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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95화 (195/624)

제195화

194화-난 결백해 (6)

[아주 거침이 없구나.]

형제 싸움에 그야말로 있는 대로 모든 능력을 끌어모은 설천위를 보며 천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신을 감싼 패기와 영력이 참으로 짙은 것이 무슨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 수준이다.

그나마 도(刀)를 뽑지 않았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정신연령부터 키우라고!!”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설천위.

그 주먹에 담긴 힘은 무기를 드나 안 드나 사람을 죽이기엔 충분했으나 그것은 상대가 민간인일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다.

“개소리하지 마라!!”

그리고 그런 설천위의 주먹에 맞서 마찬가지로 주먹을 휘두르는 설천강.

마찬가지로 검은 뽑지 않았다.

주먹 대 주먹.

형제간의 싸움은 양측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피해 내는 주먹.

양쪽 다 급소를 노리지 않고 정직하게 안면을 노렸기에 가능한 결과다.

‘아무래도 마냥 멍청한 놈 같진 않구나.’

설천위가 도(刀)를 뽑지 않은 이유야 뻔하다.

이것이 공적인 비무가 아니라 형제간의 다툼으로 일어난 사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숙련된 무인에겐 무기를 드는 것이 주먹을 휘두르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이라곤 하나 그래도 날붙이는 날붙이다.

그 제작 의도 자체가 무언가를 베기 위한 물건.

형제간의 사적인 싸움에서 꺼낼 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선을 지키기 위해, 설천위는 도(刀)를 뽑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설천위를 상대하는 설천강도 검(劍)을 뽑지 않았다.

패배의 기억이 있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러 대응했다.

그것이 설천위가 무기를 뽑지 않았으니 똑같이 뽑지 않겠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최후의 선을 지킬 이성을 가졌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후자 같구나.’

설천위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두 눈동자가 맑고 선명하다.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어 흐려진 눈동자가 아니다.

과연, 북해의 피.

그 몸에 흐르는 건 차가운 이성의 피인가.

어린 청년의 성장에 허허롭게 웃은 천마는 이내 편안한 마음으로 싸움 구경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주먹다짐을 하면 설천위 쪽이 조금 더 불리하겠지만…….

“이놈! 무슨 짓이냐!”

“흥! 그쪽도 빙공 쓰잖아!”

유예린조차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은 패기와 영력의 조합이 훌륭하게 설천강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움직임을 미세하게 굼뜨게 만드는 것만으로 설천위가 우위에 서기엔 충분했다.

설천강의 빙공도 설천위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그 힘을 뻗어 왔지만…….

‘뚫지 못하는군.’

설천위의 몸에 깃든 패기가 한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옛날과 비교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성장이 만들어 낸 격차.

거기에다 설천위가 최근 도와 검을 위주로 쓰고 있기에 많이들 착각하지만, 설천위는 주먹도 꽤 잘 쓴다.

처음 천마가 가르친 무공이 권법이었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단련한 것이 주먹이다.

무기란 항상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차피 뭘 해도 발전이 느리다면 차라리 전부를 하겠다는 선택지.

그 대가로 바친 것은 끝없는 노력.

설천위가 훈련장에서 내내 사는 것은 물론, 심상세계에서도 끊임없이 대련을 하는 이유다.

“흡!”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을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설천위의 주먹이 날카롭게 허공을 가른다.

천마가 몸에 새겨 놓은 그 자세 그대로의 공격.

여전히 응용에 약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자세를 학습했다.

‘충분하군.’

검을 들지 않은 설천강 정도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아니, 압도할 수 있다.

까득.

“노옴!!”

자신이 수세에 몰렸다는 것을 자각한 설천강이 한 걸음, 깊게 내디뎠다.

공세로의 전환.

조금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격으로 돌아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

여기에 맞서려면 설천위도 주먹에 맞을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한 걸음 물러나 방어에 집중하며 다시 틈을 만들면 되는 상황.

그만큼 무리수를 둔 설천강이지만…….

“뭐!!”

설천위도 딱히 수 싸움을 해 가며 이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엇다.

그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주먹을 맞부딪치는 설천위와 설천강.

