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06화 (206/624)

제206화

205화-태곤옥 (3)

[아주 흥이 넘치는구나.]

아마도 혈사련의 것으로 보이는 비밀 지부.

땅 위에는 작고 허름한 집 한 채만 있을 뿐, 나머지는 지하에 몰려 있는 구조다.

암영의적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 모든 정보를 얻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지하로 침입했다.

그 경쾌한 움직임에 천마가 타박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 자식들 안 빠졌네.’

여덟이나 되는 초절정이 결코 질 리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도망치려고 준비한 기색조차 없다.

안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

이 정도라면 확실하게 재물도 남아 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안에…….

‘태곤옥도 있겠지.’

지금은 그냥 조금 예쁜 구슬 정도의 모양이겠지만, 영력으로 훑으면 반응할 테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태곤옥은 게임에서도 나름 상위권에 들어가는 물건이다.

때에 따라선 게임의 최종막까지도 써먹는 물건.

물론 그것보다 좋은 물건이 있어서 보통은 다른 것으로 바꾸지만…….

‘그건 게임일 때의 얘기고.’

게임에서 하나만 착용할 수 있었던 장비이지만, 여기서도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애초에 구슬 형태의 물건이니 몇 개나 소지한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터.

그 기운이 내부에서 충돌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고.’

일단은 챙겨야지.

솔직히 못 쓰게 되면 유예린이나 철백 같은 동료에게 줘도 좋은 물건이니까.

특히 유예린에게 주면 상당히 효율이 좋을 것 같은데.

뭐, 내가 못 쓸 때의 이야기지만.

“컥!”

“남아 있는 녀석들은 영 허접하네.”

하나같이 잘 쳐줘야 이류이고, 대부분이 삼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도 섞여 있고.

이쪽은 일단 기절만 시키고 있는데…….

[상당히 허술하구나.]

“으음.”

그렇단 말이지.

혈사련의 지부다.

이렇게 허접하게 운영될 리가 없는데.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지부장이 아까 정리한 여덟에 껴 있었나?

그러면 이런 상황이 대충 이해는 가는데…….

워낙 허술한 내부 상황에 아무런 방해도 없이 전진하다 보니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내 운을 생각하면 이렇게 평탄하게 가는 게 영 이상한데…….

[천위, 찾았다!]

생각이 조금 더 깊어지려던 순간.

주위를 수색하다가 돌아온 암영의적의 부름에 설천위는 불안한 마음을 전부 날렸다.

“어디요?!”

[이쪽이다.]

아, 역시 암영의적!

금방 찾아내는구먼!

암영의적의 안내를 따라 설천위는 빠르게 움직였다.

간간이 만나는 적들이 있었지만, 그냥 대충 처리하고 넘어갔다.

죽이면 피 냄새가 나서 발각이 더 빨라질 테니까.

깔끔하게 목을 꺾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않은가.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다만, 정파인으로서 너무 살인에 익숙해진 것 아니냐?]

“알면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뭐, 사람 죽이는데 정사마가 무슨 상관이 있나?”

상관이 있다. 이놈아.

뻔뻔하게 대답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천마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이 지부는 전부 처리해야 하긴 했다.

지하라 불을 지를 수도 없으니 차라리 보이는 족족 죽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지하니까 대충 입구만 막아 두면 안에서 알아서 흙과 하나가 될 테고.

[……눈이 상당히 반짝이는구나.]

“흠흠, 나쁜 놈들의 주머니를 터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요?”

[허어, 패가망신하는 무인의 지름길이 바로 재물에 집착하는 것이다.]

[형님, 그건 무인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직종에서 그러지 않습니까?]

[그것도 맞구나.]

아주 그냥 콩트를 찍어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혼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설천위는 자신만큼이나 재물을 좋아하는 암영의적의 뒤를 따라 전진했다.

그리고.

“오!”

[호오, 꽤 많이도 모아 놨구나.]

[지부인데 이상하구나.]

“여기가 상업을 담당하는 곳이라서 그런 걸 거예요.”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재물이 쌓여 있을 리가 없잖아요?”

뭐, 사실은 중간 과정을 거치는 곳이라서 그런 거지만.

무림에서 음지의 조직이라 함은 그냥 기이한 광신도적 신념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양지의 조직보다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

자신들이 있는 세력의 지배 계층에게 돈을 찔러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첩자를 찔러 넣는 것도 돈이 든다.

