몰아치는 물의 채찍이 사방을 초토화시킨다.

나무 따위는 가볍게 베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끔찍한 상흔을 남긴다.

한데, 그 속에서 구마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서 있었다.

갑각에 몸을 집어넣고 상황을 지켜보는 거북이처럼.

전신을 두들기는 물의 채찍을 견뎌 내며 상황을 살핀다.

‘……쯧.’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수란(水亂)]은 상당히 강력한 기술인데도 기껏해야 갑각을 긁어내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심지어 그 갑각의 생채기마저 빠르게 아물고 있었으니…….

“더럽게 질기네.”

[그것을 위해 받아들인 악귀다.]

설천위의 중얼거림에 반응한 구마는 자신의 팔을 감싼 갑각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진정 인간에서 벗어나는구나.

팔만이 아니다.

전신의 모든 피부가 거북이의 갑각과 같은 것으로 변하고 있다.

심지어 관절 부위까지도 전부 갑각으로 뒤덮이고 있다.

한쪽이 다른 쪽을 크게 감싸는 형태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관절의 틈마저 최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몸을 감싸는 그것이 더욱 커지고 단단해질수록 편안함이 느껴진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처럼.

거기에다.

‘아까 그건 또 쓰지 않는군.’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단숨에 능력을 끌어내렸던 힘.

그 순간엔 떠올리지 못했지만, 파훼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공격만 하면 된다.

어차피 웬만한 상처는 전부 회복되니 그 능력을 해제하면 안 될 수준으로 저놈에게도 큰 상처를 입히면 된다.

방어를 완전히 버리고 공격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견뎌 낼 수 있단 소리다.

놈이 말한 대로, 수라도(修羅道)를 걸어야 하는 능력인 셈.

겁먹어서 어중간하게 방어를 하다가 기세를 뺏긴 탓에 당했을 뿐, 또다시 같은 힘을 쓰면 이번엔 오히려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우위를 얻어 단숨에 승기를 붙잡았던 기술을 또 쓰지 않는 이유야 너무 뻔했다.

버거운 것일 터.

혹은.

‘……인간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

설천위가 보였던 능력들을 하나씩 분석하며 구마는 더더욱 몸을 웅크렸다.

버티는 거다.

느리더라도, 끝에 닿기만 하면 된다.

승자는 결국 하나 아니냐고?

맞다.

그러니, 끝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먼저 도착한 놈들 따위 전부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섬뜩한 사고방식과 함께 구마가 전신을 베고 지나가는 물줄기를 견디던 순간.

[끝인가?]

어느 순간, 공격이 멈춘 것을 깨달은 구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각 때문에 고통이 아예 없다 보니 공격이 멎은 것을 알아챈 게 조금 늦었다.

그 약간의 틈이 살짝 거슬리긴 했으나, 지금은 거기에 신경을 쏟을 때가 아니었다.

양팔을 살짝 내리고 완전히 시야를 확보한 구마는 뒷짐을 진 채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생각이냐?]

“생각해 보니 거북이한테 백날 물을 뿌린다고 죽을 것 같진 않아서.”

[깨닫는 게 느리구나.]

설천위의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 이죽거린 구마는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뎠다.

상대의 반응을 보기 위한 일보(一步).

‘흔들리지 않는군.’

조급한 느낌이 없다.

실전 경험이 풍부해 보이니 연기일 확률이 높지만, 일단 이 정도의 압박에 반응할 정도로 다급하진 않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대로 간다.’

속도를 올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겁먹어서 주저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이대로 간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순식간에 열 걸음이나 내디뎠지만 뒷짐을 진 설천위는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쯤 되자, 구마는 조금 속도를 줄였다.

‘뭔가 있다.’

이렇게까지 접근했는데 아직도 반응이 없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거나.

아무 대책도 없어서 허세를 부리고 있거나.

여태껏 놈이 보여 준 능력을 생각하면 후자일 리는 없으니 여기에선 조심하는 게 옳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대략 스무 걸음 정도.

신법을 써서 도약하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도달할 거리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거리가 꽤나 멀게 느껴졌다.

[오랜만이구나. 이런 싸움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싸움은 실로 오랜만이다.

