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197화-잠룡대 (3)
“불은 맹렬해 사람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기에 불에 타 죽는 이가 드물지만, 물은 유약해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함부로 대하기에 물에 빠져 죽는 이들이 많지.”
이는 통치를 위한 조언 중 하나다.
“덕이 있는 군주는 관대함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으나, 그 부드러움은 물과 같아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백성들을 빠트려 죽이지.”
“예?”
“인간의 호기심과 이기심은 끝이 없어서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더 퍼내기 위해 고개를 처박고 옆 사람을 밀어 버리거든. 그러니, 진정 대해와 같은 군주가 아니라면 군주는 결코 물과 같아선 안 되지.”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음, 좋은 질문이야.”
청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연무장을 바라봤다.
“내가 물과 같은 군주가 될 재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단 소리야.”
“꼬르르륵!”
“죽……. 꾸러러럭!”
“다 빠져 죽겠네.”
물과 같은 군주의 상은 내게 무리였나?
음.
“아니, 그 문제가 아니잖아요! 진짜 죽겠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영력으로 만든 물 같은 기운일 뿐이야. 안 죽어.”
무의식에 관여하는 힘 때문에 호흡 곤란은 오겠지만, 진짜 숨을 못 쉬는 건 아니다.
그냥 호흡이 상당히 불편해질 뿐이지.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다.
수 속성을 진하게 섞은 영력일 뿐인데, 견뎌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줄이야.
실제 물이 아닌지라 몸이 떠다니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호흡을 유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뭐, 됐어.”
적응하는 녀석은 반드시 나온다.
“호흡하지 못하면 죽을 뿐이니까.”
팔짱을 낀 채로 설천위는 담담하게 잠룡대 대원들을 바라봤다.
수 속성 영력에 의한 질식사.
정신력만 있다면 결코 당하지 않을…….
[음, 진짜로 위험해 보이는구나.]
“예?”
[네 영력이 보통 영력이더냐? 이 이상은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다.]
천마의 경고에 설천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영력을 그냥 뭉쳐서 던진 것뿐인데?
다른 술법적 가공 없이 거의 순수하기 그지없는 영력일 뿐인데, 설마 죽겠어?
“끄륵.”
“아.”
눈 돌아갔네.
“에라이!”
딱!
설천위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영력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허억!”
“허억, 허억!”
“이 미친 종자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숨소리와 함께 규학이 악을 썼다.
“다 죽일 셈이냐!”
“뭐, 넌 거의 숨쉬기 전까지 간 것 같은데?”
“흥! 그깟 숨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아니, 참으라는 게 아니라니까.”
씁, 안 되겠네.
“정신력이 부족하구먼.”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설란을 쳐다봤다.
“누나, 도움 좀.”
“도움?”
“응. 아무래도 물에 넣는 것 이전에 해야 할 게 있는 것 같아.”
“그게 뭔지 궁금하구나.”
동생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흥미롭게 웃으며 다가온 설란은 어느새 호흡이 돌아온 이들 앞에 선 설천위를 바라봤다.
“이 녀석들은 근성이 부족해, 근성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설천위.
그 모습에 발끈한 규학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근성은 무슨! 사람에겐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현실이란 가혹한 법이니까.
그런 규학의 의견에 동조하듯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웅조차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니, 조금 전의 상황을 겪은 잠룡대 모두가 현실적으로 견뎌 낼 수 없는 벽을 느꼈다고 봐도 좋겠지.
규학이 쏟아 내는 화에 동조하는 잠룡대 대원들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 알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
“당연한 것 아니냐! 인간의 행복은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뭐, 사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그건 돈이 부족한 게 아닐까?”
“…….”
설천위의 질문에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깨달은 규학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껄껄, 행동과 달리 눈치가 빠른 아이로구나.]
설천위가 뒤이어 할 말을 짐작한 천마의 웃음과 함께 설천위는 규학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렇다면, 근성으로 이겨 내지 못하는 상황도 사실 근성이 부족한 게 아닐까?”