쾅!!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면 보통 양쪽 다 뼈가 부러져야 하지만, 내공으로 강화된 두 주먹은 부딪치며 거대한 폭음을 만들어 냈다.

다만.

“큭!”

내공만이 아니라 패기도 실은 설천위의 주먹이 조금 더 우위를 점했다.

“뒈져어어!!”

그리고 완전히 기세를 잡은 설천위가 주먹을 마구 내지르기 시작한다.

그에 대항해 튕겨 나간 주먹을 회수하며 억지로 몸을 앞으로 내미는 설천강.

두 사람의 주먹이 허공에서 강렬한 충격파를 양산한다.

공간이 터져 나가는 착각이 들 정도의 강렬한 공방.

‘……미쳤네.’

그 모습에 제갈소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인간들이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두 사람의 충돌로 인해 생긴 여파로 주변이 아주 개판이 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흐아압!”

“흐아압!”

똑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보법을 밟기 시작하는 둘.

“흡!”

날카롭게 파고드는 설천강의 발차기에 설천위가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사람이 움직이는 반경이 커졌고…….

쾅! 쾅!

빗나간 주먹과 발차기가 주변의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더불어 충격의 여파로 땅이 일어서기 시작했고, 목제로 만든 문이나 건물의 외벽엔 언제 뚫렸는지 모를 구멍이 가득하다.

‘……수리비 엄청 나오겠네.’

뭐, 설가는 돈도 꽤 많으니까 문제는 없겠지만…….

‘응?’

순간, 묘한 기척에 고개를 돌린 제갈소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 학관장님?’

게다가 옆엔 설화(雪花) 대협까지?

순간, 지금이라도 두 사람을 말려야 할까 고민하던 제갈소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한 걸음 물러섰다.

아니, 저걸 내 능력으로 어떻게 말리냐고.

“뒈져라아아! 형 새끼야!!”

그렇게 제갈소가 생각한 순간, 아까부터 조금씩 우위를 점하던 설천위의 주먹이 설천강의 턱에 작렬했다.

설천위의 몸에도 어느새 하얀 서리가 내린 것 같았지만, 어째선지 정확하게 상대의 턱을 강타한 건 설천위의 주먹이었다.

[쯧쯧, 어른스럽지 못하긴.]

[흑관을 이런 순간에 발전시키다니. 참 인간은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구나.]

제갈소는 이해하지 못한, 설천위가 단숨에 승리를 따낸 방식을 눈치챈 혼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 한기가 좀 쌓여 불리해졌다고 흑관으로 움직임을 막아 버리냐.

치사하게.

그나저나, 초절정급 무인에게도 통할 정도의 흑관이라니.

왜 이런 순간에 발전하는 거냐.

쯧쯧, 혀를 찬 천마는 툭툭 설천위의 어깨를 두들겼다.

[저쪽, 봐라.]

“예?”

이성을 되찾고 살짝 고개를 돌리는 설천위.

그리고.

꿀꺽.

몸을 감싼 한기보다 더한 냉기를 휘감은 여인이 팽후의 옆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코피를 흘리며 대자로 기절한 설천강.

그래.

자고로 선수필승이라.

“나, 난 결백해! 형이 먼저 잘못한 거야!!”

* * *

“……그래서 주먹다짐을 했다?”

입구가 부서진 설천강의 숙소.

그 안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후.”

깊은 한숨.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한 점의 거짓도 없는 모든 진실을 들은 설란은 두 눈을 감았다.

‘천강이가 그렇게까지 했을 줄이야.’

뛰어난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초절정에 오른 아이.

밑에 있는 것은 바닥을 기는 재능의 배다른 동생.

오만과 과한 자의식이 쌓여 그릇된 믿음을 가질 만도 하다.

나는 특별하고, 쟤는 하찮다.

방임주의 속에서 자란 녀석이니 그걸 고쳐줄 사람도 없었겠지.

그렇게 천위에게 차가워졌고, 어느새 그것이 커져 멸시의 영역에 닿은 것이겠지.

자신의 실책이다.

독립하고 동생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자신의 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충격은.

‘이 오빠가…….’

오빠란 작자가 이 모든 걸 대충이나마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방임주의를 썩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한 번 더 한숨을 내쉰 설란은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가문의 일로 큰 폐를 끼쳤습니다.”

