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208화-구마(龜魔) (2)
마귀화(魔鬼化).
이건 산 자만이 겪는 현상이다.
살아 있는 몸으로 악귀를 받아들이고, 그 악귀와 동화되어 점차 살아 있음을 잃어버리는 현상.
대부분 마공을 익힌 고수들이 벽을 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기에 마귀(魔鬼)가 된다 하여 마귀화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청랑도 이 마귀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 곁을 전대 백화단주가 지키며 단순한 마(魔)가 되지 않도록 억제해 준 것일 뿐.
허면, 이 마귀화를 겪으면 무엇이 변하는가?
간단하다.
육체를 가진 상태로 영(靈)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조금 형태가 다를 뿐 결국 죽음에 한 발을 걸친 것과 같다.
허나, 그럼에도 이것을 행하는 이유는 육체가 영적인 영역에 걸치는 순간 얻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세월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젊은 육체.
노화라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해방.
등등.
무(武)를 갈고닦아 위로 올라서고 싶은 자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부족한 시간을 메워 줄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바로 마귀화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한 것이 완전히 마귀화가 되면 안 된다.
그러면 정작 갈구하던 무(武)에서 멀어져 버린다.
더 이상 경지를 올릴 수 없다.
왜냐하면, 평생을 쌓아 온 무(武)는 인간으로서 쌓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화가 완전히 진행된 자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쌓아 온 무(武)의 편린을 쓸 수는 있으나, 그 경지를 뛰어넘으려면 마귀(魔鬼)로서 그에 맞는 무(武)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만 한다.
제대로 된 육체도 없이 새롭게 쌓는 무는 과연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까?
그렇기에 구마는 억지로 살생을 자제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다스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완전히 마귀화가 진행돼선 안 되니까.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탈마(脫魔)를 위해 그래선 안 되니까.
그런데, 덜컥 육체가 죽어 버렸다.
아니, 한없이 죽음에 가까워져 버렸다.
억지로 유지하던 균형은 깨어졌고, 둑에 막혀 있던 영체는 단숨에 육체를 집어삼켰다.
[쳐 죽여 주마!!]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십 년의 인내와 노력이.
지금 이 순간, 한 줌의 모래로 변해 버렸으니.
손가락 사이로 끝없이 흘러내려 결국 무(無)로 돌아가 버리는 그런 모래로.
솟구치는 분노는 혼을 물들이고, 내공과 영력이 뒤섞인 무언가가 그 육체를 휘감는다.
“후.”
그러나 설천위는 오히려 담담히 그 모습과 마주했다.
[수라(修羅)]를 사용해 어떻게든 1페이즈는 돌파했으니 이제 2페이즈를 맞이하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게 좀 더 쉽다.
오른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펼친 설천위는 육체의 변화가 일어난 구마를 가리키며 웃었다.
“일단, 좀 진정시켜 볼까?”
[흑관(黑棺)]
순식간에 나타난 검은 관이 구마의 팔다리를 속박한다.
팔다리를 묶는 힘에 구마도 저항했지만 동시에 양팔, 양다리를 묶으면 온전히 힘을 쓸 수가 없다.
육체를 벗어나 마귀가 된 존재라면 다를 수도 있으나, 구마는 이제 막 육체를 벗은 상태.
그런 임기응변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짧지만 확실하게 시간을 번 설천위는 품에서 몇 개나 되는 부적을 꺼냈다.
[흑관(黑棺)]을 부적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도 부적은 항시 휴대하고 다녔다.
아무래도 부적을 쓰면 위력이 조금 더 증가하니까.
“제대로 간다.”
[흑관(黑棺)-방벽(防壁)]
설천위가 몇 개의 부적을 뿌리는 것과 동시에 작은 흑관이 구마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세는 것조차 힘든 무수히 많은 숫자의 작은 흑관이 서로 맞물리며 그 육체를 봉(封)한다.
존재를 억누르고, 그 행동을 억제한다.
아마 보통의 악귀라면 이 시점에서 설천위에게로 승기가 완전히 넘어왔을 거다.
[같잖은 수를 부리는구나……!]
“쯧.”
힘을 모으고 해방할 줄 아는 구마는 단숨에 몸을 비틀어 흑관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기세를 타고 몰아붙여서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다.
외부의 공격을 통과시키는 [흑관(黑棺)-방벽(防壁)]의 약한 내구도로는 버텨 낼 수 없는 힘.
“전생에 어느 정도였지?”