그리고 사람이란 결국 먹고, 입고, 자야 하는 생물.

즉,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데 일정 크기 이상의 조직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자금력이 필요하다.

인생이란 게 이렇듯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말이야.

내부로 들어가면 다 나름의 고충과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법이다.

물론.

‘여기에 있는 건 뇌물용이지.’

뇌물용이 무엇인가.

실제론 쓸모가 없을지라도 값어치가 있는 물건들이란 소리다.

보석이나 패물 같은 종류의 물건들.

가져다가 팔면 꽤나 쏠쏠할 거다.

물론.

‘태곤옥, 태곤옥.’

지금은 그딴 것보단 태곤옥을 찾는 게 더 중요하지만.

[이놈이랑 이놈, 이건 좀 값어치가 있겠구나.]

물론 암영의적의 조언을 허투루 넘기진 않았다.

자고로 웃어른이 조언하면 가슴 깊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하는 법이다.

[……가슴팍이 금세 두둑해졌구나.]

“흠흠, 이 녀석들이 재물이 많네요. 나쁜 놈들.”

챙길 거 챙긴 후 이곳은 무너트려 버릴 거다.

위에서 패융이라도 굴리면 알아서 무너지겠지.

그러니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야지.

“히히.”

절로 웃음이 나오는구먼.

“음?”

희희낙락하며 손을 움직이던 순간.

희미하게 뿌리던 영력에 무언가가 반응했다.

탁한 빛의 초록색 구슬.

탁하긴 하지만, 옥구슬로 보이는 물건은 꽤나 신묘한 맛이 있었다.

“찾았다.”

[찾아? 무엇을 말이냐?]

“제 마음에 드는 구슬을 찾았다고요.”

이제 이것만 챙겨서 나가면…….

태곤옥을 집어 챙기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강렬한 감각이 솟구쳤다.

본능적인 직감.

혼의 경고.

단숨에 땅을 박찬 설천위는 달렸다.

가는 길에 당황해 도망치는 적들은 무시하며 달렸다.

‘……재(災)?’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악의 가정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가기 시작했다.

* * *

“후, 그래도 아무도 안 죽고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솔직히 천운이었어.”

청수의 안도 섞인 목소리에 규학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난전에서 아무도 안 죽고 살았다는 건.

부대주가 목숨을 걸고 시선을 끌어서 빠져나올 여유를 만들어 준 덕이지만.

물론 그 전에 기습을 당했을 때 대처가 뛰어나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휴식 중에 기습을 당했는데도 중상은 셋뿐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제대로 반응했다는 소리다.

그나마 중상을 당한 녀석들도 옛날이었다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을 녀석들이다.

즉, 무력이 낮은 편에 속하는 친구들이란 소리.

“이번에 살아남으면 더 강해질 거야.”

죽어야 할 것을 중상으로 피했고.

중상이어야 할 것을 경상으로 피했다.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아직 한참 멀었지만.”

고개를 돌린 규학은 여웅의 옆에서 쉬고 있는 설천강을 바라봤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

그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원 전체를 살린 설천강보다도 훨씬 부족하다.

그 적들을 단숨에 정리한 설천위는 말할 것도 없고.

‘……괴물이었지.’

기세만으로 수십의 사람을 제압하는 광경이라니.

저잣거리의 만담꾼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라고 생각했거늘, 그게 현실에서도 가능할 줄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이미 학생의 범주를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설천강도 강하기는 강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상대가 많고 이쪽이 불리하니 부상을 감내하면서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런데, 설천위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저 노려보는 것 하나로 그 상황을 순식간에 해결했으니…….

대체 어떻게 그리 강해졌나 싶기도 하고.

듣자 하니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다고 하니 그 속에서 성장한 것이라면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참.

생각이 복잡해진다.

“설천위라는 놈은 이곳에 없나?”

“없는…….”

등이 쭉 펴지고,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경추를 타고 스며드는 공포가 전신으로 스며든다.

“그건 아쉽군.”

“끄륵.”

복부를 꿰뚫린 청수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꼬꾸라진다.

대체 언제?

뒤늦게 콧속으로 들어오는 피 냄새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규학은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고자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단련된 육체가, 공포를 무시하고 생존을 위해 발악했다.

검을 휘두른다.

청수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저 팔을 잘라 낸다.