물론, 너무 오랜만이라서 목을 한 번 내준 뒤에야 그것을 깨달아 버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즐겁구나.]

흥에 겨우면 된 것이지.

[크롸라라!]

강렬한 포효와 함께 달려드는 용을 바라보며 구마는 손을 뻗었다.

그래, 잊고 있었다.

자신이 무(武)를 익혔던 이유.

쾅!!

주먹이 용의 코끝을 강타하는 것과 동시에 두 다리가 대지를 파고든다.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고, 거대한 압력을 견뎌 내던 육체가 삐걱댄다.

허나.

[크하!]

그 속에서 퍼지는 강렬한 손맛.

자신의 주먹에 막혀 코 끝부분이 일그러진 용의 모습.

그래, 이거다.

자신이 왜 투쟁에 몸을 던져 왔던가.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상대를 부술 때의 쾌감 때문이다.

자신이 왜 마도(魔道)를 걸어왔는가.

상대를 부술 힘을 더 손쉽게, 더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뀌었던 거다!]

수단이었던 무(武)가 목표로 바뀌어 버렸던 것뿐이다.

그것을, 육체를 벗어던지고서야 다시 깨닫다니.

인간이란, 이리도 어리석다.

거리를 벌리는 용을 바라보며, 기수식을 취한 구마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인간으로서 평생을 갈고닦아 온 주먹.

그 안에 담긴 이치는 많고, 해낼 수 있는 것도 다양하나.

지금 이 순간에 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부서지거라!!]

적을 파괴하는 것!

오로지 파괴만을 목적으로 한 강기를 두른 주먹이 패융의 안면을 강타한다.

여태껏 거북이처럼 느렸던 움직임이 마치 거짓말처럼.

주먹은 순식간에 패융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와 함께 터지는 압도적인 폭음에 오히려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진다.

허나, 멈추지 않는다.

충격에 날아가는 패융을 쫓아 구마는 대지를 박찼다.

그새를 못 참고 신중함을 버렸냐고?

그럴 리가.

[뻔하구나!]

패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앞에 선 설천위를 바라보며 구마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파 놈들은 하나같이 이렇다.

정녕 위험한 순간에는 도망칠 거면서 이리도 어리석게 몸을 던진다.

저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다.

거북이와도 같은 자신의 권법을 보고도 이리도 어리석게 앞을 막아선다.

패융을 쫓던 기세 그대로 설천위를 노리고 파고드는 오른 주먹이 설천위의 안면에 닿는 순간.

쩡!!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구마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좋구나!]

“좋긴 개뿔이 좋아.”

안면을 노리던 오른손이 막힌 것은 당연하고, 그와 함께 옆구리를 노리던 왼손도 막힌 상황.

설천위의 몸을 지켜 낸 흑관이 쪼개지는 소리를 들으며 구마는 웃었다.

이런 기초적인 수법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으니까.

흔히들 착각한다.

자신이 익힌 대라구권(大羅龜拳)은 그 이름답게 거대한 거북이처럼 방어에 특화된 권법이라고.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상대는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큰 그물과도 같은 입을 지닌 거북이라는 것을.

한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거북이와도 같은 권법이라는 것을.

막혔던 주먹을 당기는 것과 동시에 구마는 오히려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상대의 공격이 더 빨리 닿을 위험성은 높아지지만, 역으로 주먹을 회수하는 거리가 짧아져 다음 공격을 시작하는 시작점이 더 빨라진다.

아주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승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나아간 자만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승리를 향해 구마는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찌르고, 휘두르고, 비튼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주먹과 손의 형태가 설천위를 압박한다.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이라도.

아주 약간이라도.

왜?

그래야 더 많이 적을 향해 주먹을 내지를 수 있으니까.

그래야 더 확실하게 적을 파괴할 수 있으니까!

[광기구나!]

오로지 상대를 부수는 것에만 집중하는, 적과 본인 모두에게 잔혹한 권법에 천마가 탄식했다.

어찌 저런 권법에 거북이라는 동물의 이름을 붙인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눈앞에 이 녀석은 강하다.

살아 있는 몸으로 악귀와 합쳐져 마귀가 되어 버린 괴물.

아마 생전의 경지는 현경을 넘보는 화경의 끝자락.

