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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96화 (196/624)

제196화

195화-잠룡대 (1)

“반가워요. 설란라고 해요.”

“철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누님.”

“전 서하영이에요!”

“소윤혜입니다.”

“주현운이라고 합니다.”

훈련장을 찾아온 미녀.

설란의 자기소개에 설천위 파벌의 인사가 이어졌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 천위의 친구들이니 언니나 누나라고 부르시면 되죠?”

“그럼 저도 편하게 하영이라고 불러 주세요!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참 적극적인 서하영.

원래부터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성격이긴 했으나, 이번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열성이다.

“……쟤 왜 저러냐?”

“몰라. 누님의 팬 아니야?”

“팬? 그게 뭐냐.”

“추종자 같은 거.”

“아, 하긴 그런 녀석들 많지.”

창천단의 단주 남궁선.

초생단의 부단주 설란.

학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까.

둘 다 젊은 나이에 무림맹의 최고 요직에 오르다 보니 존경하는 이들이 꽤 있다.

존경심이 절로 생겨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애초에 병(丙) 이상으로 졸업하는 학생이 한 해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인 데다 바로 부단주로 취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단주의 자리가 나야 하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실무 능력도 입증해야 한다.

물론 부단주의 자리가 없어도 실력으로 그 자리를 꿰차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설화 대협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설화(雪花) 설란.

구단 중 최약체라고 불리는 초생단에 들어가 수많은 공을 세우고 3년 만에 부단주 자리에 오른 호걸이다.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졸업할 때 화경의 경지에 올라 바로 단주 자리를 꿰찬 남궁선이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학생들에겐 설란의 업적이 더욱 크게 와 닿는 법이다.

자신들도 무림맹에 가서 활약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니까.

“사실 전 무림맹에 갔을 때부터 인사하고 싶었는데요……!”

공과 사의 구분이 엄청나게 확실한 성격이라고 해서 차마 무림맹에 갔을 때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땐 남궁선 언니의 권유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데.”

“그럼 무림맹에 들어가면 자주 찾아봬도 될까요?”

“물론이지. 오히려 서 동생 같은 친구는 우리 단에 들어와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꺄! 정말요?”

아주 살판이 났구나. 서하영.

움찔.

“집중.”

“넵!”

약간의 흐트러짐만으로 순식간에 냉기가 감도는 설란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다시금 허리를 곧추세웠다.

마보?

그건 끝난 지 꽤 됐다.

어제 시작해 밤쯤엔 끝났으니까.

그리고 한숨 푹 자고 오늘 아침부터 새롭게 벌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지금 하는 건…….

“아미타불! 아주 좋습니다. 불경은 꼭 부처님을 믿지 않더라도 삶에 도움이 되는 많은 조언이 담겨 있으니 말입니다.”

불경의 필사다.

연락을 받고 득달같이 불경을 가져온 중 아니, 도사.

청수가 히죽 웃으며 불경의 풀이를 돕는다.

그냥 옮겨 쓰는 건 의미가 퇴색된다나 뭐라나.

“……얘는 대체 뭐냐?”

“가정사로 불교를 믿는데 도교에 귀의한 말코 도사.”

그게 뭐야. 무슨 혼종이냐.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도 말을 거는 청수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설천강이 다시 붓질에 집중했다.

“잡설이 길구나.”

설란의 섬뜩한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으니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렇게 설천위와 설천강이 흙바닥 위에 책상 하나를 갖다 두고 불경을 필사하는 사이, 설천위의 친구들과 인사를 끝낸 설란은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를 바라봤다.

아니.

친구는 아니다.

“오랜만이구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니.”

“자주 찾아올 게 뭐 있니. 너도 바쁜데.”

꾸벅 고개를 숙이는 유예린을 향해 웃어 준 설란은 가만히 그녀를 살피곤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구나.”

“저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후후, 믿음직하네.”

유예린의 대답에 빙긋 웃은 설란은 그녀와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 유예린의 형제들이 어떤 일을 했다거나, 업무상 함께 협업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다.

아니,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몇 갠데 이런 필사를…….

입술이 툭 튀어나온 설천위와 그 옆에서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비슷하게 입술이 튀어나온 설천강.

