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02화 (202/624)

제202화

201화-잠룡대 (7)

8대 1

솔직히 말해서, 정말 절망적인 수적 차이다.

특히, 8에 속한 개개인의 역량이 1에 해당하는 사람과 비슷하다면 정말로 넘기 힘든 벽이 되어 버린다.

아니, 생각해 보라.

내 정면으로 적이 공격해 오면 그 상대를 막기 위해 나도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때 바로 옆이나 뒤에서 공격이 들어온다면 이를 어떻게 막겠는가?

이렇듯 서로의 역량이 비슷할 때 소수는 그냥 처맞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친구가 없으면 그냥 죽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설천위는 놀랍게도 그 방법을 천희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새끼들아!!”

“그러면 도망치지 마라!”

“내가 지금 도망치는 건 정정당당한 싸움을 위한 일보 후퇴지, 새끼들아!”

일단 튄다.

적의 수가 많을 때, 혹은 적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를 때.

그런 적과 마주했다면 일단 튄다.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흑관(黑棺)]을 적극 활용하면서 설천위는 열심히 달렸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가 빛을 발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신법이 워낙 좋다 보니 적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옴!”

적들 사이의 간격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력 수준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신법의 수준까지 똑같진 않을 테니까.

거기에다 설천위의 방해까지.

눈치껏 둔해 보이는 녀석들에게는 더 자주 훼방을 놓았으니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 거리가 벌어지고.

어느새 설천위의 시야에 보이는 이가 둘로 줄었을 때.

“여기까지.”

설천위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숫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두 번째 팁.

8대 1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일대일로 8번 싸우는 거다.

이게 다 게임에서 배운 거다, 이 말씀이야.

친구가 없으면 3명을 상대해야 했다, 이 말이야!

물론.

현실은 게임과 달라서 아쉽게도…….

“2대 1이 한계인 것 같네.”

여기서 더 달렸다간 체력이 너무 깎이니 여기까지.

두 명 정도면 나름 할 만하지.

“후.”

호흡을 고르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상대를 향해 설천위는 도(刀)를 휘둘렀다.

키이잉!

기와 기가 서로 충돌하며 강렬한 소음을 만들어 낸다.

그 상태에서 상대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비웃음.

그 미소의 이유를 설천위는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새 도달한 또 다른 적이 쌍장(雙掌)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기를 머금은 손바닥이 설천위의 내부를 확실하게 진탕으로 만들기 위해 옆구리로 파고든다.

그 안에 담긴 힘이 그대로 몸에 닿으면 그의 장기는 그야말로 곤죽이 되어 버릴 터.

허나.

[크르르르르르.]

“무슨?!”

설천위에겐 팔다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패융이 상대의 양팔을 물어 걷어 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용에게 양손이 모두 묶인 상대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고치려는 그 순간.

“흡?!”

갑자기 나타난 [흑관(黑棺)]이 그의 걸음을 막는다.

예상치 못한 방해로 균형이 흐트러지고.

“일단 한 놈.”

순식간에 그 목을 스쳐 지나가는 도(刀)가 그의 목숨을 거둔다.

“놈!”

그 모습에 성을 낸 건 설천위에게 검을 휘둘렀던 상대였다.

누구보다 신법이 빨랐던 사내.

그 사내는 한껏 붉어진 얼굴로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검과 도가 부딪힌 순간.

검을 붙잡는 기묘한 힘에 힘겨루기를 한다고 여기고 비웃었건만.

이 시커먼 무언가가 그저 검을 붙잡았을 뿐이란 것을 깨닫고.

사내는 우롱 당했다는 생각에 그만 이를 악물며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방심 다음으로 나쁜 게 분노인데.”

그런 사내를 비웃으며 도를 움직이는 설천위.

수적 우위를 점했다는 이유로 방심한 상대의 목을 단숨에 쳐 냈으니 솔직히 기분은 좋다.

초절정이나 되는 상대를 이렇게 쉽게 죽였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있겠는가.

‘이제 할 만해졌네.’

뭐, 기습의 묘를 살린 데다 [흑관(黑棺)]으로 속임수까지 걸었으니 하나 정도는 쉽게 정리해 줘야지.

검과 도가 부딪히고, 흐트러진 자세 때문에 살짝 밀리는 것을 느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거리를 벌렸다.