당연하게도 마귀화가 진행된 존재는 생전의 경지와 품고 있던 악귀의 강함으로 그 힘이 결정된다.
특히, 막 마귀화가 끝났을 때엔 생전의 무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영적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무(武)의 수준이 그 힘을 결정짓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완숙한 화경의 경지였다.]
낮게 가라앉은 소백진의 대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즉, 지금은 최소 화경의 끝자락.
잘하면…….
‘현경인가.’
하지만 현경일 확률은 낮긴 하다.
현경이나 되면 방심한 상태로 [수라(修羅)]에 당했다고 한들 그리 쉽사리 목을 내주진 않았을 테니까.
뭐.
“상관없나.”
그래.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대가 현경이라고 안 싸울 건 아니잖아?
[수라(修羅)]는 이제 더 사용하지 못한다.
쿨타임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미친 스킬은 막대한 효과만큼이나 영력의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라(修羅)]는 인간 이외의 대상에겐 그 위력이 크게 감소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패융이 그리 빨리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구마의 경우 인간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 영향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큰 효과는 없을 거다.
그러니, 이제부터 하는 싸움은 무(武)의 영역이 아니다.
“왜? 긴장했어? 너무 간을 길게 보는 거 아닌가?”
삐딱하게 서서, 흑관의 속박에서 벗어난 구마를 도발하며 설천위는 구마를 관찰했다.
[흑관(黑棺)]의 속박에서 벗어났음에도 구마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신중을 기하는 모습.
하긴 방심했다가 목까지 베였는데 여기서도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짐승이지.
조금 전엔 화가 솟구쳐 마구 날뛰었지만 그것도 한 번 막혔으니, 이젠 관찰하고 싶을 만도 하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솔직히 말해서 [수라(修羅)]를 썼다곤 하지만 좀 쉽게 목을 벤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저놈이 방심하지 않고 침착하게 방어에만 힘쓰면서 [수라(修羅)]의 힘에 적응했다면 아마 꽤나 장기전이 되었을 테고.
영력이 고갈된 이쪽이 졌겠지.
물론 그래서 있는 힘껏 쥐어짜 패융까지 동원해 빠르게 목을 친 거긴 하지만.
거기에다.
‘적응하고 있네.’
자신의 육체와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 악귀의 힘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몸의 곳곳을 뒤덮은, 거북이의 등껍질 같은 갑각.
그 이름에 걸맞게 갑각을 지닌 악귀를 몸에 받아들인 것이겠지.
딱 봐도 애초의 목적은 영생과 젊음이었을 테니 그쪽으로도 합당하고.
거북이나 자라는 장수의 상징이며, 실제로도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졌으니까.
아까 전까진 솔직히 영력을 다룬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 완전한 마귀화를 경계해 영력을 멀리했던 거겠지.
나름대로 똑똑한 선택이긴 했지만…….
“영력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보지?”
안타깝게도 미래 예측에는 실패한 선택이기도 하다.
웃음과 함께 손을 뻗는 설천위.
그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마귀의 배 쪽 갑각을 긁고 지나갔다.
[……네놈?]
“오, 확실히 단단하네.”
[방금 그건…….]
“안 알려 줄 거니까 쓸데없이 묻지 마.”
설천위의 대답에 두 눈을 게슴츠레 뜬 구마는 몸을 웅크렸다.
일단 몸 상태를 확인하고 확신을 품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
그 모습을 보고 설천위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안 움직여? 그럼 맞아야지.”
[수란(水亂)]
설천위의 곁에 생성된 다섯 개의 구체.
수 속성의 영력으로 가득 찬 그것은 실제 물이 허공에 뭉쳐 있는 것처럼 꿀렁거렸다.
그리고.
키이이이이잉!
순식간에 구마에게 도달한 물줄기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그 갑각을 갈라내기 시작한다.
허나.
팡!
뿜어져 나온 영력이 그 여파마저 튕겨 냈다.
그리고.
“하……. 빌어먹을.”
왼손을 가로로 가슴 앞에 세우고, 오른손은 허리춤에 가져다 댄 구마의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한탄과 함께 재빨리 부적을 꺼냈다.
“……개빡세네.”
그리고 자신의 변화에 감을 잡은 구마가 땅을 박찼다.
생전에 품고 있던 오만함 같은 건 전부 버린 채.
깊디깊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보면서.
혈사련 지부를 털다가 느꼈던 그 섬뜩함이 다시금 설천위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다.