유예린과 대화하던 설란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불만이 많은 것 같구나?”

“아, 아닌데?”

“전혀 불만 없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는 설천위와 어색하게 부정하는 설천강.

어머니는 다르지만, 역시 형제는 형제다.

형제라는 것이 꼭 피가 이어진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아온 것만으로 형제라 부르기엔 충분하다.

‘……아버지가 너무 방임주의라는 게 문제지만.’

뭐, 자신도 어릴 때 한 번쯤 겪었던 시기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경고는 됐겠지.

진짜 벌 받아야 할 인간은 따로 있기도 하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벌은 그만하도록 하자.”

“정말?”

“그래.”

“좋았으! 청수! 애들 준비시켜!”

“벌써요?”

“벌써는 개뿔! 뛰기나 해라. 할 거 많으니까!”

훈련 재개 소식에 이번엔 청수가 입술을 내밀었지만, 이내 어깨를 늘어트린 채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이제 맞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 같이 맞을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전해 마음의 준비라도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애들? 여기 말고 친구들이 또 있니?”

“아, 별거 아니고 이번에 친선전에 나갈 단체전 인원이야.”

“단체전?”

설천위의 대답에 설란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구나.”

“해야지. 뭐, 까라면 까는 게 무림맹 아니겠어?”

“말버릇.”

빡!

가볍게 손가락으로 때린 딱밤에서 섬뜩한 소리가 났지만,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설천위는 그저 몸을 꿈틀거렸다.

“그럼, 천강아 너도 나가니?”

“나, 나? 난 안 나가는데, 누나?”

“왜 안 나가니?”

“그, 그게…….”

동생한테 처맞고 자괴감에 빠져 방에 처박혀 있느라 안 나가요.

‘……라고 말할 순 없지!’

도저히 진실을 말할 수 없어 합죽이가 된 설천강을 설란이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나가렴.”

“넵.”

설천강, 친선전 출전 결정이다.

* * *

“설란 언니 생각보다 더 부드러우시네요!”

설천위가 단체전 훈련을 위해 설천강과 함께 연무장으로 향하자, 설란도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설가의 남매들이 떠난 훈련장.

여전히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서하영의 목소리에 유예린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설화(雪花)라는 별호 때문에 긴장했었는데! 예상보다 더 친절하시네요!”

긴장한 사람이 그렇게 막 들이대나?

서하영의 뻔뻔스런 감상에 철백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서하영의 모습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유예린.

“그건 사적인 관계로 만나서 그런 거야.”

“네?”

“설란 언니는 엄청나게 엄한 사람이거든.”

“전혀 안 그래 보이던데요?”

“그렇지? 그만큼 사적인 자리에선 한없이 부드러워서 그래.”

설천강이나 설천위가 설란을 어려워하면서도 반말을 쓰는 이유가 그거다.

동생과 누나 사이에 존댓말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

마찬가지의 이유로 자신에게도 형님이 아닌 좀 더 친숙한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하고 있다.

사실 반말까지 바라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아무래도 좀…….”

“네?”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반말은 너무 벽이 높지.

고개를 저은 유예린은 아직도 들떠 있는 서하영을 바라보며 웃었다.

“사적인 자리에선 친해지기 쉬운 분이니까 다음에 한번 찾아가. 단, 업무 중이실 때 찾아가면 절대 안 돼.”

“그 정도예요?”

따로 경고할 정도로 업무 중엔 사람이 바뀌나?

“한 번 맹의 업무로 나온 언니를 뵌 적이 있지.”

옛날부터 수련할 때나 훈련을 할 땐 사람이 엄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니가 사람에게 손찌검하는 걸 그때 처음 봤어.”

“네?”

“부하의 실수에 그 자리에서 바로 따귀를 날리셨지.”

“……진짜요?”

“응. 진짜로. 사실 초생단을 언니가 맡은 이유도 그 성격 때문이니까.”

업무 중 실수에 거침없이 부하를 혼낼 수 있는 엄한 성격.

사실 이게 설란이 초생단의 부단주가 된 이유다.

초생단(草生團).

중소 문파나 낭인들이 모인 곳.

애초에 단주부터가 낭인 출신인지라 여러모로 문제아들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단주인 구목은 기본적으로 포용력이 큰 사람인지라 성격이 조금 거친 것 정도는 그냥 웃고 넘기는 유형이고.

