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01화 (201/624)

제201화

200화-잠룡대 (6)

이 육도(六道)의 무림엔 수많은 음지의 조직이 있다.

진짜, 이렇게까지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많이.

혈사련, 혈교, 진의단, 천명회, 사혈천 등등.

이 더럽게 넓은 중원에서 전국 단위로 노는 음지의 조직만 쳐도 한 손으로 헤아릴 수가 없는 수준이다.

거기서 이제 지역별로 들어가면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조직이 있다.

사실 동네에서 청부 살인의 의뢰를 받아서 하는 놈들도 엄밀히 말하면 음지의 조직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한 조직과 여러 번 부딪히는 건 참으로 기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 인연이 깊어.”

목이 부러진 시체를 던지며, 설천위는 한껏 경계 태세를 갖춘 적들을 바라봤다.

단숨에 정리하지 않은 이유?

별거 없다.

“조금, 실험을 할 거야.”

끼릭.

실과 실이 서로 강하게 맞물리며 나는 소리와 함께, 놈들이 눈을 크게 떴다.

“실이다!”

처음 죽인 녀석이 조장은 아닌지 바로 반응이 왔다.

내공을 끌어올린 놈들이 속박을 끊어 낸다.

일류 수준인 놈들은 단번에.

이류 수준인 녀석들은 한 2, 3초 걸렸다.

“쓸모없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 의체 만드는 실력이 부족해서니까 신경 쓸 거 없어.”

역시, 아직 [암천룡(暗天龍)]을 제외한 영체의 현현은 무인과의 대결에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흑사(黑絲)는 물론이고, 다른 화경급 고수들이 혼을 구현시켜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겠어.

솔직히 말해서, 진짜 아쉽다.

의체 만드는 걸 배웠을 때부터 기대했는데.

“스탠드 버리기 쉽지 않은데…….”

[무슨 헛소리냐.]

“그런 게 있어요.”

로망이라고.

딱 주머니에 손을 넣고 노려보면 뒤에서 훅 하고 튀어나와서 오라오라!

“……이럴 때가 아니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도검을 향해 이쪽도 마찬가지로 검을 휘두른다.

이 정도의 공격은 흑사의 실로도 잠깐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의체를 만드는 데 쓰는 정신력을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아무래도 의체를 만드는 것 자체를 좀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

“설천위다!”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내 코앞까지 도달해 검을 휘두르던 놈이 외치는 목소리에 뒤쪽에 있던 녀석이 단숨에 땅을 박찼다.

보고를 위해 움직이는 거겠지.

그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손을 뻗었다.

의체를 이용한 싸움은 아직 힘들지만…….

[흑관(黑棺)]

술법은 아니다.

도망치는 녀석의 다리를 속박하자 놈의 상체가 그대로 꼬꾸라졌다.

어찌나 열심히 달렸는지 그 반동에 놈의 무릎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인대 정도는 끊어진 것 같은데.

뭐, 상관없지.

“전부 죽일 거니까.”

살인(殺人).

혈사련 소속의 인물이라고 전부 죽을죄를 진 건 아니니 최대한 갱생의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냐.

인권을 주장하는 자라면 이리 말할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처맞는 말.

처맞다가 뒈지기 딱 좋은 수준이지.

죄의 유무 따윈 중요하지 않다.

전장에 선 군인은 뭐 하나같이 죽을죄를 지어서 죽나?

그 군인을 죽인 상대 군인은 자국에서 표창까지 받는데?

이 무림이란 곳이 바로 전장이다.

하물며, 상대는 이 무림 전체를 뒤집어엎을 생각으로 피가 끓는 적국의 군인들이고.

“나는 소인배라서 말이야.”

전장에서도 자비를 베풀 여력이 없다.

순식간에 [흑관(黑棺)]에 속박당한 놈들의 목을 한 자루의 도가 스쳐 지나간다.

허물어지는 상대를 보며 설천위는 도를 집어넣고, 천마를 바라봤다.

“위치 알면, 알려 주세요.”

[오냐.]

이 뒤는 인간의 일이 아니니 맡기고 기다릴 일만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좀 더 가능성을 높여 볼까.”

* * *

“이 길이 맞는 거야?”

“아, 맞는다니까?”

앙칼진 대답에 불만을 표출하던 규학은 그만 입을 꾹 닫았다.

이곳에서 추종술이 가장 뛰어난 송아.

청수의 소꿉친구인 그녀는 비도를 다루고 은신이나 추종술에 뛰어난 인재다.