물론, 놈은 모르겠지만 악귀를 받아들인 시점부터 그 벽을 넘을 확률은 1리 이하로 떨어졌지만.

허나, 놈이 상당히 강한 인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금 전, 설천위가 기이한 능력으로 단숨에 1승을 쟁취한 것이 되레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화경도 끝자락에 위치한 자와 초입에 위치한 자의 차이가 그 정도로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어리석다.

그만한 위치에 올랐던 자라면 모를 수가 없거늘.

눈앞에 있는 녀석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천위의 몸에 바람이 깃들고 있음을.

* * *

“오랜만이네?”

“너무 일이 많아.”

“네가 하나하나 다 확인하려고 하니까 일이 많지.”

백화단 내부에 있는 작은 별실.

무림맹 내부의 친목 단체인 수월(水月)의 모임에 참석한 설란은 성화린의 타박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일이니까.”

“어휴, 공사 구분이 철저한 건 여전하구나.”

“설 언니는 일할 때랑 여기 있을 때랑 너무 달라요.”

“맞아, 맞아.”

단주급의 여성들끼리 모여 적당한 수다로 기분이나 풀기 위해 만든 모임이었지만, 그래도 그 면면이 꽤나 화려하다.

무림맹 내부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이들로만 모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얼마 전에 동생 보러 갔었다며?”

“단주님께서 업무차 보고 오라고…….”

“구 단주님이 확실히 좋은 분이셔. 일중독인 부하도 챙기시고.”

“설 언니가 일중독이긴 하지.”

성화린의 말에 호응하듯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꼬치 고기를 뜯으며 웃었다.

“그래도 좋겠어. 동생들 둘 다 재능 하나는 확실한 것 같던데.”

설천강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설천위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상당한 거물이었으니.

남궁선의 칭찬에 설란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할 정도로 훌륭하더라.”

“챙겨 줘? 언니가 왜? 뭘?”

“어린 시절에 둘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을 줄은 몰랐지.”

일단 누나로서 혼내긴 했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죄책감이 들 만큼 후회가 자꾸 밀려왔다.

착한 동생들은 말없이 누나의 벌을 받았지만.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진 건 이쪽이었다.

“됐어. 챙겨 줄 수 있을 때 챙겨 주기만 하면 되지. 동생들은 오히려 누나한테 많은 거 안 바라.”

고심에 빠진 설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은 남궁선은 다시 원래의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자신도 궁금했던 내용이니까.

“그나저나, 천위 그 녀석은 대체 재능이 어느 정도인 거야?”

“재능?”

“응. 뭐 술법 쪽으로는 단주도 놀랄 정도라던데?”

“놀랐지. 엄청 놀랐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성화린은 무인인 다른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짧게 설명했다.

“술법계의 천무지체(天武之體)쯤 될걸?”

“그 정도야?”

“그 정도지.”

물론, 궤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아마 재능의 수준으로 본다면 그 정도는 될 거다.

다만.

“그런데 조금 이상해.”

“뭐가?”

“단지 재능이 좋다는 것으론 해명이 안 되는 기이한 능력이 보이거든.”

특히 그 용(龍).

그건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만귀단의 오 단주님도 그걸로 고민 좀 하고 계시는 것 같던데.

남의 비밀을 캐묻는 건 법도가 아니니 참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풀어서 이야기하면 기초를 배우면 그것의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의 재능. 그 정도로 이해하면 편할걸?”

“흐응? 그 정도란 말이지? 검(劍)을 잡으면 검(劍)에 통달하고, 도(刀)를 잡으면 도(刀)에 통달하는?”

“그렇지?”

부적술을 배우면 그것으로 홀로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식령술을 배우면 그것으로 홀로 정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재능.

그렇기에 성화린은 솔직히 조금 기대가 됐다.

“아마 제대로 된 기물(奇物)이라도 하나 손에 넣으면 대뜸 새로운 술법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다음에 만나면, 뭐 새로운 걸 익힌 건 없나 물어봐야지.

* * *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거대한 폭풍 속에서 당황한 듯 눈동자가 떨리는 구마를 바라보며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거북이는 바람에 뒤집히면 못 일어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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