본능이 외친다.
위험하다고.
도망치라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게 안 되네.”
자신이 지금 도망가면 구마는 도주하는 잠룡대를 따라갈 게 뻔하니, 이젠 선택지가 없다.
쾅!!
흑관을 전력으로 펼쳐 구마의 일권을 막아 낸 설천위는 단숨에 허공을 나는 몸을 비틀어서 겨우 근처의 나무를 붙잡아 자세를 되찾았다.
그런 후 고개를 들어 구마를 바라보려던 그 순간.
쾅!!
본능적으로 얼굴 앞으로 양팔을 모아 방어했던 설천위는 이내 별다른 충격 없이 낙하하는 육체에 팔을 치웠다.
자신의 앞을 지키듯 서 있는 패융.
그 꼬리에 맞은 것인지 꽤나 멀리 날아간 구마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아까 [수란(水亂)]에 갈려 나간 부위가 대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로 멀쩡하기 그지없는 모습.
[짜증 나는구나.]
멀쩡한 상태로 일어났음에도 구마는 한껏 미간을 찡그린 채 걸었다.
[짜증 난다.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보다 강하다는 것이 나는 화가 난다.]
“뭐래, 거북이랑 합쳐지면서 지능도 퇴화했냐.”
강해지면 좋은 거지.
[닥쳐라! 내 무(武)가 부정당한 기분을 네깟 놈 따위가 알 리가 없다!]
아, 발작 버튼이었나?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는 구마를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꼬우면 마귀화하지 말고 올라가든가. 방심하다 뒈진 주제에 불만은.”
[……부정하지 않으마. 내 오만이 나를 죽인 것은 맞으니.]
너무 오랜 시간 무림과 멀어져 있어서 오만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조차 잊고 있었던 자신의 잘못이다.
그리고.
[또한 인정하마. 네놈은 오만했다곤 하나 나를 죽일 능력이 있는 녀석이었음을.]
“뭐래.”
코웃음을 치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구마는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인정한다.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 분노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진짜 뭐래.”
[인간이란 것은 원래 그런 동물이다. 내 잘못으로 죽어도 타인을 원망하는 그런 짐승이지.]
“눼눼, 다음 거북이랑 합쳐져 짐승이 된 사람 하나.”
뭐, 누가 보면 전부 이기적인 인간만 있는 줄 알겠네.
“보통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람을 먹어 치워 영생을 살겠단 생각 따윈 안 한다.”
마귀화(魔鬼化).
젊은 육체와 영생을 주지만, 그게 고작 혼이랑 섞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일 리 없었다.
품은 악귀의 힘을 유지하고, 그 영향력으로 육체의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한 제물이 필요하다.
사혈천을 비롯한 악귀를 주축으로 삼는 조직이 끊임없이 인신공양을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악귀(惡鬼)는 인간을 먹고 살기에 악(惡)인 것이다.
마귀(魔鬼)는 그런 인간을 먹고 사는 악(惡)을 인간이 품었기에 마(魔)인 것이다.
미쳐서, 인간의 길조차 저버린 마귀(魔鬼).
천벌 받아 마땅한 인간이고.
그런 삶이지만.
안타깝게도 천벌이란 건 없다.
덕이 높아 공자가 아끼던 제자는 가난에 허덕이다가 요절했고.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던 잔악무도한 도적은 천수를 누렸다.
그러니 사람을 먹어 영생을 사는 마귀라고 한들 하늘이 직접 벌할 리가 없다.
“뭐, 그렇다고 내가 하늘을 대신해 벌하겠다는 건 아니고.”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며, 설천위는 어느새 자세를 낮춘 채 이쪽을 향해 달려들 태세를 갖춘 구마를 바라봤다.
이젠 일격에 때려잡는다는 희망 따윈 훌쩍 멀어진 이야기다.
그러니.
“죄책감 없이 죽여 줄 테니 잘 가라.”
[주둥이는 살아 있구나.]
“이것마저 안 살아 있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구마의 대답에 입꼬리를 이죽거리며 설천위는 가슴 앞으로 모았던 양팔을 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수란(水亂)]
수십 개의 구체가 그의 주위를 감싼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재(災)에 근접한 마귀일지라도.
“살려면 이겨야지.”
그러려고 뼈 빠지게 수련한 거 아니겠어?
구마(龜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또다시 엄청난 속도로 도약한 구마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허나, 설천위도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
콰가가가가가각!!
수백 개의 물줄기가 구마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