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05화 (205/624)

제205화

204화-태곤옥 (2)

“흐읍.”

호흡이 거칠다.

도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훔쳐내며 설천위는 호흡을 골랐다.

‘……상당히 빡세네.’

완전한 빙의를 유지하며 자아까지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스킬의 도움을 받아도 그리 길게 유지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물론, 예전에도 패융을 불러낸 상태로 빙의를 하는 게 가능은 했었다.

단,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첫째, 육체로 패기를 쓸 수 없다.

제어권이 완전히 혼에게 넘어가니, 자신이 가진 고유의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살업은 살기의 형태로 흉내라도 낼 수 있지만…….

‘패기는 무리지.’

현태중도, 소백진도 생전엔 써 본 적이 없는 힘이라서 그렇다.

거기에다 스킬로 이루어지는 패융의 힘을 통한 신체의 강화도 안 되었고.

만약, 노공을 상대했을 때 지금과 같은 상태였다면 현태중은 열 수 안에 노공의 목을 벨 수 있었을 거다.

[허허, 육체가 달라지는 것이 이리도 큰 차이로 느껴질 줄이야. 대단하구나.]

[그 정도로 차이가 심하오?]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더군.]

봐라. 소백진이 흐뭇한 얼굴로 자랑할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솔직히 말해서 [패룡지체(覇龍之體)]를 발동시키지 못했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도사를 죽이지도 못했겠지.

여하튼, 패기를 쓸 수 없던 문제는 이토록 크다.

둘째로 생기는 문제는 패융의 [암천룡(暗天龍)]이다.

그때는 상대가 영체인 봉백이어서 그 흠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의 [암천룡(暗天龍)]은 물리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한계라고 해야 하나.

패융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기에 빙의 상태에도 불러낼 순 있었으나 그 실체가 상당히 옅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부동심(不動心)]이 단숨에 해결해 줬다.

빙의 상태에서도 다른 혼에게 휘둘리지 않고, 설천위가 완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설천위가 가진 스킬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거다.

단, [흑관(黑棺)]처럼 직접 발동시켜야 하는 술법의 경우엔 혼에게서 육체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화경급과의 싸움에선 쓰기 힘들 것 같다.

쓰려면 쓸 수야 있겠지만.

“화경급에게 찰나의 순간에 만들어 낸 흑관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 모르겠네.”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게다.]

“그래요?”

[너는 네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구나. 네가 만들어 쓰는 그 [흑관(黑棺)]이라는 술법은 상식과 틀을 부수는 물건이다.]

그 정돈가?

천마의 칭찬에 살짝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웃으며 도를 집어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화경급의 혼을 품으면서 정신까지 온전히 붙잡는 것이다 보니 상당히 힘들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거, 몸을 너무 빡세게 굴리는 거 아니에요?”

[내 생전의 수준 이상이라 들뜬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패기로 강화하면 그 정도야?

소백진의 솔직한 감상에 오히려 놀란 설천위는 턱을 쓸었다.

슬슬 신체의 성장도 체감이 되는 시기다.

아마도 조만간에 한 단계 더 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정도.

[패룡지체(覇龍之體)]는 기반이 되는 신체에 영향을 받으니…….

“진짜 무림맹에 들어가기 전에 단주급이 될지도.”

갑(甲), 가능한 거 아니야?

솔직히, 살짝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백진이나 현태중에게 의지하지 않고, 갑(甲)에 오르면 이건…….

‘보상이 얼마야?’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설천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던 순간.

[천위.]

낮게 가라앉은 천마의 부름에 설천위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느껴지기 시작하는 기척.

거칠어진 호흡.

희미하게 풍겨 오는 비릿한 혈 향.

“하!”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안도의 웃음.

그와 동시에,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리 지쳤어도, 이렇게 거리를 좁힐 때까지 몰랐다니.

거기에다.

“뭐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군데군데 성한 곳이 없는 잠룡대의 모습에.

“아오! 난 할 만큼 했다!”

부상당한 대원을 업은 채 달리고 있는 형의 배에 뚫린 구멍이.

참으로.

“짜증 나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몸이 절로 반응했다.

지쳤던 심신(心身)?

그런 것 따윈 잊는다.

육체를 움직이는 동력은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분노와 살의.

