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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04화 (204/624)

제204화

203화-태곤옥 (1)

‘……이건 위험하군.’

담담하게 서 있는 설천위와 마주한 거한은 속으로 작게 신음을 삼켰다.

그리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다짐했거늘.

‘우리가 오만했던 것인가.’

무려 여덟이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

설령 일대일로 싸워서는 진다고 한들 무려 여덟이나 되는 수적 우위를 뒤집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멍청하게 설천위의 뒤를 따라간 두 놈을 방치했던 게 아닌가.

두 놈 정도 빠진다고 해서 수적 우위가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여섯이라는 숫자도 충분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숫자이니까.

그렇기에.

까득.

“……인정하지.”

우리들이 오만했음을.

주제를 몰랐음을.

인정해야 한다.

도끼를 쥔 채 굳은 기세를 뿜어내는 거한의 몸에서 산과 같은 묵직한 기세가 풍겨 나왔다.

초절정.

말이 초절정이지, 결코 흔한 수준의 무인이 아니다.

중소 문파의 장문인들 중엔 절정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도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보다 약한 자들도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당장 무림맹에서도 구단의 부단주나 상급 이상의 대(隊)에서 대주가 되려면 초절정 이상의 무위가 필수다.

그만큼 초절정이란 경지는 이 무림에서 인정받는 하나의 자격이다.

그런데,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여덟이나 모였는데도 저 어린놈 하나를 못 잡고 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왜?

“네놈은, 반드시 이곳에서 죽인다.”

인정하지 않고 현실에 손을 뻗지 않았다가 저 녀석을 놓치면, 분명 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테니까.

이 모임을 주도한 혈사련의 말이 맞았다.

이 녀석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거한을 시작으로, 나머지 셋 또한 땅을 박찼다.

뭐가 됐든, 지금 이 자리에서 설천위를 죽인다.

인원이 줄어든 만큼 단숨에 사방을 점한 넷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전력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철저하게, 자신이 맡은 방향만을 공략하겠다는 속셈.

서로의 수준과 무공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합공.

아마 설천위였다면 순식간에 손발이 꼬여 몇 수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실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었지만…….

그들에겐 안타깝게도, 지금 도(刀)를 쥐고 있는 것은 설천위가 아니다.

“나쁘지 않구나.”

[나쁘지 않구나.]

손아귀를 타고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거한은 본능적으로 도끼를 뒤로 뺐다.

옆에서 보면 그냥 뜬금없이 공격을 망설인 실책이었으나.

‘……괴물이로구나!’

반쯤 날이 잘려 나간 자신의 도끼를 확인한 거한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심지어,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다.

“헛!”

설천위의 오른쪽을 파고들던 무인도 반쯤 잘려 나간 검을 회수하며 헛숨을 삼키는 게 보였다.

“크악!”

거기에다 설천위의 뒤를 노리던 암살자는 용의 거대한 꼬리에 맞아 저 멀리 튕겨 나가고 있었고.

그나마 끝까지 검을 뻗은 이는 설천위의 왼쪽을 공격하던 이였는데…….

“이익!”

검과 팔을 촘촘하게 나열한 흑관에 붙잡힌 사내가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아주 잠깐.

천천히 부서지고 있긴 했으나, 이건 너무나도 컸다.

확실하게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일 수 있는 시간 동안 붙잡혀 있다는 것.

초인의 영역에 오른 싸움에선 죽음이란 단어와 동일한 의미였다.

다만.

‘……왜?’

이상하게 마무리를 짓지 않는다.

지금 당장 왼손을 뻗어 마무리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음, 과연 내 통제를 따르지 않는구나.”

[음, 과연 내 통제를 따르지 않는구나.]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젓는 목소리.

“네가 술법을 쓸 땐 최소 한 팔 정도는 못 쓰니 이건 상당한 제약이구나.”

[네가 술법을 쓸 땐 최소 한 팔 정도는 못 쓰니 이건 상당한 제약이구나.]

아쉬움을 표하며, 소백진은 어느새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왼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힘이 약해진 흑관을 부수며 상대가 몸을 뺐다.

“확실히, 완전한 만능은 아니구나.”

[확실히, 완전한 만능은 아니구나.]