“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있다! 당연히 근성으로 이겨 낼 수 없는……!”
“그러니까.”
규학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돈이 부족하고, 근성이 부족한 거라니까? 허리가 끊어져도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근성이 있다면 뭔들 못 하겠어?”
“허리가 끊어지면 보통 죽는다!”
“에이, 그게 다 근성이 부족해서 그래.”
막무가내.
설천위의 대답에 그가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규학이 좌절하려는 그 순간.
“그러니, 그 부족한 근성을 기르자고.”
생존 본능이 그 좌절을 떨쳐 냈다.
생명을 위협해 오는 살의로 가득 찬 무언가.
그것을 느낀 순간, 규학은 본능적으로 손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살아야 했으니까.
“누나!”
그리고 그에 맞춰 땅을 박찬 설란이 규학의 등 뒤에서 조금 늦게 반응하는 잠룡대를 덮친다.
동시에.
[하하하하!! 좋구나!!]
채찍을 손에 쥔 천마가 거침없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연무장.
그 속에서 설천위는 천천히 영력을 뻗치며 규학을 바라봤다.
“시간이 촉박하니 속성 강의로 가자고.”
* * *
“허어, 벌써 돌아가나?”
“일주일이나 머물렀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휴식을 즐겼으니 돌아가야지요.”
“휴식을 취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네만.”
“후학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휴식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음, 그것도 그렇군.”
설란의 대답에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팽후.
“며칠 전부터 잠룡대 친구들의 수련이 상당히 격해졌다고 들었는데, 자네의 평이 궁금하구먼.”
“잠룡대 말인가요?”
팽후의 물음에 요 며칠간 그들의 수련을 도운 사람으로서 설란은 잠시 말을 골랐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짧게 고민하던 설란은 이내 대답을 잠시 미뤘다.
“평이라고 한다면, 친선전에서 활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물으시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고작 일주일.
동생과 시간을 보낸 것을 빼면 실질적으로 지도했던 건 닷새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가르치기도, 무언가를 배우기에도 부족한 시간.
그렇기에 설란은 그들이 친선전에서 활약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친선전까진 그리 긴 시간이 남은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이라……. 그럼 친선전이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지나?”
“친선전이 아니라 이 학관을 졸업하고 난 뒤의 행보라면. 예. 달라집니다.”
고개를 끄덕인 설란은 흥미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팽후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림맹에 와서 의미 있는 세월을 쌓는다면 충분히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호, 그거 참 훌륭한 평가군.”
무려 초생단(草生團)의 부단주가 보증하는 새싹이라.
이건 참 기쁜 소식이다.
낭인부터 중소 문파의 무인들까지.
온갖 종류의 인간들을 다스리고 훈련을 시켜 온 초생단 부단주의 보증이니 상당히 믿음이 갔다.
그렇기에 팽후는 웃었다.
“역시, 자네의 동생은 참으로 신묘한 면이 있군.”
“천위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천위. 그 친구일세.”
팽후는 여전히 무표정한 설란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잠룡대의 인원을 고른 것은.”
그 계급은 신(辛)부터 무(戊)까지 다양했지만.
설천위는 무슨 미래라도 내다보는 것처럼 사람을 뽑았다.
당연히 그 친구들이 성장할 것이라는 듯이.
“나는 기대하고 있네.”
그렇기에 기대가 된다.
많은 교관들조차 고개를 갸웃한 인선이었지만, 설란이라는 거물이 그들에게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번 친선전엔 그 꽃을 피우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참으로 기대되네.”
끝내 피워 낼 그 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지 말이다.
* * *
“아미타불……. 죽겠소이다.”
습관적으로 불호를 외는 도사, 청수의 앓는 소리에 그 곁에 있던 송아가 힘없이 대답했다.
“괜히 너 따라왔다가……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나는 분명 혼자서도 괜찮다고 했소만…….”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주 죽어 나가고 있는데.”