그러고.

‘죽는다……!’

죽음을 각오한 일격.

그 일격에 상대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었다.

“근성은 있는 놈이구나.”

“시……!”

차마 욕을 다 내뱉기도 전에 전신이 강렬한 충격에 휩싸인다.

가슴을 때린 일장(一掌).

가슴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격렬한 통증과 함께 자신의 몸이 허공을 날고 있음을 깨달은 규학은 이를 악물었다.

“그 짜증 나는 녀석이 이곳으로 가라고 하기에 뭔가 했더니 상당히 재미있는 후배들이 있어.”

이를 악문 규학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상대의 머리 위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설천강과 그런 설천강을 보며 웃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그리고 그 지척에 도달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여웅까지.

순식간에 시작된 전투였으나, 어느새 잠룡대에서 무기를 쥘 수 있는 이들은 전부 일어난 상태였다.

“청수!!”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에 규학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동료가 당하는 것을 눈치도 못 채고……!

‘지금 당장!’

한계를 넘어라!

“쯧, 주제를 모르는구나.”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규학의 몸이 한 번 더 허공을 가른다.

상대가 장난스럽게 쏘아 낸 지풍이 그의 몸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전원! 산개해서 도주하라!!”

그와 동시에 부러진 검을 내던지고 쌍수를 뻗는 설천강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숲을 뒤흔들었다.

그야말로 절박함으로 가득한 목소리.

살 가능성이 희미하게라도 있으려면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길밖에 없다.

한순간에 자신의 검이 부러진 것을 목도했던 설천강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자신이 아니라면, 막아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도주하고.

모자란 동생 놈이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무공을 보니 설가의 자식 같은데……. 설주철, 그놈이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은 것 같구나.”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설천강을 보며 중년인은 양팔을 뻗었다.

쌍장을 내지르던 설천강의 팔이 압도적인 경력에 묶여 단숨에 제압된다.

“쯧, 내가 광증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거라.”

뿌드득.

“끄으윽!”

양팔이 부러지는 끔찍한 통증에 이를 악문 설천강은 오히려 고개를 들었다.

“호오? 눈빛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보아하니 진원지기라도 끌어낼 기세구나.”

그 독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중년인은 웃으며 설천강을 칭찬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주먹을 뻗고 있는 여웅을 바라봤다.

“허나, 너는 아직 그런 근성조차 보일 수준이 아니다.”

“커헉!”

중년인의 다리가 단숨에 여웅의 복부를 꿰뚫는다.

“호오? 단련은 잘했구나. 꿰뚫을 생각이었거늘.”

복부가 관통되지 않음을 느낀 중년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의 미래가 참 밝아. 이리도 뛰어난 놈들이 가득하고 말이야.”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린 중년인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설가 놈의 팔을 부러트릴 때부터 자신을 시야에 담은 것처럼 기세를 쏘아 내던 놈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렇지 않나?”

웃으며 던진 물음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압도적인 살의만이 돌아온다.

“……뭐 하는 놈이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런 상대를 마주한 중년인은 설천강을 붙잡고 있던 손을 풀고 몸을 돌렸다.

설천강을 비롯한 나머지는 전부 의식에서 배제한 중년인은 설천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놈이 나에게 부탁할 만하구나.”

“그놈?”

“있다. 내게 귀(鬼)를 심은 놈.”

귀(鬼)를 심었다.

그 한마디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귀를 심었다니.

그렇다면…….

[구마(龜魔)?]

독백에 가까운 소백진의 물음에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를 아는 걸 보니 꽤나 오래전의 인물인데……. 흠, 아! 혹시 소백진 네 녀석이냐??”

소백진과 아는 사이인 듯 그의 정체를 깨달은 중년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손녀를 위해 내공을 버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리 죽어 어린놈에게 붙잡혀 있었을 줄이야. 참으로 개탄스럽구나.”

[……네놈, 네놈이야말로 어찌 된 일이냐? 네놈은 분명 나보다 족히 스무 살 이상은 더 먹었을 터인데…….]

어찌 중년인의 모습으로.

차마 말을 다 끝맺지 못한 소백진은 눈빛으로 묻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어를 섞어서.

[……구마(龜魔)라는 별호로 불리던 전전대 천하 십대 고수다.]

세수(歲數)가 족히 백 년을 넘었을 노괴(老怪)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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