마무리할 기회를 놓친 상대가 다급한 표정으로 호흡을 고르는 것을 보며 소백진은 아쉬움을 삼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패융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니 그에 대한 제약은 없다는 점일까.

설천위가 자아를 유지하면서 빙의를 진행한 상태로 언제든 육체의 제어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건 좋지만, 아쉽게도 정말 크게 쓸 수 있진 않을 것 같다.

자신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 손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술법을 쓸 필요가 없을 테니.

[확실히 쓰는 데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구나.]

[혹은 연습을 통해 아예 의지만으로 쓸 수 있게 노력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소백진의 말에 동의하는 혼들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금 더 연구해 보죠.”

어차피 이제 막 얻은 능력일 뿐이니까.

파고들면, 분명 더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이것 이외에도 길은 있을 테고.

혼들의 대답에 긍정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설천위는 다시 온전히 몸의 제어권을 소백진에게 넘겼다.

‘아무래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요.’

몸을 내주며 속삭인 설천위의 말에 몸을 차지한 소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길게 걸리진 않을 게다.”

[그리 길게 걸리진 않을 게다.]

담담하기 없는 대답과 함께, 땅을 박찬 거한의 도끼가 설천위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거의 동시에, 자세를 되찾은 다른 셋도 파고들었으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서로 전문적으로 합공을 연습한 것이 아니기에 생겨난, 필연적인 틈.

“길구나.”

[길구나.]

소백진에게는 너무나도 길고 긴 여유를 주는 틈이었다.

서걱.

거한의 도끼가 잘려 나가고.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상체를 틀어 치명상을 피한 거한이 그대로 몸을 밀어붙였다.

또 한 번의 참격이 그가 쥔 도끼의 잔해를 베고, 가슴과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절로 이가 악물어지는 끔찍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으나, 거한은 어떤 내색도 없이 그저 달렸다.

어떻게든 저 도를 멈춰야 한다.

딱 한 번.

멈춰 낸다면, 승기는 이쪽으로 기운다.

합공의 이점을 살릴 수 있다.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로 거리를 좁힌 거한의 손이 설천위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설천위는 마치 그를 무시하듯 몸을 돌렸다.

몸을 돌려, 오른쪽을 파고드는 무인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대체 왜?

의문이 들었으나, 승기를 붙잡았다고 확신한 거한의 손이 설천위에게 닿기 직전.

[쯧쯧, 수적 우위만을 믿고 몸을 내던지다니 어리석음의 극치로다.]

[온 신경을 다 모아 천천히 전진했어도 위험했을 것을 막무가내로 파고들다니.]

순간, 귓가에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거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 자신들 말고도 누군가가 있었나?

아니, 그 전에.

‘……왜 닿지 않지?’

팔이 닿지 않는다.

나아가질 못한다.

마치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구나.]

[이래서, 배우지 못한 채 신념만을 주입 당한 이들이 무서운 것이지요.]

[독한 놈들이야.]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목소리에 거한은 그제야 자신을 내려봤다.

없다.

선명하게 대지를 밟고 있어야 할 다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보였다.

망가진 도낏자루를 쥔 채 목이 잘린 자신의 몸.

[화경이란 경지를 무시한 벌을 받은 게다.]

[소 형님의 솜씨가 평소보다 더 깔끔한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천위 녀석이 뭔가 변한 것 같은데 그 덕 아니겠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화와 함께, 자신의 죽음을 깨달은 거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른 무인을 압도하고 있는 설천위가 보인다.

허나, 이제야 또 다른 것이 보였다.

그 얼굴 뒤로 희미하게 투영되는 노인의 얼굴.

여태껏 자신이 상대했던 존재가 설천위가 아님을 깨달은 거한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진정 괴물이었던 것인가.]

탄식과 함께, 고개가 서서히 땅을 향해 떨어진다.

……이렇게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구나.

주위에 먼저 죽은 이들의 혼이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자신들은 이 땅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거한은 담담하게 지옥을 기다렸고.

[껄껄! 저놈, 저거 웃기는구나!]

[아주 자신만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 같군요.]

비웃음과 함께,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은 거한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설마 저승으로 직접 찾아가야 하나?

……그렇다면 먼저 죽은 녀석들은?

순간, 죽은 상태에서도 오한이 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한은 고개를 들었다.