흥.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 송아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청수를 보곤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내가 챙겨 주지 않으면 또 먼지투성이로 돌아다니겠지.
“좀, 그렇게 막 널브러지지 말라니까.”
“흙과 동화되는 것도 자연의 도(道)라 할 수 있소이다.”
“어쭈? 이럴 때만 도사지?”
“평상시에도 도사이지요.”
“아우! 그 소름 돋는 말투 좀 그만해!”
“크흠, 사문에서 이렇게 하라고 시키는데 어찌…….”
“아, 쫌!”
“어억?!”
찰싹!
청수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친 송아는 엄살과 함께 몸을 비트는 청수를 보고 혀를 찼다.
또 더러워지네.
끝나고 다시 말해야겠다.
뭐.
‘……얘만 이런 것도 아니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한 열 명 정도가 청수처럼 바닥과의 일체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전부 도 닦는 사람들인가.
여기서 도가에 귀의한 건 청수밖에 없을 텐데…….
뭐, 사실 얘도 도가에 귀의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반쪽짜리 도사고.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응? 뭐가?”
“대체 어떻게 힘이 남아 있는 거예요?”
모두가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하체를 단련하고 있던 여웅은 송아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대주가 그러지 않았나? 근성의 문제라고.”
“……그게 체력 단련에도 쓰이나요?”
“음, 보통은 근성을 찾다가 부상을 발견하는 법이지만…….”
송아의 말에 잠시 말꼬리를 흐린 여웅은 가볍게 손을 휘둘러 주변의 공기를 갈랐다.
정확히는, 설천위가 풀어 놓은 물과 같은 영력을 휘저었다.
“이곳에서 하는 단련은 관절에 부담이 적어. 반대로 근육에 가해지는 부하는 크더군.”
“네?”
“단련하다 보면, 느끼게 되는 부분이야.”
아니, 우리는 그런 거 못 느꼈는데요?
상당히 거칠고 투박할 것 같은 느낌과 달리 섬세한 부분을 신경 쓰는 듯한 여웅의 말에 송아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섬세한 부분을 따지니 놀라는 눈치군.”
“……조금은요.”
“원래 단련이란 건 육체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내 몸도 제대로 몰라서야 제대로 된 단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지.”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는 여웅.
그 손끝엔 가벼운 대련을 진행 중인 두 사람이 있었다.
“저 둘도 그걸 느끼고 저리 겨루고 있는 거겠지.”
규학과 문율.
놀랍게도, 이 열다섯 중에서도 낮은 계급에 속하던 문율의 성장세는 다른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성장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잠룡대에 들어온 것에 크게 만족하는 중이야.”
다시 단련을 시작하며 여웅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는 동료들을 보며 웃었다.
“너희와 함께라면 꽤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마치 거센 폭우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무거워진 몸.
이 기이한 공간에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삐걱댄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진다.
이 안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은 밖에서 몇 걸음을 나아가는 것과 같다고.
재능도 있고 노력도 했지만 환경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만큼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진짜 죽을 것같이 힘들 때 옆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해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각보다 꽤 견딜 만했다.
그러니.
“한번 해 보자고.”
친선전,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잠룡대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을…….
“수련 시간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단상 위로 올라서는 설천위.
대체 이 공간을 유지하면서 어찌 저리 쌩쌩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그 입가에 맺힌 비틀린 미소를 보자,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요 며칠 많이 익숙해졌지?”
반응도 좋아졌고.
호흡도 잘 유지하고.
외부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됐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마침 설란도 돌아가고 했으니 설천위는 수련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기로 했다.
“잠룡(潛龍)인데, 물만 있으면 섭섭하잖아?”
[크르르르르르르르르.]
두려움을 자극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연무장을 짓누른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검은 기류가 무언가의 형상을 갖춘다.
검은 비늘, 날카로운 이빨, 노란색의 눈동자.
용.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것 같은 용을 두른 설천위가 도(刀)를 손에 쥔 채 웃었다.
“죽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