“대주님!”

“아오! 겨우 찾았네!”

설천강의 뒤를 이어 그의 곁으로 달려오는 이들 뒤로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는 놈들이 보인다.

꽤나 떨어진 거리.

하지만.

“야, 어디 가냐?”

순식간에 대원들의 사이를 지나쳐 그들의 가장 후미에 선 설천위가 손을 뻗었다.

[흑관(黑棺)]

수십 개의 흑관이 추적자들의 다리를 속박한다.

[패령안(覇靈眼)]

두 눈에서 폭발한 패기가 그들의 존재를 억눌렀다.

혼을 짓누르고, 그 고개를 땅에 처박는다.

“크아아악!”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몇은 반항하듯 몸을 비틀어 방향을 바꿨다.

이미 도주하는 것은 늦었다고 판단한 그들은 망설임 없이 설천위를 향해 돌진했다.

허나.

[암천룡(暗天龍)]

주인의 분노에 격렬하게 반응한 패융의 포효가 숲 전체를 울렸다.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패융이 품은 패기와 살의가 숲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다.

“끄륵!”

게거품과 함께 무너지는 사람들.

정신이 무너지며 발작이 일어난 이들이 쓰러져 사지를 떨었다.

“카학!”

반대로,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강렬한 심마에 내공이 역류해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괴물.”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던 송아가 중얼거렸으나, 누구도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미친.”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자신들을 따라오던 수십의 무인이 단숨에 정리됐는데.

“……대주는 왜 아직도 병(丙)이에요?”

“유 소저는 대주보다 높은 을(乙)이라던데…….”

“그럼 저거, 아니 대주보다 강한 거예요?”

아니, 저건 인간이 보여 줄 만한 광경이 아닌데.

어느새 하나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주시하던 잠룡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가 우리를 봐주고 있었구나.”

가끔 잠룡대라면 용도 견뎌야 한다면서 저 용을 불러 수련시켰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네.

청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잠룡대 대원들은 이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마무리부터 하고 쉬자.”

적들은 기절한 거지, 죽은 게 아니니까.

* * *

[이 정도면 전원 큰 탈 없이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 환자까지 살핀 신의의 대답에 설천위는 작게 안도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고마워.”

“뭐가?”

“형 없었으면 최소 몇은 죽었을 거잖아.”

“흥,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는 설천강.

그 모습에 그의 상처를 살피던 여웅이 작게 웃으며 상처에 약을 바르던 손에 살짝 힘을 더했다.

“끄악!!”

“나도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좀! 살살!”

“엄살 부리지 마라. 상처를 얼려 버린 근성은 어디 간 거냐.”

여웅의 농담에 입을 꾹 다무는 설천강을 보던 설천위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천강이 이번 일로 확실하게 잠룡대에 녹아든 것 같네.

산적들을 상대로 할 땐 위기가 없어서 설천강이 나설 일이 없다 보니 조금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끄는 자로서 상당히 훌륭한 자질을 가진 아이구나.]

“뭐, 그렇죠.”

천마의 칭찬에 설천위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말대로다.

만약 설천강이 오기를 부렸다면 잠룡대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거다.

오히려 설천강 본인은 별다른 상처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겠지.

아까 멀쩡한 청수에게 대충 상황을 들은 덕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계속 싸웠으면 꽤 죽었을 거예요.”

어쩌면 반 이상.

설천강이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자존심을 내세워 그곳에서 전투를 치렀다면 잠룡대의 반 정도가 죽었을 수도 있다.

적들에게 포위당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리한 상황임을 의미하니까.

설천강이 참으로 적절한 판단을 내린 것은 자존심을 접고 서둘러 움직인 덕이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앞에 두고 도망치는 건 무인으로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하물며 명문가에서 자란 설천강이라면 그런 감정이 더욱 강했을 터.

그것을 억누르고 대원들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챙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대주로서의 자질은 일단 합격점이다.

동료들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살신성인도 실행했고.

그나저나.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기절한 상태로 뭉쳐 있는 인간들을 보며 설천위는 턱을 쓸었다.

일단, 단전은 전부 부숴 놨다.

내상을 입어 내장이 뒤틀린 놈들은 단전이 부서진 것만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겠지만…….

뭔 상관인가.