“놈! 도망치는 것이냐!”

“거, 놈놈놈 하지 마라. 너희는 왜 항상 말의 시작이 놈이냐.”

한국인이 ‘아니’로 대화를 시작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

무림인의 종특인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자세를 고치고 상대방을 살폈다.

미세하게 흐트러진 호흡.

살짝 올라간 어깨.

과하게 힘을 준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검을 꽉 쥔 손.

흐트러졌다.

“흐트러짐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설천위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상대는 검을 휘둘렀다.

일격.

분노가 담긴 만큼, 더욱 강맹해진 공격.

허나, 얻은 강맹함에 비해 잃은 부드러움과 빠름이 너무 많다.

미흡한 공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설천위의 도에 막히고.

[어리석구나.]

“어리석구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왼손으로 쥔 검이 무흔의 궤적을 그린다.

“컥?”

뒤늦게, 목의 상처를 느낀 상대가 몸을 비틀었지만 거기까지.

아무리 단숨에 목을 절단한 게 아니라곤 해도, 그 상처가 결코 얕진 않았다.

빠르게 생기가 빠져 나가는 육체를 가볍게 밀고, 순간적으로 했던 현태중의 빙의를 푼 설천위는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나쁘지 않아.’

최근 영적인 수련을 반복했더니 빙의도 뭔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스킬창에서 보이는 숙련도 이외에도 뭔가 좀 더 편해진 느낌?

역시 스킬창에 나타나는 게 전부는 아니지.

“……괴물 놈.”

“벌써 왔어?”

시간상으론 1분도 안 걸렸는데.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도착한 적이 셋.

이건 좋지 않다.

“영악한 놈, 도망치는 순간부터 혹시나 했다.”

“이런 식으로 싸울 줄 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시체를 보며 혀를 차는 여자의 모습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무공을 잘 못하는 거지 싸움을 잘 못하는 게 아니라서.”

“오만하구나.”

“아니, 사실인데.”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능숙해 보이고.”

……이건 대화가 안 통하는데.

제 할 말만 하는 여자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설천위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인생 쉽지 않네.”

“같은 수에 또 당해 줄 만큼 우리가 어수룩하진 않다.”

[퇴로를 막았구나.]

상대의 자신만만한 인정에 천마의 확답까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제대로 느낀 것임을 깨달은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덩치의 사내가 그 큰 몸으로 나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언제 돌았데?”

“무림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에 신법이 느린 이는 없다.”

“그랬다간 전부 죽고 없을 테니까.”

그건 상당히 섭섭한 소리네.

“뭐, 이 두 놈은 네 녀석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달려갔지만.”

“그래도 나름 동료라고 온 거 아닌가? 말려 줬어야지.”

“흥, 일시적인 협력일 뿐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고작 네깟 녀석 하나 때문에 우리가 협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니.”

“눼눼, 그러시겠죠.”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느낌이 드는 거한이 설천위의 대답에 미간을 찡그렸으나, 그 뒤에선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이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되지 않는구나.”

거, 너무 평가가 좋은데.

섭섭해?

한숨을 내쉰 설천위가 다시 앞을 바라보려던 순간.

[천위!]

다급한 천마의 목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본능적으로 도를 올렸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머리 혹은 목을 노린다.

그리고.

까드드득!!

“……이건?”

살짝 당황한 목소리.

당황한 이유는 두 가지다.

설천위의 도가 생각보다 매섭게 들어와 가슴을 스친 상처가 꽤나 깊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내지른 공격이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막혔다는 점이다.

“……용?”

까득.

[크르르르르.]

이빨과 검이 맞물리고 금속이 서로 갈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낮은 용의 울음소리가 주위를 잠식한다.

“……미친놈.”

자신의 몸을 내주고 어깨에 검을 박으려고 했던 야행복의 사내를 보며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암살자라.

여기서 나머지가 달려들면…….

[움직여라!]

순간, 천마의 고함과 함께 설천위는 즉시 움직였다.

흑관으로 주위를 감싸고 영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깡! 까강!

사방에서 파고든 공격이 흑관에 막혀 멈춘다.

검과 도는 물론이고, 도끼와 주먹까지.

