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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93화 (193/624)

제193화

192화-난 결백해 (4)

술(術)과 무(武)의 조화.

그 끝엔 진정 신화라고 부르는 영역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마 하늘이 양쪽 모두의 재능을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무지체를 가졌다고 한들, 술의 끝에 도달한 자가 없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그런 생물이니까.

잘하고 즐거운 분야가 있는데 굳이?

수년을 노력해 봤자 혼을 겨우 볼까 말까 한 영역을 굳이?

손을 뻗는 것조차 하지 않으니,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허나, 여기에 손을 뻗다 못해 아예 몸을 던져 거친 파도 속을 헤엄치는 녀석이 있다.

설천위의 내면에서 철귀는 그 비현실적인 발악을 지켜보았다.

그 발악은 처절했다.

외부의 인간들은 모르겠지.

이 녀석이 얼마나 빌어먹을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손에 몇 번이나 사지를 잘리고, 목이 베였는지.

알 수 없을 거다.

이 녀석이 압도적인 무재(無才) 앞에서 몇 번이나 꼬꾸라졌는지.

비틀리고 비틀려,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라 여겼던 감정이 움직일 정도의 발악을.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조금 응원까지 하고 있다.

그 발악의 끝에 도달하기를.

궁금하다.

그 끝에 어떤 것이 있는지.

끼리리릭.

“허나, 아직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목을 반쯤 파고든 도를 단숨에 휘감은 실로 억지로 뽑아낸다.

“반항이 심하네?”

“네 녀석이 넘어야 하는 첫 번째 벽. 결코 쉽게 허물어지진 않을 것이다.”

“뭐래.”

한없이 진지한 표정의 철귀를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아무리 재능이 없다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어깨와 손목.

두 관절의 비틀림이 만들어 내는 도의 회전이 날카로운 예기를 품는다.

이 실에 몇 번이나 도를 뺏겼던가.

몇 번이나 공격의 기회를 놓쳤던가.

“적응하면 또 할 만해지는 게 인간이라고.”

100번에 한 번.

정말 적은 확률이지만.

그것이 80번에 한 번이 되고.

60번에 한 번이 되고.

50번에 한 번이 된다.

그렇게 줄고 줄어, 10번에 한 번이 된다.

1푼의 확률이.

1할의 확률이 된다.

승산이?

아니다.

검이, 도가, 주먹이 한 번이라도 닿는 경우가.

그렇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10할의 확률이 되어 같은 선상에 섰고.

“열 번에 한 번이라도 내가 이기면 이기는 거다.”

“횡포군.”

예기로 실을 잘라 내며 도를 회수한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자, 철귀는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불공평한 규칙이다.

하지만.

“인정하마. 네 재능으로 얻는 승리는 그 값어치가 다름을.”

그 무재(無才)로 이 목에 칼이 닿는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끼리리리릭.

철귀가 제어하는 수백 개의 실이 설천위를 휘감는다.

사지는 물론, 몸과 목.

그야말로 전신을 휘감는다.

허나.

“흡!”

단 한 번의 호흡.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일격에, 대부분의 실이 잘려 나간다.

참(斬)의 묘리.

인간의 목을 단숨에 치기 위해 발전해 온 처형인의 도(刀)이자, 그들의 모든 것이 담긴 도(道).

그 길은 그 어떤 것이라도 벨 수 있는 수라의 길이다.

“……베였군.”

“열 번 하면, 한 번 정도는 성공해.”

천천히 도를 내리는 설천위.

그를 보며 철귀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무언가가 어긋난 느낌.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베였다면, 아마 느끼지도 못하고 죽었겠지.

“나쁘지 않아.”

이게 죽음에 한없이 다가가는 느낌인가.

어느새 꺾인 무릎이 땅에 닿는다.

그래, 목이 베였는데 인간이 서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손발은 움직이지 않고, 몸은 서서히 땅을 향해 처박힌다.

모든 것을 상실해 가는 끔찍한 감각.

한동안 잊고 지내던 죽음의 감각.

그 절망과 동의어인 감각 속에서 철귀는 인정했다.

자신이 졌음을.

잘린 목은 빠르게 붙는다.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자각한 망자인데, 또 죽을 일이 어디 있는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철귀는 무릎을 꿇은 상태 그대로 설천위를 올려다봤다.

당당하게 도를 늘어트린 채 서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름?”