설천위는 그 경지 이상으로 주변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니 아예 멀리 떨어져서 그 흔적을 더듬어 갈 수밖에 없는 지금, 송아만이 유일한 등불이다.

그녀가 화가 나 돌아가기라도 하면 추적할 방법이 달리 없으니,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속으로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하며 규학은 얌전히 주위를 경계했다.

송아는 평소에 부드러운데 임무를 시작하면 성격이 상당히 날카로워진다.

이럴 땐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지.

진짜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

“적이다.”

검은 무복을 입은 적들.

그 숫자는 여섯.

수적으로 조금 밀린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여웅은 행동했다.

“뭉쳐!”

이곳에서 가장 무위가 높은 여웅의 한마디에 다섯 사람은 일제히 뭉쳤다.

가장 무력이 떨어지는 송아를 중심으로 나머지 넷이 사방을 지킨다.

사람이 넷 이상일 땐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그간의 싸움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뭉친 상태로 다섯 이상의 적과 마주하면 서로의 움직임에 방해가 된다.

최소한의 각을 확보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한계가 4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서로 한 방향씩 네 곳을 맡는 것.

그것만으로 방어는 견고해진다.

그렇다면 남은 인원은?

한쪽이 무너지면 그쪽을 대신 막거나…….

“와요!”

도검이 눈앞에 있지 않은 상황을 이용해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송아의 외침에 사방을 맡았던 네 사람이 팔을 움직였다.

회피는 안 된다.

시야를 가로막다가 갑자기 회피하면 안에 있던 송아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당할 위험이 크다.

두 다리는 굳건히 붙인 채, 적의 공격을 받아 내야 한다.

자신의 어깨를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받아 내며, 규학은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내공을 써서 싸우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

또 하나는 한 달 전이었다면 여기서 누군가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두 가지였다.

‘……경험이라는 것이 이리도 큰 것이구나.’

학관에서 수련만 할 때는 전혀 몰랐다.

살의가 오가는 전투가 비무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

그것을 배운 것만으로 이 한 달 동안의 개고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확실히 달라.’

전투에 내공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큰 차이로 다가올 줄이야.

최근 실전에선 내공 없이 싸우는 것에 적응하다 보니 체감이 장난 아니다.

“집중해라!!”

순간, 호통 소리에 규학과 청수가 흠칫했다.

“내공이 승리를 약속하진 않는다!”

여웅의 호통에 정신을 다잡은 규학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힘에 취할 때 여웅은 냉철하게 이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났다.

심지어.

‘……문율, 쟤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군.’

내공을 쓰든 안 쓰든 상관없다는 듯 그저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연하다는 듯이 검을 휘두른다.

“후.”

못난 모습을 보였으니, 또 보일 순 없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규학은 당장 튀어 나가고자 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승기를 잡았다고 하여, 앞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 진형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섣불리 나가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을 넘어서서 동료를 죽이는 행동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에 성공한 규학의 검은 더욱 단단해졌다.

틈을 허락하지 않고, 자신과 동료를 지키는 검.

‘……상당히 쓸 만해졌군.’

진짜 실전을 마주한 다섯 사람이 침착하게 대응해 나가는 모습에 그 뒤를 은밀히 따르던 설천강은 턱을 괸 채 그들을 살펴봤다.

나무 위에서 구경하는 자신을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상대들이니, 저 다섯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다.

다만.

‘판단이 아쉬워.’

적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싸움이 장기전으로 가면 수적으로 불리한 잠룡대 쪽이 당연히 안 좋다.

함께 뜻을 맞춰 서로를 지키는 것은 좋으나, 여기에선 서로 힘을 합쳐 한 방향을 뚫어야 옳다.

뚫어서 숙소로 돌아가 자신을 찾는 것이 정답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성장도 확인했고, 이 이상 오래 있다가 휘말리면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은 몰라도 이 녀석들은 난전이 벌어지면 확실하게 죽거나 다칠 테니까.

“설 공자?!”

“이 정도 시험해 봤으면 충분하겠지?”

어느새 적들의 뒤에 나타나 묻는 설천강의 질문에 여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나겠다.”

“좋아.”

“여웅!”

“우리는 가서 도움보단 방해가 될 거다.”

지금만 보아도 그렇다.

자신들은 수십 합을 겨뤄야 겨우 승기를 가져오던 상대를 설천강은 단숨에 제압했다.