그런데 규모가 커지고 구단(九團)이라는 거대한 주축의 하나가 되자 내부에서 파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소 문파와 낭인들이 서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파벌이 갈려도 구목의 뛰어난 존재감 때문에 어떻게든 단이 굴러가고야 있었지만, 그 속은 서서히 썩어들어 갔는데…….

“썩은 살을 단번에 도려낼 정도로 차가운 면이 있는 분이야.”

그 썩은 살을 설란이 단번에 도려냈다.

무려 3년 만에.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정말요?”

“그래,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어려워지지.

뒷말은 삼킨 유예린은 이제 슬슬 훈련을 마무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확인하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구경이나 갈까?”

“구경이요?”

“설 공자가 어떻게 단체전을 준비하는지도 궁금하고…….”

설 언니의 무서움이 어떤지도 좀 보고.

* * *

“이건…… 대단하구나.”

“……말도 안 되는군.”

혼들이 모습을 드러낸 영역(靈域) 속, 설란과 설천강의 감탄에 설천위의 어깨가 으쓱인다.

“뭐, 기본이지.”

[주제도 모르고 콧대가 높다고 한 마디하고 싶지만……. 사실이니 넘어가마.]

[이 녀석에게 이 정도가 기본이라는 게 참 한탄스럽습니다. 형님.]

거, 천마랑 도둑이 형님 동생 하는 건 안 한탄스럽고?

“참 대단하구나. 성 언니가 칭찬하던 이유가 있어.”

“……백화단주님이랑 아는 사이야?”

“단주급 중에서 여인들끼리 모이는 모임이 있단다. 취향이 비슷하면 놀기 좋으니.”

……그런 게 있어?

하긴 왠지 남궁선이랑 성화린이 이상할 정도로 친하더라.

게임에선 잘 안 나와서 몰랐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구먼.

“그래서, 훈련 목적이 무엇이니?”

“어, 단체전에 나가서 최소 3인 1조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거.”

“개인적인 역량 상승과 더불어 다대다의 싸움이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거구나.”

“응.”

적랑대도 분명 최소 3인 이상으로 움직일 거다.

저쪽은 힘을 뭉치는 것만으로 셋 이상의 힘을 낼 텐데 이쪽도 최소한 서로의 방해는 되면 안 되지.

“그걸 이분들께서 도와주실 거고?”

[흠흠, 얼마든지 가능하니라.]

천마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란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저리 긴장해 있는 거니?”

“누나 때문 아닐까?”

“존경해 왔습니다! 손 한 번만 잡아 보……. 커헉!”

달려드는 규학의 안면에 발차기를 먹이려던 설천위는 앞으로 내밀던 다리를 뻘쭘하게 내렸다.

“훈련 중에 잡담이라.”

달려들던 규학의 안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허공으로 들어 올린 설란의 목소리에서 살을 에는 한기가 흘러나온다.

“훈련은 임무의 시작이거늘.”

싸늘한 목소리로 천천히 손에 힘을 더하며 설란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차갑게 식은, 깊고도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

“이름은?”

이름?

“규학인데?”

“아니, 이 머저리의 이름 말고 단체의 이름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하지.

조금 별로인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긴 했는데…….

안 정했다고 말하면 혼날 것 같으니까 이걸로 하자.

“잠룡대(潛龍隊).”

“잠룡대? 나쁘지 않구나.”

“응. 나쁘지 않지.”

잠룡이라.

설천강도 합류했겠다.

이젠 용이라는 글자가 아깝지 않은 대(隊)가 됐으니 제대로 한번 조져 볼 생각이다.

“물속에서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 거라서.”

“그렇다면, 나쁘지 않구나.”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란은 어느새 한기에 침식돼 오들오들 떠는 규학을 내려놓으며 이젠 잠룡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학생들을 바라봤다.

마침 잘됐다.

단주께서 느긋하게 동생들과 어울리다가 오라고 했으니 며칠 정도 시간이 있다.

“용이란 자고로 북해의 바다에서도 버틸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동생을 위해 기본 정도는 잡아 주고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냉혹하기로 이름 높은 초생단 부단주의 특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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