그야말로 날카롭기 그지없는 도(刀)로 상대를 베어 내는 설천위가 보인다.

아니, 설천위가 아닌 다른 인간이겠지만.

아마 저 상대도 조만간에 목이 떨어질 터.

한데.

‘……이상하군.’

왜 호흡이 버겁지?

아니, 죽었으니 호흡을 할 필요 자체가 없지 않나?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거한은 천천히 깨달았다.

아.

‘빨려 가고 있구나.’

자신의 손발이 서서히 흩어져 설천위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묘한 광경이었기에 거한은 놀라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대로 빨려 들어갈 순 없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쓸데없는 발악이다.]

이를 악물고 달리려던 거한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고자 했다.

‘……왜?’

[목이 굳었느냐? 손발이 움직이지 않느냐?]

웃음이 섞인 물음과 함께 거한은 깨달았다.

아까부터 몸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느니라.]

담담한 목소리.

그 말을 거한은 부정하고 싶었으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고?

보고 있었으니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존재가 허공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존재 자체를 쥐어짜는 압도적인 기세와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숨도 쉬지 못하는 압박감 속에서 거한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 속.

천천히 닫히는 거한의 눈동자엔 목이 잘린 또 다른 무인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 * *

“뛰어라!”

잠룡대를 이끌고 설천강은 미친 듯이 달렸다.

틈틈이 검기를 뒤로 뿌려 가며,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허억! 허억!”

“미친! 내가 그 지옥 같은 수련을 감사해하는 날이 올 줄이야!”

곳곳에서 들리는 거친 목소리에 설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설천위가 강조했던 달리기가 지금 그들을 살리고 있었다.

속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체력.

부상당한 동료를 짊어지고 달릴 수 있는 체력.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달릴 수 있는 체력.

전에 없던 그것이, 지금의 자신들에겐 있음을 깨달은 잠룡대 대원들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성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다.

거기에다.

“하다못해 대주님이랑 같이 죽는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이 한 달간 잠룡대에 붙은 정이 얼만가.

억울하게 죽더라도 함께 죽을 거다.

같은 장소에서 최대한 발악하다가 죽을 거다.

독기가 가득한 규학의 외침에 송아가 타박을 줬지만, 다른 이들은 딱히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았으니까.

설령 죽더라도 대주의 곁에서 죽고 싶으니까.

별 볼 일 없는 재능이라고 무시당하던 자신들을 뽑아 준 설천위이니까.

자신들을 인정해 준 첫 은인이니까.

이를 악물고 달리는 대원들을 보며, 여웅은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좋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참 괜찮은 녀석들이다.

속내를 숨기고 이익을 위해 거짓 웃음을 짓는 놈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살아서 돌아간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거다.

돌아가서 이 녀석들과 함께 무림으로 나갈 거다.

세상을 활보할 거다.

반드시.

그렇게 달리던 그때.

“컥!”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가 가장 뒤에서 달리던 이의 다리를 꿰뚫었다.

목숨을 앗아 가는 것이 아닌 기동성을 뺏는 공격.

그 공격에 여웅은 이를 악물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여기서 그를 버려야 하겠지만…….

“업혀!”

순식간에 그에게 도달한 설천강이 그를 업고 달렸다.

버리지 않는다.

최소한 이 자리에선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간다.

그런 각오로 가득 찬 도주.

그 도주를 암살자는 가까이 따라잡았다.

“부상자를 두고 갔다면, 놓쳤을 것이다.”

그들의 실패를 지적하며 거리를 좁힌 암살자가 비수를 뿌렸다.

곳곳에 부상을 입는 이들이 속출했고,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등 뒤로 달라붙는 이들의 기척이 가까워진다.

그야말로 시시각각 절망이 다가오는 순간.

“하!”

부상자를 업고 달리던 설천강이 웃음과 함께 속도를 줄였다.

그 모습에 따라서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잠룡대.

“드디어 포기한 것이냐?”

웃음을 머금고 한층 더 속도를 높인 암살자가 단숨에 그들을 따라잡는 순간.

“뭐냐?”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그의 주위로 흩어진 시체가 여덟 구.

그 숫자를 확인한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암살자가 몸을 빼려던 그 순간.

설천위의 등 뒤로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패융의 황금빛 홍채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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