빙공에 당한 건지, 혈을 짚은 건진 모르겠으나 뻣뻣하게 굳어 버린 녀석은 설천강이 등장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제압됐다.

‘이게 병(丙).’

초절정이라 불리는, 무림에서도 강자로 손꼽히는 경지에 오른 괴물들.

설천강도 자신들이 애먹던 상대를 단숨에 제압했는데 설천위는 그조차 이긴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걱정이라는 감정은 명분이 되질 못한다.

거기에다.

“우리가 있으면, 그 녀석을 쓸 수 없겠지.”

“…….”

딱 한 번.

설천위가 수련을 하면서 보여 준 적이 있던 그것.

진정한 고수에겐 통하지 않으니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설천위는 웃었지만, 잠룡대의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설천강조차도.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돌아간다.”

어느새 여웅을 비롯한 다섯을 상대하느라 빈틈투성이였던 이들을 전부 제압한 설천강은 턱짓으로 왔던 길을 가리켰다.

“설천위 녀석이 난리를 치기 전에 여기서 빠져…….”

순간.

등줄기를 관통하는 소름에 설천강은 말을 끊고 몸을 돌렸다.

손발의 감각이 저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뼈가 시릴 정도로, 강렬한 한기가 심장을 옥죈다.

“……아무래도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무슨 일이냐?”

“동생 놈의 적이 생각보다 더 많은 모양이야.”

그리고 왜 나를 이곳에 끌고 왔는지도 이제야 알겠네.

“지금부터 돌아가서 다른 녀석들과 합류한다.”

“그리고?”

“상황을 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물론.”

돌아오지 못할 상황이 될 확률이 더 크지만 말이다.

* * *

“하, 참…….”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가면 여러 조직에서 날 노리겠지.

그걸 예상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만 한 미끼가 있으면 실전 경험은 끝내주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쪽도 머릿수가 있으니 저쪽도 그만한 머릿수를 모아 오겠지.

뭐, 그런 생각으로 나왔다.

이 미친놈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중원 곳곳에 퍼져 일하는 이들을 불러올 수도 없었을 테니,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을 대비해 설천강도 끌고 왔으니까.

그런데.

“십시일반을 왜 이딴 곳에서 하냐, 이 새끼들아.”

하얀 소매에 붉은 자수를 수놓은 놈들.

검은 야행복을 입은 놈들.

붉은 장포를 걸친 놈들.

등등.

일단 복색이 다른 녀석들이 여덟.

최소 여덟 곳 이상에서 모였다는 소리다.

왠지 뒈진 놈들이 생각보다 빨리 뱉어 내더라.

“설천위, 오만함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쿵!

묵직한 걸음과 함께 거한이 웬만한 사내는 들지도 못할 창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리고.

“좋군, 좋아. 아주 훌륭한 소재야.”

히죽히죽 웃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얀 도복의 사내들.

“정녕 괴물이로다.”

“눈에 깃든 것이 도저히 약관을 못 넘긴 애송이라고 보기 힘들군.”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평가.

그 속에서 설천위는 헛웃음을 지으며 조용한 편에 속하는 혈사련의 무리를 바라봤다.

“야, 노공도 내 손에 뒈졌다는 거 얘들한테 말 안 해 줬냐?”

“전부 말해 줬다. 은검을 상대하다가 지친 상태로 싸웠다는 것도.”

쓰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언여휘, 그년인가?

걔라면 죽은 녀석의 혼을 불러 얘기를 듣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노공 정도의 혼이라면 막 불러내서 써먹진 못하겠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 있는 놈들로 나를 어떻게 해 보겠다?”

“네 녀석의 술법은 참으로 뛰어나나, 무공은 그렇지 않지.”

“네놈이 무엇을 노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세력을 가리지 않고 지부를 부순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아니, 내가 뭐 어디 녀석들인지 알고 부쉈나?

이건 좀 억울한데?

“그 오만함이 이곳을 네놈의 묫자리로 만든 것이다.”

무려 여덟.

어쩌면 화경의 고수보다 더 무서운 숫자의 초절정 고수가 설천위를 바라봤다.

……십시일반이라서 열이 아닌 게 어디야.

물론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놈들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우리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울까?”

아니, 쫄려서 그런 건 아니고.

그, 무림의 정의라는 게 있잖아?

“쳐라!”

단숨에 도약하는 여덟 명의 초절정 고수를 맞이한 설천위는 당당하게 외쳤다.

“야, 이 X새끼들아! 페어플레이하자고, 페어플레이!”

스포츠 정신도 없는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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