뜬금없이 이름을 지어 달라는 철귀의 모습에 설천위는 턱을 쓸었다.

흠.

나쁘지 않지.

“흑사(黑絲).”

검은 실.

그 실에 죄가 담겨 있으니, 맑다는 뜻을 가진 청(淸)을 주진 않을 것이다.

허나.

“그림자가 되어 내 뒤를 따라라.”

“흑사(黑絲), 명을 받듭니다.”

죄가 많다고 한들 써먹지 못할 이유는 없지.

* * *

“……후.”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설천위는 뻐근해진 몸을 풀었다.

몇 시간이나 명상하고 있었지.

“벌써 어두워졌네.”

[음? 제압한 것이냐?]

“네, 뭐 반쯤 운이지만요.”

아직 무공만으로 초절정에 올랐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니까.

철귀, 이제는 흑사인 녀석이 초절정 중에서도 일대일은 약한 편이라는 점.

수백 번 그 공격을 받으며 몸에 익혔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겹쳐 이길 수 있었던 거다.

[쯧쯧, 다른 녀석이었다면 한 세 번쯤부터 승기를 잡기 시작했을 터인데…….]

“씁, 거, 비교하지 말죠? 알고 있으니까요!”

[험험, 머리 좀 컸다고 아주 그냥 도끼눈을 하고 바라보는구나.]

“나름 깨끗한 도둑이라 봐주는 겁니다?”

쓰레기였으면 바로 철귀처럼 서열 정리에 들어갔어.

이 인간이 어딜.

흠흠, 하며 촐싹대는 암영의적을 대충 치운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음, 살아는 있죠?”

[물론이다. 무인이란 것들이 조금 뛰었다고 죽을 리가 없지 않느냐?]

아뇨, 보통은 하루 종일 뛰면 죽어요.

뭐, 내공을 썼을 테니 진짜 죽진 않았겠지만…….

하나같이 녹초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단체전 멤버들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우리도 이름 하나 지어야 하는데.”

[이름? 무슨 이름 말이냐?]

“저쪽은 ‘무슨무슨 대(隊)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개하면서 나올 텐데, 저희는 그냥 모인 학생들이라고 소개할 순 없잖아요.”

이름이 있어야지.

좀 괜찮은 거로 하나 생각해 봐야겠는데.

흠……. 깨어나면 회의 좀 해 볼까?

살짝 고민하며 턱을 괸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혼자 짓는다고 문제도 없을 테고 고민 좀 해 볼까.

[오합대(烏合隊) 어떠냐?]

[이 정도면 유아대(乳兒隊)가 맞지 않겠소?]

[하긴, 뛰는 것만으로 녹초가 되는 꼬락서니가 젖먹이들이랑 다를 게 없긴 하더이다.]

[음음, 참으로 나약한 것이…….]

“씁? 뭐라는 거예요.”

이 인간들이 자기들이 내걸 이름 아니라고 막 던지네?

애들이 아무리 허접해도 그렇지.

“……음.”

그런데 솔직히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긴 하네.

뭐가 좋지.

진짜 고민 좀 해 봐야겠는데.

[음? 손님이 온 것 같구나.]

“손님이요?”

천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설천위는 연무장 문이 쓱 열리는 것을 발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느낌의 기척이다.

아마도…….

“무슨 일이에요, 부회장?”

“설 소협! 진짜 아직도 있었군요.”

“뭐, 훈련 좀 했죠.”

“……설 소협은 깨끗한데요?”

“저는 이 녀석들이랑 다른 수련을 했어요.”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녀석들 사이를 지나 제갈소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게, 조금 상담할 일이 있어서요.”

“요즘 저한테 상담이 좀 잦지 않아요?”

“흠흠, 회장도 면벽 수련 중인지라 조금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저 임자 있어요?”

“전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걱정 마시죠?”

아, 이거 좀 진심인데?

살짝 싸늘해진 제갈소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

“하지 마세요. 그런 농담. 유 소저는 진짜로 무서우니까요.”

“들었어? 무섭대!”

“그건 참 서운하네요. 저 부회장님껜 꽤 잘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히익?!”

오, 이거 진짜로 놀랐다.

뭐, 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대충 던져 본 거지만.

그나저나.

“점심 지나서부터 계속 여기에 있었어?”

“네. 저도 은신한 채 명상하고 있었어요.”

“……그게 은신한 상태로 가능해?”