“하하! 됐네! 형제끼리 미워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거지. 어린 시절의 특권 아닌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팽후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설천강을 바라봤다.

설천강은 대놓고 설천위를 욕하고 다녔지만, 설천강 앞에서 대놓고 설천위를 욕하는 인간은 없었다.

설가를 모욕하는 거라고 설천강이 화를 내니, 차마 대놓고 욕하진 않은 거다.

그게 정말 가문을 생각해서인지, 제 동생이니 나만 욕하겠다는 심보 때문인진 잘 모르겠지만.

‘뭐, 이제 보니 후자 같군.’

제 누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참…….

‘그 녀석이 자식 복은 좋아.’

내 아들놈들은 서로 사이가 영…….

가볍게 고개를 저은 팽후는 제갈소를 바라봤다.

“그럼 우리는 물러나지.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해 줌세.”

“넵!”

팽후의 권유 아닌 권유에 재빨리 대답하며 물러나는 제갈소.

그렇게 팽후와 제갈소가 떠나고.

“나는 지금 마음이 아파.”

무릎을 꿇은 두 동생의 앞에 앉은 설란이 씁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천강이, 네가 그리 마음고생을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구나.”

“그…….”

“그리고 천위, 네가 형의 잘못을 내게 말하지 않고 가슴으로 품은 것도 마음이 아프구나.”

“그…….”

“무엇보다.”

차마 말을 이어 가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두 동생들을 보며 설란은 고개를 저었다.

“이리도 발전한 너희들이 고작 사소한 이유로 주먹다짐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것 같…….

아니, 이게 아니지.

진짜 춥잖아.

[호오, 훌륭한 빙공이구나.]

[거의 심즉기(心則氣)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마음이 움직이면 그에 맞춰 기가 절로 움직이는 경지.

초절정이나 화경 같은 경지를 나누는 기준이 되진 않으나 도달하는 것만으로 확실하게 한층 더 성장하는 영역.

참고로, 무엇보다 재능이 중요한 영역이라 설천위가 평생 도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천마나 다른 혼들이 포기한 경지이기도 하다.

설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함께, 방 전체에 내려앉은 강렬한 한기가 설천위와 설천강을 휘감는다.

“이 누나가 이리도 가슴이 아픈 것이 너희들은 좋으니?”

“아, 아닙니다요.”

“아니요?”

“존댓말이라니, 오랜만이구나.”

조금 섭섭할지도.

“아, 아니야, 누나!”

“맞아! 나랑 형이랑 사이 좋아!”

“거짓말은 하지 마렴.”

“넵.”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무는 설천위.

설란은 지그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본다.

진짜, 그냥 바라본다.

가만히.

‘뭐라도 말해 봐!’

‘형이 해 봐!’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그 시선에 서로 시선 교환을 하던 설천위와 설천강이 눈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사과.”

“응?”

“서로 빨리 사과하렴.”

“아.”

그걸 기다리던 거였어?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바로 고개를 돌려 설천강을 바라봤다.

뭔가 말하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리는 설천강.

그 모습에 설천위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속은 더 형이니, 어른인 내가 양보해야지.

“그……. 형 때려서 미안.”

흠흠, 이런 건 원래 동생이 먼저 양보하는 거지.

설천위의 사과에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설천강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 심한 말을 해서.”

“됐어. 본심이 아니었던 건 다 아니까.”

원래 정신이 덜 성숙한 애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입 밖으로 내뱉는 거지.

스스로 진심이 아니란 걸 알고 후회한다면, 충분히 용서해 줄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설란을 바라봤다.

이제 됐지?

그런 의미가 담긴 눈빛에 설란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보면 경악할 만한,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설란의 미소.

설천위의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한 외모 하는 설란의 미소는 그만큼 아름다웠고…….

“그럼 이제 혼날까?”

“네?”

“서로 화해한 것은 화해한 것이고, 혼날 것은 혼나야지.”

아!

공과 사의 구분.

“일단, 마보부터 하자꾸나.”

설화(雪花) 설란.

무림맹에서도 냉정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는 동생들의 상벌에도 엄격했다.

그리고 동생들의 성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녀는, 무려 5시진(10시간) 동안 두 사람에게 마보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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