하나하나가 사람의 두개골 따윈 그냥 부숴 버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 [흑관(黑棺)]에 저지당하자, 다양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건?!”

“호오호오! 술법으로 이런 짓을?”

당황하는 무인들과 달리 감탄하는 술사.

사방에서 날아든 공격을 겨우 막아 내는 데 성공한 설천위는 한 번 숨을 골랐다.

이건 상당히 위험하다.

아무리 강해졌다곤 해도 아직까지도 이쪽의 주력은 술법이다.

초절정 고수 여섯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대로 도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무리고.’

이쪽의 생각을 읽고 일부러 속도를 늦춰 미끼를 던진 다음 포위까지 한 놈들이다.

그냥 도주하는 건 성공할 리 없다.

거기에다.

‘……걔들도 위험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들이 잠룡대에 손을 안 썼을 리가 없다.

혹시 몰라서 설천강까지 끌고 와 붙여 놓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에 초절정 고수가 여덟이나 온 걸 보면 저쪽에까지 초절정 고수가 투입됐을 가능성은 적을 거다.

해 봤자 하나 정도겠지.

그 정도는 뭐, 형이 어떻게든 힘내서 버틸 만할 테고.

“문제는 이쪽이네…….”

아무리 생각해도 초절정 고수 여덟보다 더 큰 문제가 없네.

이걸 어쩌냐.

“호오! 이건 상당히 단단하구나!”

“해제는?”

“금방이다. 조급하게 만든 것이니 반드시 틈이 있을 터.”

[흑관(黑棺)] 밖에서 들리는 대화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신을 덮을 정도의 [흑관(黑棺)]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빈틈이 없을 리 없었고, 아마 사혈천의 술사로 추정되는 저 노도사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해제할 수 있을 거다.

“진짜 인생 쉽지 않네.”

나는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단 말이다.

“상태창.”

무너지기 시작하는 [흑관(黑棺)]을 느끼며 설천위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었다.

“놈, 너무 시간을 끌지 마라. 결국 네 녀석은 죽을 터이니.”

얼굴부터 무너지는 [흑관(黑棺)] 너머로 히죽히죽 입꼬리를 비트는 노도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도사를 보며, 설천위는 조용히 물었다.

“내가 노공을 죽인 뒤로 몇 달이 흘렀다고 생각하냐?”

“성장했음을 말하는 것이냐? 하! 성장에도 한계가 있는 법. 아무리…….”

“아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거든.”

노도사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는 담담하게 말했다.

“인생이란 게 어디로든 길은 있는 법이거든.”

---------

정신력(精神力)이 上下로 상승합니다!

---------

노공을 죽이고, 봉백(峰魄)을 죽였다.

그 뒤로도 싸움과 비무를 반복하며 경험치는 계속해서 쌓였다.

그래서 솔직히 영력이나 패기를 상중(上中)으로 올리려고 모으고 있었는데…….

“씁, 진짜 마음이 아프다, 새끼들아.”

큰 그림을 그리려다가 도화지가 찢어지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지.

영력이 올랐을 때처럼, 직접적인 체감은 없다.

패기가 올랐을 때처럼, 극적인 변화도 없다.

그저 한 가지.

---------

스킬 [부동심(不動心)(上中)]을 획득합니다.

---------

그저 스킬 하나가 늘어날 뿐이다.

허나,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기적은 하나가 아니다.

[빙의(憑依)]

[허어, 이건 참 신기한 경험이로구나.]

“허어, 이건 참 신기한 경험이로구나.”

도(刀)를 쥔 소백진은 오랜만에 느끼는 기묘한 감각에 허허롭게 웃으며 도를 들었다.

[암천룡(暗天龍)]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

거대한 몸을 드러낸 패융은 주변의 나무들을 박살 내며 그 거체를 땅 위에 현현한다.

[패령안(覇靈眼)]

본래 빙의를 하면 사라지던 패도의 눈이 설천위의 눈에 깃들며 주위를 집어삼킨다.

영력과 패기가 몰아치며, 압도적인 살기가 만물을 찢어발기기 위해 짓누르는 공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만들어 내는, 본래는 조화될 수 없는 것들의 조화.

“자, 시작하자.”

소백진과 몸을 공유하면서도 자아를 유지한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