“가능하니까 하죠?”

이 더러운 재능!

“……은신한 채로 명상한다는 얘기는 또 처음 듣네요. 귀식대법도 아니고.”

“기(氣)와 존재감을 감추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은신은 되니까요.”

그걸 하면서 명상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데.

이게 공격에까지 은(隱)의 묘리를 담는 경지의 격인가.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다시 제갈소를 바라봤다.

더 물어봤자 어차피 이해할 수 없으니 포기하는 게 속 편하다.

“그래서 용건은?”

“음, 일단 전달할 사항이 하나 있어요.”

“전달 사항이요?”

“네. 당 소저가 완전히 회복했어요.”

“오.”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되더니 결국 다 털고 일어났나 보네.

“그래서 개인전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놨어요. 일단 가장 강한 전력 중 하나가 돌아온 거니까요.”

당화유.

주술의 영향에 걸려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원래 이 학관의 정점에 도달했던 무인이다.

무려 을(乙)에 올랐을 정도로.

물론, 사고를 쳐서 다시 병(丙)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 무위는 다른 병(丙)의 학생보다 반의반 수 이상 위다.

고작해야 반의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전에서 그 차이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할 확률을 몇 할이나 올려 줄 수 있을 정도의 큰 차이다.

그런 그녀가 제 컨디션을 되찾아 개인전에 나간다는 소식은 큰 힘이 된다.

이건 기쁜 소식이네.

고개를 주억거린 설천위는 다음으로 이어질 제갈소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분명 상담할 일이 있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아직도 개인전의 자리가 불안정하다는 거예요.”

“하긴, 둘이 완전히 빠졌고 하나는 상태가 안 좋으니까.”

개인전은 애초에 열둘이 싸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최소 두 사람이 부족한 데다 하나가 더 공석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친선전이라는 이름이니만큼 승패를 가리는 걸 떠나 열두 번의 대련은 전부 채워야 할 터.

“고민이 많겠어요.”

“네. 아주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상담하러 온 거고요.”

“……딱히 해결책은 없는데요?”

“사실, 그냥 더 뽑으면 되는 문제이긴 해요. 다만, 아쉬워서 그렇죠.”

“음.”

하긴 승은 최대한 많은 게 좋으니까?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잘됐다는 듯 제갈소가 웃었다.

“그래서 설 소협에게 부탁이 있어요.”

“저한테요?”

“네.”

“말해 보세요.”

“설천강 소협을 설득해 주세요.”

……응?

“누구요?”

“설천강 소협이요. 병급(丙級)인.”

그러니까 누굴?

“동생한테 죽빵 처맞고 삐져서 방에 처박힌 인간을 동생보고 꺼내 오라고요?”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요. 흠흠, 찾아간 사람을 아예 만나 주지도 않더라고요.”

“동생이라고 다를 것 없을 것 같은데요?”

설가의 형제 관계가 그렇게 가깝지 못한데?

“그래도, 시도만이라도 해 주실 순 없나요?”

“……네. 없어요.”

“아.”

어허, 어딜?

나 바쁜 몸이야.

그런 찌질한 형한테 시간 쓸 여유가 없다.

실망하는 제갈소를 향해 대충 손을 내저은 설천위는 하나둘 일어나는 단체전 인원들을 바라봤다.

“일어났으면 밥 먹으러 가자!”

음,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여 가면서 굴려야지.

“그럼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 거죠?”

“네……. 설 소협이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전 이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 발로 직접 설천강 그 인간한테 찾아가서 부탁까지 할 필욘 없잖아?

그 인간, 애초에 그리 비중이 큰 인간도 아니고.

관심 끄자.

“밥 먹자! 일어나!”

그나저나 얘들은 왜 이렇게 안 일어나.

* * *

“설 부단주.”

“예.”

“전에 동생이 왔었다는데, 얼굴도 안 봤나?”

“일이 바빴습니다.”

거, 담담하구먼.

여전히 냉랭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설란을 보며 고개를 저은 구목은 서한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이번에 학관에 전달해야 할 사항일세.”

“……이걸 왜?”

“명령이니 동생 얼굴이나 보고 오게. 이것도 일이니까.”

“하지만.”

“어허, 명령이니 가기나 하게.”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한을 받는 설란.

그러곤 곧바로 집무실을 나선다.

평소처럼 깍듯이 인사하고 나가는 모습은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그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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