애초에 우릴 죽이려고 달려들던 놈들인데.

다 자기 업보지.

문제는 여기서 이놈들을 전부 죽이자니 그것도 문제라는 점이다.

초절정 고수 여덟은 어쩔 수 없으니 죽였지만, 여기에 있는 놈들을 전부 죽이면 시체가 너무 많다.

부상당한 잠룡대를 이끌고 수십 구의 시체를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기에다.

‘무림맹에 끌고 가면 나름 공적으로 인정받겠지?’

나쁘지 않다.

잠룡대 전체의 실적도 올릴 겸.

개인적인 실적도 챙길 겸.

나쁘지 않아.

또한.

“명분도 서고 말이야.”

[뭐가 말이야?]

“별거 아니에요.”

천마의 물음에 재빨리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어느새 얼추 치료가 끝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잠룡대 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럼 전원, 여기서 쉬고 있어.”

“대주님은 또 어디 가십니까?”

“어.”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태곤옥을 훔치기 위해…….

“크흠, 남은 잔당들이 있는 곳을 알거든. 거기까지 정리하고 돌아올게.”

“혼자서요?”

“이런 함정을 판 녀석들입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까.”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설천위는 지쳐 있는 대원들을 바라봤다.

“무고한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놈들이야. 알아챈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반드시 해결해야 해.”

“대주님…….”

감격에 차오른 문율이 입을 틀어막고.

청수는 나지막이 불호를 외웠으며.

규학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랄이 풍년이구나.]

천마는 개탄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오랜만에 욕설을 내뱉었다.

* * *

“보고입니다.”

“실패했다더냐?”

흠칫.

웃으며 묻는 언여휘의 모습에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부하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반응을 보아하니 맞구나.”

“여덟의 초절정 고수는 전멸, 잠룡대를 묶기 위해 움직였던 이들도 전멸입니다.”

“참으로 괴물 같은 놈이야.”

계획이 실패했고 부하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접했음에도 언여휘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새 또 성장했나? 이거 참…….”

당과를 꺼내어 입에 문 언여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수장이 아닌, 다른 세력의 수장.

아니, 그렇게 구분하기엔 조금 애매한 존재.

“어때? 내가 부족할 거라고 했지?”

[……인정하마. 우리가 고작 도사만 보낸 것이 실책이었음을.]

뚜렷한 구분 없이, 일렁이는 빛이 뭉쳐 사람의 형태를 한 것 같은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의 재능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임을 인정하마.]

“그래서? 그다음 대책은?”

[악귀를 풀 거다.]

“내 얘기를 듣긴 한 거야? 걔, 무공 실력보다 술법 실력이 더 뛰어나다니까?”

까득.

당과를 씹으며 옷깃을 당긴 언여휘는 팔부터 어깨를 지나 서서히 가슴으로 번져 가고 있는 상흔을 드러냈다.

“이것 봐. 아직도 해결을 못 해서 내가 이러고 있다니까?”

상흔의 경계에 몇 개의 구슬과 침이 박혀 있었다.

완전히 해제하지 못해 통증과 진행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임시 조치.

피부 안으로 부적을 넣는 극단적인 수까지 취해 가며 겨우 통증을 막고 있었다.

“악귀 놈들 보내 봤자 그놈의 먹이밖에 안 돼.”

[그냥 악귀를 보내는 게 아니다.]

“그럼 뭐 재급(災級)이라도 보내게?”

[재(災)는 아니다.]

사혈천에서 중간 간부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십이군 조차 귀(鬼)의 악귀다.

다만, 눈앞에 있는 존재의 힘을 나눠 받아서 반쯤 그 틀을 벗어났을 뿐.

“봉백인가 하는 녀석도 당했다며? 재(災) 이하의 악귀를 보내서 어떻게…….”

[그렇다고 귀(鬼)도 아니다.]

자신의 말을 끊는 상대의 말에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언여휘는 짜증보다는 호기심을 더 강하게 느꼈다.

귀도, 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등급의 악귀가 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귀(鬼) 이하의 악귀는 당연히 상대가 안 되고.

재(災) 이상의 악귀는…….

‘지금 현세에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다.

재(災)와 귀(鬼)의 중간 단계.

악귀이면서 악귀가 아닌 존재들.

[마(魔)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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